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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틀을 바꾸자 길은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서울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해피플러스카페’ 이광우 원장

본문

생각의 틀을 바꾸자 길은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생산품을 판매하는 ○○○인데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장애인들의 재활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라고 하는데요….”

누구나 몇 차례 이상 받아본 경험이 있을 이런 전화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예고 없이 찾아드는 낯선 번호의 목소리와 그 내용, 선뜻 알겠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매몰차게 내려놓지도 못할 미묘함 앞에서, 갈등 아닌 갈등이 머리와 가슴속을 일순간 뒤섞는다. 후원이나 구입을 승낙해도 개운치 않고, 거절이나 사양을 해도 마음이 편치 않는….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각자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고 한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며 연락하는 전화가 아닌, 불특정다수이거나 수많은 전화번호 정보 중 하나로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일면식(一面識)’이라는, 최소한 한 번 이상 만난 적이 있어 얼굴 정도는 아는 관계일 때 주고받을 만한 대화 내용을, 우리는 전화기 속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지갑을 열지 말지 고민해야 한다. 맹점이면 맹점이고, 그만큼의 절박함이면 절박함일 이런 전화벨의 이어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간 ‘안녕하세요, 저희는…’ 식의 전화통화에 불편함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번 만남의 주인공 견해가 제대로 된 해결책이 되리라 기대한다.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거대 공기업 상무 직에서 서울특별시립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원장으로 인생의 말을 갈아탄, 본인 스스로의 ‘인생반전’뿐만 아니라 ‘장애인생산품’에 대한 인식 자체를 역전시킨 경영학 박사 이광우 원장을 ‘만난사람’의 주인공으로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희는…’과 같은 기존의 형태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의 속 시원한 ‘뒤집기 한 판’의 경영철학을 함께 들어본다.

   
▲ 서울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해피플러스카페’ 이광우 원장 ⓒ채지민 객원기자
- 여기가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건물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깔끔한 카페로 탈바꿈을 했는지 신기한 마음마저 든다. 어떻게 바꾸신 건가
“1층은 오픈 카페로 만들었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쉴 수 있는 카페가 됐다. 2층에는 북 카페가 있고, 그 옆에는 모임방이 여럿 마련되어 있다. 3층은 강당인데 문화교실을 열어 운영하려 준비하고 있다.”

- 원장님은 공기업 KT의 상무 출신이 아니신가. 그런데 공기업 고위직 출신이 시립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로 자리를 옮겼다는 건 흔치 않은 예 같다.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를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2007년에 뒤늦은 박사과정을 끝내고, 논문을 준비할 당시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나의 논문 주제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런데 경영학 분야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적 기업을 주제로 논문을 쓴 분이 없었다. 그러니까 경영학 분야에서는 사회적 기업 중심의 논문을 내가 처음으로 쓰게 된 셈이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 연구 측면에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성과인 것 같다
“처음으로 그 주제의 논문을 쓰다 보니 모든 게 문제였다. 기본적인 자료 수집은 여기저기에서 찾으면 됐는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체감적인 느낌을 갖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일 때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컨설팅을 서울시에서 진행한다 하기에, 거기에 컨설턴트로 직접 참여하게 됐다. 전체 시설 중 여덟 곳을 7개월가량 연구 조사했다. 그걸 하면서 정말 어려운 시설들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됐다. 기존에 있던 분들끼리는 인맥 비슷한 연결로 서로 알아가면서 가깝고 편한 자리를 우선 배분한 것 같은데, 나는 생판 모르는 세상에 들어선 게 아닌가. 서울이 아닌 지방의 열악한 곳들만 내게 배정이 됐다. 어쨌든 장애인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가서 보니까…, 이건 내가 생각했던 정도의 역량을 가진 분들이 아니었다. 중증장애인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 당시 선정 과정의 문제를, 지금 제3자의 입장에서 뭐라 말씀드리긴 애매한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신 게, 보다 직접적인 판단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일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컨설팅은 그렇게 7개월 활동으로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작년에 여기 판매시설의 원장님이 그만두게 되셨다는데, 나한테 이 역할을 맡을 생각이 없냐는 담당직원의 전화가 왔다. 어디에 공고가 났다는데, 당시에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관심이 없는 채로 전화를 그냥 끊었었다, 그런데 서울시에 근무하던 다른 분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공모 마감 하루 전인데 박사님이 하시면 좋겠다고.”

- 외람된 질문인데, 당시까지도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는 건가
“아니다. 그건 절대 아니고, 정말 쟁쟁하신 분들이 이미 열세 분이나 지원한 상태였다. 서류를 내기는 했지만, 나의 응모평가가 좋은 수준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물론 기업 경력이 있고 학위도 가지고 있었지만, 나보다 나은 분들이 훨씬 더 많으셨던 걸로 기억된다.”

- 공기업인 KT 상무였다면 근속연한이 상당할 것 같은데, 몇 년을 근무하셨고 어떤 직책을 담당하셨나. 주로 경영 관련 업무를 맡으셨을 것 같은데
“20년 넘게 근무했다. 몇 해 전 그 악명 높았던 구조조정 전담반에서 1만4천 명을 정리하는 일을 담당했으니, 당시의 제 입장과 역할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것이다. 본사와 자회사를 거치며 기획조정부장, 마케팅 기획부장, 정보관리센터장, 전략실장, 전략사업본부장, 이런 직책을 두루 맡아왔다. 거대 공기업의 전략사업본부장이라면 어떤 일을 하겠나.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곳이다. 그런 업무가 나의 주된 분야였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그렇다면 여기 생산시설에 원장으로 오신 시점은 언제이고, 부임 뒤 무엇을 어떻게 바꾸신 건가.
“작년 10월 초에 왔으니까 이제 1년차가 된다. 처음 왔을 때는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이라고만 명칭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이렇게 판단했다. ‘장애’라는 건 우리끼리 내부에서 해야 되는 얘기 아닌가? (註 : 이광우 원장은 소아마비로 인생을 살아온, 그 역시 장애인임을 이 시점에서 밝혀둔다.) 내가 물건을 팔아야 할 때, 고객의 시선은 물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객을 불러들이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강조하는 건 마케팅 방식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내리셨다. 장애계가 오랫동안 뒤로 미루며 방관하기만 했던 진짜 핵심을 언급하신 것 같다.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때 이 건물은…, 편하게 말씀드린다면 이 지역의 혐오시설이었다. 약간 구석진 자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퇴근시간만 지나면 동네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이용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밤에는 동네 주민들마저 이 앞을 지나지 못하는 기피 장소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판매시설의 본연의 목적은 ‘판매’라는 것이다.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아닌가. 판매시설 안에 있으면서 내가 복지 어쩌고 하며 주춤한다면, 그렇게 주춤하는 동안 그 누가 우리의 물건을 팔아주겠는가. 그건 이 조직의 목적엔 맞지 않는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 그래서 첫 번째로 단행한 개혁이 이 자리에 카페를 만드신 건가
“그렇다. 이 공간 사용 방식을 바꾸려 했을 때, 시에서 제안했던 건 사실 여기에 안마시술소 같은 걸 만들라는 거였다. 안마시술소와 장애인들의 작업장 같은 식으로 운영하는 게 낫겠다는 권유였는데, 나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카페로 결정했다.”

- 내외적으로 반대가 적잖게 있었을 것 같은데
“반대, 처음엔 많았다. 우리 직원들도 안 된다고, 카페는 되지 않는다고 반대했었다. 물론 지금은 모두 잘 된다며 즐겁게 받아들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항을 언급해야겠다. ‘악순환’이라는 게 있다. 장사가 안 되면 사람이 배치가 안 되고, 사람이 배치가 안 되면 들어오고 싶은 사람도 내부를 힐끔 보면서 아무도 없는 데는 안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한 달 매출이 80만 원 정도였다. 악순환을 제거한 지금은 1천6백에서 1천8백의 수익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 그런데 다른 분야도 많은데 왜 카페를 생각하셨던 건가
“카페도 그냥 카페가 아니라, 나는 이 지역의 멀티문화공간이자 그 중심지로 이 건물을 구상했다.”

- 그러니까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설계하셨다는 건가
“그렇다. 여기가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인 것은 맞지만, 이제는 장애인들만을 위한 시설로 존재하면 안 된다. 그건 혼자 외롭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제한된 시설 안에서 제한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통합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난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 뭔가를 베풀어놓고 지역사회를 끌어들이면서 같이 섞이며 돌아가야지, 이 좋은 위치와 이 좋은 건물 시설에 그동안 장애인들만 머물고 있지 않았나. 그 결과로 그동안 여기서 뭐가 생산이 됐는가. 매출도 형편없었고, 국가적으로 보면 별로 도움이 된 게 없었다는 것이다. 틀을 바꾼 직후부터 매출이 달라지고, 이 곳이 이 지역에서 사랑 받는 장소가 됐다는 게 그 증거가 된다.”

- 똑같은 공간인데도 발상의 전환이 참 많은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것 같다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기회가 참 좋았다. 시에서 처음 했던 제안이 틀린 건 아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니까, 장애인들 위주로 고용하고 활동할 수 있게 만들자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 제한된 사람들만 오게 된다는 것이다. 제한된 사람만 오고 장애인들만 주축이 되면, 이 지역 사람들이 여기를 더 멀리하게 되는 결과만 낳게 된다. 여기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장애인을 뭔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장애의 그런 편견을 바꾸고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려면, 서로가 함께 융화하도록 판을 짜는 게 최선의 방법이 된다.”

- 맞는 말씀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멀었다는 점이 매번 재확인된다
“말로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들 강조하지만, 실상은 인식개선은커녕 더 멀리하게끔 만드는 게 현실이다. 여기가 장애인들만 가득한 시설로 만든다면 누가 찾아오겠나. 그건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할 길이 될 뿐이다. 그래서 내부를 완전히 바꾸고, 간판도 ‘행복플러스카페’로 산뜻하게 만든 것이다.”

- 그럼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기업인 경영전문가 출신인데, 뭐가 달라도 좀 달라야 할 게 아닌가. 처음 내부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여자분이 이 앞길을 오가며 뭔가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봉사단체 회원들끼리 모임을 가지려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찾는 중이라 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우리가 3층을 무료로 빌려드리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한 달 후에 카페를 열게 되는데, 그때 우리의 고객이 되어 달라.’ 그런 뒤 공사하던 기자재들을 다 치우고 모임자리를 만들어드렸다. 아주머니들이 80명이나 오셨더라. 그 모임이 잘 진행되고 나서, 한 달 후부터 그분들 모두는 정말로 우리 카페의 단골고객이 됐다. 꼭 필요했던 서비스를 제공해드리고, 우리는 고마운 고객들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단 한 번도 광고를 한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광고지 같은 걸 돌린 적도 없다. 구전(口傳)으로만 알려졌기 때문에, 매출 또한 편차를 보이지 않는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그럼 그 분들이 오셔서 실제로 이 생산품들을 구매하시는가? 단지 카페만 이용하고 가시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많이 구매하신다.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고, 카페 곳곳에다 실내분위기에 맞게 전시도 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전화를 통해 구매를 강요하는 것이다. ‘장애인인데 비누를 사달라.’는 식의 전화 말이다. 시대가 변했고 인식의 틀도 변했다. 지금까지 장사를, 장애인 생산품을 그런 식으로 판매한다는 건 정말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당장의 매출이 발생할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매출을 감소시키는 행위이다. 장애인생산품이라는 이유만 앞세우며 그렇게 판매해선 안 된다. 그런 인식과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여기 이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오히려 매출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는가.”

- 생산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둘러보다가 마음에 든다 하시면, 이렇게 설명을 해드린다. ‘이건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이 만든 것이다. 3시간 이상 집중을 못하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그렇기에 굉장히 소중한 손길이 담긴 것이다.’ 그런 설명이 계속되면, 장애인생산품이라고 일말의 의구심을 가졌던 고객들이 하나씩 둘씩 수긍을 하며 제품에 만족하게 된다. 그게 바로 인식개선을 하는 게 아닌가. 장애인이 일하는 공간에 지역 주민들이 동네 안방처럼 찾아들 수 있다는 건, 인식개선의 노력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 그렇다면 원장님의 입장에서 볼 때, 생산품의 품질은 어떻다고 판단하시는가. 솔직한 견해를 듣고 싶다
“지금 여기서 많이 팔리는 게 그릇 같은 다기류와 액세서리 제품들이다. 다른 많은 종류의 제품들도 있는데, 다기류와 액세서리가 가장 호응이 좋다. 품질은 아주 좋다.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장애인들이 만든 상품들은 굉장히 좋다고 평가한다.”

- 그런데 제일 궁금한 점이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생산품이라 하면 이 사회 속에선 아직도 낮게 바라보는 게 사실 아닌가. 얼마 전에 모 대형마트 회장이 ‘장애인들이 만든 빵이 맛이 있겠느냐’는 비하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생산품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낮다는 건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보실 때 요즘 분위기는 어떤 것 같은가
“행복플러스카페 개관식 때 참석했던 인사들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장애인 행사를 하는데, 이렇게 화려하게 하는 데는 처음 봤다고. 유명 탤런트와 교수, 연주인들이 많이 와서 공연도 했다. 내가 강조하는 건, 장애인들이 뭔가를 한다고 해서 어설프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지역은 중산층이 주로 사는 곳 아닌가. 판매품의 품질을 확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칭찬도 한다. 일부러 자기 친구들과 함께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 행복플러스카페의 성공과 성취는 당연히 인정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기업과 관공서라든가, 실제 생산품을 이용하는 일반 고객층들의 선호도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게 현실 아닌가
“맞는 말이다. 일반적인 제품들이 좋아지기는 좋아졌는데, 지금도 고칠 게 너무 많이 있다. 어이없는 경우를 경험한 적도 있었다. 복사지 제품이 들어왔는데, 겉포장을 열어보니까 복사지의 사이즈가 안 맞는 거다. 이게 이해가 될 일인가. 쓸 수 없는 걸 제품이라고 가져온 게 아닌가. 복사지 크기가 컸다 작았다 하는 제품을 그대로 포장해서 보낸다는 거…, 확인 즉시 100% 반품하긴 했지만 소비자한테 전해진 게 그런 제품이라면 어떻게 되겠나. 단 한 번의 실수라도 회복되기 힘든 이미지 실추를 불러온다.”

- 일부 제품의 하자도 문제가 있겠지만, 구매자의 편견 또한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데
“장애인라는 이유만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토너하고 똑같은 제품을 갔다 줬는데, 장애인 제품이기 때문에 고장이 자주 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고장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지 않고, 장애인생산품이 그 안에 사용됐기 때문에 에러가 발생한다는 식으로 무조건 넘겨씌우는 일도 적잖게 발생한다.”

-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렇다면 원장님은 경영학 박사님이시니까, 장애인생산품의 미래와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작년 10월 초에 부임했기에 시간상으로는 얼마 안 됐지만, 내가 보기엔 전반적인 장애인생산품의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서울 같은 경우 쿠키나 제빵, 이런 분야에 대부분이 집중되고 있지 않은가. 남이 뭐 잘된다고 하면 전부 다 그걸 하려고 하는 식으로, 장애인생산품시설 대부분이 한쪽으로 몰리기만 한다. 어차피 제한된 시장에서의 경쟁 아닌가. 이걸 적절히 분산시켜서, 서로 다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또한 두 번째로는 생산품시설들 중에서 제대로 된 연구개발 하는 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품질관리를 하는 정도가 잘하는 거지, 내년과 후년을 바라보며 새로운 제품을 준비하는 데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 것은 많지만, 시장이라는 건 늘 변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시장에 대한, 시장의 유동성에 대해서 대응할 준비가 아예 안 되어 있다. 그냥 ‘나는 장애인이니까 이 정도면 잘하는 거다’라고 하는데, ‘…이니까’는 이 사회에선 절대 안 통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상품으로 경쟁하는 것이지, 여기에다가 ‘장애인’라고 크게 써가지고 경쟁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어쨌든 생산하는 곳이 주로 보호작업장 같은 시설 이런 데가 많지 않은가. 품질이 좋아지고 판로가 개척되는 만큼, 기대를 가지고 원장님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아지고 있을 텐데 부담되실 것 같다
“당연히 많이 팔아야 한다. 그렇기에 발로 뛰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제품이 좋다는 평판을 많이 듣고 있는데, 장애인생산품 전반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대관절 제품을 믿을 수 없어서 못 사겠다는 얘기가 많다. 또한 이런 불만도 자주 나온다. 계약을 하고 나면 납품이 될 때까지 누군가가 붙어서 끝까지 해결해 주고 그걸 보증해 줘야 하는데, 장애인시설에서 구입하면 당연히 사는 것처럼 생각하며 보증을 안 해주더라는 것이다. 그냥 툭 던지듯이 보내고, 납품시간 같은 것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이든 관공서든 간에, 우리 제품에 대해서는 내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책임지겠다!’ 그래서 철저하게 검수를 한다. 제대로 되지 않은 제품을 소비자한테 보낼 수 없기에, 가차 없이 사진을 찍어놓고 생산업체에 문서로 통보한다.”

- 상당히 강력하게 대처를 하시는 것 같다. 생산자들의 불만도 뒤따를 것 같은데
“자기 자식 아프다고 안 때리면 잘못되기 마련이고, 계속 일어서려는데 엎어진다고 꾸짖으면 아이는 걷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아, 원장님, 장애인시설인데 이 정도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시냐.’는 항의성 전화를 종종 받게 되는데, 그건 정말 아니라는 거다. 장애인이 장애를 가진 것만큼, 생산에 참여하는 데도 장애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제품 생산을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이다.”

- 좋은 말씀 잘 들었다. 마무리 차원에서 질문을 드리겠다. 원장님의 진솔한 의견을 듣고 싶다. 만약에 직접 물건을 개발하고 몇 년 후를 바라보신다면, 원장님은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고 어떤 분야에 투자를 하고 싶으신가. 경영전문가의 입장에서 아이템 같은 걸 가지고 계신지 알고 싶다
“경영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지금은 길이 다 빤히 정해져 있을 뿐이다. 정부에서 우선구매제도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복사지나 토너 같은 것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 이외에도 많다. 그리고 무조건 그 제도의 틀에 머물지 말고, 생각을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 학교가 몇 군데인가. 수천 군데 이상 될 텐데, 거기서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품목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실 대단한 기술이 필요치 않은 제품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런 것들을 생산해서 판로를 학교 쪽으로만 넓혀도 시장은 무궁무진해진다. 많은 건 학교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많은 게 또 무엇이 있는가. 동사무소는 각 동마다 하나씩 다 있다. 정부기관인데 그 곳에서는 어떤 물품들이 많이 사용되고, 소모품으로는 뭐가 많이 필요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런 것들 중에서 장애인생산시설에서 생산하지 않고 있는 품목들을 특화시켜야 한다.”

- 말씀을 들으니 안타까운 점도 있는 것 같다. 경영적인 관점에서는 길이 다 보이는데,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드러나는 우선구매제도의 틀에 모두가 묶여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정부가 그 제도의 품목을 확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애계도 같이 확대해서 준비하며 나아가야 되지 않겠나.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할 게 많고 기회도 넓어진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도 다변화되어야 하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관찰해야 한다. 지금 잘 되는 게 내년과 후년을 보장하진 않는다. ‘장애인생산’이라는 틀 안에서만 보면 안 되는 세상이 됐다. 이제 경쟁은 이 사회, 이 세상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작성자대담 이태곤 기자 정리 채지민 객원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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