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여행 DMZ 관광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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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DMZ 열차 |
우연히 KTX를 탈 일이 생겼다. 인터넷에서 KTX 표를 예매하던 순간 내 눈 앞에 광고 배너 하나가 보였다.
‘DMZ’
DMZ? 비무장지대? 거기도 열차가 가는가 싶어 머리를 갸우뚱했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접속해 DMZ가 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평화 열차: DMZ 트레인. 역사와 자연, 평화가 공존하는 DMZ로의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됩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열차 표를 예약했다. 여행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예약했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계획에 없던 DMZ 여행을 하게 됐다.
서울역에서 도라산역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DMZ 트레인을 예약했지만, 당시 나는 도라산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서울역을 출발해 능곡, 문산, 운천, 임진강을 거쳐 도라산까지 간다고 했다. 그런데 기차가 하루에 두 번 밖에 운행을 하지 않는다. 평일에는 심지어 한 번만 운행한다고 한다. 혹여 기차를 놓칠까 봐 왕복으로 승차권을 구매했다. 이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도라산은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열차표는 반드시 왕복으로 구매를 해야 한다고 하니 DMZ 관광열차를 탑승할 분들은 꼭 기억하기 바란다.
▲ 아기자기한 열차 내부 |
도라산으로 가는 당일, 오전 8시.
새벽같이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갑작스런 여행에는 동행이 없다. 작은 핸드백만 들고 역으로 향했다. 핸드백 속에 든 햇볕을 가려줄 선글라스와 배고플 때 먹을 초콜릿 몇 개, 커피 한 병, 그리고 카메라만이 함께했다.
기차여행에는 새벽에 갓 싼 김밥이나 유부초밥, 과일, 삶은 달걀 등 정성스런 음식이 듬뿍 담긴 도시락을 까먹는 게 제 맛이지만 무계획 여행자에게 그런 도시락은 호사에 불과하다. 하는 수 없이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하나 샀다. 김밥이 든 봉지를 달랑 달랑 들고서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랫폼에는 DMZ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빵~빵~”
경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도착하자 승무원과 공익요원이 단숨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해 빠르게 객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작 세 칸뿐인 작은 열차였지만,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 나는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했다. DMZ 트레인 내에 간단한 스낵바가 있지만 휠체어로 이동하기는 어렵다. 대신 승무원에게 문의하면 친절하게 구매를 도와준다.
어느새 기차가 출발하고, 승무원들이 승객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눴다. 인사가 끝나고 승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라산은 민간인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출입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남녀노소,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출입이 불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냥 신나는 열차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분단의 역사적 현장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 도라산 평화공원 입구 |
도라산까지 가는 약 2시간 동안 사연과 함께 노래를 신청하면 틀어준다고 했다. 무료할 것 같았던 열차 여행에 소소한 이벤트가 나름 재미를 더했다. 나도 짧게나마 한마디 사연을 쓰고 신청곡을 신청했다.
앞서 신청된 신청 곡과 사연이 흘러나왔다. 사연과 함께 다양한 노래가 흘러나왔고, 별 내용이 없는 내 사연도 뽑혀 다음 곡으로 이어졌다. 즐거운 노래들 덕분에 남녀노소 그리고 외국인들까지 함께 흥얼거리며 도라산으로 갈 수 있었다.
열차가 임진강역에 도착하면 승객 모두가 하차해서 헌병의 검문을 받은 후 재탑승해 도라산으로 간다. 휠체어를 탄 탑승객은 열차에 대기를 하고 있는 대신, 군인이 들어와 신분증과 출입신청서를 확인한다. 임진강역을 출발해 다시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도라산역에 도착하니 휠체어 리프트와 함께 역무원이 나를 맞이했다. 안전하게 열차에서 하차하고 도라산 평화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라산 평화공원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평화공원이 무척 맘에 들었다. 평화공원 야외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할머니를 통해 들었던 가슴 쓰린 전쟁 이야기와, 전쟁 후 보릿고개 이야기를 목격하는 것 같아 뭉클했다.
찡한 가슴을 붙잡고 발걸음을 옮기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벽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통일을 염원하는 아이들의 예쁜 그림 타일들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의 염원이 담긴 간절한 내용도 함께 붙어 있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내 동생들. 꼭! 보고 싶다.’
‘고향은 항상 그리운 곳. 평남순천군’
‘죽기전에 고향 땅 밟아 봐야 한다.’
▲ 평화공원 내 타일벽 |
가슴이 먹먹했다. 80년대에 태어난 나로서는 전쟁은 그저 역사책에서나 보던 이야기 즈음으로만 와 닿았다. 공감하지 못했던 분단의 아픈 역사를 실제 유경험자들의 사진과 글로 마주하게 되니 새롭게 느껴졌다.
발걸음을 옮겨 도라산 평화공원 전시관으로 갔다. 이 곳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DMZ 생태계를 소개하는 입체 전시가 한창이었다. 3D 안경을 쓰고 화면을 보다 보니, DMZ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눈 앞에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게 관람을 마치고 전시관 뒷편에 있는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장애인화장실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자동문이 아예 작동을 하지 않았다. 평화공원을 관람하면서 뭉클했던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질 만큼 실망스러웠다. 장애인 관광객에 대한 배려 수준이 빵점이다. 화장실을 이용하시려면 도라산역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다시 DMZ 트레인을 탑승했을 때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나와 함께 도라산역까지 왔던 무리들이 다시 같은 열차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민간인 통제가 철저하고, 왕복 기차표를 예매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같은 모양이다.
무작정 떠난 DMZ 열차 여행. 작은 열차 칸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DMZ 트레인도 무척 인상 깊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분단의 슬픈 역사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다. 지금은 비록 이 열차가 도라산에서 멈추지만, 먼 훗날 고향을 잃은 실향민을 싣고 달리는 통일열차가 되길 바란다.
▲ 운행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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