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도 신체의 일부’<br/>공익소송, 사회 패러다임 바꾼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차별구제청구 소송·장애인용승강기 설치 청구 소송·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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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2000년부터 인권센터를 열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구제소송 및 기획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인권센터가 현재까지 제기한 소송은 약 77건 정도로, 최근 3년간 30여 건을 진행했다.
소송은 짧게는 2~3달, 기본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만큼 기나긴 시간싸움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농부가 파종을 하고 길고 긴 시간 수고하고 인내해 추수의 때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민간단체의 공익소송의 경우 소송을 한다고 이길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닌 데다, 주도적으로 수년간 여러 건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 또한 녹록지 않은 일이다.
올해 연구소는 2012~2013년에 씨를 뿌렸던 공익소송의 열매를 일부 수확했다. 결과는 풍년이다. 차별구제청구 소송, 장애인용승강기 설치 청구 소송,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등 장애인 차별구제 및 인권 문제 대응에 있어 좋은 판례를 만들어냈다. 또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기존의 장애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의식 있는 판결도 있어 눈길을 끈다. 그간의 소송과정과 판결내용, 각 소송이 갖는 의미를 정리해봤다.
글 이애리 기자
Ⅰ. 차별구제청구 소송 - 전북 서해대학 장애인 채용거부 사건
Ⅱ. 장애인용승강기 설치 청구 소송 – 종로3가역 엘리베이터 미설치
Ⅲ. 의족 파손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 – 의족도 신체의 일부인가?
‘의족이나 의수는 신체일까, 아닐까?’ 의족을 착용한 지체장애인의 사고가 의족이 과연 신체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법정 논쟁으로 가져간 사건이 있다. 1995년 교통사고 후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하게 된 양태범(지체3급·70·남) 씨는 경비원으로 일하던 2010년 12월 말 제설작업을 하다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양 씨는 양쪽 슬부 좌상, 오른쪽 의족 파손을 입었고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산재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의족의 파손은 신체의 부상이 아닌 물적 손상에 해당하기 때문에 요양급여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며 양 씨의 요구에 불승인했다. 이후 양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진정도 해보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의족은 신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하고 2심 및 위헌제정신청 모두 기각됐다. 이 사례를 접수한 연구소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함께 상고심을 수행하기로 결정,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했다.
양 씨는 사고 직후 직업의 특성상 오랫동안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간단한 응급조치만으로 절단상해부위를 치료했다. 그러나 우측절단 부위의 상해보다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파손된 의지보조기구 교체하는 것이었다. 수리기간만 7일 이상 소요되고 비용은 약 3백만 원을 웃돌아 산재보험적용 요청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공단 측은 “상해 부분이 신체가 아닌 의지 파손과 절단 부분에 대한 치료가 3일 이상 요양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3조1항에 따른 경우 부상 또는 질병이 3일 이내의 요양으로 치유될 수 있으면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에 의거 산재적용이 불가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의족 없이 활동이 어려운 양 씨는 결국 월급을 가불해 의족을 구입했다.
이러한 사연을 접한 양 씨가 근무하는 아파트 동 대표 최 씨는 두 팔을 걷고 양 씨를 도왔다. 최 씨는 ‘의족은 신체 일부로 본다’라는 법 조항이 없어서 공단에서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의족이나 수족을 신체의 일부분으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을 누가 고용하겠느냐”면서 “산업재해사고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고도 입원비 걱정 안 하고 퇴원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이치로 의족 파손도 신체 일부로 인정해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적용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권익위에 청원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양 씨가 1995년부터 재해 시점까지 의족을 착용하고 사회활동을 해왔기에 의족이 신청인의 신체 일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점과 신청인의 의족이 신체 일부로서 신체의 필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양 씨의 의족 파손은 ‘업무상 재해이고 요양급여의 범위에 해당한다’며 공단 측에 산재요양 불승인처분을 취소할 것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 모두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의족이 신체 일부가 아니라고 보고, 양 씨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요양급여 지급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이후 연구소는 대법원 상고심을 진행했다.
이번 소송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지급되므로, 의족 파손을 부상으로 인정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당시 상고심을 담당한 김예원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는 “민법에서는 탈부착이 가능한 것을 물건으로 보고 재산권으로 보기 때문에 이 사건은 법리적으로 치열하게 다투기보다는 재판부의 결단이 필요한 사건이었다”며, “헌법상 평등의 원칙, 장애인차별금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취지에 따른 상고 이유뿐 아니라 법회의의 내용으로 재판부를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조사한 바로는, 국제표준기구(ISO)에서 의족을 신체를 대체하는 것으로 품목 분류 기준으로 세웠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ICF(국제장애분류) 기준에서도 의족은 신체 일부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원고의 청구를 인정함으로써 국가적 재정 낭비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 데 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에 절대 재정의 과도한 부담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개발원 등에서 나온 장애인취업률을 보면 경제활동 인구 중 3.8%밖에 안 된다. 장애인들이 취업하고 있는 의족처럼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분들은 그중에서도 극소수”라며, “공단이 과도한 부담을 가져오리라 판단한 것은 기우다”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도 원심 재판부가 A씨의 의족이 신체에 체화되지 않고 비교적 쉽게 탈부착 된다는 사유로 신체 일부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업무수행에 있어 완전히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을 탈착 여부에 따라 달리 취급하고 있어, 합리적 사유를 인정하기 힘들다”며, “판결과 같이 요양급여의 요건이 되는 근로자의 ‘부상’을 문언적 의미 그대로 ‘생물학적인 신체의 상처’로 해석하게 되면, 같은 사고에도 비장애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요양급여가 지급되나 의족을 사용하는 장애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요양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차별적 결과가 발생한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판결은 우리나라가 가입한 UN장애인권리협약 및 국내 법규들의 취지 및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업무수행 중 파손된 의족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 사고 후 파손된 양 씨의 의족 |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결국 양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근로공단이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치과보철이 파손되는 재해를 입은 경우 보철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에서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산재보험의 요양급여의 범위 내에서 지급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한 적이 있는 사실이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장차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 요양급여 및 장애인보조기구에 관한 규정의 체계, 형식과 내용,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의 개념 등에 의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해석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한 부상의 대상인 신체를 반드시 생리적 신체에 한정할 필요는 없는 점 ▲의족 파손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을 경우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보상과 재활에 상당한 공백을 초래하는 점 ▲앞서 본 의족의 신체 대체성에 비추어볼 때 신체 탈부착 여부를 기준으로 요양급여 대상을 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점 ▲의족 파손을 업무상 재해에서 제외한다면, 사업자들로 하여금 의족 착용 장애인들의 고용을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는 점 등을 들며 “의족은 단순히 신체를 보조하는 기구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인 다리를 기능적·물리적·실질적으로 대체하는 장치”라며,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가 장착한 의족이 파손된 경우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대상인 근로자의 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과 장차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 및 요양급여의 범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결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장애인 근로자들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본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법률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다”이라며, “기존의 불공평함이 아 판결을 통해 수정되고 앞으로 지침 등이 개정될 것이다. 이번 판결이 그 정도로 파급력 있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앞서 연구소가 승소, 일부 승소한 소송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익소송은 하나의 사례, 특정 사건의 해결에만 그 목적과 의의가 있지 않다. 어떤 소송은 사회 패러다임, 장애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차별로 굳게 닫힌 사회의 빗장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또 좋은 판례는 유사한 인권 문제에 처한 다른 장애인, 다음 세대의 장애인에게 좋은 유산으로 남는다. 공익을 위한 소송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의지를 불씨로 삼아 법률 전문가 그리고 장애 인권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모은 공익소송을 통해 260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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