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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가난한 가족이 사는 법

기초생활 수급제도의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제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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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4일, 대구에서 장애인 가족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내려앉게 하는 비보가 전해졌다.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를 돌보던 28세 여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녀는 “할 만큼 했는데, 지친다”, “언니는 좋은 시설로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자매의 언니는 장애인생활시설에 거주했으나 동생과 함께 살고 싶어 지역 사회로 나왔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헤어진 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언니와 살아야 했던 동생에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가장 역할을 해야 했을 여동생이 직장에서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퇴근 후엔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월세, 도시가스 요금, 카드 할부금 등 70여만 원이 밀려있던 상황을 보태지 않더라도 장애인 가족, 아르바이트 노동이라는 굴레는 이미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와 반빈곤네트워크 소속 40여개 단체는 대구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사건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장애인복지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애인 언니가 받던 기초생활수급 외에 아무런 복지지원이 없었다는 사실이 바로 현재 복지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매에게는 어떤 지원이 필요했나?

 

첫째, 이들은 이용할 수 있는 제도조차 안내받지 못했다. 1년 이상 시설에 거주하다 퇴소하는 장애인은 자립정착금 5백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해당 시설과 구청은 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동생이 목숨을 끊기 1주일 전 복지혜택을 알아보고자 구청을 찾았을때 자립정착금에 대해 안내받지 못했다.

두 번째로 이용할 수 있는 복지가 없거나 그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언니는 기초수급지원이 가능했지만 숨진 여동생은 수급자가 되기 어려웠다. 근로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언니를 돌보기 위해 일을 하지 못하고 수급을 받아야 했다면 이들이 받을 수 있는 급여는 월 최대 85만원이었다. 두 자매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두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자매에게는 복지지원이 필요했고 받아야 했지만 설사 지원을 받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복지는 소득의 영역이든 양육・교육의 영역이든 노후보장의 영역이든 가족에게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아이를 낳은 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셔야하는 자식들, 몸이 아프거나 일할 수 없는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이들 모두 이 책임을 함께 지고 있다. 가족에게 부양의 책임이 전가돼 이 ‘돌봄’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숱하게 봐 왔다.

 

가족에게 떠넘겨진 복지

 

2010년 10월 6일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장애아동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일자리를 못 구해 힘들다”며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는 유서를 남겼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 때문에 받지 못하던 ‘혜택’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이었다.

대구 자매의 경우 2촌 관계이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살더라도 언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세상을 떠나야했던 아버지는 아들과 1촌간이고, 미성년자인 아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아들만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수급가구로 지정받아야 아들이 의료급여를 비롯한 혜택을 볼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본인의 근로능력 때문에 수급신청을 거절당했다. 수급자격도 얻지 못하고 장애가 있는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할 만큼 경제력도 있지 않았던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 가난한 이들에게 선택이란 이런 것이다.

근로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의 경우처럼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수급신청을 면전에서 거절당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수급을 받지만 부족한 자활 일자리와 예산 부족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가되는 ‘가족 부양의 원칙’이 다소 간접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다면 훨씬 직접적으로 이를 부과하는 방식이 있다. 바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잔혹한 문지기, 부양의무자기준

 

60대인 남춘호(가명)씨는 젊은 시절 유리 닦는 일을 하다 추락해 장애를 갖게 되었다. 최근 그의 아들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부자는 오랫동안 수급자로 살아왔지만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수급에서 탈락했다. 이후 아들은 아버지 남씨를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남씨의 병원비와 수술비, 의료 보조 기구 구입비 등이 정기적으로 나가면서 아들이 점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남씨의 간 질환 수술을 위해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아들은 결국 ‘부양 포기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도록 저축은 커녕 빚만 가득 지고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제발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부자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길었다. 남씨는 병원비가 밀려 퇴원할 수 없는 처지를 설명하며 정말 미안하지만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아들은 가진 돈이 없다고 힘겹게 답했다.

아들은 살기 위해 남씨를 떠나야 했고, 남씨는 살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신청을 다시 해야만 했다. 그러나 구청의 판단은 달랐다.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구청 담당 공무원의 답변은 “얼마 전까지 함께 사셨기 때문에 부양관계가 단절됐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연락처를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라는 것뿐이었다. 결국 남씨는 아들이 떠났음에도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조금씩 완화돼왔지만 아직도 문제가 많다. 2005년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에서 부양의무자의 범위 중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이 제외되었다. 2012년에는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기준이 완화되었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 숫자는 2007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소득세 신고 자료와 같은 공적자료를 확보함으로써 수급자를 관리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급자들에게 발생하는 모욕감도 큰 문제가 된다. 이혼한 뒤 아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한 장애여성이 수급에서 탈락하며 겪은 일은 부양의무자기준이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는 이혼한 지 15년이 되었어요. 아이랑 단 둘이 사는데 아이 아빠가 부양의무자라서 수급에서 탈락하게 됐다는 거예요. 아이 아빠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주소를 주면서 ‘관계단절확인서’를 받아오래요. 그때 정말 얼마나 모욕감이 들던지…”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생기는 폐해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의 규모가 상당하는 것이다. 2010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빈곤층은 1백17만 명에 이른다. 2014년 기초생활수급자 숫자가 1백30만 명이다. 수급자와 사각지대가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은 완전한 빈곤 상태에 방치되어 있다.

두 번째는 빈곤층의 가족들까지 함께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남윤인순 새정치연합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수급에서 탈락한 이들의 부양의무자가구는 평균에 비해 가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이들의 평균소득은 2백33만 원으로 전국 가구의 평균소득인 3백45만 원의 67%에 불과했다. 정부가 빈곤층 복지의 책임을 가난한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정책적으로 오히려 뒷받침하는 꼴이다.

 

부양의무자기준 대폭 완화, 진실은?

 

송파 세 모녀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인 애도 이후 여야 정치권은 ‘세모녀법’을 내놓았고 지난 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실 ‘세모녀법’은 2013년 4월 새누리당 의원의 발의를 통해 이미 제출돼 있던 법안이었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내용을 보면 대리입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정된 ‘세모녀법’에도 불구하고 세 모녀는 여전히 지원받을 방법이 없다. 개별급여 도입을 거창하게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누가 수급자가 될 것인가’(선정기준)와 ‘수급자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보장수준)에 대한 개선은 미미하거나 오히려 후퇴했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했다는 것 역시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부분이다. 이번에 완화된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선을 상향시킨 것이다. 올 해 7월부터 시작될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의 중요한 변화 지점은 기존 ‘가구별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부양능력을 판정하던 것과 달리 ‘가구별 중위소득1’을 기준으로 판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부양의무자 부양능력판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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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기준으로 부양능력 없음, 미약(간주부양비 수급비에서 삭감), 있음 구간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가구에 대한 추가 완화규정도 생길 예정이다. 부양의무자가구의 전체 인원에 중증장애인이 있을 시, 그 인원만큼 추가로 합산하여 부양의무자가구 규모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네 명이 함께 사는 부양의무자 가구 구성원 중 중증장애인이 1명 있으면 부양의무자가구의 규모는 4인이 아니라 5인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수급가구의 경우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부양, 이제는 사회가 함께 하자

 

숫자만 확인한다면 부양의무자기준은 꽤나 큰 폭으로 완화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빈곤층 사각지대의 규모는 정부 계획상 12만 명이다. 이는 전체 부양의무자기준 사각지대의 10%남짓에 그치며, 최근 3년간 줄어든 전체 수급자 숫자 20만 명에 비해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수급 탈락자 중 절반 이상이 실제로 부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12만 명은 적어도 너무 적다. 2백50만 원에서 4백만 원으로, 20만 명이 줄고 12만 명이 늘어났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여전히 수급권조차 없는 빈곤층의 삶과 수급권이라도 있는 빈곤층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생각한다면 이를 완화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서울 용산에서는 기초생활수급을 받던 노인이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49만원의 수급비 중 30만원을 의료비로 지출하고 퇴원 후, 방에 있던 그가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그의 통장 잔고는 27원이었다. 그는 수급자라는 이유로 기초연금 20만원을 수급비에서 다시 깎이고 있었다. 여전히 부양의무자와의 관계 단절을 인정받기 위해 빈민들은 모욕을 감내하고 있고, 이조차 할 수 없을 때 노인들은 천원의 소득을 위해 굽은 등을 이고 박스를 모으러 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를 이야기하기란 힘들다.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이 완화됐지만 재산기준은 변하지 않았고, 근로능력평가 등 노동을 강제하는 빈민 억압 정책이 득세하고 있다. ‘복지’를 슬로건으로 당선된 대통령 집권 하에 가장 가난한 이들의 복지는 빠르게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다.

가난과 자살에 대한 우리나라의 통계는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빈곤률은 50%에 육박하고 세계 최고의 노인자살률을 갖고 있다. 하루 평균 4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치다. 자살 증가율 역시 전 세계 2위인 국가지만 1위인 키프로스의 경우 10만 명 당 자살률이 1.3명에서 4.7명으로 늘어난 것이고 우리나라는 13.8명으로 그 절대치가 세배나 높다. 또한 한국사회 자살의 특징은 전 연령에 걸쳐 그 수가 많고, 빠르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의 자살충동원인 1위는 바로 ‘가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가난의 책임을 가족과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에 대한 종말을 고하는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비롯해 다양한 복지제도에 부양의무는 준용되고 있다. 이 상황을 끝내지 않는다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이웃들을 우리는 계속 목격하게 될 것이며, 내가 가족의 짐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다음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한 한 40대 장애인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다.

 

“제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부모님은 평생 모아 마련한 집 한 채까지 팔아서 저를 부양해야 합니까? 저 하나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가 가난해져야 합니까? 저는 어느 누구의 삶도 억압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대구의 자매도 서로의 삶을 억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용산 보광동 할아버지도 화장실도 없는 차가운 방안에서 홀로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장애인 아들도 자신의 수급권 때문에 아버지가 목숨을 끊길 결코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이 죄가 되지 않는 사회, 장애가 죄가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튼튼하고 바른 복지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작성자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antipoor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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