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 제정, 장애인 노동권 확보될까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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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3~14일 이틀 동안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모토(熊本)시에서 공동련(共動連)의 제31회 전국대회가 열렸다. 공동련은 일본에서 장애인 일자리 확보를 중요시하는 전국 장애인 작업장들이 연합해서 만든 단체이다. 이번 전국대회에는 일본 전역에서 약 1천여 명의 장애인과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일본 공동련 전국대회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지상 중계한다.
일본, 사회적기업 설립 지원 대신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 만들어
▲ 제31회 공동련 대회 포스터 |
이번 일본 공동련 전국대회의 슬로건은 ‘해고하지 않는다. 차별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이 살고 같이 일하고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였다. 대회 슬로건에서 보듯 일본 장애인, 그중에서도 특히 발달장애인 같은 중증장애인들이 어떻게 일본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것인가가 이번 전국대회의 핵심 논의사항이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 그늘에 있는 소외계층, 특히 그중에서도 중증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는 아직 가능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을 이번 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국대회에 모인 일본 장애인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지원 제도를 일본에도 도입해서, 사회적 사업소 설립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의 일자리 확보를 가능하게 해달라고 일본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에 재정이 많이 든다며 여전히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어 일본 장애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지난해,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 법안 대신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을 만들었다. 이 법이 내년 4월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한다.
전국대회 주제가 중증장애인들의 일자리 확보였기 때문에 대회 개최 기간 동안 내내 이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이 화제가 됐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일본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상담하고 취업훈련을 시켜서 기업에 취업시키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생활곤궁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가정, 가장 사별 등으로 긴급복지가 필요한 모자 가정, 가족 구성원이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퇴직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가정,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 그리고 질병으로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법에서 명시해 놓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법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는 게 많은 대회 참가자들 지적이었다.
구체적으로 대회 첫 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의 공생, 그리고 공동(共動)으로’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한 오쿠다(일본 북규슈 노숙자지원기구 이사장) 씨는 “일본의 경우 1980년대 말까지는 종신고용 제도로 인구의 85%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6천만 명 노동인구 중에서 2천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그중에서 노숙인이 1만 명이다. 문제는 갈수록 비정규직과 노숙인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고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노숙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거다. 구체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구인 현황을 보면 현재 채용 인원의 60%가 비정규직이다. 이제 일본도 빈곤이 일상적인 사회문제가 됐다는 증거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늘어나고 있고, 20대 젊은이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립지원법이 일본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취업 못하고 일자리가 없는 게 취업훈련이 부족한 탓이라고 보고 있고, 그래서 취업훈련을 시키자는 데 머물고 있다. 국제적인 흐름도 그렇고 일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거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취업 능력이 부족하니까 직업훈련을 시키자는 것은 일본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라고 그는 자립지원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구마모토시에서 열린 제 31회 공동련 대회 |
그는 이어 “다른 나라들은 가난한 사람들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기업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 자립지원법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먼저 지방자치단체에 가서 상담을 하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상담하고 훈련 받는 데에 많은 예산이 투입 될 예정인데, 과연 훈련이 취업으로 연결될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일본 사회의 생활곤궁자가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 또 하나는 사회적인 고립이다. 이중에서 사회적인 고립이 더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립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에 참여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동안 일본 사회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사람들만 사회 참여가 가능하다고 해왔지만, 사회에 참여한 가난한 사람도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빈곤은 사회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을 양산하는 사회 분위기를 우선 바꿔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빈곤을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한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마치 밑바닥에 구멍이 난 그릇에 물을 붓는 것처럼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일그러진 사회를 복원하지 않는 한 빈곤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걸 일본 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 제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분명히 했다는 건 높이 평가
▲ 이번 공동련 대회에서는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이 핵심 논의 주제였다 |
대회 이튿날, 분과로 나눠서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은 참석자들의 집중 논의대상이 됐다.
먼저 분과 토론회에서 나온 일본의 빈곤과 관련된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일본 국민의 연 평균 소득은 224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연 약 2천2백4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대비해 일본의 빈곤선은 연 소득 112만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천1백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문제는 일본에서 빈곤선 아래의 소득밖에 수입이 없는 국민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장애연금을 받고 있지만 1인당 연 평균 장애연금이 77만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7백70만 원밖에 되지 않아 직업이 없는 대부분의 중증장애인들이 빈곤상태에 놓여 있다는 게 토론회 참가자의 지적이었다.
분과 토론회에서 사례발표에 나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단체인 ‘괜찮아요 센터’ 대표 야마구찌 씨는 “자립지원법은 생활곤궁자를 대상으로 ①상담 ②생활력과 사회력 향상 ③취업준비훈련 ④실제적인 취업으로 진행한다는 자립지원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이 법을 어떻게 시행해야 할지 솔직히 난감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민간단체인 ‘괜찮아요 센터’는 2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고, 가와사끼 시청에서 연 8천만 엔(약 8억 원)을 지원 받는다고 한다. “한 달에 장애인 등 생활곤궁자 1백여 명이 센터를 찾아오는데, 상담 내용은 ①취업문제 ②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문제 ③주택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문제 ④건강 문제 ⑤인간관계 문제, 그밖에 정보 제공 요구 순이다. 문제는 센터에서 생활곤궁자들을 기업에 취업시키는데 취업 후 금방 돌아오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취업 성과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는 실정이다”라는 게 그의 토로였다.
이어 그는 “내년부터 생활곤궁자를 대상으로 취업 훈련을 시킨다는데 저소득층이 취업 훈련 참가 기간 중에 생활비는 어디서 조달해야 할지 난감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생활곤궁자들이 취업훈련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립지원법 시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에서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이 본격 시행된다고 해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기업 취업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은 다음 토론에서도 이어졌다.
일본 오사카 현 도요다카시의 생활보호 담당 직원 미즈오까 씨는 “생활곤궁자 중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생활 지원 등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일하는 게 어렵고, 기업에 취업해도 그만두고 금방 돌아온다. 또 기업들이 요구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도 드물기 때문에 생활곤궁자들은 취업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을 정부는 취업훈련을 시킨 다음 기업 취업을 통해 자립시키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취업이 안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설령 훈련을 거쳐 취업한다고 해도 직장에서 대화가 안 되고, 생활곤궁자 중에는 전과자도 있고 중증장애인도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취업시킬지 솔직히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자립지원법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본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다는 것, 이어 법 제정으로 사회 곤궁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분명히 했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민간단체나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던 사회 곤궁자 취업 알선과 훈련 사업을 일본 정부와 지자체 전국으로 확대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작업장에서 만든 상품을 팔고, 장기자랑을 하는 참가자들 |
공동련, 자립지원법 대신 사회적 사업소 설립 촉구
이상이 이번 공동련 전국대회에서 이슈가 된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나라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일본에서는 생활곤궁자라고 부르고,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렇게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상담하고 취업 훈련을 시켜서 기업에 취업시키겠다는 게 일본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 내용이다.
이런 자립지원법에 대해 대회 참가자들은 일본 사회에서 중증장애인 등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취업 훈련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터를 먼저 만들어야 하고,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터를 일본 사회에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자립지원법은 가난한 사람들은 먼저 지자체에 가서 상담을 받고,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 후에 과연 취업으로 연결될지는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정리하면 시행이 예정된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터를 만드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 취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대회 참가자들의 지적이었다.
대회 말미에 대회를 주최한 공동련은 자립지원법에 대해 “이 법이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대상화시키고 있다. 또 법이 시행되면 가난한 사람들의 취업 훈련에 그치고, 정작 취업에 이르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결국 일본 사회에 가난한 사람들의 일터인 사회적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게 공동련의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공동련은 대회를 마치며 발표한 결의문에서 “일본에는 사회적 사업소 설치가 안 되고 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사회적 사업소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국제적인 흐름을 보면, 한국의 사회적기업, 대만의 비호공장 등 사회적 사업소가 동아시아 장애인 노동의 새로운 흐름이다. 일본도 이런 흐름과 같이 가야 한다”고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주간보호시설부터 근로작업장까지 모두 한곳에 있다
시설 한 곳에서 수직으로 여러 곳의 시설 운영하는 공생 복지회
▲ 공생 복지회 내 작업장 모습 |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시설들은 통상 근로작업시설과 직업훈련시설로 나뉘어져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하나의 시설에서 중증장애인 직업과 관련된 모든 시설을 운영하는, 즉 시설을 하나로 통합해서 운영하는 방향으로 직업재활시설들이 변화해 가고 있었다.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자립지원법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대회 기간 중에 구마모토 시 외곽에 있는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사회복법지법인 공생 복지회를 방문했다.
발달장애인 71명이 일하고 있고, 직원은 3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 시설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 지원은 1년에 9천4백만 엔(약 9억4천만 원)이라는 게 시설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 시설의 특징은 하나의 시설에서 3개의 작업장과 1곳의 시설, 1곳의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A형 작업장은 30명의 상대적으로 장애가 경미한 발달장애인이 인쇄업과 농업 등을 하고 있었는데 평균 임금으로 한 달 9만2천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92만 원을 받고 있었다.
시설 관계자는 A형 작업장 운영 원칙을 “시설이 장애인과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은 능력과 근무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며, 발달장애인 중 자력 통근이 가능해야 받아준다”고 밝혔다. 그 다음 B형 작업장이 있는데, 중증발달장애인들이 종이박스와 빵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평균 임금이 하루 1천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만 원이었다.
20명의 장애인들이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일하고 있었는데, B형 작업장은 원칙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직업훈련 작업장이라는 게 시설 관계자 설명이었다.
이어 이 시설은 중증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전혀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순수하게 직업훈련만을 시키는 ‘취로 지원 사업소’라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중증발달장애인들에게 작업과 실습을 통해 취업에 필요한 훈련을 지원한다는 목적 아래 운영되고 있고, 현재 11명의 장애인이 훈련을 받고 있으며 훈련기간은 2년이라는 게 시설 관계자 얘기였다.
그 밖에도 이 시설은 우리나라의 주간보호 시설 같은 중증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순수하게 사회적응훈련만을 시키는 시설도 한 시설에서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10명의 장애인이 있고, 2년간 다닐 수 있다는 게 시설 관계자 설명이었다.
또 이 시설은 별도로 19명의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는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었다. 시설 관계자에 따르면, 그룹홈에 있는 장애인 중 3명은 일반 직장에 다니고 있고, 그 중 한 장애인은 다다미 만드는 공장에 다니면서 월 15만 엔(약 1백5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 시설 운영자는 한곳에서 발달장애인 직업과 관련된 모든 시설을 운영하는 것의 장점에 대해 묻자 “발달장애인이면 누구든 장애의 중증 여부와 상관없이 와서 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1명의 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와서 사회적응훈련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아 임금을 받는 A형 작업장으로 올라가도록 지원하고 있다는 게 이 시설의 특징이었다.
일본에서 이런 시설이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의 중증발달장애인들은 월수입이 30만 엔(약 3백만 원)을 넘지 않으면 누구나 장애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 없이 직업훈련과 사회적응훈련만 받아도 별도의 수입인 장애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시설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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