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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 무연고자 장례 치뤄주는 ‘나눔과 나눔’

“마지막엔 저희가 함께 합니다” 행복한 마지막 동행, 나눔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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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지만 곱디 고운 꽃을 들고 근심 걱정 따위는 남의 일인 양 한껏 웃어본다. 찰칵! 이 사진은 자신의 빈소에 걸릴 영정사진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알았던 많은 이들과 이 사진으로 웃으며 만날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를 기꺼이 유쾌하게 시작한다. 지난 4월 25일 효원힐링센터에서 나눔과 나눔이 주관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연 ‘마음꽃, 행복한 나와 마주하기’ 행사 풍경이다. 현재를 잘 살기 위해 미리 떠올려보는 우울한 죽음의 준비가 아니다. 고단했던 나를 위로하고, 비록 나는 없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즐거운 마지막인 나의 장례식을 그려보는 자리다.


어느 수요일,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며

비영리민간단체인 ‘나눔과 나눔’은 장례지원이 필요한 기초생활수급권자와 무연고자들의 행복한 죽음 준비를 돕고 있다. 사전에 영정사진을 촬영하고, 희망하는 장례형태 등 구체적인 사항을 확인한다. 사전에 장례지원을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긴급하게 장례지원이 필요한 홀몸 어르신들께는 긴급장례를 지원한다.
나눔과 나눔의 시작은 유난히 추웠던 2010년도 겨울이었다. 박진옥 사무국장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수요일마다 만났다. 박 국장에게 ‘모진 세월에 갈가리 찢긴 할머니들의 삶이었지만, 가시는 길에 꽃상여는 아니어도 소박한 상이라도 차려드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인들을 만나 나누던 얘기들은 박 국장의 후배가 상조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서울에서만 1년에 3백여 건의 무연고 장례가 치러진다. 이유는 오직 돈이 없다는 거다. 장례를 치르는데 고인용품(관, 수의, 입관용품) 백만 원, 입관과 빈소비용 1~2백만 원, 가족식사비 1인당 2만5천 원~3만 원 정도로 어림잡으면 최소 3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 조의금 없이 장례를 치른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직계 가족이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직계 가족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나라에서 75만 원의 장례비가 지원되지만, 턱없이 부족한 장례비용에 가족들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다. 시신 포기로 이어져 빈소도 없이 바로 화장되는 것이다.
처음엔 상근자 없이 일이 생기면 활동하는 형태였다. 2013년 4월에 박 국장이 전임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전담인력이 생기니 장례지원 건수도 늘어나게 되고, 다양한 활동이 생겨나고 네트워크들이 형성되었다.
박 국장이 2013년 전임활동을 시작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무엇보다 이 사업의 당위성을 찾고 비전을 세우는 일이었다. 나눔과 나눔이란 단체가 생소할뿐더러, 죽음을 다룬다고 하면 사람들은 당황했다.
“초창기에 회원도 없고 이름만 있는 단체인데 후원들이 얼마나 소중했겠어요. 그런데 제가 일하는 시민단체들마다 믿고 후원해 준 고마운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죽음을 다루는 단체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어요. 사람들이 복지든, 인권이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에 비해 죽은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못한다는 걸 알았죠. 이게 현실이구나. 이 사업이 얼마나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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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꽃. 행복한 나와 마주하기' 행사에서 촬영한 영정사진

를 알게 됐죠.”


죽음을 준비하고 직면하며…

초창기에 비해 현재는 회원 수가 백50여 명이나 되고, 기부액도 한 달에 2백만 원 가까이 늘었다. 그 금액은 모두 장례지원에 쓰인다. 장례는 한 달에 최대 3~4건 정도 되고, 나눔과 나눔이 알려지면서 점점 늘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 사는 지체장애인 여성이 어머니의 장례를 미리 부탁을 해왔다. 동생은 알코올중독이고, 본인은 운신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가 결연장례 지원의 예다. 결연장례 지원은 지원 여부를 위해 직접 방문도 필요하다. 상황이 벌어진 후 전화와 신청서가 접수되는 경우는 긴급장례 지원을 한다. 동 주민센터를 통해 고인의 지원 대상 여부를 한 시간 내에 판단해 지원한다.
빈소는 보통 나라에서 나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례비용 75만 원과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서울병원 장례식장 등 몇 곳의 장례식장과 비용협약을 맺어서 마련된다. 조문객이 많지 않으니 제사상이나 음식은 필요 없다. 다만 가족들끼리 조용히 고인을 추모하고 보낼 수 있는 자리를 24시간 동안 마련한다. 가족들과 충분히 이별할 시간이 된다고 보는데 대부분은 만족한다.
물론 가족이 없는 경우 나눔에서 대리 상주를 맡기도 한다. 박 국장은 “저희가 모든 무연고 장례를 지원할 수는 없죠. 하지만 ‘한국사회 어디서 누가 죽어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이 사람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보낼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요. 누군가가 나의 삶을 잘 마무리 해줄 거란 믿음이 있다면 조금은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어요”라며 그는 죽은 사람의 삶도 존엄하게 마무리하게 해주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믿어도 좋겠다고 전했다.



공영장례의 공공성, 의지를 가져야

현재의 장례식장은 포화상태이다. 그러나 장례의 특성상 장례식장은 24시간 사용되는 공간이 아닌, 사람이 죽어야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이에 고가의 기회비용이 치러진다. 나눔에서 필요한 장례공간은 협소한 빈소 하나와 접견실이면 충분한 경우가 많다. 조례를 통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장례식장이라면, 기초생활수급자나 무연고자를 위한 빈소를 의무화하자는 것이 공영장례제도다.
민간장례 업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이윤이 거의 없는 공영장례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장례식장은 지자체의 통제를 받는 만큼 이미 공공성을 갖고 있다. 조례 제정 등을 통해 남아도는 장례식장을 활용하는 등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것은 얼마만큼의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올해 서울시가 비영리민간단체에 무연고 장례식을 지원하는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나눔과 나눔이 간사 역할을 하면서 5개 단체와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마포 종로구, 양천구, 강북구 등 서울 전역에 걸쳐 협력하고 있다. 박 국장은 민과 관이 함께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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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나눔이 지원한 장례식 모습

종로, 어르신, 나눔과 나눔

서울시와의 인연, 종로구 마을장례지원단 사업 모두 지난 2014년 4월에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됐다. 벽제화장장인 승화원이 나눔과 나눔과 ‘서울장례문화의 날’ 행사를 추진한 것이었다. 박 국장은 “저희에겐 무척 좋은 기회였어요. 마침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장례의 거품을 빼는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어요. 서울시는 승화원에 관련 단체를 추천해달라고 했고, 나눔과 나눔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죠”라고 전했다. 이후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도 자문위원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마을장례지원단이란 사업을 벌였다.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종로구에 마을장례지원단을 조직했다. 17개 동 주민 센터에 공문을 보내고 일일이 사업을 설명했다. 동마다 홀몸 어르신 중 장례가 필요한 분들을 추천받았다. 신청한 17분의 어르신들을 방문하고, 영정사진을 찍었다.
12분의 인터뷰를 진행해 허락하는 아홉 분의 구구절절한 생애사를 엮은 「나는 종로에 사는 사람입니다」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가슴 아픈 장례, 따뜻한 장례

박진옥 사무국장은 요 몇 년 사이 많은 장례를 치렀다. 그 중 그가 가장 가슴 아팠던 장례는 작년 5월 인천 쪽에서 있었던 장례였다.
“바닷가에서 인양된 여성시신이었죠. 포대기를 한 여성의 등에 백일이 안 된 아기가 있었어요. 바다에 너무 오래 있어서 신원 확인도 안 되고, 죽은 이유도 알 수 없어서 공고하고 기다렸다가 위폐에 무명녀라고 써서 모셨어요”라고 말했다. “대리 상주할 때 보면 서류 한 장이 그 사람을 얘기해주는 전부예요. 어디서 발견됐고, 공고를 어떻게 했고, 없어서 무연고로 처리한다는 한 장의 공문이 다예요. 어떨 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삶의 무게가 이 종이 한 장으로 끝나나? 특히 그 여성분의 경우는, 마지막 숨을 쉴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싶죠. 등 뒤에 아기가 있었잖아요. 가장 가슴 아팠어요”라며 그날의 빈소를 아프게 떠올렸다.
반대로 그에게 가장 따뜻했던 장례는 쪽방 생활을 하던 노숙인의 장례였다. 고인을 찾아온 조문객은 ‘햇살보금자리’라는 영등포 노숙인지원센터의 활동가였다. 그는 고인의 기초생활수급권 신청을 위해 7년 전 찍어두고 간직했던 증명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부탁했다. 마침 그날이 고인의 생일임을 기억하고, 송편을 빈소에 올리고 새벽까지 빈소를 지켰다. 박 국장은 “혈연이 아니더라도 그 활동가처럼 한 사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게 가족이 아닐까 생각했죠. 누군가가 고인의 삶을 추억하고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 장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마음이 따뜻했어요”라며 그 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요즘에는 노란 등을 달고 서로를 위로했던 옛날 방식의 마을 장례는 없다. 상조회사와 장례식장에만 존재하는 죽음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죽음을 앗아갔다. 요즘 장례의 모습 또한 세속의 잣대에 더없이 맞아 떨어진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가난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고독사를 늘리고 있는 데도 말이다.
죽어서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삶 저 너머의 세상을 바랄 수조차 없었던 사람들에게 나눔과 나눔은 이미 가족이다. 마지막 따뜻한 동행이다. 

후원방법 신한은행 100-026-995248 (예금주: 나눔과 나눔)

작성자박윤경 객원기자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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