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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해결만큼 중요한 후속 지원

[기획]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후속 지원
"재발 방지 대책… 나아진 게 없다"
갈 곳 잃은 피해자들, 피해상황 계속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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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수년간 폭행하고 노예처럼 부린 ‘신안 염전노예 사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지만 피해자들 중 몇몇은 갈 곳이 없어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다. ‘인강원 사건’은 어땠나.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또 다시 허위 진술 강요와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에 대한 후속 조치가 미흡했던 탓이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피해를 입은 장애당사자가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피해자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발판이 여기서 마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장기간 노동착취를 당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장애인이 갈 곳이 없어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나 폐쇄조치한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다른 시설에서 또 다른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해결책은 없을까.

지난해 12월 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서울특별시장애인인권센터(이하 센터)가 주관한 ‘2014 장애인인권침해ㆍ차별구제 및 P&A기관의 역할강화를 위한 기획토론회’가 열렸다.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는 지난 1년간 센터의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 현실에 대해 진단하고 그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 자리에서 이승현 센터 주임은 ‘사례로 살펴보는 인권침해 피해자 후속지원-또 다른 피해에 허덕이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에 대해 발표, 각종 사건ㆍ사고를 겪은 피해자가 제대로 된 후속 지원을 받지 못해 피해상황을 계속해서 되풀이해 겪고 있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지원과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대책은 나아진 것이 없다. 피해를 입은 장애당사자들은 피해상황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후속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피해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은 모두 피해자 본인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시설에서 나와 노숙인이 된 지적장애인

A(24세ㆍ지적장애 3급)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 A씨는 10년 넘게 머문 시설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다. 연고가 없어 어린 시절부터 시설 생활을 해 온 A씨였지만, 시설에서의 하루하루는 매우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생활의 많은 부분에 제약이 따랐고, 무엇보다 생활인들 간 폭행 및 성추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센터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A씨가 거주한 시설은 남성 지적장애인거주시설로, 구강ㆍ항문성교와 같은 강도 높은 성추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현재 센터는 이에 대한 본격 조사를 준비 중에 있다). 더는 시설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A씨는 그곳에서 마련해준 3백여 만 원의 지원금(?)을 들고 무작정 바깥으로 나왔다.

12월 중순 기자와의 통화에서 A씨는 “그곳에는 인권이 없었다. 시설장도, 직원도 거주인들의 상태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 외부에서 누가 왔을 때나 그럴 듯하게 꾸미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진작부터 (시설을) 나가야지, 나가야지 했는데 오히려 너무 늦게 나온 것”이라고. 그렇지만 A씨에겐 자립을 위한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었다. 당초 일자리를 구해볼 생각도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시설에 거주할 당시 자립에 대한 아무런 교육이나 지원을 받지 못한 까닭이다.

이후 자연히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된 A씨. 수중에 돈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간은 견딜만 했다. 잠은 찜질방이나 PC방에서 자고 끼니는 패스트푸드로 해결했다. 돈이 떨어지면서부터는 강남역 일대에서 구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노숙인지원센터를 찾기도 했지만, 그곳에서는 적절한 지원 없이 무조건 A씨를 노숙인생활시설에 입소시켜 버렸다. 견디지 못한 A씨는 다시 거리로 나와 노숙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여러 경로를 통해 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이승현 주임은 “A씨는 센터의 도움을 받아 취업을 해 돈을 벌고자 했다. 그러나 노숙인이라 취업 연계 등 여러 지원이 가로막혀 있었다. 거주지가 없으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A씨에게 급선무는 다름 아닌 거주지 마련. A씨는 센터와 함께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장애인 쉼터 등 여러 관련 기관을 물색했으나 마땅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현재 마련돼 있는 장애인을 위한 지원기관이나 단체, 시설은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곳도 여러 제약 탓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이 주임은 설명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A씨는 지난해 8월 말 강남의 한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찾아 입주했다. 그룹홈으로 전입하며 그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됐지만, 그곳에서도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생활의 많은 부분을 제약하는 면에서) 시설과 다르지 않았다”고 A씨는 말했다. 그룹홈의 경우 실제로 공동체 생활에 따른 지도교사의 통제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자립생활에 대한 지원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결국 그룹홈 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살 곳도, 일할 곳도 마땅치 않아… 자립생활 지원 부재

이제 A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본격적인 ‘자립’의 길로 들어섰다. 센터의 도움을 얻어 3개월 전 신대방동 고시원에 가까스로 둥지를 튼 A씨. 그렇지만 역시 생활은 녹록치 않다. “고시원 내 난방시설이 잘 돼 있지 않다. 환경이 열악한 것이 무척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게다가 30만 원의 월세(수급비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지출)도 큰 부담인 상황.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시설에서 직업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기에 상황은 더 막막하다. “시설 내 직업재활원이 있긴 있었다. 그렇지만 기술이나 뭘 가르쳐주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잡일’을 시켰다. 박스를 나르는 단순업무였는데, 그 강도가 무척 셌다. 일이 엄청 많았다. 그런데 임금은 한달에 5~8만 원이 고작이었다.” 그는 “(직업재활시설에서는) 배울 게 없었다”며, 무엇보다 “그곳 역시 인권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에서 운영하는 서울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통해 A씨가 일을 할 만한 장애인보호작업장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인 보호작업장은 임금 수준이 매우 낮은데다 A씨와 같은 경증지적장애인이 적응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직업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 단순 서비스업이나 노동이 할 수 있는 전부인데, 이마저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막상 일을 한다 해도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A씨가 제대로 적응할지 걱정이 컸다”고 센터 측은 전했다. 권 씨와 같은 경증지적장애인은 올바른 교육과 훈련만 있다면 충분히 자립생활이 가능하지만, 막상 그에 따른 자립생활 지원 및 훈련(직업훈련 포함)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

실제로 시설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립생활 프로그램은 단순히 일상생활 체험에만 그칠 뿐 장애인의 실질적인 자립생활 지원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직업훈련도 마찬가지.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의 한 관계자는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직업재활시설이나 근로보호작업장이 당초 제도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는 게 문제다. 현재로선 법인의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갈 곳 없는 피해자들… 장애인 쉼터 전국 6곳 불과

정리하자면, A씨와 같은 장애당사자에게는 장애인을 위한 전문 보호시설과 자립생활 교육 및 지원(시설 내에서는 자립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지역사회에서는 안정적인 자립생활을 위해 관할 지자체와 자립생활지원센터 등을 통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인권침해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전문 보호시설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할 부분이다. 치유의 공간이자, 더불어 지역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았던 이들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공간. 현재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쉼터’다.

<사례1>

B씨와 그녀의 두 딸은 모두 지적장애인이다. 세 모녀는 B씨의 계모 C씨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해왔다. C씨의 폭행을 견디다 못한 두 딸은 수차례 가출했고, 가출 중 알게된 남성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C씨의 폭행과 괴롭힘이 이어졌고, 때문에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도 못했다. 센터로 이 같은 사례가 접수됐고, 센터는 즉시 개입해 세 모녀를 긴급피난처로 임시분리조치 했지만 이후 세 모녀는 갈 곳이 없었다. 가정폭력 피해자이자 성폭력 피해자이긴 했지만, 장애인임과 동시에 아기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례2>

지체장애인 D씨와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부터 30여 년 동안 지속적인 폭행을 당해 왔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몸둥이로 때리기도 하고, 심지어 칼로 위협하는 등 심각한 가정폭력이 자행돼 왔다. 폭언과 욕설, 장애비하 발언도 수시로 행해졌다. 해당 동 주민센터가 이 같은 사실을 센터에 알렸고, 이들 모자는 가정폭력으로부터 구출됐지만 이후 갈 곳이 없었다. D씨는 남성이었고, 지체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맞는 쉼터는 없었다. 또 D씨의 어머니는 60세가 넘어서 여성장애인쉼터로도 갈 수 없었다.

 

지난해 5월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예방센터)가 마련한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안은자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 팀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는 전국 6곳밖에 없다(2014년 기준). 인권침해를 당하는 장애인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 더욱이 문제는 장애인 쉼터라고 해서 모든 장애인이 입소가 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현 예방센터 간사는 “현 6곳 쉼터 중에 남성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쉼터는 없다. 여성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혼자 신변처리를 할 수 없거나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에는 입소가 불가능하다. 또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도 입소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가 아닌 다른 곳을 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숙인쉼터나 가정폭력쉼터 같은 곳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미흡하고 시설종사자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장애인이 생활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이 간사는 덧붙였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인권침해를 당한 장애인은 바로 쉼터에 입소 가능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장애유형(장애여성 혹은 장애남성 쉼터, 장애아동 쉼터, 자녀 동반 가족 쉼터 등) 및 피해 상황, 피해자 욕구 등에 따라 기간별(일시 및 중장기)로 입소를 가능케 하며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는 치유(회복)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 현실은 요원하다.

다행히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월 장애인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마련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보호 강화대책’에는 쉼터 설치에 대한 계획이 일부 포함돼 있다. △시ㆍ도 별로 장애인단기거주시설 중 1~2개소를 피해자 쉼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정해 시범 운영(전국 4개 지역 선정 예정)하고 △쉼터로 지정된 곳에 심리치료사ㆍ간호인력 등을 추가로 배치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같은 계획은 2015년 본격 추진될 예정이라고.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쉼터나 임시거주시설 퇴소 후의 지원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쉼터를 나온 장애인이 또 다시 갈 곳이 없어진다면? 그래서 다시 인권침해를 당하던 현장으로, 시설로 돌아가야만 한다면? 이미현 간사는 “쉼터에서는 치유(회복)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위한 훈련도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프로그램을 자립홈, 체홈홈까지 연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관할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한 자립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승현 센터 주임은 “퇴소 후의 자립지원 및 이에 대한 사례관리를 통해 이들의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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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는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작성자박소란 기자  lim0192@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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