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추락사건, 그 후
코레일, "안전시설 설치 규정 준수했다"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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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시각장애인 최 씨가 참변을 당한 용산역 승강장 |
지난 9월 최석(26세. 시각장애 1급)씨는 용산역에서 참변을 당했다. 5-1 승강장에서 추락, 3분여 동안 선로에 방치됐고 그사이 전동차에 치여 골절 및 뇌출혈 등 전치 32주의 중상을 입은 것. 의사로부터 걸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는 ‘꼭 걷겠다’고 다짐했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알수 없는 재활치료 기간 앞에서 잘 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최 씨의 모친이 울먹였다. 현재 그들은 이 사고를 단순한 ‘실수’로 몰아붙이는 시선과 싸우고 있다.
그는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9월 20일 오전 10시 45분, 최 씨는 용산역 4번 승강장에 내렸다. 친구와 서울역 방향 승강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당시 상황을 최 씨는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계단 일곱 개를 올라간 뒤, 평지를 지나 5-1 지점에서 앞으로 떨어졌다. 이후 3분 가까이 떨면서 다가오는 전동차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뇌출혈과 두피열상, 흉추골절 등 총 전치 32주에 달하는 중상을 입었다. 끝내 하반신 마비 판정이 내려졌다.
최 씨는 현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2천6백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단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하고, 현재 재활치료 진행을 위해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경찰 조사 결과는 피해자 과실로 인한 사고였다. 안전 펜스 등이 규정대로 설치돼 있었고, 안전 요원 배치 기준에 대해서도 뚜렷한 규정이 없어 선로에 배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증명하듯 철도공사 측에서는 사건 발생 초기에 선심 쓰듯 1백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시간이 더 지나자 치료비의 30%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말만 전달했을 뿐이다. 최 씨 측에서는 그것을 모두 거절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지난달 19일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코레일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차별구제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
지난 11월 19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 단체는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용산역 시각장애인 추락사건 공익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강원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팀장은 기자회견에서 “그간 발생한 다른 사고들은 열차에 타려다, 혹은 그냥 걸어가다 떨어진 것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다. 현장을 보면 추락한 지점은 시각장애인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이런 사건에서도 시각장애인의 과실을 주장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잠시 되돌아가서, 최 씨가 추락한 이유가 정말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최씨가 용산역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방문한 것도 아니어서 해당 역이 어느 정도 익숙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추락 지점을 계단으로 착각했는지, 이어진 승강장으로 착각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추측에서 최 씨의 과실은 찾기 힘들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각장애인 중 한 명은 “중증시각장애인의 경우 점자블록을 이용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 교육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 즉 유도블록이 정확히 설치돼 있다는 가정 하에 이뤄지는 것이어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용산역 같은 곳은 아무리 자주 다녀도 상황에 따라 혼동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을 살펴보면, 최 씨는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내리는 곳’이라는 안일함이 사고 불러… 안전시설 설치 의무화 시급
최 씨의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종로3가역에서 열차를 타서 용산역 5번 승강장 6-1지점에서 내렸다. 하차와 함께 스크린도어가 닫힌 후, 사진 ①의 선형 유도 블록을 따라 짧은 계단 앞까지 이동했다. 이후 점형블록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사진 ②). 계단을 올라가고 난 시점에서 최 씨의 왼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오른편에는 다른 승강장 및 개찰구로 이동하기 위한 계단이 있다(사진 ③). 이후의 동선은 사고 지점까지 이어진다.
▲ 최 씨의 이동 경로(➊ → ➍). ➍의 사고지점에는 선형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다. |
김수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사진 ④의 위치를 두고 “시각장애인은 점형블록만으로는 주변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최 씨의 동선을 보면 일정한 계단을 오른 후 약간의 평지가 있고, 다시 계단이 이어지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즉 사진 ④의 평지에는 왼편에 있는 엘리베이터 쪽의 점자 블록과 마찬가지로, 안내 역할을 하는 선형블록이 설치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해당 승강장은 사람들이 더 이상 탈 수가 없는 승강장으로, 급행 열차가 도착하는 곳이다. 결국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통해 승객들을 다른 개찰구로, 플랫폼으로 연결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 김수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특이하게도 사건 장소는 극히 대칭적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차 지점에는 스크린도어나 선형블록 등 정당한 편의시설이 구비돼 있는 반면, 추락 지점에는 스크린도어도 선형블록도 없었다. 용산역 곳곳을 보더라도 사건 장소를 포함한 일부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소에 선형블록이 설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 장소의 바로 왼편인 4-2, 4-3 지점에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선형블록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오르고 난 후에도 그 앞에 선형블록이 있었다.
김 변호사는 “해당 승강장이 오직 내리기만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안전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철도공사의 안일한 생각이 사고를 부른 것이다. 스크린도어나 선형블록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아주 작은 개선만으로도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불운’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안전시설 설치 규정이 명확하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현행법상 스크린도어 또는 안전펜스는 어떤 형태로든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용산역 같이 일정한 체계 없이 설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스크린도어의 경우 정부가 배정하는 설치 예산(2백96억 원)이 역당 설치비용(25~55억 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선별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현실이다. 용산역만 보더라도, 거의 모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놓고도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만 설치하지 않았다.
또한 앞서 제기된 스크린도어 문제뿐만 아니라 점자블록 설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있는 편의시설이지만,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등에 있는 장애인 안전시설 설치방법에도 점자블록의 재질이나 규격에 대한 설명만 나와 있을 뿐, 실제로 위험과 직결되는 부분인 설치 규정과 그 의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안전요원 배치와 CCTV 등 안전 관리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당시 영상을 살펴본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최씨는 선로로 떨어진 뒤 2분50초 가량 혼자 있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용산역에는 23명의 역무원이 근무했지만 아무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승강장 모니터 요원 2명이 있었지만, 다른 승강장에 비해 안전 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또한 총 172대의 CCTV 중 최 씨의 사고 지점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것은 한 대뿐이었고, 그마저도 역광이라 잘 보이지 않았다. 즉 사각지대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안전요원조차 없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검증을 위해 사고 당시와 비슷한 시각에 현장을 방문했을때, 안전요원은 커녕 지나가는 승객들조차 몇 명 마주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 측은 “사고가 난 급행열차 도착 선로는 열차가 들어올 때만 사람이 몰린다. 그때만 모니터로 주의 깊게 보기 때문에 사고 여부를 미처 알지 못했다.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안내요원 배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즉 본 사고를 최 씨의 ‘실수’로,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불운으로 여길 뿐 시각장애인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최 씨 측은 철도공사를 상대로 ‘병원 치료비와 위자료 8천9백여만 원을 지급하고 지하철 안전시설을 확충하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한 상태다. 이번 사건이 매년 발생하는 시각장애인 추락사고 문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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