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장애인, 그 반성적 성찰 1.
본문
필자에게 올해는 장애인복지 현장에서의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회복지사로서의 경력이 20년이고 고등학교 3년, 군 제대 후 3년의 자원봉사 경력까지 합하면 26년의 세월입니다. 마흔여섯의 나이에 26년간을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으니, 이젠 뭐 다른 일 찾아보라 해도 겁나서 못하겠습니다. 하하.
행복한 만남, 안타까운 이별, 서글픈 헤어짐이 공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온 순서대로 가면 좋으련만 (장애로 인해) 너무 일찍 떠나버린 친구들을 가슴에 묻을 때면 미쳤다고 이 일을 하나 싶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그렇게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니 이젠 저도 제법 여물어졌나 봅니다.
2000년대 초. 인생의 설움을 안다는 서른. 결혼 적령기에 변변한 여자친구 하나 없이 주말에도 집구석에 처박혀 청승스레 방바닥이나 긁고 있는 저 자신은 하나로 서럽지 않은데, 남의 사정도 모르고 ‘결혼하라고, 하라고, 안 하냐고, 안 하냐고’ 그렇게 닦달하는 주위 분들의 지나친 애증(愛憎)이 서러워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한 장애인단체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며 장애인주간보호실을 개소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시설명칭 작명, 설치신고 및 직원채용까지 전 과정을 홀로 진행해 운영하던 터라, 어지간한 업무에는 쫄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에 있는 모 법인에서 장애인주간보호실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때다’ 싶어 지원하였습니다. 합격! 억세게 운이 좋았지요.
출근을 앞두고 거제에서의 삶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서울 가면 보란 듯이 서울말 쓰는 아가씨 만나 결혼해야지.’ 야무진 꿈 하나 가슴에 품고 그렇게 출근 이틀 전까지 기대와 설렘으로 밤잠을 설쳐댔습니다. (아…, 그때 서울을 갔어야 했습니다….)
출근 하루 전.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진중하게 물으셨습니다.
“니, 꼭 서울 가야 하나?”
“네, 전 서울말 쓰는 아가씨 만나 결혼할낍니다.”
“거제에는 서울말 쓰는 아가씨 없나?”
“뭐, 끝만 올린다고 다 서울말입니까?”
“하긴….”
별 영양가 없는 말들이 오가다 슬며시 본심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장애인부서를 만들면 좋겠는데, 니가 좀 맡아주면 안 되겠나? 교회 직원으로 채용할 테니 서울가지 말고, 여(기)서 일 좀 해라.”
아…, 서울 간다고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니고, 작별인사에 음식 대접에 선물까지 다 받아 챙겼는데…. 담임목사님 부탁이니 거절할 수도 없고, 거제에 남아 있자니 ‘(장가) 안 가나, 안 가나, 안 가나!!!’ 어따, 생각만 해도 소~오름. 밤새 고민하였습니다. 다 내려놓고 남아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2003.1.1.~2013.12.31. 그렇게 딱 1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새로 구매한 ‘봉고 코치3’ 15인승 차량에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 거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땐 지금처럼 ‘교통약자 콜택시’가 보편화되지 않아 왕복 3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신나게 내달렸지요. 처음엔 통합부서를 운영하였으나, 채 3년이 못 되어 장애 유형별로 분리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도 하고, 장애가 있는 자녀를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데려가기 뭣한 부모들이 조심스레 부탁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녀를 따라 부모들이 함께 옮기기도 하고. 그렇게 성장한 장애인 부서는 현재 발달장애인부, 지체장애인부, 농인부 세 부서 80여 명의 장애인과 100여 명의 비장애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아니 거제도에 교회가 몇 갠데…. 면·동에 한 교회씩만이라도, 아니 하다못해 최소한 장애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출석하는 교회만이라도 장애인 사역을 한다면 이렇게 왕복 3시간을 달릴 필요가 없을 텐데. 집 가까이 교회가 있어도 가지 못하는 현실 앞에 장애인들이 가졌을 절망감이 고스란히 우리 교회 장애인 부서의 성장으로 이어진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시각장애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누가복음 7:22)”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 곳곳에 장애인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에도 ‘베다니’라는 곳에 사는 한센병 환자인 시몬과 함께 계셨습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니 땅끝까지 가서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예수님도 차별이 없으시고 복음에도 차별이 없는데, 장애인들에게 교회의 문턱은 한없이 높기만 합니다. 뭐가 문제인가? 과연 교회는 누구를 닮아야 하는 곳인가? 교회 장애인 부서에서의 10년이 제게 던져 준 커다란 울림이자 반성적 성찰이었습니다.
덧붙임 : 개신교 외에 다른 종교를 접해 보지 못한 필자의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니 다른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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