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로 묶고, 개집에 가두고…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쇠사슬로 묶고, 개집에 가두고…

[초점] 전남 신안 H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전남 신안 H복지원 사태 "이곳은 조금 나은 감옥일 뿐"

본문

또 신안에서 일이 벌어졌다. ‘염전 노예’ 사건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 학대 시설이 또다시 드러났다. 시설 거주인들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하지 말라”는 원장의 말이 두려워 “모두 사이좋게 잘 지낸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거주 장애인의 발바닥을 수백 대 때리고, 개집에 가두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밤새 쇠사슬에 묶어 놓기도 했다. 조사 과정에서 여지없이 드러난 사실이다. 그런데도 시설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관할 지자체는 증거가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거주인들은 그대로 방치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남 신안군에 있는 H복지원 얘기다.

  14058_12925_1536.JPG  
▲ 김성옥 인권이 장애차별조사 과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적장애인시설 직권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장애인을 쇠사슬로 묶고 개집에 집어넣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복지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내용인즉, 모 복지원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 폭행 등의 혐의가 불거진 것. 시설장 고 씨를 검찰에 고발한 것은 물론 시설 폐쇄 권고 조치를 내렸다.

결정문에 따르면, 고 씨는 말을 듣지 않는 장애인들의 발목을 쇠사슬로 묶거나 화장실 건물, 마당에 방치된 철창은 물론 개집에 감금하기까지 했다. 또한 농사와 자택 개・보수 등의 작업에 동원된 거주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고, 정부 보조금과 가로챈 장애수당 등을 시설비에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칸막이 없는 화장실 운영, 의료조치 미흡 등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14058_12922_1442.jpg  
▲ 시설장은 말을 듣지 않는 거주자를 걸핏하면 개집에 가뒀다.


“다른 시설보다는 낫다”… 폭력에 무감각한 거주인들

해당 시설은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H복지원(이하 복지원)으로 밝혀졌다. 이곳은 25명 규모의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이 시설에 처음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2013년 11월. 전남장애인인권센터(이하 전남센터)로 복지원에 거주하고 있는 김 씨 형제(15·17세, 지적장애 1·2급)가 폭행 및 감금을 당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조사 결과 전남센터는 폭행에 대한 증언을 일부 입수했다. 그러나 처음 형제는 시설 측을 의식해 있는 그대로 얘기하길 두려워했다. 형이 “(원장에게) 긴 매로 발바닥을 자주 맞았다”며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형제와 함께 상담한 다른 거주인 유 아무개 씨는 형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너무 산만해서 말을 듣지 않는다”는 등 폭행을 정당화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이어 “원장님이 잘해 준다.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고, 일도 거의 안 한다”면서 사전 교육이 의심되는 답변을 했다. 때문에 이 같은 부분적인 진술만으로는 확신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2014년 7월 실시한 시설 전수조사 과정에서 형제 및 거주인들에 대한 추가 피해 사실이 확인됐다. 거주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폭행은 이른 아침이나 한밤중 수시로 일어났다. 김 씨 형제를 비롯한 남자 거주인들은 걸핏하면 뺨을 맞는 등 구타를 당하고, 개집에 갇히거나 쇠사슬로 묶였다. 그러나 종사자들 및 다른 거주인들은 이 모든 사실을 보고도 모른 척 했다. 형제 역시 개집에 대한 질문에 “처음엔 무서웠지만 괜찮다”, “짖기는 하지만 물지 않는다”며 익숙한 반응을 보였다.

  14058_12924_1444.jpg  
▲ 가장 안쪽 방 안에 있는 쇠고리. 다음과 같이 거주자를 묶었다.(우)

특기할 만한 것은 시설장 고 씨 등이 신안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3명의 후견인이라는 사실. 해당 후견인들은 관련 기관 및 지자체에서 적격 심사를 거치지 않은 것이 인권위 조사 결과 추가로 드러나, 현재 법원에 후견인 변경 청구를 신청한 상태다.

시설장 뿐 아니라 거주인에 의해서도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는 진술이 확인됐다. 한 거주인은 2013년 이뤄진 조사에서 “유 아무개와 양 아무개는 시설 거주인이긴 하지만 중간 관리자의 입장이었다”고 답변했다. 특히 양 씨의 경우 다른 거주인들과 똑같이 시설장에 의해 폭행을 당한 유 씨와 달리 시설장의 비호를 받아 폭행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이후 거주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상담에서도, 맞기 싫다고 하면 배에 올라가 발을 붙잡게 해 발바닥을 때렸다는 등 공통된 증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시설장 고 씨는 이러한 폭력을 훈육 과정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태다.

이러한 폭력은 거주인들 사이에서 당연시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최 씨는 물론, 폭행과 감금을 당한 다른 거주인들의 경우에도 형제와 마찬가지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뿐, 본인의 피해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과거 거주하던 시설에서 오랫동안 극심한 인권피해에 시달린 이들에게는 시설에서 행해진 처사가 놀라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른 시설보다는 낫다”라는 한 거주인의 발언이 이를 나타낸다.

목적 외 정부보조금 사용 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고 씨는 신안군으로부터 받은 보조금 2억3천만 원 중 일부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또한 거주인들의 통장과 도장을 시설에서 일괄 보관하다 지난 5년간 5억5천여만 원을 무단 인출하기도 했다. 거주인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무책임한 전원조치는 또 다른 시설로의 방치일 뿐

또 다른 문제는 신안군청에서 복지원의 인권침해 문제를 2011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2011년 전남센터가 진행한 시설 조사에서 H복지원 자체의 문제는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같이 운영하는 사회복귀시설의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생활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조사원들이 방문한 시간에 직업교육이나 일상생활 등이 없이 방에 누워만 있는 상태였다. 또한 남녀의 생활공간이 분리돼 있다고 볼 수 없었으며, 공용공간의 난방이 전혀 되고 있지 않았다. 특히 시설이 분리돼 있다는 답변과는 달리 복지원 거주인들과 함께 식사 등을 해결하는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전남센터에서는 해당 시설들을 폐쇄하기 위한 심층조사가 시급하다고 판단, 군청에 문제를 제기했다.

  14058_12923_1443.jpg  
▲ 거주자에게 받는 서약서. '지시'와 '지도'에 '순종하고 따른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적절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공무원은 거주인의 친척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사실관계 조사는커녕 시설장의 고충을 대변하며 민원 취하를 권유하기까지 했다. 박수인 전남센터 팀장은 “신안군청은 H복지원에 대해서도 2011년에 분명히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2013년 조사에서까지 심증만 있다는 이유로 관리 감독을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면서 군청의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인권위가 해당 공무원을 징계할 것과, 해당 지자체의 장애인 인권 업무점검 시스템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제 관건은 시설 폐쇄와 피해자 전원조치 등의 과정이다. 박 팀장은 “피해자 전원조치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군청에서 이를 위한 시설을 만들어 위탁 공고 중에 있는데, 시기를 앞당기거나 예비비를 투입해 종사자를 고용하는 등 현실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데도 내년 초 위탁할 것이라는 말 뿐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신안군청은 “당사자의 의견을 고려해서 전원조치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하는 점은 맞다. 하지만 그 많은 인원들이 한번에 다 이동하기도 어렵고, 알아봤으나 당장 위탁을 한다 하더라도 시설을 운영할 만한 법인이 마땅치 않다. 내년 초 정도 위탁 예정”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남센터 측은 “위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으며, 법인이 마땅치 않다는 대답도 신빙성이 없다”고 전했다. 신안군 측은 현재 시설 운영을 위한 조례도 제정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조사에 참여한 박찬동 광주장애인인권센터 팀장 또한 그간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들의 사후 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며 이번 사건의 해결 과정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인권위로부터 시설 폐쇄가 권고됐고, 공은 신안군청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험상 이행상황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시설 폐쇄에 따른 전원조치는 시설 거주인의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공간만 바꾸는 수준이었다. 신안군 및 전라남도청에서는 사후 지원문제까지도 염두에 두는 전원조치를 민・관 합동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앞서 언급했듯 피해자들은 폭력이나 감금에 무감각했을 뿐 아니라, 일부 당연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상담 과정에서 시설을 나가거나 다른 시설로 이동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있었으나, 새로운 시설이라고 별다를게 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는 지금껏 이뤄진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한 사후 조치가, 그들을 또 다른 감옥으로 밀어 넣어 왔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낸다. 김 씨 형제는 지금도 H복지원에 거주하고 있다. 조금 나은 감옥에서의 삶이다.

  14058_12921_1435.jpg  
▲ 전남 신안군 H복지원 전경. 당시 25명의 지적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28명 중 3명 전원조치됨)
작성자글 박성준 기자│사진 전남·광주장애인인권센터  natalirk@nate.com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