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갈증을 풀고 함께하는 동지애가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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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개교 - 1994년 3월, 정립회관 교육관으로 이전 - 1994년 11월, 대입 검정고시반 개설 - 1998년 4월, 월간 소식지 ‘노들바람’ 창간 - 1999년 1월, 동문회 출범 및 총회 개최 - 1999년 3월, 특활 교육 시작 - 1999년 5월, 중증장애인의 이동지원을 위한 차량 운행 시작 - 2000년 5월, 서울시 비영리단체 등록 - 2002년 9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 - 2003년 7월, 장애인교육권연대 출범(공동대표단체) - 2006년 3월, 장애인자립작업장 ‘노란들판’ 개소 - 2008년 3월, 서울 동승동에 독자적 교육공간 마련 - 2013년 7월, ‘노들장애인야학’으로 명칭 변경 - 2013년 10월, 노들장애인야학 20년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출판……………………. 몇 가지로 요약한 한 단체의 간단한 연혁만 살펴봐도, 이 단체가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걸어왔는지를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장애인야학의 전국구 대표, 노들장애인야학을 함께 만나 본다.
1993년 개교 이래로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명칭은 장애인권운동계에서 가장 큰 무게감을 가진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다. ‘거의 대부분’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서울을 기점으로 한 장애인권운동의 장애당사자 활동가들이 그 곳 출신이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모든 인권운동 속에는 노들장애인야학의 이름이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왕성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핵심 포인트는 단 하나의 글자 안에 모든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야학(夜學)이 아니라는 점이다. ‘밤 야(夜)’가 아닌 ‘들 야(野)’를 사용한다. 야학(夜學)이 아니라 야학(野學)이라는 사실은,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의 지향점이 어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다 배우지 못한 지식을 책상 앞에 앉아 익히는 데 머물지 않고, 장애당사자의 권리와 인권을 세상(野) 속에서 직접 ‘나의 것’으로 되찾고 쟁취하겠다는 교육이념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육은 현장성을 특히 강조한다. 세상 전체를 지향하는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진이미지 제공 노들장애인야학 |
노들은 청솔1반·청솔2반·불수레반·한소리반, 이렇게 4개의 학급으로 운영된다. 초등·중등·고등 교육의 과정으로 각각 구분된다고 보면 된다. 한글 공부부터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고, 대학 진학을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급은 4개 반이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더 세세한 분류가 있어, 가능한 한 ‘최대다수의 최대만족’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2015년 6월 현재 등록 학생은 84명이고, 60명 내외의 학생들이 꾸준히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평균연령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연령대는 다양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한 학급에 함께하고, 장애유형이나 성별의 기준이 아닌 학습능력의 수준에 맞춰 학급을 정하고 있다.
노들의 또 다른 강점은 특화된 특별활동에 있다. 언론매체에도 종종 등장하는 노들음악대가 있고, 미술반은 2개반으로 나눠져 운영된다. 일반적인 미술반이 있고, 미술수다반이 따로 있다. 하나의 미술작품을 앞에 놓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인기가 높다. 더불어 방송반이 있고 연극반과 댄스반이 있다. 노들의 특별활동은 일반수업 위주로 진행되기 쉬운 야학의 존재이유를, 입체적으로 활성화시키는 훌륭한 역할을 담당한다.
‘노들’은 노란들판의 준말입니다. 농부의 노동이 녹아난 들판에 넘실대는 결실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는 노들인들이 들판을 일구는 농부라 생각합니다. 시퍼런 ‘경쟁’의 도구로 차별과 억압의 들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과 연대’로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을, 그 대안적 세계를 꿈꾸는 농부들 말입니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벽에 붙은 종이 한 장 안에 노들의 모든 존재이유가 담겨 있다. 너무 많이 알려진 단체이기에, 그 출입구에 들어서기가 주저된다는 분들의 의견도 자주 듣는다. ‘나 같은 사람도 받아줄까?’ 하는 의문을 미리 갖고, 문을 두드릴 생각을 미리 접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해답을 먼저 전해드려야겠다. 답은 하나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는 누구고, 여기서 배우러 왔다’ 말씀만 하시면 된다. 세상 그 어디보다 활짝 열려 있는 공간이 바로 노들이기 때문이다. ‘노들장애인야학에 뜻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할 준비가 됐는가? 그렇다면 다음 신입생은 ‘바로 당신’이다.
배승천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대표
노들의 교사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상근교사가 10명 내외, 자원활동교사가 그 두 배인 20명 정도 된다. 총 30여 명의 교사가 각 분야별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불필요한 질문인 것 같은데, 노들에 지원할 학생의 자격 같은 게 있는가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단지 조건이라면 성인이면서 장애인, 이 두 가지가 전부다.
위의 질문을 한 이유는 모든 장애영역이 다 가능한지를 묻고 싶었던 거다. 어떤 장애든, 중증이든 경증이든 다 지원이 가능하다는 건가
질문의 의미를 알겠다. 노들 차원에서 판단을 해야 할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이 지원할 경우는 노들 차원에서 준비가 안 된 부분들이 문제가 된다. 점자로 된 수업교재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보니,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교사대표로서 먼저 지원자의 의견을 들은 뒤, 교사회의 등을 통해 대안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자원활동가인 교사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신가
굉장히 다양하다. 일반회사에 다니는 분들, 대학 시절에 야학교육의 경험이 있는 분들, 기존의 장애인권운동계에서 활동을 했던 활동가들, 더불어 미술가나 연극인 등 전문직을 가진 분들이 교육에 참여했다가 길게 이어지는 수업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교사의 입장에서 노들의 교육은 어디에 중점을 두는가
교육의 중점이라는 화두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예전에는 검정고시 등의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는다 해도, 그게 취업에 도움이 되며 중증장애인들 삶이 변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졌다. 학력이 인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바뀌는 게 거의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들의 교육 목표는 말 그대로 ‘배움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배움은 교실에서 함께하는 교육도 있지만, 사회적인 관계망 확보와 자신의 권리쟁취를 위한 투쟁 같은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하기에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함께 수업하는 학생들의 장애유형이 다양한 상황에서, 교육의 효율성이 이뤄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100의 노력을 쏟아서 100의 결과를 얻는 교육은 비장애인 교육을 포함해서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정말 아주 천천히 느린 성과를 보이는 분들이 계신다. 성과가 유난히 뚜렷한 분들도 계시고, 오래 진행된 학습 때문에 정체상태로 멈춰진 분들도 물론 계신다. 그럴 때마다 노을은 교사들 차원에서 고민과 토론에 들어가게 된다. 대안을 찾아서 새로운 출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하게 질문 드린다. 특별한 성향의 학생이나, 노들만의 독특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줄 게 있는가
재미있는 경우라기보다는, 대부분 장콜(장애인콜택시)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업의 종료를 함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장콜에서 연락이 오면 먼저 나가서 귀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아실 거다. 장콜한테 기다리라고 할 순 없고, 장콜을 돌려보낸 다음에 다시 신청하는 건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수업 시작과 함께 장콜을 신청하는데, 그게 10분 만에 올 때가 있고 그 시간대가 제각각이다. 그게 수업의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된다.
교사로서의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
가장 뿌듯할 때는 뭔가의 행사를 준비할 때다. 일종의 학예회 같은 행사가 여럿 있는데, 그걸 준비할 때가 너무 행복하다. 정말 우리 스스로를 위한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게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함께할 때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노들 밖에서 노들을 희망하고 있는데도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분들한테 교사대표로서 한 말씀을 남겨주면 좋겠다
시설에 계신 분이라면, 저희한테 연락을 주시면 된다. 저희가 찾아가서 직접 의견을 듣기 때문이다. 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탈시설을 하고 싶은 분들께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는 일이다. 언제든지 연락 주시면 된다. 노들은 모든 게 활짝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
김동림 노들장애인야학 총학생회장
언제부터 총학생회 회장이 되신 건가
2015년 올해 초에 학생들의 직접선거로 회장에 선출됐다.
노들은 언제 처음 알게 됐는가
2009년 탈시설을 했다. 그 이전인 2008년에 노들이 시설에 방문해, 자립생활교육을 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9년 OO재단 비리척결을 위한 마로니에 노숙투쟁을 진행하면서, 노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의 대표가 되셨는데, 회장으로서 무엇을 가장 중점으로 두고 계신가
소통이다. 처음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모든 이들과의 소통이었다. 가장 기초적인 교육을 받는 학생들 중에는 핸드폰 사용법을 잘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 사용법을 먼저 가르쳐 준다. 왜냐, 음성의 언어로 안 된다 해도, 문자로 가능한 게 바로 소통 아니겠는가.
노들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성격과 개인 상황이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노들에 오면 모두가 학생의 신분으로 바뀐다. 다 같이 얘기하며 화목한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노들이 되길 바라며, 회장으로서 그 부분에 특히 노력하고 있다.
6개의 특활반이 있다고 들었다. 회장으로서 추가하고 싶은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면?
수화반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처음에는 힘든 과정도 있겠지만, 수화를 같이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의 소통을 위한 정말 유용한 활동이 될 것 같다.
총학생회 회장으로서 노들의 학생들 모두에게 남기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바라는 건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다. 지금 있는 상태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솔직히 아픈 학생들이 너무 많다. 배움에 뜻이 강하지만 몸이 아파서 수업에 나오지 못한다는 거, 그건 강의를 받는 모두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만드는 부분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그냥 안 아프고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된다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만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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