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인 존엄사, 차별인가 살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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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든 로스 씨(영국 BBC 캡쳐) |
“나는 내 삶을 끝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병세가 악화되어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나의 죽음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어떤 법적 제재를 받는지 알고 싶다.”
중증 장애 노인이 자신의 안락사를 요구하는 재판이 스코틀랜드 최고 민사 법원에서 심리중이라고 지난 5월 14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전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66세 고든 로스(Gordon Ross)는 합법적인 안락사를 위한 위헌법률심사를 신청했다. 의료진이 안락사를 도와도 살인 혐의를 받지 않도록 검찰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과거 방송국 프로듀서였던 로스 씨는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항구 도시인 글래스고에 있는 그룹홈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어 휠체어 없이는 거동할 수 없고,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등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혼자 해낼 수 없다.
19세기 말부터 안락사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영국 정부는 2010년부터 안락사 조력자 기소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법으로는 금지하고 있지만, 생명유지장치 제거 등 소극적인 수준의 안락사는 사실상 묵인되고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현재 의회에서 계속 논의가 진행 중으로, 법원은 이에 대한 명령이나 지침 제공이 적절치 않다며 로스 씨의 요청을 보류했다.
개인의 자유에 관심 높아지며 안락사 지지자 증가는 세계적 추세
프랑스 하원은 지난 5월 17일 집권 사회당(PS)과 대중운동연합(UMP)이 발의한 ‘깊은 잠’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면서 음식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는 사실상의 ‘안락사’ 제도다. 이미 프랑스는 2004년부터 말기 환자에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의 권리를 부여했다. ‘깊은 잠’ 법안이 올 여름 상원에서도 처리되면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가 된다.
한국 사회의 존엄사 논의는 어떨까. 2008년 2월, 폐 조직검사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과다출혈로 뇌손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 사례가 논란이 된 바 있다. 가족들은 회복 불가능 단계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해 온 할머니의 의사에 따라 치료 중단을 요청했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이른바 ‘존엄사’에 대한 첫 허용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뗀 후에도 자가호흡으로 2백 여일을 더 생존했고, 논란 속에 관련 법 제정은 무산됐다.
▲ 고든 로스 씨를 지지하는 시위대의 모습(영국 BBC 캡쳐) |
‘장애인은 왜 안락사를 선택하는가?”
생명 활동가들은 안락사가 ‘버리는 문화’ 확산에 이바지해서, 병든 이들과 노인들을 사회의 짐처럼 여기도록 만든다고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장애인권 단체 ‘아직 죽지 않았다(Not Dead Yet)’의 다이앤 콜먼 대표는 지난 5월 미국 지역 언론 시러큐스닷컴에 쓴 기고문 ‘장애인권 옹호자들은 왜 조력 자살에 반대하는가’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어려운 많은 노인과 장애인은, 잘못된 선택 또는 강요에 의해 안락사를 선택할 위험에 놓여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왜 죽고 싶은지 물어보면, 혼자서 거동할 수 없다거나 간호하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많다”며 “경제적인 이유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력 자살은 의료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대책”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종교계, 특히 가톨릭은 부작용 위험이 있다며 안락사를 반대해 왔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해 이탈리아 가톨릭의사협회 모임에 참석하여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동정심’을 유발한다”며 “삶의 끝자락에서 내가 원하는 식으로 끝내겠다고 말하는 것은 실상 창조주에 대한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논쟁적 상황에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지난 5월 22일 ‘바람직한 연명의료 결정을 위한 입법정책토론회’를 진행했다. 이후 김 의원은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전문의 2명 이상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종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안’을 대표 발의할 계획이다.
비장애인들이 가진 ‘자살할 권리’를 장애인들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장애인 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결정이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안락사를 고민하는 대다수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남의 도움을 받은 자살이 아닌, 남은 삶을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다. 장애인에게는 현실적인 자살 예방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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