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재난 매뉴얼, 이대로 괜찮습니까?
본문
재난대응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제대로 활용하는지 의문…장애인의 욕구 반영한 매뉴얼·대피 시설 필요해
올해 상반기는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 다사다난한 시기였다. 세월호 참사(4월 16일)에 이어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 사고(5월 2일),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5월 26일), 전남 장성요양원 화재 사고(5월 28일) 등 숨 돌릴 틈 없이 재난사고가 일어났다. 사고재발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은 아직까지 금시초문인데다 사고를 접한 사람들은 ‘또?’라고 말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나와는 무관한 일, 그저 TV·신문으로만 봤던 사고가 ‘이제는 나에게도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로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는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안 마련보다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질문만 던지며 책임질 사람만 찾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제대로 된 재난사고 대처 방법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대형 재난사고는 큰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이 자명하다. 이것은 모두의 안전과 미래가 달린 아주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비장애인보다 이동시간,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장애인은 갑작스런 재난사고 앞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게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장애인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사고 대응시설 이용 방법에 친숙하지 않은 경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함께걸음>은 재난사고와 같은 응급상황 발생 시 장애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매뉴얼과 보완책을 제시한다.
▲ 사진제공=소방방재청 |
재난사고 앞 속수무책인 대한민국…지휘체계 엉망
지난 대형 재난사고들을 되짚어보면, 인명피해를 가장 최소화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정립이 체계적이지 않았던 점이다. 지난 세월호 사건만 봐도 재난사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문제보다 각 부처 간 유기적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저마다 경쟁적 공적 쌓기 등으로 인해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졌다. 사고 브리핑 장소도 통일되지 않았을 뿐더러 발표하는 내용도 각자 차이가 있어 피해자 가족을 포함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만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휘 사령탑으로서 사고 수습을 체계적으로 처리했다면 피해 규모는 더욱 축소됐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연재난과 인적재난의 경우 소방방재청에서 사고 대처를 주관하며, 사회적 재난(에너지·통신·교통·금융·의료·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와 전염병 확산 등으로 인한 피해)은 심각상태 이전일 경우에는 주관부처에서 직접 대응하고, 안전행정부는 통합·지원의 역할을 담당한다. 심각상태 이후는 안전행정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재난 대응을 직접 총괄하며, 안전행정부장관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중앙본부장, 제2차관을 차장으로, 안전관리본부장을 총괄조정관으로 한다.
하지만 안전행정부 장관직은 정해진 임기가 끝나면 다른 적임자로 교체돼 재난 발생 후 재난대책본부가 구성되면 사고대처에 대한 파악·수습 속도가 느려지고 통일된 방안 없이 혼란스러워하는 현상이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재난 유형도 여러 가지가 있어 책임자가 수시로 바뀐다면 유형별 대처 매뉴얼 숙지도 원활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 사고를 당했을 때 수습하는 재난사고 대처 매뉴얼은 일반적인 매뉴얼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난약자는 크게 고령자, 장애인, 아동 및 외국인 등으로 나뉘며, 특히 장애인복지법 등에서 재난약자를 위한 관련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첫 번째, 장애인 복지법 제24조(안전대책 강구)에서 일반적인 안전사고 및 비상재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두 번째, 시설의 피난용 통로 확보 및 점자, 음성, 문자 안내판 설치, 긴급 통보체계 마련 등의 안전시설 등이 언급돼있다. 하지만 이런 재난약자에 대한 간단한 명시로는 실제 재난사고 상황이 닥칠 때 재난약자들의 사고 수습이 얼마나 수월할지 의문이 든다.
이와 관련해 재난사고 시 체계적으로 작성된 매뉴얼을 알아보기 위해 소방방재청에 문의했으나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재난이 일어났을 때 재난의 종류에 따라 매뉴얼을 실행하는 부처가 모두 다르고, 이를 총괄하는 부처는 안전행정부 안전정책과이기 때문에 자세한 대답을 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안전행정부 안전정책과에 통화를 시도, 재난사고에 대처하는 재난대응 매뉴얼과 특히 장애인 특성에 맞춘 매뉴얼이 구비돼있는지 묻자 “총괄하는 곳은 안전행정부이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시 그에 따른 매뉴얼은 각자 다르고 시행하는 곳도 달라 각각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재난 매뉴얼이 그 사고 유형을 담당하는 부처로 전달돼 개별사항을 다 언급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며 소방방재청과 유사한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각 사고의 경우 개별 부처마다 매뉴얼이 전달되고 이미 명시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취합해 정리해 놓은 매뉴얼을 중앙본부인 안전행정부를 통해 쉽게 열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방안은 각 부처에 다시 문의해야 한다는 답변은 모호하게 들릴 뿐이었다. 결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안전행정부 관할이지만 재난 사고 유형별마다 대처방안이 달라 그에 해당하는 기관만 대처하고, 이런 방식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 중 갑자기 사고가 발생하고 그 피해규모가 커졌을 때 각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점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욕구 반영한 해외 매뉴얼 본보기로 삼아야
현재 주요 국가별 재난약자 위기상황 대응현황으로, 우리나라를 제외한 해외 곳곳에서는 화재 등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다양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1)은 각 부서의 특별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대피를 위해 일반지침,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이동장애인 대상 지침을 채택하고 있다.
▲ <표 1> UCSF 장애인 응급 및 대피 지침 안내 1) |
▲ UCSF access web 홈페이지 |
이렇게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장애 유형별로 욕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매뉴얼을 구성해, 재난응급상황 시 장애인들의 정서적 불안감을 줄이면서 안전한 구출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영국의 한 스포츠 협회의 ‘장애인 접근성 디자인가이드(Access for Disabled People)’2)에서 발췌한 지문에도 장애인에 대한 대피계획과 시설설비 고려사항 등이 언급돼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개별 긴급 대피 계획(Personal Emergency Evacuation Plan : PEEP)’에 따라 건물을 이용하는 모든 장애인 사용자를 위해서 작성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계획은 개인이 사용하는 모든 건물을 포함해야 하고, 안전하게 대피하기 위해 개인을 지원하는 추가적인 고려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엘리베이터는 모든 항목에 있어 관련된 영국표준 요구사항에 적합하기 전까지 사용해서는 안 된다(예를 들어, 자동으로 전환되는 분리된 대체 전원공급 장치 등이 있을 수 있다). 단, 조정 모드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관계는 제외된다. 엘리베이터는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휠체어 사용자와 도우미의 조정 하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별도의 위기 평가는 머지사이드 주(Merseyside) 소방당국이 승인한 대책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엘리베이터는 이 표준에 맞도록 설치돼야 한다.
이처럼 장애인 접근성 디자인가이드에는 두 조항을 포함한 전반적인 조항이 장애인을 고려한 설비규칙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 Access for Disabled People(장애인 접근성 디자인가이드)
|
우리나라는 올해 2월 이후부터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 ‛장애인 재난위기관리 매뉴얼(지체장애인용)’을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했다. 매뉴얼에는 지체장애 유형 소개 및 인적, 자연, 사회적 재난 중 27개 재난유형에 따른 대처법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또한, 어떻게 준비하는가(준비단계, 자가능력평가, 재난관리안내도), 무엇을 준비하는가(구급준비가방 체크리스트, 행동지침체크리스트) 등을 명시했다.
본지는 이 매뉴얼이 실제로 지제창애인들에게 얼마나 유익하게 활용되는지 지체장애인협회(이하 협회)에 문의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림 중 휠체어 그림이 통일되지 않아 신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장애유형 분류에도 약간 모호한 점이 있다”며, “재난 시 대응 방법에도 장애인이 스스로 응급대피시설을 이용해 현장을 탈출하기보다 활동보조인이나 소방공무원을 ‘기다릴 것’이라는 언급이 있어 사실상 비장애인을 위한 매뉴얼과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매뉴얼의 취약점에 대해 설명했다. 또 “장애 정도에 따라 활동보조인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활동보조인이 없는 경우 이를 사용하기에는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면서, “이런 매뉴얼 개발도 좋은 부분이지만 이보다 이용 시설에서 지체장애인들이 이동하기 편한 장치가 구비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협회의 주장대로 정부 및 각 지자체는 재난응급사고 시 가장 효율성 높은 재난응급안전장치 구비가 하루 빨리 설치될 수 있도록 지침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장애유형별 특징 반영한 매뉴얼로 수시 교육 이뤄져야…재난발생 대비한 이동 편의시설 마련 시급
본지는 재난사고 같은 응급상황 시에 참조할 수 있는 매뉴얼 외에 장애인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지, 동원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최규출 교수를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최규출 교수는 “보통 응급사고는 이에 대비할 시설은 있지만 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시설은 미비한 상태”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라면 경사로 정도가 있는데, 이는 건물을 빙 둘러 설치해야 해서 비용이 비싸다. 응급사고 시 사다리나 자루를 이용해 구출하는데 장애인들에게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재난사고 시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최 교수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수직 이동이 힘들어 수평으로 이동해 사고지점을 나올 시설이 필요하다. 아니면 특수한 소재를 사용해 화재로 발생한 연기를 막는 대피공간으로 피해, 구출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 대피시설 마련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건물 관리자들은 법적 요구만 만족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위해 법이 정해주는 선에서만 대피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요양원 같은 곳의 관리자는 안전관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지정해야 한다. 하지만 비용 문제를 제기한다면 전문 업체를 고용해 반은 국가가 부담하는 시스템은 어떨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 최규출 동원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
최 교수는 관리문제뿐만 아니라 재난사고 대응에 관련한 교육 방법도 언급하며 “건물 관리자, 관계 실무원들을 꾸준히 교육하고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가 날마다 연습하면서 그에 맞는 감각과 행동을 몸이 기억하고 있듯이 꾸준한 교육이 이뤄진다면 교육을 받는 장애인, 이에 대처하는 시설 관리자들도 신속히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어떤 자료를 보니 사람이 패닉 상태에 이르면 순간 아이큐가 40가까이 떨어진다고 한다”며, “이럴 때는 이성적인 대처가 불가해 평소처럼 판단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대비교육을 수시로 시행해 몸의 감각이 기억하도록 하면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갑작스러운 홍수발생 시에 장애인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질문하자 “폭우 속에서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비장애인도 움직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체장애인의 경우는 실제로 이 상황에서 스스로 나갈 수 있기가 쉽지 않다”며, “자연재해 같은 경우는 한번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이어서 예방이 더욱 필요하고 경보를 주었을 때 미리 신속히 대피하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재난사고 매뉴얼 대한 질문에 최 교수는 “매뉴얼은 분류별로 잘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문제”라면서, “정부나 지자체의 경우 총 책임 관리자가 1~2년 단위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뉴얼을 오래 숙지한 사람과 비교해 지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랜 시간동안 재난대응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관리자가 된다면 재난사고 시 사태 파악이 빠른데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재난 규모피해가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인 안전 매뉴얼은 있으나 장애포괄적인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아 장애유형별로 구조방법, 피난방법 등이 고려된 지원체계 및 대응 매뉴얼이 개발돼야 한다. 또한, 재난대책본부장으로는 행정 실무자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활동했던 전문가를 관리자로 임명하면,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해 빠르고 체계적인 대처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소방 실무자들과 장애인들에게 교육·홍보 방안을 마련해 매뉴얼의 활용도를 높인다면 재난으로부터 인명 및 재산피해를 줄이는 데 매뉴얼의 최종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난사고 시 극단적인 상황에서 직접적인 원인으로 관리자, 시설 운영자들의 부적절한 상황 대처가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난발생 시 필수적으로 관계자의 초기대응능력과 함께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이동 편의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