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65세가 되면 고려장의 운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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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장애계의 이슈가 잠잠해진 듯하다. 그래서 <함께걸음>에서 2020년 상반기에 연재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하고, 결코 잠잠해지면 안 되는 주제를 이번 호에 내세우고자 한다. 바로 ‘만65세 이상 활동지원서비스 중단’이다. 현행 이 제도가 얼마나 잘못되고 불합리한 것인지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장진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회장, 이 문제로 관련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의 인터뷰와 함께했다.
‘현대판 고려장’의 실체
‘고려장(高麗葬)’이란, 늙은 부모를 산 속 구덩이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낸다는 반인륜적인 풍습이다. 이러한 풍습에 ‘현대판’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여야 될 만한 상황이 현재 장애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내용은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활동법)」의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제5조(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다음 각 호의 자격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1.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
2.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노인등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령 이상인 사람. 다만, 이 법에 따른 수급자였다가 65세 이후에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장기요양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신청자격을 갖는다.
3. 활동지원급여와 비슷한 다른 급여를 받고 있거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2조에 따른 보장시설에 입소한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
위 규정은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한 ‘신청자격’을 명시하고 있는데,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내용을 모두 충족해야만 신청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제2호의 규정이다. 즉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노인등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령 이상인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노인등’이란 ‘만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자로서 치매·뇌혈관성질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장애인은 만65세 이상이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적용을 받게 될 뿐 「장애인활동법」의 신청자격이 제한되어 활동지원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박명애 “저는 올해 1월 7일 만65세 생일로,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롤 신청했습니다. 지금 이 현실이 너무 불합리합니다. 앞으로 만65세가 되는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씩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해야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긴급구제를) 몰라서 안 하시는 분들도 있고, 혼자서 여기(국가인권위원회)까지 와서 신청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너무나 불안합니다. 65세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덜컹거리고 깜짝깜짝 놀라게 돼요. 어디 저만 그럴까요?”
▲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65세 생일을 맞아, 동료 활동가들한테 눈물의 꽃다발과 선물을 받던 모습 |
장진순 “장애인들이 현 상황에 많은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만65세가 되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조건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갈아타라고 하는 것은 장애인을 ‘환자’로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이 만65세가 된다고 모두가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만65세가 되면 ‘사회생활을 접고 요양원으로 가라’와 다를 바 없는 이 제도는, 분명 장애인을 환자로만 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장애인은 어릴 때부터 또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과 원인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과는 달리, 노인은 나이가 들면서 장애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노화되는 것임을 비교해 보더라도, 장애인과 노인은 처해 있는 상황과 욕구가 다릅니다. 즉 활동지원제도가 장애인이 노인이 되어도 일상생활에 있어서 자립생활을 증진해 가야 하는 제도라 한다면, 노인장기요양제도는 말 그대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요양을 도와주는 제도라는 거죠.”
예를 들어 목 아래가 마비되어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 A 씨가 있다. 그는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활동지원급여와 거주하는 시에서 제공하는 추가 활동지원급여로 하루 24시간 활동지원급여를 받고 있었는데, 만65세 생일이 지난 후 활동지원급여 자격이 제한되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하루 4시간의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받다가 단 4시간만 지원을 받게 된 A 씨는,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를 하고 어디로 이동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명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에 4시간을 제외한 20시간 동안 A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활동지원사가 옆에 없으면 어떻게 될까. 말 그대로 ‘현대판 고려장’과 다를 바 없다.
2007년 4월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하여 처음으로 시범 운영된 후, 2011년 1월 「장애인활동법」이 제정되면서 그 해 10월 5일부터 정식 시행되어 온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신체적·정신적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여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의 설립목적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 왜 대상이 ‘모든 장애인’이 아니라 ‘만65세 이상’의 장애인은 배제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 만65세가 되어 하루 최대 4시간의 노인장기요양서비스만 받게 되는 장애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거나, 시설에 들어가는 것. 이는 정부가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잡으며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흐름과 역행한다.
요양보호사는 활동지원사가 아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근거한 제도로,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등을 지원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조미연 “장애인활동지원급여와 노인장기요양급여는 신체활동지원(세면, 목욕, 식사도움, 체위변경 등)이나 가사 및 일상생활지원(취사, 청소, 세탁 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가정 내’ 활동으로만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는 등 각 급여는 그 지원 대상과 지원의 내용 등이 다르게 설계된 서로 다른 제도이며, 그 급여량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노인성 질병이 있는 장애인은 그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장기요양급여를 받는 것보다 활동지원급여를 받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지원급여가 절실한 중증장애인이 만65세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아예 장애인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을 배제하고 있는 「장애인활동법」은, 당사자의 기본권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 장진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회장 |
장진순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노인의 자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죠. 반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법의 규정처럼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장애인이 만65세가 되었다고 모든 걸 접고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면, 그동안 고군분투 해온 탈시설이며 자립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위해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계속해서 증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로 활동지원서비스죠. 그렇기 때문에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이 요람에서 무덤에 가기까지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모든 과정을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해요. 하루 4시간의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은커녕 생명 유지도 어렵기 때문에,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노인장기요양제도는 명백히 다른 제도라는 인식에서부터 이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서비스 이용 가능 시간이 하루 4시간이 최대이다. 특히 1회 방문당 급여제공시간이 240분(4시간)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하루에 240분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다. 이를 만65세가 된 중증장애인에게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요양보호사는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직업이 아니다. 애초 ‘노인’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직종이다. 물론 ‘노인’ 중에 ‘장애인’도 분명 포함되어 있지만, 활동지원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않은 요양사가 하루 최대 4시간 동안 중증장애인이 가진 장애의 유형과 특성을 다 이해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결코 원활한 서비스가 될 수 없다.
박명애 “장애인은 그동안 교육이나 경제적 상황에서 항상 약자의 입장이었는데, 활동지원서비스 덕분에 겨우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65세가 되었다고 장애인이 아닌 노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노인과 장애는 같이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장진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서비스 두 제도를 꼭 연계해야 한다면, 미국의 예를 참고하면 좋겠어요. 미국에서는 ‘노인장애인통합지원센터(ADRC: Aging Disability Resource Center)’라는 것이 각 주마다 설치되어 있다고 해요. 만65세 이상이 된 장애인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의료, 보장구, 장례비용까지 지원해 주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다는 거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고, 만65세가 되면 무조건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체계적인 지원제도가 마련될 때까지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만65세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원하면서, 점차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인이 만65세가 되어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신청을 하면 고위험군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4시간밖에 되지 않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고, 탈락한 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로 구제를 받아서 2~3년간 지원을 받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거죠.”
정말 형평성이 문제인가
장애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이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비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비용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중 선택권을 준다면 현재 노인요양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만65세 이상 장애인에 대해 활동지원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는 현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조미연 “만65세 이상 장애인의 활동지원급여를 제한하고 있는 「장애인활동법」 제5조 제2호는 헌법 제34조 제1항(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을 제한하고 헌법 제10조(생명 안전권, 존엄권, 일반적 행동자유권, 자기결정권)의 내용을 침해하므로, 법에 위반되어 위헌성의 소지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에 대한 단순한 시혜적 급부가 아니라 생명권, 존엄권,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 자기결정권 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국가가 필수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인권보장의무’입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에서 이 문제를 형평성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장진순 “사람은 갑자기 획기적이고 큰 변화가 주어지지 않는 한 일상생활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죠. 그런데 만65세가 되는 순간, 법이 정해놓은 어떠한 제도에 의해 일상생활이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되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 그동안 유지되어 온 자신의 일상생활을 접어야 한다면 그건 중대한 인권침해입니다. 자기결정권에 의해서 당사자가 직접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해요. 지속적으로 자립생활을 증진시켜 사회참여를 할지, 장기요양서비스를 선택하여 요양원에 갈지 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에 반박할 근거가 뭐가 있을까요? 노인이 되면 더 취약해지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오히려 더 지원 받아야 할 중증장애인의 삶의 권리를 예산과 형평성만으로 논한다는 것부터 대단히 편협된 인식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투쟁해서라도 뜯어고쳐야 할 악법 중의 하나인 만65세 활동지원서비스 중단이라는 이 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합니다.”
박명애 “저는 47세에 사회에 나왔습니다. 하루 13~1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65세가 되어 장기요양으로 넘어가 이제 하루 4시간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침 한 끼만 먹고, 화장실을 그때만 갈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그렇게 집에만 있다가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라는 말인데, 저는 죽어도 요양병원은 가기 싫습니다. 만65세 이상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중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는 노동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돌아가신 전태일 열사처럼 여러 장애인을 위해, 65세를 두려워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죽고 싶습니다. 살 자신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젠 ‘100세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인 ‘노화의 과정’은 장애인도 마찬가지로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장애인이 만65세가 되면 활동지원서비스를 중단하고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변경해 오히려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급격히 감소해버리는 이 현상은, 어쩌면 국가에서 장애노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 박명애 상임대표가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신청을 마친 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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