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의 소비자주의와 권한강화 논쟁
본문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어 실행되고, 이와 더불어 영국의 직접지불제도(direct payments)와 개인예산제도(personal budgets)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면서, 급여를 서비스나 바우처가 아닌 현금으로 주는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함께걸음』에서는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10회에 걸쳐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의 개념, 관련 논쟁, 외국의 사례, 우리나라의 제도 도입방안 등을 연재한다.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의 가장 강력한 추동력은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을 강화해 이용자의 권리를 증진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용자 선택권의 증진은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도 환영받았고, 장애의 사회적 모델과 자립생활을 옹호하면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및 권한강화를 주장한 장애운동진영에서도 환영받았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가 공공지출을 제한하고 소비자주의 개념을 사회서비스에 도입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집합주의와 공공서비스 정신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이용자 선택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양쪽 진영의 논리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진영은 왜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를 모색했는가?
1970년대 경제위기 및 정치 양극화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시장경제의 효과적인 작동을 방해할 정도로 공공비용을 증가시키고,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국가독점이 다양한 욕구만족방식에 대한 선택가능성을 감소시켰으며, 또한 전문가주의와 관료주의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공공 서비스 영역이었던 교육, 주거, 보건, 사회서비스 영역 등에서 소비자주권과 선택권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됐고, 다양한 시장주도개혁이 실행됐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물서비스공급이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공급자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이 부족하며, 온정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개인마다 욕구가 다르므로 이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현금급여를 지급하고 이용자가 소비자가 되어 선택권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여러 대안 중에 선택을 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서비스나 제공자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소비자의 권한이 강화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 중심의 사정을 통해 서비스에 사람을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이용자의 판단에 의해 이용자의 욕구에 서비스를 맞추는 방식으로 전달체계를 개편했고, 이 흐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물’ 대신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자를 소비자로 바꾸려는 신자유주의적 접근법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완전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안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대안의 종류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대안의 상세 특징에 대한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의 선택에서 다른 선택으로 이동하는 것이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 되는데,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이와 같은 전제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를 실시하는 국가들은 서비스 질에 대한 통제, 이용자 보호 등을 강조했다. 신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이것이 또 다른 국가개입이라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자립생활 진영은 왜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를 주장했는가?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용자 통제, 권한강화, 자결권의 가치를 촉진시키고자 했던 장애운동세력들은 선택을 통해 이용자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재가 서비스 전달체계는 의료적 기술이나 훈련이 필요하지 않지만, 장애인에게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결정할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등의 이용자를 수동적인 서비스 수급자에서, 어떤 서비스를 언제 어떻게 받을 것인지 선택과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으로 바꾸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과의 권력관계를 평등하게 변화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용자들은 스스로 보조인을 선택하는 고용주가 될 수 있도록 현금에 기반을 둔 해결책을 추구했다. 즉 이용자 중심의 전달방식을 자기주도지원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민인 이용자가 자신의 지원에 대해 최대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은 자기주도 지원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동료, 실천가,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이용자가 서비스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기주도지원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장애진영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가?
좌파는 선택의 촉진이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훼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 영역으로부터 차용한 소비자중심정신은 서비스 이용자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따라 행동할 것을 장려하고, 공공 서비스의 집합적 목적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활동을 위해, 의사소통을 위해, 또는 평범한 일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제공방법에 대한 선택과 통제권이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을 보장하고 자결권을 확보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지원은 공공서비스의 소비자화를 위한 지원이 아니다. 우리 모두 원자화된 개인이라는 것을 수용하거나,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비스 이용자들의 민주적인 참여 없이 설계되고 운영되는 복지 시스템에 대한 집합적인 반대투쟁이다. 개인의 지원 욕구가 어떻게 충족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본질적으로 장애인을 사회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자립생활의 개념과 완전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를 도입한 모든 국가가 소비자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도입한 것도 아니고, 모든 국가가 이용자의 권한강화를 목표로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가별로도 차이가 있고, 한 국가 내에서도 정권에 따라 제도의 강조점이 변하기도 했다.
한 예로 영국의 직접지불제도는 보수당 정권에 의해 도입됐다. 즉 소비자주의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을 강조하고, 또한 자유시장과 작은 정부를 지향해 정부재정의 축소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이후 신노동당 정권에 의해 계승되면서 이용자의 권한강화가 강조돼 제도 개편이 진행되기도 했다. 장애인의 권한강화에 헌신한 사람들은 시장 기반 소비자 입장에서 지지할 수도 있고, 급진적인 시민권의 관점에서 지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자유주의 진영은 이 정책의 시장적 특징에 찬사를 보내고 있고, 신노동운동 진영은 이 정책을 공공서비스의 광범위한 선택 추진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한편, 이용자들은 선택과 통제권을 통한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환영하고 있다. 결국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바탕에 있는 긴장과 모순을 덮은 채, 신우파, 신노동운동, 복지이용자운동의 이념과 요구가 복잡하게 결합된 형태다.
따라서 단순히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가 장애인의 권한강화를 추구한다는 반응도 적절치 않고, 또한 신자유주의에 따른 시장화 정책이기 때문에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를 반대하는 것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자본주의 너머의 사회인지, 자본주의를 조금 더 인간화한 사회인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너머의 사회를 꿈꿀 경우 시장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복지사회를 꿈꾼다면, 그런데 그 방법으로 시장화를 통해 장애인들의 권리가 증진될 수 있다면, 시장화는 하나의 도구일 따름이다.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받은 현금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장 기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에 국가가 사례관리자나 지원계획을 통해 이용자를 통제했다면 통제권한을 이용자에게 과감히 양도하고, 영리기관 진입 허용 등 사회서비스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일반 서비스나 재화를 구입하는 자유시장이 되도록 규제를 모두 없애서도 안 된다. 선택기제로서 시장의 기능이 존재하면서도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시장의 속성을 경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들, 즉 반(反)시장기제(anti-market mechanism)를 유기적으로 엮음에 따라 유사시장의 성격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자립생활을 증진하고 주류 사회와의 소통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의 집합적 접근법으로 여겨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틀 내에서만 해석된다면 복지의 집합적 책임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립생활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는, 해방운동가의 정책과 연구의 인식론적 토대가 된 이념이다. 이것은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반대되는 사회적 모델과 유사한 것이다. 둘째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활동보조인을 직접 고용하여 자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현금을 제공하는 실질적인 정책에 숨어 있는 기초 개념이다. 장애의 정치학이 사회서비스 현금지급제도의 촉진 및 유지와 상당히 관련되는 것은 두 번째 개념에 따른 것이다.
자기주도지원(self-directed support)은 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며, 비슷한 의미로 미국에서는 참여자 주도 서비스(participant-directed services)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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