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워 더 큰 교육, 작은자 야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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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작은자야학) |
늦은 저녁 7시, 인천 간석오거리역 빌딩건물 숲 사이 어디선가 수업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매일 만나도 늘 반가운 친구들은 휴게실에 둘러 앉아 왁자지껄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교무실 입구에 서 있는 두 여학생은 들어가야 할지 말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영문을 모른 채 대답을 기다리는 교사에게 “국어는 그나마 괜찮은데 영어와 수학이 너무 어렵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배움을 향한 열기와 웃음이 넘치는 이곳은 중고등학생이 다니는 입시 학원이 아니다.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는 ‘작은자 야간학교’다.
벌써 만 34살이 된 작은자야간학교(이하 작은자야학)은 1981년 ‘미문야학’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1987년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 우리나라 첫 번째 장애인 야학이다. 1998년부터는 누구나 차별 없이 학습의 기회를 제공받으며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야학으로 운영되고 있다.
간석오거리 1번 출구 세아빌딩 6층, 60평 남짓한 공간으로 이사 온 것은 2009년의 일이다. 이전에는 인천시 부평구 십정2동 장애인시설 구석에 허름한 컨테이너 가건물을 짓고 지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교실. 방음도 안 되고, 공간까지 좁아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지난한 투쟁의 결과, 2009년 인천시교육청의 지원으로 교육공간을 마련했다.
장애인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통합적인 양질의 무상 초등교육 및 중등교육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작은자야학이 교과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역시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문해교육(글을 읽고 이해함)과 학력취득이다.
현재 초등학교 과정의 한글 수준별 초·중·고급반과 중·고등 검정고시 다섯 반을 운영한다. 평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있고, 주2회 자기표현력이 부족한 지적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연극, 미술 등 문화예술 수업이 진행된다.
식구들은 학생 45명, 교사 30명, 상근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각 학급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학습 수준에 맞춰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한 반을 이룬다.
▲ 한글반 학생의 받아쓰기 시험지 |
십여 년 전 처음 비장애인이 야학에 찾아왔을 때는 한두 명의 비장애인이 다수의 장애인 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지금은 정보를 찾거나 이동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비장애인이 60대 40 정도의 비율로 조금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교사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주1회 이상 출근한다.
통합교육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아무래도 장애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다. 새로 들어온 학생과 신입교사를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소한 갈등은 생긴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학생,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 적는 속도가 달라 눈치를 보는 학생, 휠체어 자리를 두고 다투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장애인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는 감수성이 생겨, 점차 갈등이 사라진다. 사실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교실에나 성격, 학습수준 등에 따라 크고 작은 해프닝은 생기게 마련이다.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함께 다니는 학교는 특별한 경험이다. 장애인은 보통 시설이나 집에만 있다가 야학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가족과 시설에서 만나는 직원뿐이다. 인간관계가 좁고 제한적일 뿐 아니라, 사회생활 경험 자체가 없는 이들에게 야학은 더 큰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된다. 작은자야학에서 모두는 시설 이용자나 사회의 약자가 아닌, 배움을 향한 열정으로 함께 어둔 밤을 밝혀주는 친구가 된다.
*후원 및 입학상담 문의 : 전화 032-435-4414
홈페이지 www.smallor.or.kr
작은자야학 사무국장 장종인
Q간사로 불리는 사무국장님,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2007년 작은자야학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8년차다. 대학졸업 후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는데, 야학 상근활동가를 제안 받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 초반에는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국장이 된 지는 4년이 넘었지만, 지위나 호칭은 큰 의미가 없다.
Q어떤 사람들이 작은자야학을 찾아오는가
온라인 자원봉사 구인 공고를 보고 기본적인 장애인야학에 대한 이해와 열정을 가진 분들이 교사로 지원한다. 학생의 경우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배움이 절박한 사람들이 야학을 찾는다. 오시면 시킨 적도 없는데 당신 인생이야기와 함께 그간의 수모와 상처를 눈물로 쏟아놓는다. 사실 대학진학률 70%에 이르는 고학력 한국 사회에서 한글을 모른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삶에 치여 학습 기회가 없었던 중년 여성분들이 많이 오신다. 예전에 한 어머님은 아이를 잃어버려 경찰서에 실종 신고하러 갔는데, 아들 이름과 인상착의도 적을 수 없어 경찰로부터 비아냥대는 말을 들었다. 속이 상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들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Q요즘 야학의 고민은 무엇인가
요즘 한글 기초반은 과밀화를 걱정할 만큼 학생이 많다. 고급반보다는 기초, 중급반 학생이 항상 더 많다. 한 학급에 5~6명 정도가 교육적으로 이상적이나, 많을 경우 16명에 이른다. 반을 더 늘리고 싶지만 문제는 교육 공간이다. 인천시교육청에서 어렵게 얻은 공간인데, 지금의 교실을 쪼갤 수도 없고 추가로 공간을 얻기에는 부담스럽다. 한편으로 장애인야학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지만, 장애인 학생 모집을 위한 홍보가 쉽지 않다. 비장애인은 입소문만으로도 많이 오는데, 장애인에게 야학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Q작은자야학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강점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된다. (웃음) 제일 강점은 역사가 제일 오래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취재를 많이 오기도 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장애인 야학들은 자원봉사에 의존해 운영이 이루어지는데, 우리 야학은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 운영 시스템이 상당부분 안정돼 있다. 자원 활동 교사 수가 30명인데, 보통 10명 내외로 운영되는 다른 야학과 비교하여 굉장히 많은 숫자다. 그러다보니 일주일에 다섯 번, 수업도 제일 많이 한다.
Q봄 소풍 이야기를 들려달라
며칠 전에 인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안산 대부도에 다녀왔다. 리프트 차량이 있지만, 단체마다 기운이 있는지 우리 학교 장애인 학생들은 대부분 보행이 가능하다. 특히 탄도항은 썰물에 맞춰 갯벌 사이에 놓인 콘크리트 길로 누에섬에 들어갈 수 있다. 태어나 바다를 처음 본 학생도 있었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가까이에서 갯벌을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둘레길 도로 포장도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서 모두가 다니기에 좋았다.
▲ 수업중인 야학의 모습 (사진제공 - 작은자야학) |
Q최근 운영비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다
사연이 길다. 2008년 교육 공간 투쟁 결과, 인천시교육청에서 전세자금과 운영비를 함께 지원받기 시작했다. 이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2010년부터 인천시청에도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모두 합해도 기관을 1년 동안 운영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교육청은 시청이 같은 명목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중복 지원할 이유가 없고, 평생교육은 시, 도지사의 관할이라며 돌연 모든 장애인 야학 운영비 지원을 중단했다.
이는 사실과 달랐다. 교육청과 시는 각각 특수교육법과 평생교육법에 따라 모두 야학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다만 법의 내용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에 인천시 소재의 장애인 야학들은 교육부에 해당 법의 구체적인 이행 지침 또는 시행령을 제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산 지원은 각 지자체의 재량이라며 거절했다. 사례도, 기준도 없이 시와 교육청이 서로 핑퐁 게임하듯 책임만 미루는 형국이 됐다.
교육청은 아이들의 예산을 성인에게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카리나, 꽃꽂이 같은 평생교육 강좌를 듣는 곳이 아니다. 일반 학교나 비싼 검정고시 학원에는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인 의무교육을 받는 곳이다. 이들이 배우지 못한 것은 국가의 책임이니, 최소한 예산이라도 지원하라는 것이다. 투쟁을 잘 하는 지역은 많이 지원 받고, 학생 수가 적거나 투쟁력이 없으면 적게 받는 정치적 논리로 교육의 기회를 제한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여전히 교육청 예산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교육 공간 투쟁을 시작하던 2008년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Q야학 외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야학은 단순히 학력을 취학하는 것이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바탕을 배우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부와 함께 주거권, 이동권 등 자립생활과 관계된 활동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한 사람이 다시 시설에 간다면, 그 학력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게 된다. 고생해서 공부해도 그들이 다시 돌아갈 곳이 시설의 티비 앞이라면 무슨 소용인가. 시설에서는 글 모르는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자립을 하려니 글을 모르는 것이 불편해 지는 것이다.
Q교칙이 ‘노력, 성공, 보람’인데, 작은자에게 성공은 무엇인가
81년도에 만들어진 교칙이 역사적으로 되물림 되어 사실 누가 어떤 취지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웃음) 하지만 현재적으로 재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오르는 성공은 아닐 것 같다. 차별받는 장애인이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에 통합되어 아무런 문제없이 사는 것. 그런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일 것 같다.
작은자야학 교사대표 정지희 선생님
Q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학 내 연구소 조교로 활동했는데, 야학 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동료에게 소개를 받았다. 단순히 야학을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해 어느덧 4년차 교사다. 처음에는 중고등반 검정고시 수업을 하다가, 비장애인 중장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초등반 문예, 지적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등을 맡고 있다. 인천 계산동 민들레야학에서도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Q언제 보람을 느끼는가?
초등 한글반을 맡고 있는데, 우리반에서 네 분이 중등반으로 진급했다. 검정고시가 쉽다고들 하지만, 어른들은 몇 년씩 다시 도전해야 할 만큼 어려운 시험이다. 시험에 합격해 이제는 중등반 교실에 앉아 계신 걸 보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뿌듯하고 기분이 참 좋았다.
Q교사 대표로서 어려운 점은 없나?
야학은 상근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교사회의 단합이 야학의 활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 아쉽다. 지금은 대학을 휴학 중인데, 학교생활과 야학 일을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Q민들레야학과 다른 작은자야학의 매력은 무엇인가?
민들레는 통합야학이 아니라 비교가 어렵지만 각기 다른 특징이 있다. 민들레는 운동성이 강하고 뇌병변장애인 학생들이 많은 반면, 작은자는 지적장애 등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곳만의 장점이라면 어머님들이 좋으시다는 것이다.
Q앞으로의 각오는?
처음 야학에 왔을 때 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 중장년이 많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 여전히 이해 안 되고 답답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여전히 작은자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있다. 이분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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