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속 가해자 된 장애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방치 속 가해자 된 장애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청주 버스 폭행 사건의 전말

본문

  14319_13313_5039.jpg  
▲ 회색옷의 커트머리가 가해자 여성. 마지막 사진에서 피해 노인이 맞은 뺨을 어루만지고 있다(SNS에 게시된 동영상 캡쳐)

지난 5월, 청주에서 한 40대 여성이 노인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은 앞다퉈 사건을 보도했고 경찰은 가해자를 찾아나섰다. 이어 이 40대 여성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구속 여부를 놓고 고민한 끝에 결국 구속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고 행동에 옮겼다. 당시 구속된 여성은 현재 청주 여자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로, 경찰은 치료감호 처분을 기대하고 있지만 단순 폭행 사건으로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SNS 통해 알려져 경찰에 구속된 정신장애 여성


지난 5월 초, SNS을 통해 한 동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동영상의 배경은 청주의 한 시내버스 안. 달리는 시내버스 안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를 향해 힘껏 손을 휘두르는 장면이 이어졌다. 중년 여성은 내내 화를 내며 폭행을 가했고 보다못한 승객들이 이를 저지하는 것으로 동영상은 종료된다.
이 짤막한 동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이를 토대로 한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노인을 폭행하는 모습에 분노한 여론은 들끓었고 여성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며칠 후, 경찰은 가해자인 중년 여성 A씨를 구속했다. 구속된 A씨는 정신장애 3급에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A씨는 사건 당일 낮, 시내버스에 탑승해 2인석 좌석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70대 여성인 B씨가 앉아있었다. 버스가 달리던 중, B씨는 A씨가 떨어뜨린 지갑을 발견했고 A씨에게 “지갑을 잘 챙기라”고 일렀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A씨가 갑자기 “무슨 참견이냐”고 화를 내며 B씨를 손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승객과 운전기사가 A씨를 제지했고 강제로 버스에서 하차시켰다. 함께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이 그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SNS에 올린 것이 화제가 된 것이다.
A씨는 버스 하차 후에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도 한차례 소란을 피우는 과정에서 이웃 주민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경찰에 의하면 A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몇 차례 소란을 피우고 타인을 폭행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바 있다. 심각한 폭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속되지 않았지만, 결국 이번 사건을 통해 재범 가능성이 인정돼 구속된 A씨. 청주지법은 재범우려 외에도 “보호가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약 복용이 필수지만 돌봐줄 이 없었다

A씨는 이웃들로 하여금 기피대상이었다. 주로 집안보다는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이목을 집중시키기 일쑤였고, 본인의 집이 아닌 엉뚱한 집에 들어가거나 시비를 걸어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곤 했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은 A씨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경찰에 신고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소 A씨의 이런 행동은 경찰이나 지자체 관계자가 보기에 강제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해당 지역의 지자체 관계자는 “사건 발생 이전, 평소 A씨의 행동을 지켜봤지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에는 애매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A씨의 과격한 행동이 두드러진 것은 버스 폭행 사건이 일어나기 약 한 달여 전부터였다. 다니던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 복용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사건 당시 A씨의 집에는 A씨가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A씨의 보호자인 남편은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자녀들은 이미 이전부터 A씨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입원해 있는 남편 또한 병원에서 A씨를 신경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A씨는 그렇게 집에 혼자 남겨져 약을 복용하지 않은 채 무방비 상태로 길가에 나섰던 것이다.
청주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최영락 센터장(이하 증진센터)은 “당시 A씨는 외부의 자극에 매우 민감했을 것”이라며 “약을 복용하지 않아 조울증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충동 억제가 힘들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나 사리분별이 불가능하고 비약적 사고와 본능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의를 기울여 누군가를 돌봐줄 수 없는 상태인 남편과 살고 있는 A씨의 증세가 악화될 가능성을 고려해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등록 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의 집에는 종종 공무원의 방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문은 ‘사례관리’의 개념이 아닌 확인 방문에 불과했다. 지자체 측에서는 A씨의 불안정한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나 고령자가 아니기 때문에 깊게 개입하지 않았고 A씨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사건이 일어날 즈음, A씨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지자체와 복지관은 그제서야 A씨를 찾기 위해 움직였지만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사건은 그 와중에 일어났다. 증진센터는 이런 상황의 반복을 막기 위해 우선 지적·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례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센터장은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증원되어야 하며, A씨와 같이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재빠르게 개입할 수 있는 위기대응체계가 확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청주시는 정신질환자가 자해, 타해 위험이 있을 경우 사회복지 시설과 경찰 등 관련 기관들이 연계해 미리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의료비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 일부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시스템에 대해 숙지하고 있지만 일부는 A씨와 같은 이를 발견했을 때 어디에 연락하고 조치해야 하는 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경찰이나 소방대원들은 불안정한 상태인 이들을 병원에 데려다 주는데, 병원에는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달리 조치할 방법이 없다. 입원할 수 없는 정신장애인은 다시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되고 상황은 반복되는 것이다.


장애인 가해자, 구속이냐 치료나

A씨는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경찰은 A씨가 치료감호 처분을 받으면 해당 시설에서 죗값을 치르는 동시에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지만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5월 초 구속된 A씨가 한 달 이상 구속, 수감되는 과정에서 방치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증진센터는 “A씨는 이미 약을 복용하지 않아 악화됐다. 그런데 구속 후 치료감호 처분이 나오기 전까지 교도소에 계속 방치되면서 치료가 병행되지 않으면 증세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처벌보다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증진센터는 현재 소견서와 함께 교도소에서 A씨가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지적·정신장애인이 가해자가 되었을 때 이를 처벌해야 하는지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비단 A씨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여론이 가해자가 된 장애인에 대한 비난 일색일 때 더욱 그렇다. 형법상 심실상실자는 책임무능력자로서 처벌되지 않게끔 돼 있다. 지적·정신장애인의 경우 심실상실자에 포함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장애나 질병에 의해 저지르는 일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A씨 사건의 경우에 여론은 “A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A씨를 구속하고 엄중한 처벌을 내려라”는 방향으로 몰렸다. A씨를 철저하게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로 보는 시각인 것이다.
반면 A씨를 조울증이라는 질환을 가진 장애인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뇌가 고장난 상태인 사람이므로 법으로 보호돼야 하는데 구속됐으니 정신감정을 통해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부산에서 발달장애인이 2세 아이를 던져 숨지게 한 사건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A씨에 비해 극단적인 결과가 놓였고 여론은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 속에서 재판이 이어졌고 지난 5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무죄 판결을 두고 여론은 또다시 발달장애인과 그를 보호하는 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냈으며, 검찰은 결과에 불복해 항소를 준비 중이다.
A씨 사건도 발달장애인 사건도 장애인 당사자가 가해자가 됐을 때 그 책임을 장애인에게 물을 수 있느냐의 논란이 병행된다. 다른 상황이지만 여론은 동일하게 장애인 당사자인 가해자에 대한 비난으로 치우친다. 한국정신장애연대 권오용 사무총장은 “단순 폭행 사건으로 구속하고 교도소 수감까지 된 것은 경찰이 처벌을 원하는 여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장애인 가해자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여론이 극단적으로 몰리는 것을 정부가 방치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식개선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구조적 문제에도 책임 물어야

A씨는 정신장애인이자 조울증 환자에서 가해자가 됐다. 증상이 깊어진 A씨가 방치된 채 비장애인 틈을 하염없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인 A씨를 가해자로 만든 것에 대한 일부 책임은 사회에 있다. 아무도 A씨를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재빠른 치료지원이나 긴급입원이 이뤄져야 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인권적인 문제 때문에 보호자 없이 입원 시키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위험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가능한 것이다. 지자체에서 A씨의 위험성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한 발 늦은 시점이었다. 청주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은 “환자도 거부하고 보호자들도 방치하다시피 하는 이런 경우에 과연 그 사람들의 선택에만 맡기는 일이 옳다고 할 수 있느냐”고 꼬집으며 “국가나 지자체가 보호자로 나서서 긴급지원을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작성자조은지 기자  simhyea@naver.com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