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또다른 ‘염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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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돈을 벌겠다'며 무작정 집을 나온 뒤 서울역 등지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
지적장애인이 또 한 번 학대의 대상이 됐다. 지난 4월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이하 경기센터)로 지역의 한 개농장에 학대당하는 지적장애인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환경도 열악한데다,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고도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결국 현장에 개입한 경기센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지만, 개농장 뿐 아니라 피해자가 전에 일했던 중화요리집 등에서 폭행 등의 학대가 있었다는 것이 추가적으로 밝혀지면서 피해자를 둘러싼 사실이 수면 위로 하나둘씩 떠오르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두고 ‘또다른 염전 사건’이라고 지적하면서, 지역에서 아무도 모르게 학대당하고 있을 수많은 장애인들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감금, 착취…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피해자 김모(남, 48세)씨는 학대 사실에 대한 활동가들의 질문에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내가 나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구 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빠른 말을 못 알아듣고 한글을 모르며 수는 31까지 셀 수 있었다. 안은자 경기센터 팀장은 “오랜 학대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가해자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고 싶냐는 질문에도 그저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십여 년 동안 표류하고 있었다. 이전 기억은 뒤죽박죽이었고,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 또한 적었다. 개농장에 오게 된 경위와 그 전에 일하던 곳에 대한 기억까지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구체적인 시간, 사람 이름·얼굴 등 세부적인 사항은 기억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는 개농장에서의 생활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당 개농장은 집채만한 개들을 백여 마리 키우는 식용 개농장으로, 군대에서 수거해 온 잔반을 끓여 개밥을 만들어 백여 마리의 개에게 주는 것, 사육장을 청소하는 것, 짝짓기 시키는 것 등이 구 씨의 주 업무였다. 또한 사육장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 매일 아침 물을 데워 가해자에게 세숫물을 가져다주는 것 또한 업무 중의 하나였다.
그러한 생활은 약 1년간 계속됐지만, 구 씨는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그저 “은행계좌로 월급을 입금하고 있으니, 열심히 일만 해라”라는 가해자의 말만 믿고 있었다. 때문에 새벽 2시에 일어나 업무를 준비하고, 4시 반경부터 오후 9시까지 이어지는 고된 노동을 견뎠다. 또한 개사육장에 남는 방 한 칸을 숙소로 사용하면서, 제공받는 것은 김치와 단무지뿐인 식사가 전부였다.
▲ 구 씨가 근무했던 개농장. 구 씨는 사육장 내부의 좁은 방에서 지냈다. |
서울역 등지에서 노숙생활, 연이어 이어진 학대
관계자는 “일요일에 가해자들을 따라 교회에 가는 것 외에는 개사육장 밖으로 거의 나온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길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사는 곳도 확실치 않을 뿐 아니라 행색도 남루하고, 전반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구 씨가 실종 신고가 돼 있다는 점이었다. 경기센터가 해당 지역 파출소, 경찰서 강력계·여성청소년계와 함께 피해자의 행적을 추적해 본 결과 현재 그는 전북, 경기 등지에 실종신고가 돼 있었다.
구 씨의 가족들은 2003년경 피해자가 집을 나간 이후 실종신고를 했고, 확인결과 구 씨는 여전히 실종자 명부에 포함돼 있었다. 즉 가해자들은 구 씨의 가족을 찾아줄 수 있는 환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약 1년 가량 피해자를 감금하고, 사실상 강제 노동을 시켜 왔던 것.
경기센터가 밝힌 구 씨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우선 10년 전, 전북 모 지역에 살던 구 씨는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집을 나서 서울로 올라왔다. 무일푼인데다 뚜렷한 방법이 없었던 구 씨는 이후 한동안 노숙 생활을 하며 서울역 등지를 전전했고, 인력소개소의 소개로 경기도 소재 모 중화요리집에서 어렵사리 일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구 씨가 맡은 업무는 양파까기, 설거지 등의 주방보조였다. 당시에도 중화요리집의 배달원과 실장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고, 매주 토요일에 5~10만원을 받는 것이 급여의 전부였다. 결국 그러던 중 가게가 폐업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자, 구 씨는 가게에 생선을 납품하던 업자의 소개로 개농장까지 들어오게 됐다.
과거 학대 사실까지 철저히 밝히겠다
경기센터는 우선, 체불 임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가해자는 2014년 5월 경부터 2015년 4월까지 구 씨에게 약 1천6백만 원에 달하는 임금을 퇴직일로부터 14일 내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구 씨가 지난 1년 동안 교회를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사실상 감금을 해 왔다고 밝혔다.
특히 가해자가 구 씨가 지적장애인인 것을 이용해 ‘매달 통장에 월급을 입금하고 있다’며 구 씨를 안심시키는 한편, 구 씨의 임금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안 팀장은 “피해자에게도 꾸준한 교육이 이뤄졌다.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잘해준다, 주말마다 돈 준다고 대답하라는 등의 생각을 수시로 피해자에게 주입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경기센터는 지난 5월 12일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에 지적장애인 구모씨를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한 개 사육장 업주와 중국음식점 업주 등을 위 가해자들을 (준)사기죄, 감금죄,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즉 개농장 뿐 아니라 과거 근무지인 중화요리집에서 일어난 학대, 그 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는 학대 사실까지 철저히 밝히겠다는 것이 센터의 입장이었다.
▲ 경기센터는 지역 파출소, 경찰서 관계자들과 함께 개농장을 찾아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 |
또한 구 씨를 개농장에 소개시켜준 생선업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즉 구 씨를 가해자에게 인도하는 과정에서 수수료, 혹은 소개비를 받은 사실이 의심되며, 추후 밝혀지는 바에 따라 약취 유인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
현재 경찰은 생선업자에 대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한편, 언급한 중화요리집의 업주 또는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구 씨에 대한 추가 폭행 및 근로관계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중이다.
지역사회 대책 마련, ‘또다른 염전’ 없어야
현재 구 씨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살 곳도, 일자리도 마땅치 않은 상태. 경기센터에서는 쉼터 입소 등에 대해 문의하는 한편, 구 씨에게 일자리를 연계해 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안 팀장은 “피해자 지원에 대한 대책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당장은 피해자를 분리해냈다고 안도할 수 있겠지만, 이후 살 곳이라던가 일자리가 적절히 보장되지 못하면 피해자는 또다시 학대에 노출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지역사회에서 아무도 모르게 학대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피해자 사후 지원에 대한 문제까지 드러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학대 사건에 대해 활동가들은 “지역사회 곳곳에 제 2, 제 3의 구 씨가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학대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 피해자가 아직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점에서, 구 씨 사건은 현재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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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성윤채님의 댓글
성윤채 작성일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중화요리집에서 노동을 시키고도 매주 토요일마다 5만원에서 10만원 밖에 주지 않았고, 개농장에서 18시간 정도의 노동을 시키면서 임금을 하나도 안줬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지적장애인이 노예입니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적어도 최저임금은 줘야하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