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 시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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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진 날씨, 가정의 달 5월에는 나들이 나온 인파로 곳곳이 북적인다. 그 중에서도 즐거운 발걸음들로 가득 차는 놀이공원은 도심 속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가까운 나들이 장소다. 하지만 지난 3월,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놀이공원에서 예상치 못한 차별과 맞서야 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맹학교 교사이면서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안씨. 그는 여전히 왜 탑승거부를 당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해당 놀이공원인 롯데월드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장애인 안전을 위해 장애인은 탈 수 없는 놀이기구
지난 3월, 시각장애 1급의 안씨는 서울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를 방문했다. 안씨의 일행은 안씨를 포함한 시각장애인 2명, 비장애인 2명으로 총 4명이었다. 안씨는 과거에 자주 롯데월드를 찾았던 만큼 자연스럽게 놀이기구들을 이용했고 일정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과격하지 않은 놀이기구를 선택했다. 그들이 휴식의 차원에서 선택한 놀이기구는 ‘정글탐험보트’. 원형의 기구에 4명이 마주보고 탑승하면 물길을 따라 정해진 코스를 이동하는 놀이기구로 벽에 부딪히면서 스릴을 느끼게 하는 기구였다.
안씨는 놀이기구를 타러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복지카드를 제시했고 곧장 탑승장으로 향했다. 이미 몇 번이나 타본 경험이 있는 놀이기구이기 때문에 안씨와 일행들은 큰 긴장감 없이 기구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안씨가 막 기구 안으로 한 쪽 발을 넣었을 때, 한 직원이 안씨의 장애를 재확인했고 보이지 않는다고 답하자 안씨와 일행을 기구에서 하차시켰다. 직원은 시각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다고 말하며 안씨 일행의 탑승을 막았고, 안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탑승 거부에 항의했다. 결국 매니저와 롯데월드 현장 총괄 담당자까지 현장을 찾았다.
안씨는 담당자에게 시각장애인 탑승 금지 기준을 요구했다. 하지만 매니저와 총괄 담당자는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 비해 약하고 상황 대처가 느려 기구 이용 과정에서 허리 등을 다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안씨는 당시의 설명을 납득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근거를 요구했다. 뒤늦게 총괄 담당자가 내민 매뉴얼에는 ‘장애자가 오면 설명 후 돌려보내라’는 지시사항이 기록돼 있었다.
실랑이는 2시간여 동안 지속됐다. 안씨는 이미 자신이 일전에 해당 놀이기구를 이용했다고 밝혔지만 담당자의 탑승 거부 의사는 그대로였다. 결국 안씨는 정글탐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즐거운 나들이로 시작된 하루가 또 한 번의 차별을 겪은 날로 마무리된 것이다.
객관적 근거도, 일관성도 없는 탑승금지
안씨가 2시간여의 긴 시간동안 롯데월드측과 대화를 나누고도 탑승 거부를 납득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각장애인이 정글탐험보트를 타면 위험하다는 판단 근거가 없다는 점 ▲저시력까지 포함한 모든 시각장애인의 탑승이 금지된다는 점 ▲비장애인 동행자 함께 탑승하는 것과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탑승할 수 없다는 점 ▲매뉴얼에 기준이 기록돼 있지 않다는 점 ▲당사자가 직접 몇 번이나 기구를 탑승했지만 이번 경우를 제외하면 한번도 직원의 제지가 없었다는 점 ▲10살 미만의 아이와 60대 고객은 탑승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다.
롯데월드 측은 시각장애인이 정글탐험보트를 이용할 경우 ‘탑승 시점’에서부터 위험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정글탐험보트는 탑승장 바닥이 느린 속도로 계속 돌아간다. 또한 기구 자체도 보트 개념이기 때문에 물에 뜬 상태로 유지돼 완벽하게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이러한 탑승 환경에서 시각장애인이 움직이는 탑승장에서 미고정된 기구로 옮겨가는 과정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롯데월드 현장 총괄 매니저인 장씨(이하 장씨)는 “정상인들도 가끔 돌아가는 바닥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곤 하는데 시각장애인들은 중심잡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며 “물에 빠지는 것 자체도 위험하지만, 보이지 않으니 물에 빠졌을 때 당황하다가 기구를 잡아주는 설비에 다가가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운행 중 사고가 일어날 경우 어두운 곳에서 시각장애인이 탈출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 안씨가 타지 못한 '정글탐험보트' |
하지만 안씨는 이전까지 기구를 타면서 큰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멈춰있는 것을 타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긴 해도 그 흔들림의 정도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흔들림을 넘어서지는 않는다”며 “정글탐험보트의 코스를 외울 정도로 많이 탑승했지만 여태까지 어떠한 위험성이나 불편함도 감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만약 정글탐험보트의 흔들림이 시각장애인에게 치명적이라면 시각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취재진이 직접 방문해 탑승한 결과 탑승장에서나 운행 중 사고가 일어났을 때 탈출이 어려운 것은 시각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키 110cm의 어린이나 60대 고객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라면 물의 높이를 감안했을 때 오히려 성인 시각장애인보다 어린이가 더욱 위험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또한 움직이는 바닥의 경우, 현장 조작이 가능해 시각장애인 방문 시 충분히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한편, 롯데월드측 장씨는 일관성 없는 제지에 대해서 ‘직원교육 미흡’이라고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복지카드를 보고 해당 장애인이 어떤 유형의 장애인인지 물어보는 것은 결례이기 때문에 일단 들여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총괄 책임자마저 복지카드에 장애유형이 기재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투입되기 전, 단 1시간동안 받는다는 장애인 대처 교육이 얼마나 미흡한 내용일 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크게 거론되는 문제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매뉴얼에도, 매니저의 답변에서도 시각장애인이 탑승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한 객관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탑승 제한 대상이 왜 하필 시각장애인이냐고 묻자, 롯데월드 관계자 남모 매니저(이하 남씨)는 “기구를 제조한 해외 업체에서 제한해야 하는 탑승객 유의사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줬다. 우리는 그 조언을 받아들였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월드에 가이드라인을 준 업체의 인식수준도 롯데월드와 같았다. 담당자는 “보트 전복사고라도 일어나면 장애인이 보트를 빠져나오기는 어렵지 않겠냐”며 “롯데월드가 좋은 마음으로 제한하는 것이니 좋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결국 어디에서도 납득할만한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 입구에 걸려 있는 안내판, 시각장애인 탑승 금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 놀이공원 이용 차별
놀이공원내에서의 차별 사건은 롯데월드 사건 이전에도 발생한 바 있다. 에버랜드가 지적장애인의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한 사건으로 이는 지난해 12월 소송을 시작해 지금까지 재판을 이어나가고 있다. 당시 만 14세의 지적장애 2급 장애인이 보호자와 함께 에버랜드의 놀이기구인 ‘우주전투기’를 탑승하려하자 직원이 “지적장애인은 부모와 함께라도 이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없다”며 하차를 요구했고, 만 11세의 또 다른 지적장애 1급의 B씨가 가족과 함께 동일 놀이기구를 탑승하려 했을때도 마찬가지로 탑승을 거부했다.
에버랜드측은 롯데월드와 마찬가지로 안전상의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전투기는 레벨2의 놀이기구로 스릴을 즐길만큼의 속도를 내지 않는다. 위험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놀이기구에 지적장애인이 타서는 안되는 이유로 에버랜드는 지적장애인이 놀이기구 운영 중 갑작스럽게 안전장치를 풀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직접 현장 검증에 나선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이하 경기센터)에 의하면 우주전투기는 직원이 출발 직전 모든 탑승객의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다시 풀 수 없게끔 조작한 뒤 운행을 시작한다. 운행이 끝난 후 기구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안전장치를 풀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이 놀이기구에는 유아기의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탑승한다. 아이들은 지적장애인과는 달리 쉽게 기구에 탑승할 수 있다.
에버랜드 사건은 현재 재판 진행 중이며 지난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획일적으로 탑승 금지를 시키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에버랜드에 재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모색해오라고 요구했다. 한편 원고측 소송대리인인 담당 변호사는 “에버랜드측에서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것 자체가 장애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만들어낸 장애인 규칙
위험성 검증 후 기준 세우고 매뉴얼 작성해야
롯데월드측 남씨는 현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탑승장으로 가는 계단에서부터 “눈을 감고 걸어가서 탑승해보시라”고 권했다. 위험성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 예로도 충분히 롯데월드 측의 장애인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알 수 있다. 비장애인이 눈을 가리고 걷는 것과 오랫동안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장애인이 걷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를 타기엔 위험하다는 것은 결국 철저하게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거기에 따르는 이유들도 장애인은 어린 아이들보다 더 상황 대처가 힘들 것이라는 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짐작들이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비장애인 운영진들로 하여금 당연히 옳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추후에 시각장애인과 장애 전문가를 초청해 해당 놀이기구를 체험하게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검증의 시간을 가진 후 일정 장애정도 이하로는 탑승해도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탑승 제한의 폭을 줄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롯데월드 사건 당사자인 안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롯데월드가 분명한 근거가 있는 기준을 세우고 매뉴얼을 작성하는 동시에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대처교육의 중요성도 깨달았으면 한다”며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비장애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놀이공원 소풍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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