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호평을 받은 장편영화 ‘숨’의 감독 함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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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수의 여러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작품이 큰 호평을 받았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제39회 로테르담영화제와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제35회 브뤼셀유럽영화제에선 황금시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했고 제12회 바르셀로나아시아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더불어 제20회 후쿠오카국제영화제 초청, 제47회 대만금마장영화제 초청, 제5회 파리한불영화제 초청, 제15회 크로아티아스플릿영화제 초청 등, 그 영광의 발자취는 한국 영화사(史)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두드러진 업적을 이미 이뤄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증 하나가 진지하게 등장한다. 이런 엄청난 희소식이 공영방송과 전국일간지 등의 중앙언론에선 왜 희미하게만 들려오며, 대중적 관심을 널리 전파하지 않고 있는 걸까? 출연진들이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 거기에다 화려한 사랑이야기 같은 걸 수놓았다면, 만약에 그런 화제를 담고 있었다면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거라는 예측은 극히 개인적인 상상일 뿐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함께걸음>은 그 영화작품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그 작품의 의의를 공개적으로 펼쳐놓아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실제 뇌성마비 장애우이며, 이 땅의 ‘시설’이라는 공간을 주된 무대와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찬사나 필요 이상의 홍보 같은 내용전개는, 당연히 이 지면에선 일차적으로 지양하며 거부한다. 그 대신에 중앙언론을 통해선 제대로 접할 방법조차 없었던, 그 작품의 실체와 가치에 대해서 함께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판단하게 됐다. 국제적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된 그 영화의 감독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 한 자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영화 ‘숨’의 함경록 감독이 이번 9월호 만난사람의 주인공이다.
- 이번 작품으로 국제적인 정말 큰 반응을 얻으신 것 같다. 먼저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장애우들을 위해 탄생하고 성장해 온 23년 역사의 전문 월간지로써, 그 성과를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쾌거이기도 하다
<함께걸음>은 이미 잘 알고 지내왔다. 강의나 촬영 작업을 위해 여러 센터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빠짐없이 눈에 띄는 이 월간지의 존재를 늘 반갑게 맞이하곤 했다. 제가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 아, <함께걸음>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는 말씀인가? 그렇다면 더욱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 지면을 통해 이 작품의 의미가 잘 전달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이 작품 ‘숨’이 장애우들의 현실을 고발한 영화인지, 아니면 장애우 중에서도 한 여성장애우의 개인적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 건지, 그 내용을 우선 알고 싶다
고발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좀 그렇다. 고발이라는 건 늘 있어왔지 않은가. 더욱이 고발이라는 건 항상 성폭력이나 인권 침해에 관련된 이슈 위주로 채워져 왔다. 그런데 개별적인 사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환경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을 해왔다. 더불어 그런 부분들은 사실 소소하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을 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들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런 심정과 상황들이 포착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집중적으로 관찰했었다.
- 장애우를 소재로 다룬 단편영화 등은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독립영화 형식의 장편 작품을 만나게 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더욱이 ‘수용시설’이라고 흔하게 말하는 시설이 주된 작품의 무대로 등장한다. 장애우 시설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그 계기를 알고 싶다
저는 영화수업의 강의를 함께하고 있었다. 초중고생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장애우 단체 등에서도 영화수업을 하며 지내왔는데, 그 수업의 내용은 주로 이렇다. 수강생이 몇 명이든 몇 십 명이든 간에, 각자 시나리오를 쓰며 개인별로 영화감독이 되도록 만든다. 그런데 보통 처음 아마추어 입장에서 작품을 준비할 때는 주로 자기 자신의 얘기를 쓰게 되지 않는가. 전주 아중리에 있는 중증장애인지역생활자립지원센터에서 강의를 할 때,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자립하신 분들 위주로 그 분들의 의견과 경험을 집중적으로 듣게 된 적이 있었다. 자신들이 당했던 것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느꼈던 점들을 지속적으로 말씀하셔서 그 내용을 들으며 조금씩 간접경험을 하게 됐다.
- 전주의 그 센터는 <함께걸음>이 작년 여름에 취재차 방문한 적이 있고, 그 공간에 계시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서 감독님이 강의를 하셨다는 의미인가?
아, 그 센터를 아시는가? 그렇다면 그 센터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잘 아실 것이다.
- 역시 세상은 참으로 좁다는 실감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센터에 계시던 분들한테 어떤 점을 간접경험 하셨다는 건지, 그 내용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단적으로 말씀드린다면, 그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방송 고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극히 사적인 내용이었다는 거다. 자극적인 내용 중심의 고발 프로그램은 그렇게 제작하는 게 그 취지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들었던 얘기들은 오히려 단순한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어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고 싶었는데 못 먹게 했다’ 같은 사연들이 많았다. 그래서 제일 괴롭게 착취하는 게 뭐냐고 물으니까, 오히려 착취를 안 해서 더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침밥을 먹으면 점심밥을 먹을 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 것들이 더 괴롭다고 했다. 힘들고 어렵고 피눈물 나는 그런 내용도 물론 아주 많이 있겠지만, 그 한편에선 아주 극히 단순한 면에서 사람의 기력을 앗아가는 그런 상황이라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들을 반복적으로 계속 듣다 보니까, 시설이라는 공간에 대해 나름의 관심을 갖게 됐던 것이다.
- 그렇다면 영화 속 실제 촬영 공간은 어디인가? 직접 시설에 가서 촬영하신 것 같던데
촬영장소는 장애우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 보육시설을 대신 사용했다. 그 지역 인근 모처에 폐쇄되고 방치되어 있던 보육시설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촬영하기로 결정을 했다. 실제로 시설생활의 오랜 경험이 있던 친구와 함께, 영화판에서 ‘헌팅’이라고 부르는 촬영장소 선정을 위해 계속 같이 돌아다녔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장소를 살펴보더니, 시설의 분위기를 충분히 연출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 보육시설을 촬영장소로 선택했다.
- 그럼 기획에서 완성까지 얼마나 걸리셨나
기획부터 친다면 제법 길어진다. 대략 2년 정도 걸렸다. 독립영화는 자본이 없기 때문에, 지원을 받기까지는 제법 많은 기간을 필요로 한다. 공모를 통과해야 하는데, 한 차례 떨어지는 과정도 거쳐야 했다. 제작비가 지원된 뒤 본격적으로 만들어간 걸로만 따진다면 1년 정도 될 것이다. 사실 촬영은 짧지만, 그 이전의 준비기간이 긴 셈이다.
-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하는 게 주연배우이자 신인배우인 박지원 씨의 존재인데, 그를 어떻게 발탁하시게 된 건가
기존에 활동하던 배우가 아니라, 전주의 그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던 여성인권활동가이다. 제가 그 센터에서 영화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당시의 일인데, 영화촬영을 진행할 여건이 마련된 뒤 출연할 배우를 물색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장애의 몸동작과 발성을 책임져야 할 역의 비중으로 볼 때, 신인배우는 힘들 것 같아서 좀 더 안정적 진행을 위해 경력이 있는 배우를 쓰고 싶었다. 이 영화 자체가 큰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 아닌, 숨소리나 밥 먹는 등의 조그만 움직임들의 섬세한 연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지도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하나의 역할모델이 되어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주인공은 좀 작은 체구에 가녀린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떠올리게 됐다. 그런데 센터에서 마주친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제가 생각하던 바로 그 적임자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떠올랐다.
- 배우를 지도할 역할모델로서 적임자라는 건가, 아니면 그 영화에 실제 출연할 주인공이라는 의미인가
주인공로 적임자라는 느낌이 단번에 다가왔다는 거다. 뇌성마비이고 동작이 좀 불편한 외모였지만, 제가 구상하고 있던 인물과 정확하게 부합되는 캐릭터였다.
- 아, 그러고 보니 어느 분인지 기억난다. 작년 여름 그 센터로 취재를 갔을 때, 지금 영화 촬영 중이라며 즐거운 표정을 내보이던 한 여성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분이 바로 박지원 씨인가? 그렇다면 그 시기에 이 영화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작년 여름에 전주로 오셨다면 우리의 촬영이 진행될 때였고, 인사를 나누셨다는 바로 그 분이 박지원 씨가 맞을 것이다.
- 그런데 연기경험도 없는 일반인을, 더욱이 장애의 몸으로 살아가는 분한테 연기자로의 변신을 요청하기는 힘드셨을 것 같은데, 그건 감독의 입장에서도 치열한 고뇌 끝에 결정된 모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떻게 연기 경험 자체가 없는 아마추어 장애우를 주인공으로 결정하시게 됐나
그래도 기간은 충분했다. 본인의 의지가 확실했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할애해 줬다. 보통의 일반 배우라면, 제가 요구한 그 정도의 스케줄을 따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촬영에 들어가면서 하루 이틀씩 합숙하며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시설생활의 경험이 있던 센터의 동료들과 달리, 지원 씨는 집에서만 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반복되는 합숙을 통해 대화를 나누면서 맞춰가다 보니까, 나중엔 촬영에 임할 만한 수위가 됐다는 느낌을 얻게 됐다.
- 극히 원칙적인 질문이겠지만, 감독님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는가
일단 시각적으로만 따진다면, 자극이 될 만한 사건들은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그런데 시설이라는 곳은 외부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갇힌 곳이라는 선입관이 앞서지 않은가. 게다가 시설이라는 건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인물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그런 느낌을 얻게 되기 쉽다.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 중 하나는 안타까운 것도, 반감을 느끼는 대목도 모두 보고 난 뒤의 재미 또는 흥미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제도적인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특정한 사건에 의한 특정한 부분에 국한된 게 아니라,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또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소한 감정들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얼마나 다르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묘사하고 싶었다.
- 의도하지 않는 주변 환경이 바뀌고 변질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가.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편견을 의미하는가
편견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일단 약자로 대하지 않은가. 동정심을 앞세우게 만드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분명 착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들 말하지만, 영화 내용으로 먼저 말씀드린다면 우선 시설에서 일어나는 비리가 주인공을 괴롭힌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겠다고 자립단체에서 데려오지만, 그 역시 주인공을 괴롭히는 환경이 된다. 그러니까 본인이 충분히 자각을 해서 간 것이 아니고 가고 싶다며 간 것 또한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약자이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주인공을 대한다는 뜻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무시되는 건 결국 인권 아닌가.
- 이 작품의 시나리오도 직접 쓰신 걸로 알고 있다. 시설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선은 언제부터 갖고 계셨던 건가
영화 수업을 제가 하고 있던 센터 안에 시설인권연대가 같이 있는데, 그 연대가 전주 KBS와 함께 2년 동안 조사를 해서 방송 프로그램이 나간 적이 있었다. 미신고시설 비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자료를 담당 프로듀서한테 받아서 있는 사실 그대로 시나리오를 적으려 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쓰려다 보니까, 이게 너무 영화다워지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비리들이라는 건 캐려고 하는 것과 숨기려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극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그렇게 극적으로 가버리게 되면 기본적인 부분들에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걸 들어내고 주인공 개인적인 부분을 좀 더 살피며 묘사하고자 노력하게 됐다.
- 주인공과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영화 줄거리의 중심부가 되는 것 같다. 그런 걸 넣은 건 지나치게 고발성으로 흐르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인가
그건 아니다. 그런 게 들어갔다는 데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주인공 수희가 ‘뭘 할까. 뭘 하면서 즐거워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우리가 분명히 생각할 때는 ‘어떻게 그런 데서 살아?’ 하며 반문하겠지만, 분명히 거기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외부에선 모를 나름 행복한 게 있을 거라는 답을 내렸다. 남자들도 군대를 가면 거기서 어떻게 사느냐고 몸서리를 치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기도 모르게 군화에 광을 내고 있다. 뭔가 나름의 즐거움 같은 걸 찾는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설 안의 풍경은 항상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만 가득할 거라 여기지만, 그 안에서도 행복이라는 게 있을 테고 그걸 찾는 방식이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20대 중반의 여성이라면 일단 사랑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상상을 일정부분 펼쳐나갔던 것이다.
- 주인공이 실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에 사실성 측면에선 완성도가 높겠지만, 관객들의 평가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주인공이 실제 장애가 있고, 숨을 쉬거나 움직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관객의 입장에서 배우를 바라본다는 건, 사실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많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한 점은 없다.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누구를 때리는 등의 장면도 없다. 대신 주인공이 단 한 컷도 빠지지 않고 계속 나온다. 게다가 어떤 사건이 분명히 벌어지는 것 같은데도, 그 사건이 무엇인지를 카메라가 보여주진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스토리가 제대로 연결 안 되는 느낌도 남기곤 하는데, 그건 주인공이 모르는 건 카메라도 모른다는 취지를 전제로 한 것이다. 연출 상의 그 기법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 말씀하신 내용 중에 ‘관객의 입장에서 에너지 소모가 많은 영화’라는 대목이 선뜻 다가오지 않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주인공의 표정은 장애 때문에 항상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안에서 그의 내면과 감정을 관객들이 직접 읽어내야 한다. 어려울 것 같지만 오히려 단순하다. 비슷한 얼굴 표정인 것 같지만, 주인공이 사랑한다 무섭다 좋다 싫다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관객들에겐 점점 더 자연스레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그 배우의 몸짓과 표정의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장애를 가진 배우의 몸짓이라는 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던 영상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에, 관객에겐 더 많은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달라
그동안 워낙 저예산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냥 보통 저예산이 아니라 거의 1백만원이나 2백만원으로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혼자서 이끌어가는 과정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라북도에서 1억이라는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1억 역시 저예산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힘든 환경에서 작업해오다 보니까 저한테는 크게 느껴졌고, 감독으로서 편하게 모니터를 보며 작업할 수가 있었다. 배우도 이미 준비단계에서 충분히 이입이 되어 있었기에, 믿음을 가지고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 조금 전에도 질문했었지만,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던 분이 그만큼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
아, 그건 저도 신기했다. 그런 면에서는 박지원 씨한테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첫날에는 긴장을 심하게 해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카메라가 자기 얼굴 앞에 있고 계속 가까이 따라다녔기에, 게다가 스태프들이 둘러싸고 있으니까 숨 쉬는 것도 어려워했다. 두어 시간 정도 지난 다음부터 적응이 되는 것 같아, 그제야 모두가 함께 한숨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 그 많은 외국영화제에 이렇게 많이 초청 받는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일 텐데, 그런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감독이 아닌 객관적 시점으로 평가해 주시면 좋겠다
주인공 박지원 씨의 연기 때문이라고 본다. 외국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그쪽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주인공의 연기를 보고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 내부에서 논란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연기자인지, 실제 장애인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이메일까지 받아봤을 정도였다.
- 민감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 이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하시는 동안 참고가 됐던 국내외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이 혹시 있으셨는지 알고 싶다
일단 소재는 제게 잡혀져 있었다. 소재는 잡혔는데, 이걸 어떤 방식으로 연출하느냐의 고민이 꽤 길고 깊었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만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가 영화를 만들 게 아닌가. 그럴 즈음이었는데,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시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분은 다큐멘터리가 천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셨다. 신의 뜻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게 다큐멘터리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갑자기 기억난 것이다. 시설이라는 공간에 제가 안 가봤던 건 아니었다. 카메라들 역시 그동안 수없이 그 공간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여기 이쪽만 주로 봤지, 다른 한쪽은 안 봤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드러나지 않은 그 부분의 그 분들에 대해서, 저 역시 메신저의 역할을 하자는 것. 감독이 연출을 잘했다는 느낌을 최대한 줄이고, 안 보이는 곳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춰주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 영화를 만들다 보면 음악 같은 걸로 영화적 수식을 할 영역들이 많이 있는데, 가급적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고 이 영화를 만들자며 결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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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완성되고 대외적으로도 큰 찬사를 받았지만, 감독의 입장으로서 완성 뒤에 아쉬움으로 남는 점 같은 건 없는가? 있다면 허심탄회한 의견으로 듣고 싶다
방금 전 말씀드렸던 내용이 영화 ‘숨’의 가장 큰 장점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극적인 요소들을 일단 제거하고, 가장 사실적인 부분에 접근했다는 건 긍정적이었다고 자평을 한다. 그런데 각 영화제를 다 돌아보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후회되는 게 ‘그럼 이걸 누가 봐?’ - 그러니까 영화의 역할이라는 게 그 목적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만, 하나의 도구로써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놓쳐선 안 되겠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됐다. 이 영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관심을 갖게 해서 이 또한 다루지 않았던 다른 이슈가 되고 언론에서 많이 들춰준다면,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 인권이나 시설이란 부분에 관심을 갖게 할 하나의 도구로써 활용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 어떤 면에선 국내 영화계에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장애계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이런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동료나 선후배님들께 조언 비슷하게 남기고픈 사항이 있는지 묻고 싶다
사실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일 조심해야 할 건 ‘자극적’이라는 부분이다. 이런 건 쉽게 와 닿지 않는가. 만드는 입장에선 무척 욕심이 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숨’을 만들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저한테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가장 세게 와 닿았던 단어는 ‘자궁적출’이라는 그 표현이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증거인멸을 위한 자궁적출’, 이런 소재 앞에서는 그 내용이 전적으로 비극적이든 뭐든 간에 사람들 관심이 흥미 위주로 확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걸 어떻게 화면으로 만들어 갈까, 어떻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할까 하는 건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현혹되기 쉬운 부분이다. 그렇기에 그런 부분들은 특히 조심하며 접근해야 할 것이다.
- 그렇다면 이 영화를 촬영하고 만들면서 처음엔 미처 알지 못했던 장애우들의 내면이라든지,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는 사항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제일 많이 배운 건 ‘기다려야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무엇이든 같이 하려면, 편하게 전화 걸어서 밥 한끼 같이 하자고 해도 기다림이 필요했다. 물론 제가 평소에 성격이 좀 급하다는 면도 있긴 하지만, 진지한 기다림을 배우게 된 건 소중한 얻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닌 것 같지만, 시설에 계신 장애우들한테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규정을 짓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부에선 복잡한 상황과 미묘한 나름의 여건에 둘러싸여 있어서 복합적으로 힘겨울 텐데, 병원에 가면 단순한 한두 마디 증상으로 단정되는 채 끝나버린다. 우리가 전혀 모르던 환경 안에서만 살던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폭발했을 때, 해당 전문의의 진단은 ‘무슨 질환이고 어떤 처방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가. 그게 정말 안타까웠다.
-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을 말씀해 주셨다.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은데, 국제적으로 이미 인정을 받은 훌륭한 영화작품을 우리 관객들 앞에 펼쳐놓아 주신 걸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여쭙겠다. 감독님 본인 스스로에게 이 영화가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독자 여러분께 전해주시면 좋겠다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이 영화의 최종 편집본을 마무리한 다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립영화이다 보니까, 감독 옆에서 관여하고 참견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참으로 네가 네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했구나.’ 하는 자문자답이 결론처럼 떠올랐다. 정말 열심히 하긴 했지만, 이렇게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어 개인적으로도 만족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9월 첫날 전국 각지에서 개봉하는데, 좋은 관람과 여러분 모두의 진솔한 판단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응원과 채찍을 기다리겠다. 최선을 다하는 더 좋은 작품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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