장애인권리협약 최종권고 이행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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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이하 위원회)가 대한민국 최초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한 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정신보건법상 비자의 입원 규정,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 등 지적된 60여 개의 조항들을 개선하고 이행할 일만 남았다. 때문에 정부의 이행 의지는 물론 법 제·개정 작업, 이행 실태 모니터링 등을 수행할 장애인 단체 및 당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함께걸음』에서는 CRPD 최종권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효성 있는 이행 방안 마련을 위해 앞으로 총 10회에 걸쳐 각 권고사항들의 세부 이슈에 대해 선택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최종견해 이행상황 보고까지 ‘5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은 장애인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담은 국제협약으로서 2008년 대한민국 국회가 비준·동의하고 2009년부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된 국제법이다. CRPD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에 협약 이행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게 되며, 작년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번째 정기보고 및 위원회 심의가 진행됐다.
위원회가 내린 조항을 살펴보면, 국가인권위원회 개선에 대한 권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성년후견제도, 정신보건법상 비자의(강제) 입원, 시외 이동권,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구제조치, 장애여성 정책 부재,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 등이 국내에서 부각되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다양한 권고가 담겨 있다. 한국 정부는 늦어도 2019년 1월 11일까지 정기 보고서를 다시 위원회에 제출, 이러한 최종견해에 대한 이행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이에 장애계에서는, CRPD 최종견해 이행 및 모니터링 방안에 관한 토론회 등에서 몇 가지 이행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장애인정책조쟁위원회를 내실화해 전반적인 이행 기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것.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증가시킬 것, 최종견해 이행을 위한 국가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장애인 및 장애인단체의 참여를 보장할 것 등이 그간 논의된 방안이었다.
▲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한국 정부는 2010년 1월 1일까지 정기보고서를 제출 최종견해에 대한 이해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
어느 한 가지 권고도 쉬운 것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 최종견해 이행에 대한 진행상황들은 어떨까. 우선,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관계자는 “준비하고 있는 것이 많다. 각 부처에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계획 제출을 요청했고, 현재 부처별 이행 역할에 대해 조율하고 있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최종권고 이행 관련한 로드맵을 연구하는 중인데, 진행상황에 따라 다음달 중 간담회를 개최해 타 부처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예정이다. 또한 사법부·입법부 측에도 계속적으로 권리협약에 대한 내용을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최종견해 권고사항에 대한 의견으로 관계자는 “어느 한 가지 권고도 쉬운 것이 없다.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조항들도 있고, 현실적으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사항들도 있다. 장기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행 방안 모니터링 계획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히면서 “연말 중 권리협약 이행 관련 토론회를 개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그때 모니터링 계획을 발표하면서, 각 기관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전문가·장애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CRPD 위원들을 국내로 초청, 입법부나 사법부에 지속적으로 권리협약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민간 차원에서도 논의는 계속되고 있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은 당사국 회의에 다녀와 향후 지속적인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DPI에서는 이전에 조직했던 장애인권리협약모니터링연대를 확대 강화하여 향후 장애인권리협약과 관련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이 CRPD 최종견해에 관한 모니터링 지표 개발 등 여러 가지 이행방안들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단체들이 최종권고 이행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계획 단계부터 공개적인 절차 만들어야
이석구 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행연대 부운영위원장은 정부의 이행노력에 대해서 “다분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종견해가 공개되고 장애인 단체, 그리고 인권위에서 향후 과제와 방향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했으나 정부는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이행노력은 다분히 형식적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최종견해의 우려와 권고에 반하는 이행방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특히 최종견해의 조항들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답변에 대해서는 “이러한 반응이 정부가 장애인권리협약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은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키고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행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나, 그것이 이행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협약에서는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차별할 소지가 있는 관습과 전통 또한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협약의 이행과 모니터링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참여, 특히 이해 당사자의 참여다. 특히 정부가 계획을 고민하는 단계부터 공개적인 절차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권리협약 이행 지표 개발에 있어서는 민간 차원에서는 한계가 있고, 이행 부분에서 정부와 민간, 모니터링 부분에서 인권위와 민간의 협력체계와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봤다.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우선돼야
결국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들어간 구체적인 이행 방안과 함께 민·관의 효과적인 협력체계가 필요하다는 것. 지난 7월만 해도 장애계에서는 여성장애인 통합 정책 반대, 시외 이동권, 정신장애인 복지 등 최종권고 사항에도 포함돼 있는 수많은 쟁점들이 논의됐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논의되지 않은 채 문제만 지적된 수준에서 그쳤다. 이는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
김기원 유엔인권정책센터 간사는 “작년 심의를 준비 하면서도 우리나라 정부가 권리협약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통합교육 분야는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 과정과 시설, 그리고 교육자 등 모든 부분에서 장애아동을 포괄하는 것이 통합교육인데, 현실은 같은 학급도 아닌 ‘특수학급’의 형태로 장애아동을 분리 및 고립시켜 교육하는 것을 ‘통합교육’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
이어 “지난 달 보건복지부는 교육 관련 정책과제 의견 수렴 결과에 따르면, 특수교육기관의 수 확대, 특수교사 증원, 특수교육 예산 증액 등 여전히 특수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상 다른 국가에 비해 더욱 이행의 장벽이 높을 것이라고는 예상이 된다. 이는 교육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을 유지하기보다는 조금씩 장벽을 낮추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김 간사는 권리협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앞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장애인권리위원회가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이해 및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항에 대해 발표하는 ‘일반논평(general comment)’ 등을 참고하고, 다른 나라들의 이행 상황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CRPD 최종견해 이행은 아직까지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실체가 없다. 정부의 입장, 부처별 협의가 어디까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또 이후 과정에서 당사자 및 장애인단체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는 의문이었다. 전문가들 또한, 장애인권리협약 자체에 대한 이해, 이행 계획 수립 과정에서의 참여, 민·관에서 각각 보여야 할 노력 등 최종견해 이행에 관한 여러 주의사항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때문에 CRPD 최종견해에 더욱 관심을 갖고, 각 조항별 현황에 대해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다음 호에서는 성년후견인제도 철폐 및 대체의사결정체계에 관한 이슈를 다뤄볼 예정이다.
▲ 지난해 제네바에서 열린 심의에서는 NGO단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
국가별 이행 사례 예시 헝가리의 지원의사결정제도
※ 유엔정책인권센터 제공
장애인권리협약은 유엔에서 가장 최근에 제정된 협약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협약을 비준한 모든 국가에 대한 첫 심의도 다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다. 국가별 위원회의 권고 이행 상황은 2차 심의 때 점검하게 되며 이 때, 모범적인 이행 분야 혹은 개선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 포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조항의 이행과 관련하여, 위원회에서는 권고 이후 후속조치로서 진행 상황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고 있다. 일례로, 위원회는 2012년 9월에 심의를 받은 헝가리 정부에게 특히 ① 후견인제도 철폐 및 대체의사결정체계에서 지원의사결정체계로의 전환과 ② 모든 장애인의 투표권 보장에 대한 권고의 이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요청했다.
헝가리 정부는 이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으나 부분적으로 개선을 이루어낸 성과를 보고했다. 심의 이후인 2013년, 헝가리는 민법(Civil Code)을 개정했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참고하였다. 법적 행위능력의 완전한 제한(후견인제도) 또는 일부 제한은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법원에서 개별 사례별 판단을 내리고 있다. 개정 민법에 따라 모든 후견인 임명 사례가 예외없이 5년마다 한 번씩 의무적인 검토를 받아야 하며, 지속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개정 민법이 지원의사결정제도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며, 2013년 9월 지원의사결정에 관한 새로운 법안의 주요 내용이 의회에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그 내용에 따르면, 당사자 혹은 법원의 요청, 그리고 당사자의 승인 하에 조력자가 임명될 수 있으며, 임명된 조력자는 행정·민사·형사 절차의 모든 단계에 동석이 가능하다. 조력자는 자문과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당사자를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한편, 지적 장애인의 투표권 제한에 대해 법원이 후견인 임명 여부를 검토함에 있어서 반드시 투표권에의 적용을 별도로 판단하도록 근본법(Fundamental Law)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현재 후견인이 임명된 당사자의 투표권 허용 또는 제한 여부에 대한 사법적 검토가 개별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헝가리의 사례를 통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원의사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후견인제도는 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되나, 과도기적으로 동시에 두 가지 제도를 운영하면서 후견인제도를 단계적으로 축소 및 폐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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