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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대학원생 시각장애 청년의 유쾌한 나날

장애 청년의 목소리

본문

 
오늘 하루의 시작이 쉽지 않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지 26년. 네 명과 공간을 공유하는 본가에서 일상을 보낸다는 것은, 내가 둔 물건의 위치가 얼마든지, 불시에 바뀔 수 있단 것이다. 아침에 누군가 샴푸와 바디워시의 위치를 바꾸어 둔 모양이다.
 
나갈 준비를 하다가 기초화장품에 손을 잘못 대서 한 번에 울컥 화장품을 쏟아버리기도 한다. 좀 아깝긴 하지만 어떤가. 얼굴이 허옇게 되는 것보단 나으니 부모님의 구박을 피해 조용히 화장실로 씻어내러 가는데, 앗 발에 밟히는 리모콘. 너무 아프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길을 갈 때도 이렇게 지뢰밭이 깔린 것처럼 아무거나 밟고 넘어지는 일이 많았다. 덕분에 내 무릎부터 정강이까지 얼룩진 멍은 아물 날이 없다.
 
들킨 사람이 아빠라서 다행이다. 아빠는 야구를 보던 중이었고, 나도 자연스레 야구에 집중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운동을 못 하는 게 싫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야구공을 던지는 폼부터 하나하나 알려줬다. 야구장 마운드 위에서 경기를 보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사회인 야구단에 들어가기까지 한 사람이 바로 우리 아빠다.
 
슬슬 나가기 위해 나비콜을 불렀다. 나비콜은 시각장애인이 주로 사용하는 텍시 콜센터이다. 다른 것에 비해 그나마 빨리 잡힌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1호선이 언제 출발하는지도 알아놓는다. 수틀리면 지하철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자기 전에 오늘 갈 역의 전화번호와 동선을 다 알아두긴 했다. 역사 전화번호가 왜 필요한가 묻는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다. 모르는 역이더라도 플랫폼 번호와 열차의 출발시간만 알려주면, 도착역의 역사 직원이 대기했다가 출구나 환승 플랫폼까지 나를 보조하여 동행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희망 삼아 세 번째 다시 부르기 버튼을 기도하며 눌렀을 때, 다행히 택시가 잡혔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기사님과 통화하며 밖으로 나갔고, 택시에 탑승하여 오늘의 미팅 장소로 향한다.
 
보통 떨려야 하는데, 눈에 뵈는 게 없어서일지. 나는 그다지 떠는 일이 없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인지 보이지 않기에 그저 앞만 보고 상황을 즐기려 한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내말이 진심으로 가 닿는 것이다. 이 강단에 서 있는 나의 발화와 걸음 한 발자국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날 장애계에서의 운동, 큰 의미에서라면 정치. 정승원의 움직임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까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장애인들이 입시에서, 그리고 대학 사회에서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실을 말하고, 또 말하면서 스스로 앵무새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 목에서 공기를 진동시켜 다시 내 귀로 돌아오고 마는 메아리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비대면 시기, 서로의 체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멀어졌던 그때에도 장대넷이라는 단체는 작은 불편함이 모여 열기를 띠고 굴러갔다. 줌 링크 생성 버튼을 뜨겁게 달구고, 노트북의 팬 돌아가는 소리로 현장을 달구며 하나 된 목소리를 이루었다. 이내 그것들은 글로, 발화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법이 바뀌고,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변화들이 느껴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누리지 못했던 수능시험장에서의 맞춤형 편의제공이나, 장애인 전형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추가합격 제도가 도입된 덕분에 대학입시 경험을 긍정적으로 가져가게 되었다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가 합격한 마냥 진심으로 기뻤다. 이걸 위해서, 나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을 견디고 견뎌내었으며 지금도 고민하고 있었구나.
 
발제를 진행하며 이어폰을 꼈다. 어, 왜 발제하는 중에 이어폰을 끼지? 의아해하는 시선들에 “시각장애인이라서 음성을 듣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대본을 보듯” 하고 말해주며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했다. 오늘의 발제 끝. 오늘따라 내 발화가 만족스러웠다. 이제 발제를 참관하고 응원하러 와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유유히 강단을 빠져나간다.
 
나에겐 크게 두 부류의 친구들이 있다. 대학교 시절, 학생회나 중앙대 학생자치를 함께 경험한 동지들, 그리고 장대넷에서 활동하며 친해진 직장 동료이자 내가 의지하는 동생들. 지금 내가 어깨를 잡고 함께 걷는 이 친구도 시각장애인이다. 우리는 시각장애인끼리 롯데월드도 놀러 간다. 그러다가 계단 수를 잘못 세서 넘어질 뻔하면 나몰라라 빠르게 제 몸뚱이부터 챙겨 살길을 궁리하는 우정을 선보인다. 괜히 어설프게 남 살리다가 크게 다치느니, 서로의 균형감각은 서로가 잘 알기도 하겠거니, 우리 딴에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내린 것이다.
 
장대넷이 비영리단체로서 어떻게 운영되면 좋을지 논의하며 앞으로 이뤄질 여러 간담회를 준비하는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이런 장애인의 솔직한 일상을 영상으로 유쾌하게 담아내기로 했다. 시각장애인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는 우리 단체, 차별이 없는 단체라고 하기에 딱 이지 않은가. 그런 와중, 장대넷이 십 년 후에도 상근활동가와 지속적인 후원으로 비롯하여 정말 자생사업이 가능한 단체로 우뚝 서기 위해 늘 궁리를 이어나간다. 전화기에 불이 붙을 정도로 내년도의 사업을 잔뜩 구상해두었다. 봉사단체, 국제사업, 조직개편 등등…. 어떻게 이뤄나가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당장 일거리가 산더미라서 흘리는 한탄인지 모를, 그러나 묘한 설렘을 품은 듯 여러 음성이 맴돌다 간다.
 
대학 사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의 공통분모 중, 함께 선거과정을 경험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장애인으로서 장애 분야 이외에도 학우들을 위해 학사운영방식의 변화 등, 다양한 개혁을 주장하며 입후보했던 시절이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내게는 정말, 전부인 것처럼 다가왔었다. 나름의 정의감을 품고서 내가 옳다 생각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주장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갈등을 겪었다. 내게 뒤돌아서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 나는 약한 모습도 공유하며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느끼는 친구들을 얻었다. 선거의 결과로 잃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을 얻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바위산을 오르며 죽을뻔한 고비도 넘기고, 조금만 왼쪽으로 갔더라면 낭떠러지로 굴러 죽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야 마는, 내 졸업 현수막에 ‘너 이거 안 보이지?’를 써놓고 낄낄거릴 수 있는 내 친구들, 정말이지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잘된 친구들이다. 말만은 저렇게 할지라도, 잘 익힌 고기를 맛있게 양껏 집어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쌈을 싸서 직접 입에 물려주는 친구들이다.
 
‘난 연애할 때 이런 거 못 해주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장애청년의 연애 관련하여 연구하기도 했나 보다. 연애에서 챙겨주는 게 모든 전제가 되진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마음이 분명하게 움츠러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받고 사랑했던 과거에, 이런 시력이라도 가득 담아내고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나의 방식으로 해주고자 내가 품어온 열정을 기억한다.
 
고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늘 고깃집에서의 회식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뭐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불판 쪽을 빤히 보지만, 고기 위치 파악은… 전혀 불가. 허허 웃으며 “제가 참, 구울 순 있는데 이걸 구웠다간 이 집까지 다 태워버릴 수 있어서” 이런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 마음의 온도로 같이 굽겠다고 한다. 내 친구는 ‘또 저 입만 살아서’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겠지만, 그걸 포착해 버리면 내 복지카드를 사수하기 어려워질 테니 입을 다물어야겠다.
 
그렇게 한참 회식을 즐기며 생각한다. ‘졸업논문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팀원들에게 도움 되지 못할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통계를 돌리고 싶어도 내게 주어진 한계 때문에 좌절할 때도 많다. 남들보다 더욱 부지런해야 하는데, 내게 맡겨진 조직과 요구되는 역량, 이 모든 것을 촉박하게 하는 정해진 타임라인이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처리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시간에 맞춰 계획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들로 우울해질 때가 많다. 저물어 가는 하루를 뒤로 하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늘 죄지으며 살고 있겠거니 성찰한다. 그렇게 오늘 내가 미워했던 사람과 상황들을 흘려보낸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헬스장에서 운동하곤 한다. 복잡한 생각들을 지워내면서 무게에 또다시 무게를 더한다. 눈이 없지, 눈치가 없냐며 우스갯소리로 사는 삶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앞서 내다보려 하니 늘 머리가 아프다. 스트레스는 만성적으로 쌓여 있을 테다. 내 몸이 가진 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매우 행복하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화면해설로 흘러나오는 드라마를 듣는 동시에 운동하는 것은, 한 번에 두 가지 취미를 즐기는 나의 방식이다.
 
밤새 논문과 과제를 정리하고, 드디어 침대에 누울 준비를 한다. 참 고단하지만, 달려온 하루 끝에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기왕 될 거면, 유쾌한 장애인이 되어야지’ 장애인은 대단할 필요도 없고, 불쌍할 필요도 없다. 난 내가 장애인이란 게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자연스러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더 잘 볼 수도 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혁명도 유쾌하게.”
 
나는 유쾌한 혁명을 준비 중인 시각장애 청년으로서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승원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 이사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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