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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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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봄날.

시원한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후 벚꽃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비치며 새로운 봄을 알리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봄이 오면 항상 벌이는 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복을 입고 꽃과 나무가 많은 곳에 가서 한바탕 즐기는 나들이다. 제일 처음에는 한복을 사랑하는 사람들 1백여 명과 함께 창덕궁에 갔다. 두 번째로는 마음 맞는 친구들 몇 명이 모여 한복을 입고 남이섬에 다녀왔다. 한복에 익숙하지 않던 친구들도 한복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에 감탄했고, 봄 꽃과 초록 풍경 그리고 한옥이 알록달록한 한복과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올해 한복나들이 장소로는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을 선택했다. 한국민속촌에서는 4월부터 6월초까지 ‘웰컴투조선’이라는 독특한 행사가 열린다. 사또, 이방, 포졸, 주모, 기생, 장사꾼, 거지, 광년이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민속촌 내부를 다니며 관람객들을 만나 웃음을 주고, 주말이면 ‘갑(甲)대감의 행차’와 ‘사또의 생일잔치: 사라진 금두꺼비를 찾아라’ 등의 특별 공연도 펼쳐진다.

나는 4월 어느 주말 아침 일찍부터 한복을 입고 민속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속촌에 입장하자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나무와 분홍빛 수줍은 자태의 진달래가 들어왔다.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구경하던 찰나, 누더기 한복에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길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정체가 무엇인지 의아하던 순간, 여자아이가 나에게 달려왔다.

“언니~~~~~”.

너무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익이 되지 않았다. 달려오는 여자의 행색에 놀라고 초면에 당당하게 ‘언니~’하며 달려오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

말문이 막혀 눈알만 아래위로 굴리며 여자를 훑어보고 있자, 여자아이가 말했다.

“언니, 안녕. 나는 광년이야!” 그제서야 웃음이 났다.

조선에 왔구나. 웰컴투조선 캐릭터를 만난 것이다. 마치 환영 인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신이 난 나머지 나도 연신 질문을 했다.

“네가 광년이야? 집이 어디야? 우리는 관상쟁이를 만나러 갈건데 어디 있는지 알아?”

광년이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응, 내가 광년이야. 우리집은 엄마가 사는데… 관상쟁이는 짤렸어. 대신 오늘 이따가 사또 생일잔치가 있어. 거기로 와.”

광년이는 사또의 생일잔치가 있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상황 파악이 쉽지는 않지만 유쾌하고 흥미진진했다. 웰컴투조선의 캐릭터들은 맡은 역할에 심취해 있었다.

광년이와 헤어진 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니 꽃이 아름답게 핀 기와집도 있었다. 왠 사람들이 무리지어 나오기에 고개를 빼고 기와집 안을 한번 들여다봤다. 꽃나무로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진 기와집이었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왠 한복을 입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왜 이렇게 하인들이 많은 거야~”

그 순간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너도 청나라 신상을 입었구나. 이 복주머니 어때? 이것도 청나라 신상 복주머닌데”

무슨 소린가 싶어 여자를 훑어보니, 허리춤에 ‘갑순이’라는 호패가 달려있었다. 그렇다.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났다. 능청스럽게 받아 쳤다.

“왜, 좀 탐나? 내 한복이 좀 예쁘지?”

갑순이는 질투 섞인 목소리로 앙탈을 부리며 자리를 떴다. 기와집을 한 바퀴 구경하고 나오던 찰나 비단옷을 입은 풍채 좋은 사내가 나를 보고 걸어왔다.

“에헴~ 뉘신데 남의 집에 이리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오!”

갑순이 아버지 ‘갑대감’이었다. 점점 캐릭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신이 나서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대감님. 같이 사진 찍어요.”

그러자 갑대감은 짓궂게 말을 걸어왔다.

“오호~ 어여쁜 낭자들. 어디서 오셨는고? 올해 몇살인고?”

다시 길을 나서 천천히 길을 거닐며 조선시대의 건축물과 문화 생활을 탐방했다. 대장간에서 직접 호미며 낫을 만드는 과정도 구경했고, 한복을 차려입은 어르신이 새끼를 꼬는 모습도 보였다. 사극이나 책에서나 접할법한 선조들의 생활상을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기생, 주정뱅이, 장사꾼, 중국상인, 거지, 무면허 의녀 등 다양한 캐릭터들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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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열두 시 반. 사또의 생일잔치가 열리는 관아로 이동했다. 몇 해 전 민속촌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관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입구는 물론 사또의 생일잔치가 열리는 마당까지 나무로 된 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생일잔치 공연이 시작됐다. 사또와 이방이 등장해 생일맞이 금두꺼비를 선물 받는 장면이 나왔고, 흥에 겨운 사또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금두꺼비가 사라져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범인을 잡지 못한 사또는 전전긍긍하기 시작했고, 이방은 관람객들을 가리켰다. 이 속에 범인이 있을 거라고 외친 뒤, 옆에 있던 친구를 지목했다.

“이 자가 범인입니다!”

순간 나와 일행들은 화들짝 놀랐고, 친구는 포졸의 손에 이끌려 공연장 중앙으로 나갔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낭자가 나오자 사또는 범인 색출보다는 흑심을 품는 모습이었다.

“어허! 딱딱한데 앉히면 안 된다”고 하며 자신의 방석을 가져오자 순간 관람객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범인 색출은 뒷전이고, 사또는 사심 가득 담은 질문만 늘어놨다. 관람객들은 사또의 연기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나니 배가 고파져 장터로 향했다. 장터에 왔으니 장터국밥과 파전을 시켰다. 나무로 만들어진 야외 테이블에서 옹기에 나오는 음식들을 보니 정말 조선시대에 온 듯 했다.

식사를 끝내고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구경을 이어나갔다. 나룻배를 타는 관람객도 만났고, 다리 위에서 사진도 찍었다. 유유자적 산보하듯 주변을 구경하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더니 일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머릿속에서 맴돌던 걱정거리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천천히 민속촌을 한 바퀴 돌고 해질 무렵에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고유의 한옥은 건축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지만 휠체어로 다니기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민속촌에서 편의시설이 없어 관람을 하지 못한 곳은 극히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 장애인도 아무런 걱정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봄나들이 장소로 추천한다. 벚꽃, 매화,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해 봄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전통의 멋을 색다른 방식으로 접할 수 있어 올해 한복 나들이는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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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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