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사건 피해자 정수 씨의 되찾은 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중국집 사건 피해자 정수 씨의 되찾은 설

학대 피해 장애인, 그 후

본문

  16031_15755_582.JPG  
 

“장애인이 중국집에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하고 있다”는 제보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40대 후반의 지적장애인에게 한줄기 빛이 됐다. 주변의 관심이 없었다면 정수(가명) 씨는 24시간 운영되는 중국집에서 하루에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는 학대의 쳇바퀴를 하염없이 돌고 있었을지 모른다. 최초 신고자는 서울시 장애인 인권센터에 제보했고, 센터는 즉시 방문한 현장에서 노동을 착취당한 지적장애인 정수 씨를 발견했다.

 

 

 

“이제 일을 많이 하지 않아서 좋아!”

정수 씨는 2011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약 5년 동안 해당 중국집에서 밤낮없이 주방 보조일을 했다. 명목상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매달 80만 원을 지급받기로 했으나, 그 액수는 같은 조건으로 근무하는 비장애인 직원의 봉급 280만 원과 견주어 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급여는 다달이 정수 씨가 아닌 그를 해당 중국집에 취업 시킨 양어머니의 통장으로 입금돼 사사로이 쓰였다. 그렇게 횡령된 액수가 5년 여 간 약 6,000만 원에 이르렀다. 정수 씨는 중국집 홀 안의 식탁과 식탁 사이에 방석을 깔고 궁색한 잠자리를 마련했으며 야간에 밀려드는 주문 탓에 그조차 늘 쪽잠에 불과했다.

정수 씨와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2월 17일로 설 다음날이었다. 금년 설을 어떻게 보냈는지 내심 기대하며 묻자 그는 떡국을 먹고 위기거주홈 식구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했다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바로 전날보다 길게 남은 잔상은 혹독했던 과거였다. “그 때(중국집에서)는 설날, 추석, 어린이날 할 것 없이 매일 일했어. 어쩌다 쉬는 날 목욕탕에 앉아 있는데도 급하다고 호출이 왔어. 그런데 이제 일을 많이 하지 않아서 좋아.”

정수 씨 본인의 진술, 최초 제보를 받아 나선 서울시인권센터, 사건을 접수해 수사한 은평경찰서, 그리고 1년 여간 그의 자립을 도왔던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와 위기거주홈의 사건 자료를 종합해보자면 현재 확인된 정수 씨의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은 없다. 대신 양어머니는 1988년부터 정수 씨가 해당 중국집으로 취업한 2011년까지 그를 보살펴 왔다고 진술했다. 고아로 추정되나 당사자의 진술이 명확치 않기 때문에 올해 마흔 아홉의 해를 맞은 정수 씨의 지난 50년의 세월은 물음표만 가득하다.

실제 정수 씨와 5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때로 혼돈을 야기했다. 그 시간을 빌어 혹이라도 가족을 찾을 단서나, 해당 중국집 이전에 다른 곳에서 유사한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외부로 알려진 사실 외에 다른 학대 정황은 없었는지 찾고자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고리를 꿰맞추었나 싶으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원점으로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다소 엉킨 진술에도 정수 씨가 제법 또렷하게 되풀이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었는데 양팔을 활짝 펼치는 식으로 엄청나게 많은 그릇을 늘 닦아야 했다는 토로, 해당 부위를 손으로 짚으며 주방장으로부터 국자로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허리를 수시로 맞았다는 하소연, 돌아가신 아버지가 술을 줄였으면 좋았을 거라는 탄식 등이었다. 진술보다 더 또렷한 것은 그가 머리카락을 헤집어 보여주던 정수리의 상처 흔적이었다.

  16031_15756_582.JPG  
 

해당 중국집 주인은 장애인복지법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피해자의 양어머니는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두 가해자의 판결에는 여러 양형 이유가 참작됐는데 특히 양어머니는 그간 횡령한 약 6,000만 원에서 피해자 정수 씨의 피해보전 명목으로 5,000만 원을 공탁해 감형을 받았다.

 

학대 피해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되다

정수 씨는 2016년 9월 가해자에게 분리돼 단기보호 위기거주홈에서 약 5개월을 보낸 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위기거주홈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수 씨가 위기거주홈에 입소한 날짜는 2017년 1월이었는데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에게는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무엇보다 그가 현재 다른 장애인을 돕는 활동보조인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눈에 띈다.

1년 간 정수 씨의 자립을 도운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의 황상연 실장은 정수 씨가 활동보조인이 된 동기가 그의 천성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정수 씨가 굉장히 마음이 선하고 착한 사람이다. 뇌병변장애가 있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주원(가명)이가 위기거주홈에 입소하며 정수 씨와 한 방을 쓰게 됐는데 그날부터 정수 씨가 발 벗고 나서서 주원이의 배변보조나 식사, 외출 등을 도왔다. 정수 씨가 이미 주원이의 활동을 보조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활동보조인을 찾을 이유가 없어 정수 씨가 활동보조교육을 받도록 적극 권유했다.”

고등학생인 주원이 또한 정수 씨의 활동보조를 반색한다. 아픈 가족사로 특히 아버지 또래의 중년 남성을 심하게 경계한다는 주원이에게 속정 깊고, 웃음 많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정수 씨는 예외적 존재가 됐다. 주원 역시 정수 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건망증이 심한 정수 씨에게 길을 일러주고, 정수 씨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 대신 변호를 해주는 사람은 주원이다. 주원이는 현재 보치아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맹연습 중이며, 조력자가 꼭 필요한 그 경기에 정수 씨도 파트너로서 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수 씨의 일이 주원이의 활동보조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평일 9시부터 4시까지 서울에 소재한 보호 작업장에서 정수기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하고 있다. 넉넉한 급여를 기대할 수 없음에도 위기거주홈 직원들은 처음부터 그의 구직활동에 주력했고, 정수 씨는 세 번의 면접 끝에 현재의 직장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정수 씨가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사실 직장을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렇다고 주원이의 활동보조만 할 경우 만나는 사람이나 나누는 대화가 한정될 것이기에 수입을 떠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출근을 시작하고 꼬박 석 달은 정수 씨나 위기거주홈 직원들에게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이른 치매를 의심했을 정도로 정수 씨가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까닭에 위기거주홈 간사들은 교대로 그의 출퇴근길을 동행하고 지켜봐야 했다. 정수 씨는 올해 안으로 문맹 탈출은 물론 반복 훈련을 통해 인지력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더불어 위기거주홈에서 고민하는 부분은 정수 씨의 안전한 경제적 자립이다. 황상연 실장은 정수 씨가 사람이 좋아 그 선의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수 씨가 심심치 않게 누군가에게 돈을 떼이고, 심지어 노숙인에게 돈을 찾아다 선뜻 건넨 일도 있었다. 200만 원을 사기 당할 위기에 놓인 적도 있어서 정수 씨와의 합의 하에 재산을 신탁하도록 계약서를 썼고, 체크카드 출금 한도를 3만 원으로 지정해 둔 상태다.”

 

조금은 서툴고 더딘 정수 씨의 여정을 응원하며

  16031_15757_583.JPG  
 

중국집에서 수년 간 노동을 착취당한 정수 씨는 1년간의 치유와 자립 훈련 끝에 위기거주홈의 기치대로 현재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국민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돌려받은 보상금으로 두 달 여전 집 장만을 했다. 위기거주홈에서 10~15분 거리에 위치한 원룸이지만 때때로 길을 잃어 아직도 주의가 필요하다. 가장 오래 위기거주홈에서 지냈고, 그 기간에 비례해 다른 장애인보다 서너 배의 노력과 끈기가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에게 요구됐음에도 황상연 실장은 되레 정수 씨를 위기거주홈 은인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늘 주변인을 챙기는 정수 씨의 성정 때문이다.

정수 씨는 위기거주홈 식구들은 물론 보호 작업장 동료들에게 잡채 등의 음식을 만들어 베푸는 등 마음 씀씀이가 남달라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스스로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의 자립에도 많은 이점이 된다. 정수 씨가 인터뷰 중에 느닷없이 짬뽕에 넣는 식재료 순서를 나열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는 왜소한 체격에 비해 유달리 굵은 손마디에 팔목은 다부졌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지속된 고된 노동의 방증이기도 했다. 정수 씨에게 앞으로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조금 수줍어하며 여자 친구도 생기고 장가가기를 소망한다고 답했다. 또 바다도 보고 싶고 수영도, 다이빙도 하고 싶다고 천진한 소년처럼 덧붙였다. 길을 찾는 법, 경제적으로 오롯이 독립하는 법, 좋아하는 이성과 가까워지는 법, 보치아 선수의 완벽한 파트너가 되는 법, 누구나 좋아하는 잡채를 만드는 법 등등. 정수 씨는 알고 싶은 것이 많다. 남보다 조금 늦게 사회라는 궤도에 올랐지만 정수 씨는 그렇게 자신만의 여정을 찾아가고 있다. 조금은 서툴고 더딜지라도 그의 완주를 힘차게 응원해줄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은정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