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예술마을 관광객에 장애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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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리 내부에 위치한 계단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2015년 열린 관광지’는 총 6곳이다. 열린 관광지는 희망하는 지차체의 제출 자료 등을 검토해 선정됐다. 6곳이 선정되기 직전, 최종 심사대에 올라온 관광지는 총 10곳. 이 10곳에는 수도권 당일치기 여행지로 알려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도 포함돼 있다. 더운 여름에도 실내에서 다양한 갤러리나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는 헤이리. 하지만 열린 관광지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헤이리 예술마을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형편없었다.
턱과 계단으로 무장한 헤이리 건물들
휠체어 여행작가인 전윤선씨와 헤이리로 향한 것은 지난 6월 중순. 볕이 쨍쨍한 날씨에 장애인콜택시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헤이리에 도착했다. 15만평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헤이리는 380여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한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이뤄져 있는 관광지다. 관광객들은 이곳의 아기자기하고 이색적인 공간들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가게들이 모두 눈길을 끌만큼 잘 꾸며져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접근 가능한 1층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구경에 나섰다. 식당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the step’부터 들어섰다. 규모가 작지 않은 건물이었다. 건물 입구에 턱이 없었고 지하, 지상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이동이 가능했다. 큰 어려움 없이 건물을 둘러본 뒤, 다른 곳들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어려움 없이’ 둘러볼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규모가 큰 전시 건물에서부터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에 이르기까지 건물마다 입구에 턱이 존재했다. 서울 시내에도 물론 턱이 많지만 헤이리만큼 턱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턱이 없고 자동문이 설치된 반가운 가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헤이리는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었다.
이따금 경사로를 발견했지만 무엇을 위한 경사로인지 의아할 정도로 실용적이지 않았다. 어느 경사로는 한 차례 꺾여 있기도 했고 어느 경사로는 경사가 너무 가팔라 휠체어 장애인 혼자서는 오르기가 불가능했다.
완만한 경사로를 설치한 건물도 이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 이색박물관 앞에 경사로가 제대로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가봤지만 입구에서 만류 당했다. 멀리서 봤을 때 작은 건물이 아니었음에도 내부는 보행자 한 명이 지나가면 꽉 찰 정도의 좁은 통로로 이뤄져 있었다. 입구에서 우리를 막아선 직원은 “2층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계단 뿐이라 안된다”고 말했다. 투명한 문 너머로 커다란 헐크 등 개성이 넘치고 흥미로운 전시물들이 보였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상황은 계속 반복됐다. 그나마 낮은 턱을 뚫고 들어가도 “전시관은 지하인데 계단 뿐이라서”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아예 계단을 올라야 전시관 입구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멀리서 보고 기대에 차 이동하면 돌아서는 상황이 이어지자 여행의 흥겨움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중 “입장 가능하세요!”라고 말하는 한 박물관을 만났다. 드디어 실내 관람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직원은 “1층만 가능하고 다른 층은 계단이라 이동이 불가능한데, 헤이리의 모든 건물이 그럴 것”이라며 “복지카드를 보여주시면 30% 할인 해드려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입장은 가능하지만 1층만 보라는 것이었고 1층만 볼 수 있는 불평등을 30% 할인으로 합리화 시키는 말이었다. 발길을 돌려 나오며 전 작가는 “할인 받지 않고 그냥 제대로 전시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계속 길을 걷다보니 독특한 다리가 보였다. 헤이리에서 자랑으로 삼는 현상설계 다리였다. 비장애인들이 손을 잡고 다리를 오갔다. 다리의 시작점에는 턱이 있었다. 우리는 다리 옆을 지나는 자동차와 함께 걸어야 했다.
▲ 헤이리 내 장애인 화장실 |
장애인화장실 가려면 왔던 길 되돌아가야
관람 가능한 곳을 찾아 헤매던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넓은 헤이리에서 목격한 장애인 화장실은 시작점에 있던 건물 내부 뿐이었다. 꽤 멀리 걸어왔기에 서둘러 왔던 길을 되짚었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온 전 작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장애인 화장실의 시설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수직 손잡이는 변기에 앉아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설치된 것도 모자라 방향마저 잘못돼 있었다. 또한 화장실을 구석구석 살펴도 비상벨은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을 체크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찮게 화장실을 관리하는 시설팀과 마주쳤다. 전 작가가 나서 “장애인 화장실 시설이 규격에 맞지 않으니 고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됐는지 묻지도 않고 “고쳐야죠”라고 둘러댄 후 서둘러 자리를 뜨는 그들의 얼굴에는 성가신 표정이 선명했다.
모든 장애인에게 닫혀있는 관광지
헤이리는 휠체어 장애인만이 아닌 모든 장애인들에게 있어 ‘닫힌 관광지’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길에도 시각장애인용 점자 블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 가구전시관 입구에서 완만한 경사로와 점자블록을 동시에 발견했지만 그 출입구는 사용하지 않는 문이었다. 유리문 건너편에는 전시된 가구들이 길을 막고 있다.
넓은 헤이리는 도보로 둘러보려면 허리가 아플 정도인데 중간중간 앉아서 휴식을 취할만한 곳이 드물다는 점도 장애인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카페에 들어가야 하는데 만약 휠체어 장애인과 보행 장애인이 함께라면 카페에 들어가 쉴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권유조차 없는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헤이리 예술마을 내에는 19개의 박물관이 있다. 58개의 갤러리와 32개의 체험공방이 있고 48개의 카페, 13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비장애인이라면 볼 것도 맛볼 것도, 즐길 것도 많은 이 마을에 엘리베이터가 존재하는 전시관은 한 곳뿐이다. ‘화이트블럭’이라는 미술관으로, 경사로와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너비의 통로,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 첫 방문지인 ‘the step’은 엄밀히 헤이리 예술마을의 소관이 아니므로 제외된다.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애인 접근성을 위해 경사로 설치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헤이리측은 “경사로는 개별적으로 설치”하게끔 하고 있다고 답했고 파주시 장애인복지과는 헤이리 예술마을의 편의시설에 개입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관광지이니만큼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져야 하지 않냐는 지적에 파주시 장애인복지과는 “모두 갖춰지면 좋겠지만 편의시설 적용 의무 대상 건축물이 아니면 안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편의시설 의무 대상 조건에 해당하는 건축물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좌)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가파른 계단이다 (우) 턱 때문에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한 현상설계 다리 |
완벽하지 않아도 개선 의지 있어야
헤이리에서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기다렸다. 저상버스는 2,30분에 한 대씩 배차돼 있었다. 저상버스가 도착했지만 막상 휠체어 장애인을 태워본 경험이 부족한 것이 느껴졌다. 버스를 더 가깝게 대기 위해 다시 정차를 하고, 인도의 높이를 감안하지 못하고 높이를 낮춰 다시 올려야 했다. “기사님! 내리시면 안돼요! 올리셔야 돼요!” 전 작가가 급히 말하자 버스가 알맞은 높이로 돌아왔다.
후문으로 탑승해 정면에 있는 접이식 좌석을 접기 위해 애를 썼지만 고장으로 접히지 않았다. 버스 복도에 휠체어가 놓인 채 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른쪽의 접이식 좌석을 접어보니 다행이 접혀 공간이 마련됐다. 휠체어가 2대라면 한 대는 꼼짝없이 복도에 있거나 다시 내렸어야 했을 상황이었다. 그만큼 휠체어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헤이리를 찾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 작가는 “장애인들 사이에서 여행은 이제 먼 나라 일이 아니다. 삼삼오오 모이면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헤이리처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은 입소문을 타서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나절간의 헤이리 방문 일정동안 전 작가는 이따금씩 “차별의 온상”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장애인들이 방문하기에 헤이리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며 방문했을 때 차별받고 있음을 체감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전 작가는 “비싼 엘리베이터를 모두 설치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1층만이라도 모두 접근가능하게 경사로를 제대로 설치하고 규격에 맞는 장애인 화장실 개수를 늘리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보행 장애인을 위한 일명 ‘코끼리열차’나 ‘골프카’ 운행도 제안했다.
최종 선정된 열린 관광지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곳인 ‘순천만’도 완벽한 베리어프리가 실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좋은 평을 받는 것은 개선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순천만은 장애인이 불편함을 호소했을 때, 그것이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될 내용이라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 당장 고쳐드리겠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고 움직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진다면 헤이리도, 헤이리와 같은 대부분의 국내 관광지들도 장애인들에게 ‘열린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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