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사회 속 방치되는 장애인 피해자들
지적장애인 집단 폭행사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소송 제기…“개인의 피해 아닌 안전장치 마련 못한 사회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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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한 인터넷뉴스 매체에 울산에 거주하는 20대 초반의 지적장애인 여성이 10대들에게 7일간 집단폭행 및 감금을 당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피해자의 오빠가 인터넷에 동생의 피해사실 및 사진을 올리면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언론보도 요청을 호소했던 것이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지적장애인의 인권침해피해 사실을 확인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는 5월 20일 피해자가 입원한 울산 모 병원을 찾아갔다. 방문목적은 피해자 A씨의 사례를 처음부터 개입 중에 있는 울산장애인인권복지협회 관계자, 변호사와 함께 A씨에게 상담 및 법률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상담자가 만나본 A씨는 본인의 의사표현을 명확히 할 수 있었으며, 당시 겪었던 폭행 및 감금 피해사실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A씨의 말에 의하면 올해 2월 중순경 A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가해자 중 L씨와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L씨는 여자친구가 있었으나, A씨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사귀자고 말했다. L씨 여자친구의 존재를 몰랐던 A씨는 L씨와 교제하게 되었고, L씨의 여자친구인 J씨가 ‘내 남자친구에게 꼬리친다’는 이유로 A씨의 집단폭행 및 감금을 주동하게 되었다.
매체에 올라온 기사와 다르게 A씨가 가해자들에게 폭행을 당한 것은 한 번이 아니었다. 이번 일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두 차례 집단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J씨의 주동 하에 L씨를 비롯한 다른 가해자들이 A씨를 두 차례 폭행했으며, 폭행 직후 A씨에게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번호를 바꾸고 잠수타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집단폭행에 이어 협박까지 받은 A씨는 아무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나, 가해자들의 폭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실 A씨는 새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아 이전에도 몇 번 가출했던 경험이 있었다. A씨와 친해지면서 가정환경을 알게 된 가해자들은 A씨가 폭행을 당했어도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또 다시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유추되고 있다.
▲ 병원에 입원해 회복 중인 피해자 A씨 |
지난 4월 1일~7일, J씨 외 가해자 5명은 A씨를 불러내서 야산에서 무차별 집단폭행을 가했다. 당시를 기억하던 A씨는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면서 맞았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폭행했다. 내 얼굴에 침 뱉고 발로 차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특히 C씨가 각목으로 때려서 방어하다가 팔이 부러졌다”고 말했다.
이후, 가해자들은 몇 시간의 강도 높은 폭행에 못 이겨 실신한 A씨를 아파트 옥상에 유기했다. A씨의 말에 의하면 “야산에서 맞다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비가 내리는 옥상에 나를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도망가지 못 하게 감시하였다”고 한다. 장시간의 폭행으로 인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A씨가 자칫하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었음에도, 가해자들은 들킬 것을 염려해 옥상에 그대로 방치했다고 한다.
A씨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 한 채 2~3일 정도 옥상에서 방치되었다가, 가해자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남성고시텔 옥상에 감금됐다. 감금 후, 가해자들은 담뱃불과 뜨겁게 녹인 플라스틱으로 A씨의 팔, 무릎, 다리, 손등 등을 6~7차례 지졌으며, 소화기, 유리컵 등으로 A씨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4월 8일 A씨는 가해자들이 없는 사이에 문턱을 넘어서 복도로 탈출했고, 같은 건물에 거주하던 사람이 A씨를 발견하여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발견 당시, A씨는 가혹한 폭행피해로 인해 체내에 피가 굉장히 많이 고여서 신부전증 증상까지 나타난 상황이었다. 대학병원에서 한 차례 고비는 넘겼으나, 그 후에도 A씨의 폐에 물이 차오르고 체온과 혈압이 위험수준까지 올라가는 등 힘든 순간들을 견뎌야 했다.
이와 같은 폭행사실이 알려진 후, 5명의 가해자 중 성인이었던 2명의 가해자는 구속되었다. 반면, 3명의 가해자는 미성년자인 관계로 부산 소년원에 송치됐으나, 아직 처벌여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A씨는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가해자 친척 중 ‘삼촌’이라고 칭하는 사람에게 “합의하자. 내가 아는 경찰 인맥들이 많기 때문에 법적인 처벌하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한다.
또한 A씨의 초기 소송절차도 문제점이 많았다. 7일간의 집단폭행으로 인하여 생명이 위험해질 단계까지 갔음에도, A씨는 3주 진단만 받았던 것이다. 또한, 담당변호사가 이전 두 차례 폭행 사실을 추가로 고소하려 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추가 고소가 되지 않는다는 사유로 A씨는 소송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울산장애인인권복지협회 관계자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지원 대책이 수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장애인은 계속해서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특히 피해자인 여성장애인이 갈 수 있는 체험홈이나 쉼터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계속해서 방치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관계자의 말대로 장애인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전적 제도도, 사후적 지원도 전혀 수립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범죄에 노출되어 피해사실조차 알리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A씨처럼 가정 내 불화로 인해 가족의 지지나 보호조차 받기 어려운 장애인은 피해를 겪었어도 도와줄 수 있는 지지체계가 없기 때문에 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A씨의 경우 본인의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었지만, 피해사실이나 본인의 의사표현도 말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가정 내 지지체계 조차 없을 경우 아무리 심각한 인권침해사실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인권센터는 A씨의 사례에 대해 공익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며, A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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