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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힐에서 살고 일하며 배운 것, 존중하는 마음 가지기

캠프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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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는 캠프힐의 직업 생활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캠프힐 가정에서 빌리저와 코워커가 동등한 구성원이 되어 가정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킴버튼 캠프힐의 시카모어 하우스를 소개하며 캠프힐의 가정생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3명의 빌리저와 4명의 코워커가 살고 있다. 코워커 가운데 두 명은 장기 코워커(Longterm Coworker, 3년 이상 이곳에 살 계획으로 커뮤니티에 필요한 주요 역할과 책임을 맡을 것을 지원한 활동가)이고 나머지 두 명은 단기 코워커 (Shortterm Coworker, 6개월~1년간 캠프힐에 살며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자원활동가)이다. 이곳에서는 장기 코워커가 하우스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대부분 하고 있고 이들을 하우스 홀더(House holder)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하우스 페어런츠(House parents)라는 말을 더 흔하게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하우스 홀더나 하우스 코디네이터라는 말을 좀 더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단기 코워커는 장기 코워커를 도와 하우스에 필요한 일을 함께한다. 
 
내가 처음 캠프힐에 왔을 때 사람들이 나의 이름 다음으로 많이 물어본 것이 어느 집에 사는지였다. 그만큼 내가 속한 가정은 캠프힐에서 나의 소속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다. 나 역시도 새로 온 코워커를 만나면 이름과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 어떤 워크숍에서 일하는지 자연스레 물어보게 됐다. 그 세 가지를 들으면 아~ 하고 그가 같이 살고 일하게 될 사람들과 매치가 되면서 그의 캠프힐 생활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 부활절을 기념하며 다른 하우스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브런치를 먹는 모습
 
물론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손발을 맞춰 같이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캠프힐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가정마다 조금씩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지내면서 가정의 상황과는 다른 필요를 느끼기도 하므로 코워커들이 중간에 집을 바꾸는 일도 종종 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일을 추진할 때 흔히들 ‘우리는 한배를 탔다’라는 말을 하는데, 캠프힐의 가정생활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하우스 홀더가 선장으로서 안전한 항해를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배를 운전하며 우리를 이끌고 있고, 단기 코워커와 빌리저들은 그들을 믿고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과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함께 항해한다.
 
하우스 홀더는 가정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을 아우르며 빌리저들의 건강, 직업생활, 취미활동, 가족들과의 소통 등 그들의 삶을 지원하고 동행하는 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단기 코워커, 빌리저 등 가정의 구성원들과 함께한다.
 
아침 식사 준비 당번인 날은 아침 7시에 부엌으로 간다. 전날 물에 불려둔 오트를 끓이기 위해 가스렌지에 불을 올리고 같이 마실 허브차를 만들기 위한 물을 끓인다. 그러면서 샤워를 하러 나오는 J를 만나 굿모닝 인사를 나눈다. 아침 복용약을 준비해서 각자 앉는 자리에 두고 얼추 완성된 오트밀을 그릇에 옮겨 요거트 한 숟가락을 올리고 꿀 한 티스푼씩을 올려 식탁으로 옮긴다. 스스로 약과 오트밀을 준비하는 빌리저도 있다.
 
7시 반이 되면 아침 식사를 하러 식탁에 다 같이 모인다. 어젯밤 잠은 잘 잤는지, 오늘 각자 일정은 무엇인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지, 혹은 서로 알아야 하는 점이 있는지 대화를 나누며 교제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아침을 함께 열어간다. 식사 후에는 코워커와 빌리저가 역할을 나누어 같이 정리를 한다. 식기 헹구기, 식기세척기에 넣기, 식탁 닦고 남은 음식 정리하기, 바닥 쓸기 등 7명이 분주하게 같이 정리하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정리를 마칠 수 있다.
 
같이 일함으로써 정리시간을 줄이는 것도 협력의 좋은 점 중에 하나이지만, 정리하는 시간 동안 각자 맡은 일이 있어 가정생활 안에서 각자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른 예로, 신선한 우유를 얻을 수 있게 우유 캔을 목장에 갖다주는 빌리저, 식사 준비 돕는 걸 좋아하는 빌리저, 재활용품을 갖다 버리는 빌리저 등 가정의 한 일원으로 서 각자 맡은 역할을 함으써 가정의 한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낄 수 있고 또 그 일을 함으로써 서로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Pennstate great valley에서 열린 Art 전시회에 참석한 모습
 
그리고 점심시간, 저녁시간이 되면 오전 오후 일과를 마치고 다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렇게 우리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마주 보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안위를 살피고 필요한 일을 함께하며 각자 맡은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
 
가정마다 생활 모습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말에는 근교로 나들이를 가거나 근처에 있는 지역행사에 다녀오기도 하고, 서로의 생일날에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파티를 준비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다 같이 여행을 갔다 오는 집도 있다. 또,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절기에 맞는 이벤트를 즐기기도 한다.
 
나는 특히 가정생활에서 성인 빌리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태도에 대해 다른 코워커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영국 마운트 캠프힐에 도착했을 때 바로 다음 날 기존에 있던 코워커에게 처음으로 배운 것은 빌리저들의 방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려 그로부터 들어오라는 말을 들은 뒤에 방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작은 행동이지만 그들의 개별 공간을 존중하는 일이 라는 생각이 들어 내심 적잖이 놀랐었고 그 뒤로는 항상 그들의 방문을 노크하고 “Can I come in?” 하고 허락을 구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그전에는 이런 부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누가 내 방에 기척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아무리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이더라도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개별공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공간을 넘어 내가 만나고 있는 빌리저, 코워커에 대한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도 연결 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집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침기상이나, 약 지원, 빨래 가져다주기, 샤워 후 옷 갈아입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가기 등 빌리저들의 방을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데, 우리의 일이 사소한 부분까지 돕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해 빌리저 Gaby와 별을 접고 있다.
 
또 한 번은 킴버튼에 옮겨온 후 토요일 오전 방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그 방에 사는 빌리저는 혼자 청소기도 돌리고 옷 정리도 할 수 있지만 정리정돈하는 걸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걸레질도 빠르게 마치는 편이었다. 그래서 코워커들이 청소 시간에 그녀 옆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해 줘야 했다. 이제 캠프힐에 막 도착해서 적응 중인 나에게 하우스 홀더가 어떻게 그녀를 도와야 하는지 알려주겠다고 나한테 같이 그녀의 방에 가자고 했다. 그녀의 옆에서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짚어주며 걸레질을 하고 어질러진 책상과 서랍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게 네 방이라고 생각해보라. 결코, 이렇게 먼지가 쌓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겠냐”며 “청소를 좋아하지 않기에 매번 옆에서 상기시켜줘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이 방은 먼지로 가득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녀의 건강에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계속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청소 때마다 그가 한 말이 생각난다. 대충 청소기 돌리고 끝낼 수도 있지만, 그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우리가 지내는 이 공간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능한 꼼꼼하게 청소를 하려고 노력한다.
 
캠프힐의 집은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안식처이자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는 우리들만의 공간이다. 잘 정돈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에 전해지는 영향력을 나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함께 보내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서로에 관한 관심만큼,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도 우리에게 깊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캠프힐의 가정생활에서 배우고 있다.
 
▲ 시카모어 하우스 거실에서 빌리저들(웬들, 빌, 신디, 조하나)와 함께 찍은 사진
 
 
다음 호에서는 캠프힐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와 빌리저와 코워커가 함께 즐기는 문화생활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희남 미국 킴버튼 캠프힐 단기 코워커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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