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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피해 지적장애인 수천만 원 빚더미

명의 도용해 대부업체 거액 대출… 악질적 수법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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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2년 사이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그 수가 눈에 띄게 는 것. 친분을 빌미로 접근해 명의를 도용, 신용카드를 발급 받고 대출을 받는 등 수법은 더욱 교묘하고 악랄해졌다. 또한 금융 피해는 여타 범죄에 비해 피해 규모가 커 장애당사자가 떠안는 심적・경제적 고통이 매우 심하다는 게 특징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경기도 성남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임 아무개(49세・지적장애 3급) 씨. 그는 최근 금융 사기 피해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2년 12월. 당시 마트에서 함께 미화원으로 근무하던 피의자 손 아무개는 평소 친분이 있던 임 씨의 명의를 도용(신분증 부정 행사)해 신용카드를 발급 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 8월에는 임 씨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했다. 그리고 이후 올해 7월까지 총 10곳의 은행 및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다. 임 씨 본인을 사칭해 각종 계약서 및 관련 서류를 작성한 것. 임 씨는 월급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고 있어 은행 대출이 어렵지 않았다. 더욱이 대부업체의 경우 전화 한 통으로 쉽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임 씨 명의의 휴대폰을 소지한 피의자의 범행은 막힘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피의자가 빼돌린 돈은 자그마치 5천여 만 원에 이른다. 여기에 신용카드 사용액까지 고려한다면 그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모든 책임을 임 씨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범행을 저질러 얻은 경제적 이익과는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게 된 임 씨. 카드대금, 전화요금이 연체된 탓에 무엇 하나 해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은 월급까지 모두 압류 당하고 있는 상태로, 그 심적・경제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본인이 직접 계약한 경우 문제 해결 어려워

임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관련 범죄는 최근 1~2년 사이 그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올 한해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센터)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약 60건(금융 사기・절취 및 갈취)에 이른다. 김강원 센터 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명의를 도용해 휴대폰을 개통하거나 신용카드를 발급 받는 일이 다수였던 데 비해 올해 들어서는 금융 관련 피해 사례가 많이 늘었다. 특히 장애당사자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폰을 개통, 대부업체에 대출을 받는 식의 교묘하고 악질적인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는 최근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가 활개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센터에 접수된 지적장애인 대상 금융 범죄 사례들은 매우 교묘한 양상을 띤다.

 

사례1

얼마 전 SNS를 통해 십대 남학생들과 친분을 맺게 된 김 아무개(25세・지적장애 3급) 씨. 한동안 그들과 어울려다닌 김 씨는 결국 ‘꼬임’에 넘어가 직접 신용카드를 발급 받고 총 4대의 휴대폰을 개통했다. 한 달 사이 카드비만 3천만 원(십대 남학생 일당이 사용한 액수)이 청구됐다. 놀란 김 씨 가족은 현재 요금 감면 방법과 법률적 대책을 알아보고 있다.

사례2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는 박 아무개(21세・지적장애 3급) 씨. 최근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떨어져 살던 아버지가 나타나 박 씨 이름으로 은행 대출을 받고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발급 받았다. 결국 몇 달째 카드 대금이 연체됐다. 대출 당시 아버지는 박 씨를 은행으로 데려가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유도했고(뜻이 어려운 용어는 옆에서 가르쳐주며 옮겨쓰라고 함), 그 자리에서 신용카드를 발급 받았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대출 받은 액수와 카드사용액을 합하면 1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현재 변제방법을 찾고 있다.

 

센터 측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금융 사기 사건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가까운 지인 혹은 우연히 알게 된 타인이 장애인을 데리고 다니며 함께 금융 계약이나 휴대폰 개통 등을 하는 것. 이 경우 본인이 직접 자신의 명의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쉽게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금융회사나 휴대폰 업체 측은 분명히 본인이 왔고, 본인이 서명했기 때문에 취소나 보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둘째, 명의도용. 장애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타인이 직접 장애인인 척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해결이 어렵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본인이 거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밝혀내면 되고 또 가해자를 사문서 위조죄 내지는 부정행사죄 등의 문서에 관한 죄 및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

셋째, 본인이 본인의 의사로 직접 거래는 하지만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 받지 못하고 과도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 금융기관이 장애인임을 이용해 과도한 계약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필요하지 않은 보험상품을 여러 개 가입하게 하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같은 경우도 해결은 어렵다. 본인이 직접 체결한 것이기 때문. 그러나 아직까지 금융기관의 설명이 충분했는지, 본인의 의사를 정확히 확인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아 우려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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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7일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가 주최한 '지적장애인 금융 피해 대책 토론회'. 지적장애인 금융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채무부존재확인소송’ 준비 중인 임 씨, 결과는 미지수

임 아무개 씨의 경우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난 9월 임 씨 사건을 처음 접수하고 사건 해결에 착수한 센터 측은 10월 중순 형사고소를 한 상태다. 현재 관련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 또한 센터는 공익소송(민사)을 제기하기로 했다. 소송을 맡은 유창진 최고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피의자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임의로 가져갔다는 사실을 임 씨가 기억하고 있었다”며, “이는 피의자가 임 씨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며 대출계약 등을 독단적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문서 부정 행사 등의 범행 혐의가 짙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유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의자가 금융 기관을 상대로 한 ‘사기’이자 임 아무개 씨의 명의를 도용한 ‘사문서 위조 및 동 행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애초에 은행에서 돈을 빌린 것은 임 씨가 아니라 피의자임이 증명된다면 임 씨는 이 사건에서 아무런 금전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현재 2곳의 대부업체에서는 임 씨에게 대부금을 상환하라는 통지를 보내온 상태다. 돈을 갚지 못한다면? 대부업체가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현재 유 변호사는 금융기관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고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갚을 돈이 없다라는 주장으로 법원에 판결을 구하는 소송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임 씨의 진술 외에는 아무것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임 씨가 피의자와 함께 은행에 동행해 직접 계약서 등을 작성했다면? “현재 그 부분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임 씨의 진술에 따르면 동행한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고 유 변호사는 말했다. 일부 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임 씨 본인이 직접 자필로 이름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포착된 것(임 씨는 글은 모르지만, 이름은 쓸 수 있다). 피의자와 동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피의자가 임 씨로부터 신분증을 빼앗아 본인 행세를 한 사례도 있고, 임 씨를 데리고 다니며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경찰은 3급 장애인은 인지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임 씨는 사회생활도 하고 월급도 받는 사람인데, 기본적인 금전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에 유 변호사는 “내가 임 씨를 만나본 바로는 돈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랐다.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거나 노동의 대가라는 건 알지만 대출, 채무, 변제, 이자 등과 같은 상대적으로 복잡한 개념은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임 씨는 금전 관리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으로 학습된 상태인 것. 임 씨는 한번도 본인 명의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적이 없고 월급도 가족이 전적으로 관리해 왔다. 피의자는 임 씨의 이 같은 상태를 잘 알고, 환심을 산 뒤 그를 이용해 자신의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의 진술은 결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피의자 손 씨는 돈을 갚을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함께 거주지를 찾아가 보니 3개월여 전 이미 이사를 간 상태였다. 현 거주지는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더욱이 이미 다른 혐의로 지명수배 상태(트럭 운전 일을 하면서 사고를 낸 것으로 추정)”라고 유 변호사는 전했다. 그러니 지금으로서 사건은 답보상태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의 금융 거래 자체 어려워질까…‘양날의 칼’ 우려

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사문서 위조 및 동 행사’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가가 이번 문제의 열쇠가 될 것이다. 유 변호사는 과거 한 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사례3

재정 상태가 악화된 지인이 장애인 친구 아무개 씨에게 친분을 빌미로 접근, 돈과 신용카드를 빌렸다. 이후 피해자인 아무개 씨는 빚더미에 앉게 됐고, 가해자인 지인은 사기죄로 법적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대출금 상환의 책임은 고스란히 아무개 씨의 몫이 됐다. 사문서 위조 등이 아닌 아무개 씨 자의로 피의자에게 돈과 카드를 빌려준 것으로 판결, 은행에 채무를 이행해야 했던 것이다.

유 변호사는 “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피의자가 처벌을 받는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금전적 책임이다. 이것을 피해자가 떠안게 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같은 사례가 “보편적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적장애인의 금융 피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없을까. 김강원 센터 팀장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피해, 특히 제2금융권 피해가 많은데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이 사실을 금융기관에 널리 알려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 차원의 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기관에서는 장애인에게 충분한 설명과 의사확인 없이 너무 쉽게 신용카드 발급, 대출 등을 해 주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며 “금융기관의 설명이 충분했는지, 장애 당사자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했는지에 대해서도 거듭 확인해야 한다. 그에 따른 절차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같은 문제 해결 과정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데 전문가들은 적잖은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지금도 장애인에 대한 가계대출 제한, 보험가입 차별 등의 관행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애인의 금융 피해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금융기관에서 장애인의 금융 거래 자체를 아예 거부할까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후견인을 데려 오라’는 등 지적장애당사자의 권한을 무시하는 처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지하듯, 지적장애인의 금융 범죄에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작성자박소란 기자  noisepark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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