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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을 이해하는 두 가지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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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행진에서 장애인들을 가로막는 경찰들

재판에서 접하는 뒤집힌 법 감정이나 사회 현실에 화가 날 때가 많다. 재판을 받는 일이 종종 있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의 재판을 볼 일이 많아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에는 경찰 모욕죄로 재판을 받는 어떤 일용직 노동자가 벌금이 많다며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던 모습이 나를 씁쓸하게 했다.
그는 새벽에 일을 하러 갔다가 일거리를 못 찾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그가 나가지 않자 주인은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신고를 받았다며 나오라고 하자, 그는 경찰에게 욕을 했고  모욕죄로 기소됐다. 이후 검사가 벌금 2백만 원을 구형하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욕을 한 것은 잘못했으나 벌금이 많다며 선처를 구했다. 하루 일당이 8만 원인데 일이 없어 월 1백만 원도 못 버는 처지에 어떻게 벌금을 낼 수 있겠냐며 울먹였다. 순간 그의 모욕적 처지가 내 가슴에 꽂혔다. 자신의 삶이 비루하고 처참하다고 느끼는데, 삶의 조건이 모욕감을 주는데 모욕죄로 처벌받는 현실이 모순돼 보였기 때문이다. 아비샤이 마갈릿이 『품위 있는 사회』에서 말했듯이 품위 있는 사회는 “정당한 이유로 모욕감을 느낄 그런 조건들과 싸우는 사회”다. 개인에게 모욕감을 느끼도록 하는 사회는 마갈릿의 표현대로 품위도 없을뿐더러 시민들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니까.
반면 경찰이 정말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그를 기소했을지도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경찰의 모욕죄 기소가 보수 정권 들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3천여 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2013년에는 7천여 건이 훨씬 넘는다. 특히 경찰청이 2013년에 ‘소란·난동 행위 근절대책 지시사항’을 내린 후 경찰 모욕죄 사건이 더 증가했다. 즉 경찰의 모욕죄 기소는 경찰이 실제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시민들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경찰의 공무집행(그것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간에)을 효과적으로 거두고, 경찰력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장애인을 모욕하던 경찰 방송

모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또 있었다. 얼마 전 4월 20일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기자회견 하던 날 종로서 경비과장의 경고방송이다. 인천 해바라기 의문사 희생자분의 운구차가 장례식 예정 장소였던 보신각 옆 도로변에 정차하는 것을 경찰이 막자 참여자들은 이에 항의했다. 그런데 경찰은 오히려 채증을 했고, 사람들은 더 거세게 항의했으나 종로서 경비과 계장은 “우리 경찰관도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러분들의 입장을 배려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수차례 말했다. 그날 모욕을 느낀 참여자들이 항의하고 인권위에 진정도 했으나 종로서에 내놓은 공식 답변도 경비과 계장의 말과 다를 게 없었다.
발언의 표현만 보면 왜 모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욕은 표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발화 상황과 발화자의 위치성으로 나타난다. 당시 경찰은 장애인의 장례식을 방해하고 있으면서 장애인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방송했다.
즉 심정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처지를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경찰의 방송은 집회나 행사 내용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경찰관 직무에서 벗어난다. 집시법 등에 어긋나는 위법행위가 있어서 경찰력이 발동되면 그에 대해서만 고지하면 된다. 경찰의 행위에 대해 고지하는 것 이상으로 장애인의 행사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월권으로, 장애인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경비과 계장은 모욕죄로 기소도 되지 않았고 서초서로 발령 났다(서초서는 일이 별로 없는 곳이라 징계 성격의 인사조치라고 보기 어렵다).


모욕을 이해하는 두 가지 맥락

올해 초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책인 김찬호의 『모멸감』에서는 모멸을 모욕과 경멸(또는 멸시)의 의미가 함께 섞여 있는 단어라고 보았다. 책에서 모멸의 스펙트럼을 몇 개로 나누었는데, 인간 이하로 취급(비하)/열등한 존재로 구분 짓기(차별)/비웃고 깔보고(조롱)/대놓고 또는 은근히 밀어내기(무시)/시선의 폭력에서 섣부른 참견까지(침해)/불쌍한 대상으로 못 박기(동정) 등이 있다. 한마디로 권력과 지위가 있는 오만한 사람들이 상대를 비하하고 차별하고 무시하고 참견하고 동정하는 행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모욕이고 모멸감이다.
경찰관에게 욕했다고 처벌받는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준 모욕적 삶의 조건이나, 장애인의 행사에 맘대로 경찰이 끼어들어 비아냥거리는 모욕적 발언은 모두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즉 모욕은 불평등한 구조와 사람들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난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하는 경찰이 만든 모욕을 거둬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모욕행위나 모욕적 구조에 대해 반응하는 각자의 마음의 소리에 솔직해질 것을 권하고 싶다. 마음의 목소리는 존엄의 훼손에 민감하니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대해 “우리는 너의 그 모욕행위를 알고 있으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표현하기를 바란다. 소심한 저항이든 적극적 저항이든 그것을 표현할 때 모욕행위는 쉽게 반복되지 않으니까. 우리는 모욕을 느끼고 저항하는 존엄성이 있는 인간이니까.

작성자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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