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탄생과 함께 시작된 나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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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25일.
스무 아홉 해 인생 중 약 1/3을 살았던 열 살 여름. 즐거운 여름방학을 맞아 수영 교실에 가게 된 첫 날. 그때부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첨벙첨벙,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물장구를 치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마비 증세로 휠체어를 타게 된 이후 10여 년 동안, 나는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 노릇을 해야 했다. 부모님은 남들보다 약한 딸이 혹여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까 나를 감싸기 바빴고, 혹여 혹독한 세상 속에서 시련을 겪지는 않을까 내가 가는 길에 항상 그림자처럼 동행했다. 학교를 갈 때나 외출을 할 때, 병원에 갈 때나 여행을 갈 때도 부모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기를 원했고, 함께하지 못할 때는 나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았다. 그렇게 10여 년을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서인지 나 역시 혼자 하는 외출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 여기며 집 밖을 나서기를 두려워했다.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당시 나는 경남 창원에 살고 있었다. 여유로운 분위기와 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했지만, 나에게는 그저 놀 곳도 벗도 없는 심심한 도시였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었고, 아는 이도 없는 내게 창원은 그저 ‘고향’이라는 이름 외에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곳에 불과했다.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우연히 뉴스에 등장한 화려한 기차를 보았다.
시속 300km/h.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기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연신 떠들어 댔다. 그 이름하여 KTX.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만해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기차를 탄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역시 KTX가 그저 아주 빠른 기차려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그 발 빠른 기차가 생애 첫 여행의 서막을 열게 해줄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얼마 후, 뒹굴뒹굴하며 시쳇말로 ‘잉여인간’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KTX에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기차에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보고 싶었다. 아니, 타보고 싶었다.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고속열차의 존재만으로도 깜짝 놀랄만한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 그 기차에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혁명’이었다.
10여년 전, 내가 창원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비행기와 자가용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속버스는 애초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 교통수단이 아니기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부디 하루빨리 휠체어로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급한 마음에 나는 당시 철도공사에 전화를 했다. 그리곤 흥분된 목소리로 다짜고짜 질문했다.
“TV에서 KTX라는 걸 봤는데요. 거기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다던데, 어떻게 휠체어가 기차에 탈 수 있죠? 계단이 있는데 어떻게 올라가요? 기차 실내 문이 엄청 작은 걸로 아는데, 어떻게 객실로 들어가요? 어떻게? 어떻게??”
정신 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나와는 달리 직원은 차분하게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30여 분의 긴 통화를 끝내고, 충격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무언가에 홀린 듯 서울에 살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 뭐해? 나 서울 가려고 하는데, 언제 시간 돼?”
서울에 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며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서울까지 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해주자 친구 역시 놀라는 눈치였고, 우리는 그때부터 무척 들뜬 상태로 서로의 만남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친구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한동안 서울에 가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며 즐거움에 푹 빠져있었다. 동화 ‘시골 쥐, 도시 쥐’에 나오는 시골 쥐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니지는 않을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반가움에 들떠 소리를 지르게 되지는 않을지, 남산, 경복궁 등 많은 명소들 중에 어디를 가야 즐거운 여행이 될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푼 꿈도 잠시, 나의 첫 여행의 복병인 우리 아빠가 등장했다.
“새로 생긴 KTX라는 기차에 휠체어가 탈 수 있대. 친구가 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어”
기차를 타고 서울 구경을 가겠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온 대답은 “안돼” 였다. 단호하고 강했다. 이렇게 단번에 거부될 줄이야. 너무 절망적이었다. 혼자서 떠나는 첫 여행.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서울 구경이지만, 당시에는 나 역시 홀로 떠나는 첫 여행이니만큼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안 된다고 하니…… 결국 그 날 밤 아빠와의 대화는 눈물로 끝이 났다.
▲ 군산에서 |
속상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기차만 혼자 타는 것일 뿐인데…… 포기하지 않고 며칠을 조르고 졸랐다. 식사도 거부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시위를 이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인데,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서 시위를 강행한 것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혹여 낯선 곳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도 혼자 가 보고 싶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기필코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며 전략을 세웠다. 서울 여행을 위해서는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이성적인 협상이 효과적이겠다고 판단했다. 늦은 밤, 퇴근한 아빠와 엄마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또 단칼에 거절 당할까 떨리고 긴장됐다. 마치 고위급 임원진 앞에서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신입사원 같았다.
“첫째, 친구 전화번호를 준다. 둘째, 출발부터 도착까지 이동이 있을 때마다 전화한다. 셋째, 엄마 아빠의 전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받는다. 넷째, 당일 날 내려온다.”
“서울 가면 뭐 할건데?”
내 제안이 끝나자 아빠의 질문이 이어졌다.
“딱히 뭘 할건 아니고. 여긴 친구들이 없잖아.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밥 먹고 수다 떨고 올 거야. 이제 기차에 휠체어가 실린다고 하니까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빠는 그래도 불안해했다. 간절함을 듬뿍 담은 눈빛을 발사했다. 딸 바보인 우리 아빠는 딸의 눈에서 나오는 오로라 광선을 외면했다. 저리도 가고 싶어하니 보내 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 애써 외면하실 수 밖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엄마가 내던진 한마디로 나의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 고마 보내주라~!”
▲ 남이섬에서 |
첫 여행이 준 깨달음
토요일 오전, 아빠와 나는 밀양역에 갔다(초창기 KTX는 창원 노선이 없었다).
역무원과 함께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 나를 배웅 나온 아빠는 말이 없었다. 순식간에 도착한 KTX에 오르기 위해 휠체어 탑승용 리프트 장치가 설치되고, 짧은 정차시간에 맞추어 탑승해야 하는 바람에 뒤를 돌아 볼 새도 없이 기차에 바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객실 안으로 들어가 창 밖을 내다 보자, 마치 입대하는 큰 아들을 논산행 열차에 태워 보내는 듯이 그렁그렁한 눈빛을 한 아빠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갔다 올게. 도착하면 전화할게. 빠빠이~’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다 대고는 입 모양으로 이야기를 건냈다. 아빠는 알겠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기차는 야속하게도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고 바삐 출발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기차 공간 속에 홀로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엄마나 오빠가 없으면 가까운 마트도 가지 못했었는데,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마다 조르고 졸라서 늘 누군가와 함께하곤 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휠체어를 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그저 무서운 공간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느낀 두려움 뒤에 더 무서운 괴물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두려움’이라는 벽을 깨부숴봤더니 그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허무했다. 그 동안 혼자서 밖에 나가는 일을 왜 두려워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기뻤다.
초록색 들판. 논두렁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전신주. 전깃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새. 알록달록한 건물들.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간판들. 외출할 때마다 만나는 것들이었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모든 것이 그저 새롭고 신기했다. 이 별것도 아닌 출발이, 드라마틱한 기승전결도 없는 나의 첫 여행이, 나에게는 나를 가두었던 투명한 벽을 깨부순 일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그 날, 나는 결심했다. 지금은 고작 서울 구경이 전부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여행을 하겠노라고, 나중에 더 많은 도시를 가 보겠다고.
나처럼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의 97% 이상은 사고나 질병 때문에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가 발생한다고 한다(장애인실태조사, 2011). 멀쩡히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을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 그 충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후천적 장애인들은 좌절과 분노, 우울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며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감정인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는 많은 장애인들이 혼자서 외출하는 일, 여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크게 공감하고 있다.
▲ 제주도에서 |
밀양에서 서울로 가는 첫 여행을 끝마치고, 나는 더 많은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여행지 소개가 없었다. 그 때만해도 정말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다녀왔던 여행지 이야기를 공개하면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장애인들이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이라는 벽을 깨라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작은 소망이 큰 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Travel with Wheels>라는 여행 블로그를 개설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종종 내 여행기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 부러워하며 자신도 조만간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내 여행에 자극을 받아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사람들, 그래서 좋은 여행지를 소개해 달라는 사람들 등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보람을 느낀다. 더욱이 그들이 가진 아픔과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내가 겪었던 가시밭길 같아 공감이 된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휠체어 타는 지체장애인이 여행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건가, 사람이 사는데 돈도 벌고, 여행도 가고 뭐 그런 거지’. 늦은 사춘기도 아닌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만큼 대단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싶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대단하다고 자화자찬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내가 다녀왔던 국내 여행지 중 휠체어로 가기 정말 좋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이 전부 접히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 여행지는 허점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완벽 구비되었다고 해도 실제 방문해보면 엉망인 경우도 있었고, 단기간 연휴를 즐기러 여행을 계획했지만 편의시설이 없는 숙박업소가 많아 난감한 적도 많았다. 심지어 그런 편의시설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엉망진창 규격도 안 맞아 무용지물인 편의시설을 설치해두고서는 생색내는 뻔뻔함과도 마주한 적도 있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몇 명은 “그거 봐. 제대로 된 게 없는데 어떻게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해”하며 회의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 어린이대공원에서 |
그래서!
앞으로 나는 휠체어가 가기 좋은 여행지를 소개할 것이다. 내가 다녀온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 문화, 음식 등 다채로운 색깔을 담아낼 것이다. 또, 여행지에서 만난 장애물과 어려운 점도 함께 이야기 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편함을 마주해 당혹스럽지 않게, 어떻게 그 난관을 요리조리 피해갔는지 나만의 노하우도 함께 녹여 휠체어 여행자들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물론 휠체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여행이라는 것이 언제나 신선놀음일 수는 없다. 여행지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나 울고불고 여행을 접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행이 주는 그 짜릿함과 감동,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해 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소개하는 소소한 여행지가 휠체어를 타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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