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확대가 유일한 대안이다
[만난사람] 민주당 최영희 국회의원
본문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헌법 제2장 제10조)
국가의 기본은 국민이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삶이 원활하고 윤택하게 이루기 위해 국가라는 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과연 그럴까? 국가는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누구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움직이는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지금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되는가.
소외계층이 완전히 배제되고 서민들의 박탈감이 최고치로 끓어오르며, 최소한도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마저 포기해야 하는 이 왜곡된 질서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폭 삭감되고 사라져버린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국가 예산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 입법 활동 중인 국회 예산결산특위와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민주당 최영희 국회의원을 만나, 문제점의 원인과 대안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 연말연초에 무척 바쁜 일정을 보내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함께걸음>과의 만남은 무척 오랜만인 것 같다. 정말 반갑다.
- 지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서 입법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번 복지 예산이 많이 삭감된 것 같다. 어느 예산이 어떻게 줄어든 건가.
우선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복지부에서 예산을 세웠을 때, 청소년 예산과 장애인 예산이 많이 깎여 있었다. 복지부측은 자기들이 예산을 세웠을 때 복지부 예산을 9% 증가시켰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증가시킨 건 참여정부에서 법제화시켰던 내용들뿐이었다. 이미 법제화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주지 않을 수 없는 예산, 즉 법정예산인 것이다. 그런 부분만 늘어났고, 그게 늘어나니까 다른 데서 가지고 올 추가 예산이 없지 않은가.
이런 건 복지부 차원에서 지식경제부 같은 곳과 싸워서라도 확보해야 했는데 그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2% 정도 성장을 했는데, 장애인 예산과 청소년 예산 위주로 많이 깎여버린 거다.
- 복지 정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과 청소년 예산이 일방적으로 삭감됐다는 건 정말 잘못된 예산 정책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 때문에 장애인 의원님들이 굉장히 분노했었고, 나 또한 청소년 예산이 깎인 걸 가지고 크게 화를 냈다. 지금 국회에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계신 의원님들이 여덟 분이나 계신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보건복지가족위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그 분들 앞에서 장애 예산을 삭감해버린다는 건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오만한 발상이다.
- 그런 상황에서 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전개됐나.
우리가 복지위원회 예결산소위원회이고 거기에 많은 의원님들이 계셨기에, 장애인 관련 예산을 크게 올려서 다시 책정했다. 청소년 예산은 내가 내 분야 예산을 앞장서서 올리기가 좀 그런 상황에 있었기에, 아주 작은 몇 가지만 올렸다. 대신 결식아동 문제 등 아동 분야 예산을 대폭 올렸다. 복지부에서는 못하겠다는 대답만 나왔다. 국가예산으로는 못하겠다는 거다. 지방에다가 이미 넘어간 사안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굶고 있는 8만 명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강하게 반박했던 거다.
- 결식아동 문제는 과거 IMF 시절을 능가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 문제를 중앙정부가 수수방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방관한다 해도, 당장 굶는 아이들의 현실마저 외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주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식아동의 숫자를 IMF 당시 기준으로 8만 명 정도 예측하며 계산했었는데, 실제로는 그 숫자가 이미 16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8만 명으로 계산했던 예산마저도 실제로는 반도 채우지 못한 거다. 그렇게 예산안을 올렸는데, 그게 예결위에 가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예결위는 나중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일사천리로 처리해버렸다. 여야가 같이 논의했던 것마저 다 묵살했고, 자기들이 올려주고 싶은 것들만 골라 예산을 증액시켰다. 정말로 소외계층을 위한 예산은 거의 빼버린 거다. 그렇다. 다 빼버렸다.
- 아무리 다수당의 횡포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배려나 윤리 같은 것마저 외면할 수 있다는 건가.
하다못해 한나라당 의원이 요구했던 것조차도 안 해줬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 중에서 적어도 지역아동센터 관련 예산, 이건 해주겠지 하며 걱정을 안 했었는데 이것마저도 빼버렸다. 또한 보육교사들이 지금 굉장히 어려운 처지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여야 의원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아, 이 부분은 당연히 되겠지.’ 하며 안심했었고, 계수조정소위원회에 들어간 우리당 의원들한테도 개별적으로 일일이 부탁을 드렸었다. A의원한테는 ‘A의원님은 이걸 꼭 맡아 주세요.’ B의원한테는 ‘B의원님은 보육교사 수당 주는 거, 담임수당을 주는 거, 이런 건 반드시 맡아주셔야 해요.’ 그렇게 부탁을 드렸던 의원님들 모두 자기가 그건 꼭 맡아서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걸 제시할 기회조차 없이, 마지막에 몇몇 한나라당과 정부관계자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뚝딱 날치기로 통과해 버린 거다.
- 불과 1년만에 복지 정책을 바라보는 정치적 관점이 이렇게 뒤집어질 수가 있나. 이런 틀을 몰고 가는 또 다른 손길이 있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한나라당이 의례적으로 준 거, 시혜라도 하듯이 준 거, 아니면 시늉만 한 것들만 남았다. 예를 들어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은 지금 말이 아니다. 시설은 완전히 망가져 있다. 건물에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이다. 건드리면 부분마다 무너진다. 화장실도 한참 걸어가야 나온다.
바람이 거칠고 센 섬에서 어르신들이 밤에 나와 그 바람을 맞으며 화장실에 가야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라. 다 뚫린 창문틀 속에서 겨울을 나는 그들을 어떻게 그대로 방치해 둘 수가 있다는 말인가. 소외계층의 삶을 애써 외면한다 해도, 최소한의 기본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 여당 의원 전체가 모두 다 똑같은 의견이었나.
예외가 있다. 나는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님이 참 훌륭하다고 본다. 우리가 당시 본회의장 단상앞에서 항의하던 상황이라서, 민주당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런데 예결위에서 임두성 의원님이 혼자 예산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것이다.
- 솔직히 궁금해진다. 아무리 보수 일색의 여당이라지만, 소외계층에 그만큼 몰이해로 일관할 수가 있는 건가.
그건 아니라고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장애인 관련 예산이 거의 다 뭉개지듯 삭감됐지만, 의원 개개인들의 성향까지 무조건 그런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원을 약속했고,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상식적인 수준의 예산안 통과는 반대하지 않겠다던 내용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에 가서 단번에 뒤집혀버렸다.
- 갑자기 뒤집어졌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가.
예결위의 총대를 메고 있던 여당의 D의원이 어느 중요한 시점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D의원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이후로, 예산안 책정과 통과의 분위기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제3의 장소에서 제3의 세력들과 모든 걸 다 결정한 뒤 나타났다는 의미가 된다.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소문에 따르면 D의원이 국회의 권위마저 무시하는 ‘어느 곳’의 호출에 따라 지식경제부와 셋이 만나서 일괄적으로 모든 결론을 미리 내렸다고 한다. 직접 확인할 길이 없다 해도, 국회 내에서의 소문은 항상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다.
- 결식아동급식 문제는 시급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의무적인 사항이다. 그런데도 그 예산 확보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건가.
운영하는 과정에서 비어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절대예산이 부족하다. 그때도 복지부가 안 된다고 난리를 쳤는데, 그럼 애들을 굶어죽이라는 말이냐. 애들을 굶기는 건 나라도 아니다. 그게 어떻게 국가냐? 하며 호통을 쳐야 했다.
- 원래 얼마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었나.
그건 아예 하나도 없었다. 결식아동지원액이 원래부터 없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지방자치단체에 그 예산이 이미 넘어가 있으니까,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거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만을 호소하며 지원할 금액이 턱없이 모자란다고만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게 공을 떠넘기는 책임회피만 지루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 그 지원이라는 게 결손가정 같은 범위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건가.
아니다. 우선 당장 밥을 굶는 아이들, 특히 방학 동안에 학교 급식을 못하며 대안 없이 굶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예산 책정을 주장했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못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막혀 있던 중에, 예산안을 일단 올려보기는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차피 지경부에서 반대할 게 아닌가. 그런데 안건을 올리고 강력하게 밀었더니 그 예산은 통과가 됐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일이 뭔지 아는가.
보건복지가족부가 금년도 사업계획서를 보고하면서, ‘결식아동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따위의 타이틀을 내걸었다는 거다. 도대체 이런 사기꾼들이 어디 있는가. 자기들 스스로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말을 자기 홍보로 내걸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 야당이 그렇게 요구하며 싸울 때는 절대 못하겠다더니, 그러한 예산과 목록도 없다며 끝까지 강변하더니, 우리가 싸우며 관철시켜 낸 걸 자기네 홍보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게, 이게 정상적인 사고로 말이나 되는 일인가.
- 그럼 최소한도로 필요한 예산은 얼마이고, 지금 확보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지금 벌써 16만 명이 생겼다면 400억이 아니라 800억 이상 필요한 게 아닌가. 이번에는 ‘결식아동지원금’으로 421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 모자란다면 더 늘려야 할 게 아닌가.
당연히 더 늘려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진짜로 큰 문제는 이 정부가 이미 추경예산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다. 그것은 SOC, 그러니까 사회간접자본이라는 토목공사를 대규모로 확대하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이 정부는 SOC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SOC사업 예산만 늘이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다시 온 국민이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반대할 게 분명한 일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위장막을 앞에 내놓는 전술을 택하려 하는 거다.
이 불쌍한 서민 대중을 위해 해야 하는,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부문 위주로 추경예산안 목록의 맨 앞에 올리는 거다. 그래서 서민을 명분 삼아 앞에 내세우면서, 뒤로 감춘 자신들의 SOC 추진의 방패를 삼겠다는 속셈이 담긴 것이다.
- 도대체 그 예산이 얼마나 추경으로 포함되기에, 서민들을 방패로 쓰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건가.
일반 서민들의 눈에 띌 만한 몇몇 내용들, 예를 들어 홍보하기 쉽고 듣기 편한 내용으로 2천억 정도를 우선순위 맨 위쪽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놓은 뒤, 자신들의 SOC 사업 예산을 2조든 3조가 되든 간에 그림자처럼 아래쪽에 포함시키는 거다. 그런 방식이 될 거라고 이미 예측되고 있다. 올해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기도 전에 추경예산을 준비한다는 거, 그건 사실상 사기행위와 같다. 자신들만의 입지 마련을 위해 국민들의 멀쩡한 눈을 가리는 게 뭔가. 그런 게 바로 사기인 것이다.
- 그렇다면 그걸 몰라서 당하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건가.
지금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자기 업적 중심의 4대강 사업이나 전국 자전거길 신설 등,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사업에 관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지 않은가. 50조원 내외의 녹색뉴딜이라는 걸 관철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복지예산을 구색 맞추기로 그 앞에 끼워 넣기 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를 앞에 내세우며 그걸 반드시 받아들이도록, 다시 말해 이번 추경예산을 안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그 전략에 국민 모두가 지금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주 간교한 눈가림이다.
- 그런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얼마 전에 내시지 않았나. 일본의 예를 들어 관급 토목공사의 국가적 문제점을 지적하셨던 걸 알고 있다.
(註 1 : 최영희 의원은 OECD 최대 규모의 일본 정부부채 원인과 현황을 조사한 ‘경제성 없는 SOC 지출의 후유증’이라는 보고서를 최근에 발표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토목지출을 통한 정부부채 증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발간한 이 자료집은, 경제대국 일본이 지금 왜 국가적으로 심각하게 휘청거리고 있는지의 근본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토목을 앞세우는 게 얼마나 허구인지, 진정한 투자는 복지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외국의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 어차피 복지라는 건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복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국가예산낭비라고 무조건 손사래를 치는 분들이 많은데, 복지예산증가의 진정한 의미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미래에 사용될 국가적 비용을 미리 절약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이건 선진복지국가들이 이미 다 실제적 증거로 국민들 앞에 증명해 낸 정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가까운 미래에 투입될 투자를 미리 하겠다는 것이고, 그 투자는 앞으로 들어갈 비용을 가시적으로 줄이는 것이기에, 복지에 투자한다는 건 사실상 나라 전체가 돈을 버는 일이다.
- 복지에 대한 선행투자가 그렇게 가시적인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건 일반상식 같은 해답이 이미 나와 있다. 학계든 사회시민단체든 간에, 복지 관련 투자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그런 투자를 ‘퍼붓기’라는 무조건적인 낭비로 폄하하는 보수세력의 발목잡기 또한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정답과 오답 사이에서 의견이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이 지금 왜 허우적대고 있는지를 관찰하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남의 나라 사례를 왜 연구하고 공부하는가. 학계든 시민단체든 간에, 외국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면밀히 관찰하는 이유가 뭔가.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 안에서 외국의 예를 검토하는 전문가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가. 그걸 연구하고 얻게 된 정답을 국가 운영에 반영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전부 다 거꾸로 번역하며 실행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 그렇게 하는 걸까? 국가 차원의 이익 이전에 자기들을 밀어줬던, 자기들의 중심이 됐던 특정세력과 소수의 기득권층, 또한 건설 중심의 입안자들을 위해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註 2 : 최영희 의원이 발간한 보고서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 1990년대 건설공사를 통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썼던 일본은, 1998년 이후 공채발행액이 세입의 65%를 넘어서는 상황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또한 2003년에는 세입액의 82%에 이르는 금액을 공채 발행액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까지 맞으면서, 일본의 적자재정은 결국 엄청난 재앙 수준의 후유증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 녹색뉴딜이라는 것도, 실제로 일반 서민들 반응을 직접 들어보면 냉소만 가득하다는 게 사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뉴딜인지, 그걸 실제로 체감하며 반응할 국민들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 점을 실감하는 이가 행정부 안에서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겠다. 자전거길이라는 걸 만들겠다고 했다. 그것도 전국을 일주할 수 있도록 국토 전체에다 만든다고 한다. 녹색뉴딜이라는 게 제대로 되려면, 일단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과 등하교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도시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는가? 지금 당장 전국의 아이들 중에서 자전거로 등하교 할 만한 여건이 갖춰졌다는 지역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도시 내부에서 자전거를 마음껏 타고 다닐 수 있는 게 진정한, 더 중요한 뉴딜이라는 거다.
그런데 지금 추진한다는 자전거길이라는 건 뭔가. 어느 충성스러운 전직 의원 하나를 위한 산책코스를 만들듯, 그에게 전국일주 하라고 국토를 잘라 길을 내고 생명의 길을 양분하는 게 전부 아닌가. 이건 절대로 말이 안 되는 거다.
- 군가산점에 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그건 굉장히 차별적인 요소가 강해서 이전 정부가 일부 계층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막았던 사항이었다. 그걸 이번에 다시 부활시키려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대안을 생각하고 계시는가.
군가산점제도라는 것은 아주 소수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다수가 혜택을 받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제도이다. 그래서 역시 위헌소지가 많기 때문에 통과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여당의 의원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까, 어떻게 추진될지 예측한다는 게 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제도가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왜곡된 제도라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으로 바꿔야 함은 당연한 일 아닌가.
- 요즘 현안 중 하나가 공동모금회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도 법안이 제출이 됐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은 아주 웃기지도 않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선 정부가 만들었던 법을 E의원이 냈다가, 그것을 다시 고쳐서 F의원이 냈다가, 그 다음에 또 바꿔서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로 냈더라. 열한 명의 서명을 받아서 급조한 형태로 발의를 한 것이다. 뭔가를 고칠 게 있어서 그렇게 연이어 번복했던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하도 욕을 먹다 보니까 그 열한 명 중에 두 명의 의원이 자기들은 빠지겠다며 나가버렸다.
열 명 이상이 발의를 해야 하는데, 두 명이 빠지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서둘러 두 명을 다시 확보한 다음, 재차 비슷비슷한 안건을 다시 발의했던 거다. 그건 뭔가.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쇼를 하고 있다는 한마디 이외에 언급할 거리도 없는 셈이다.
-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추진하려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게 아닌가.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된다. 겉으로는 경쟁을 통해서 모금과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거라 한다. 그런데 그걸 서민 어느 누가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는가. 실제로는 한나라당과 현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단체들의 재원 마련이 최우선적 급선무이다. 지난번에 참여연대가 모금운동을 한 차례 했다가 크게 힘들어졌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정반대로 보수단체들이 총연합해서 큰 행사를 했었다. 게다가 각 대기업에게 찬조금으로 돈을 보내라는 협조문까지 보냈다는 것도 다 밝혀진 바 있다.
- 맞다. 시민단체들의 후원행사를 맹비난했던 이들이, 반(半)강압적으로 자신들에게 후원하도록 협조공문을 보낸 게 맹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 후원금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바로 공동모금회를 장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공동모금회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법 자체가 독립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법을 뒤집어야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주무를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자금을 풍족하게 안겨주고 싶으니까 결국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지원 방향을 여러 개로 나눠서 특정단체만 지원할 수 있도록 틀을 바꿔 만들겠단다. 뻔하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진보적 시민단체를 지정하며 기부를 하겠는가. 아주 쉽게 기금을 가져가겠다는 건데, 생각해 보자. 정부가 국민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까지 주무르려 하는 게 정상적인 발상인가.
- 말씀을 듣다 보니까, 많은 일들이 의원님한테 몰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공동모금회의 이사였지 않은가. 나는 공동모금회가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모금회에 문제가 있다면, 또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단체들의 불만이 많다고 하면 제도를 보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서로 물고 뜯고 싸우게 만드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 데까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손을 대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약간 다른 얘기인데, 밖에서 계시다가 이렇게 안에 들어와 활동하시는 게 어떤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이 상당한 무력감에 휩싸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물론 잘 알고 있다.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 문제는 합리적·상식적으로 뭔가 통해야 하는데, 그런 소통과 순리적 행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에, 밖에서도 고민들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의원님한테 더 많은 짐들이 건네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의외로 나한테 부탁하거나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나는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부분 내가 청소년 문제 중심으로 할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에, 주로 아동 청소년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 또 여성 문제 분야에서도 많이 활동하지 않으신가.
복지위를 하면서도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성 문제도 많이 위축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진보적 단체들이 좌절이라고 해야 할까. 힘이 많이 빠지고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촛불이 저렇게 되고 난 다음에, 다들 여러 가지로 고민들을 깊게 하고 있는 중이다.
촛불을 저런 방식으로 장기전으로 끌고 갔던 것이 옳은가 아닌가 여부에서부터 ‘박수칠 때 떠나라’와 비슷한, 끝맺음의 시점을 잘 택했어야 하는데, 최고조로 올라갔을 때 그때 딱 매듭을 짓고 재충전으로 돌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항상 되풀이하게 된다. 물론 중요한 건 지금부터 앞으로가 아니겠는가.
-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이것만큼은 꼭 하고 싶다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
그거야 당연히 많다.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은데, 현실적이냐 여부가 우선 문제가 된다. 오히려 일을 하면서 ‘이게 꼭 필요한가?’ ‘이것이 미치는 영향이 어떨까?’를 항상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거,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건 개인적인 입장도 있지만, 당의 입장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출된다.
- 예전에 청소년위원회에도 계셨지만, 그동안 해놓은 게 많으신데 요즘은 역으로 그것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 같은 것도 많으실 것 같다.
아동 청소년 부분은 상대적으로 좀 적은데, 복지나 이런 것들은 일을 추진시킬 때마다 공격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교육 정책에 있어서는 너무 심하게 경쟁 중심으로 가고 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저들의 철학 같지 않은 철학을 계속 관철시키고 있는데, 그런 왜곡된 철학이 통과되고 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본질적인 체질개선보다는 보여주기식 구조조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 요즘 경제가 굉장히 힘들어서 아이들, 특히 학생들의 학자금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긴급지원법에 학자금이 빠져 있다는 게 맞는 건가.
긴급복지지원에 학자금이 없더라. 그래서 이번 예산에 그걸 넣으려고 한 거다. 고등학교 등록금 같은 건 지원해야 하지 않겠나. 애들이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둔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그래서 그 법안을 지금 내놓은 상태이다. 현행법에서는 생계지원·의료지원·주거지원·사회복지시설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정작 교육지원은 관련 근거가 없어 지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마치고, 등록금이 없다고 해서 고등학교 교육에서 열외가 된다는 피해야 할 게 아닌가.
- 사교육 열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교육마저 받지 못한다는 건 반드시 피해야 할 일 같다.
그렇다. 공교육이 제대로 서 있다면 그나마 문제가 없겠지만, 공교육이 무너지니까 전부 다 사교육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그런 사교육이 긴급복지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한테까지 혜택으로 가는 건 무리라는 게 정말 많이 안타깝다.
- 의원님의 고민도 상당한 것 같다. 해결방안은 구체적으로 제시되는데도, 가장 답답한 건 자체적으로 법안통과가 불가능한 현실적 의원 숫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명분 있는 내용들을 무조건 반대하고 그러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체제유지적인, 정권유지적인 것들은 한나라당이 절대 양보를 안 한다. 그런 것들이 큰 덩어리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정작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산과 정책이 뒤로 밀리기만 하는 거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이다.
- 국회 안에서 직접 대하시는 입장에서, 복지 분야에 대한 여당의 시각은 어떤가. 너무 많이 지출한다는 식으로만 판단하는 것인가.
퍼붓는 복지에 대해선 다들 아니라고 본다. 어떤 제도를 이런 걸로 하면 좋겠다고 제의하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선적으로 계속 언급한다. 이렇게 하면 누가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대신에 그런 얘기는 대놓고 하지 못하며 조심스럽게 발언하는 편이다. 복지 분야에 대해서 무지막지하게 대놓고 반대하거나 폄하를 하진 못한다는 거다. 그 대신 경쟁을 유발하며 자신들이 우선순위라고 정한 원칙들이 있지 않은가.
4대강 사업이나 해외 병원 유치와 같이, 자신들이 꼭 하려고 하는 것들은 반드시 관철시키려고 끊임없이 제기를 한다. 기본 시각 자체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표결로 밀고가려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기권을 하고 퇴장한 상태로 여당 단독의 박수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표로 밀릴 때는 참 가슴이 아프다. 야당을 다 합쳐도 숫자가 적으니까.
- 마무리 차원에서 장애 문제를 질문 드리고 싶다. 이전 정부가 전동휠체어 무상공급 등으로 밖으로 나오라 해서, 지금 많은 이들이 밖으로 나온 상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온 다음에 실제적으로는 할 만한 게 없다는 거다. 이게 지금 시급한 현안이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이동권에 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게 아닌가. 그리고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역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현실적으로 중증장애인들이 가장 시급하게 원하고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가.
- 본론적으로 연금을 원한다. 사실상 현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없다 해도 인간적인 기본 문화권은 향유하고 싶다는 거다. 물론 기초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의 얘기이다. 궁극적으로는 전동휠체어 공급 다음의 단계가 실행되어야 한다는 거다.
중증장애인들에게 일을 하라는 것 자체가 잔인한 발상이라는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실질적인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심도 있게 검토해 보겠다. 복지위원회에 장애인 의원님들이 많이 계시기에, 함께 토론하고 생산적인 좋은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겠다.
- 장애인 의원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 분들이 항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바로 예산 문제이다. 예산 부족이라는 벽 앞에서는 어떤 좋은 제도나 법률이라도 사실상 무용지물로 빠져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일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연금 문제는 확실하게 해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 대신 경증인 분들한테는 그 수익이 적든 많든 간에 일을 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함이 마땅하다. 일을 함으로써, 노동으로써 자신의 삶의 가치와 존재이유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회적 틀을 만드는 거다.
- 장애인들끼리 모여 일을 할 수 있는 게 가능한 영역도 많이 있다. 그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아주 적절한 의견이다. 예를 들어서 몸은 불편하더라도 올바른 발음과 손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전화교환이나 콜센터 같은 곳은 장애인들을 위해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나 역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영역을 계속 찾고 특화시켜서, 맞춤형 업무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최대한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한다.
더불어 정부와 국회에게 조언을 전하고 싶다. 무조건적인 수혜를 바란다느니, 모럴 해저드가 우려된다는 식의 발언을 더 이상 장애인들에게 하지 말기를 권고한다. 장애인 스스로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 국가가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장애인의 ‘의지’를 만드는 일까지는 시스템을 갖춰놓은 다음, 그 다음에 국가가 해야 할 말을 정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헌법 제2장 제10조)
국가의 기본은 국민이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삶이 원활하고 윤택하게 이루기 위해 국가라는 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과연 그럴까? 국가는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누구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움직이는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지금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되는가.
소외계층이 완전히 배제되고 서민들의 박탈감이 최고치로 끓어오르며, 최소한도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마저 포기해야 하는 이 왜곡된 질서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폭 삭감되고 사라져버린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국가 예산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 입법 활동 중인 국회 예산결산특위와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민주당 최영희 국회의원을 만나, 문제점의 원인과 대안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 ⓒ채지민 객원기자 |
<함께걸음>과의 만남은 무척 오랜만인 것 같다. 정말 반갑다.
- 지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서 입법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번 복지 예산이 많이 삭감된 것 같다. 어느 예산이 어떻게 줄어든 건가.
우선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복지부에서 예산을 세웠을 때, 청소년 예산과 장애인 예산이 많이 깎여 있었다. 복지부측은 자기들이 예산을 세웠을 때 복지부 예산을 9% 증가시켰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증가시킨 건 참여정부에서 법제화시켰던 내용들뿐이었다. 이미 법제화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주지 않을 수 없는 예산, 즉 법정예산인 것이다. 그런 부분만 늘어났고, 그게 늘어나니까 다른 데서 가지고 올 추가 예산이 없지 않은가.
이런 건 복지부 차원에서 지식경제부 같은 곳과 싸워서라도 확보해야 했는데 그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2% 정도 성장을 했는데, 장애인 예산과 청소년 예산 위주로 많이 깎여버린 거다.
- 복지 정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과 청소년 예산이 일방적으로 삭감됐다는 건 정말 잘못된 예산 정책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 때문에 장애인 의원님들이 굉장히 분노했었고, 나 또한 청소년 예산이 깎인 걸 가지고 크게 화를 냈다. 지금 국회에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계신 의원님들이 여덟 분이나 계신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보건복지가족위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그 분들 앞에서 장애 예산을 삭감해버린다는 건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오만한 발상이다.
- 그런 상황에서 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전개됐나.
우리가 복지위원회 예결산소위원회이고 거기에 많은 의원님들이 계셨기에, 장애인 관련 예산을 크게 올려서 다시 책정했다. 청소년 예산은 내가 내 분야 예산을 앞장서서 올리기가 좀 그런 상황에 있었기에, 아주 작은 몇 가지만 올렸다. 대신 결식아동 문제 등 아동 분야 예산을 대폭 올렸다. 복지부에서는 못하겠다는 대답만 나왔다. 국가예산으로는 못하겠다는 거다. 지방에다가 이미 넘어간 사안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굶고 있는 8만 명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강하게 반박했던 거다.
- 결식아동 문제는 과거 IMF 시절을 능가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 문제를 중앙정부가 수수방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방관한다 해도, 당장 굶는 아이들의 현실마저 외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주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식아동의 숫자를 IMF 당시 기준으로 8만 명 정도 예측하며 계산했었는데, 실제로는 그 숫자가 이미 16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8만 명으로 계산했던 예산마저도 실제로는 반도 채우지 못한 거다. 그렇게 예산안을 올렸는데, 그게 예결위에 가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예결위는 나중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일사천리로 처리해버렸다. 여야가 같이 논의했던 것마저 다 묵살했고, 자기들이 올려주고 싶은 것들만 골라 예산을 증액시켰다. 정말로 소외계층을 위한 예산은 거의 빼버린 거다. 그렇다. 다 빼버렸다.
- 아무리 다수당의 횡포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배려나 윤리 같은 것마저 외면할 수 있다는 건가.
하다못해 한나라당 의원이 요구했던 것조차도 안 해줬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 중에서 적어도 지역아동센터 관련 예산, 이건 해주겠지 하며 걱정을 안 했었는데 이것마저도 빼버렸다. 또한 보육교사들이 지금 굉장히 어려운 처지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여야 의원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아, 이 부분은 당연히 되겠지.’ 하며 안심했었고, 계수조정소위원회에 들어간 우리당 의원들한테도 개별적으로 일일이 부탁을 드렸었다. A의원한테는 ‘A의원님은 이걸 꼭 맡아 주세요.’ B의원한테는 ‘B의원님은 보육교사 수당 주는 거, 담임수당을 주는 거, 이런 건 반드시 맡아주셔야 해요.’ 그렇게 부탁을 드렸던 의원님들 모두 자기가 그건 꼭 맡아서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걸 제시할 기회조차 없이, 마지막에 몇몇 한나라당과 정부관계자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뚝딱 날치기로 통과해 버린 거다.
▲ ⓒ채지민 객원기자 |
한나라당이 의례적으로 준 거, 시혜라도 하듯이 준 거, 아니면 시늉만 한 것들만 남았다. 예를 들어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은 지금 말이 아니다. 시설은 완전히 망가져 있다. 건물에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이다. 건드리면 부분마다 무너진다. 화장실도 한참 걸어가야 나온다.
바람이 거칠고 센 섬에서 어르신들이 밤에 나와 그 바람을 맞으며 화장실에 가야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라. 다 뚫린 창문틀 속에서 겨울을 나는 그들을 어떻게 그대로 방치해 둘 수가 있다는 말인가. 소외계층의 삶을 애써 외면한다 해도, 최소한의 기본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 여당 의원 전체가 모두 다 똑같은 의견이었나.
예외가 있다. 나는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님이 참 훌륭하다고 본다. 우리가 당시 본회의장 단상앞에서 항의하던 상황이라서, 민주당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런데 예결위에서 임두성 의원님이 혼자 예산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것이다.
- 솔직히 궁금해진다. 아무리 보수 일색의 여당이라지만, 소외계층에 그만큼 몰이해로 일관할 수가 있는 건가.
그건 아니라고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장애인 관련 예산이 거의 다 뭉개지듯 삭감됐지만, 의원 개개인들의 성향까지 무조건 그런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원을 약속했고,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상식적인 수준의 예산안 통과는 반대하지 않겠다던 내용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에 가서 단번에 뒤집혀버렸다.
- 갑자기 뒤집어졌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가.
예결위의 총대를 메고 있던 여당의 D의원이 어느 중요한 시점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D의원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이후로, 예산안 책정과 통과의 분위기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제3의 장소에서 제3의 세력들과 모든 걸 다 결정한 뒤 나타났다는 의미가 된다.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소문에 따르면 D의원이 국회의 권위마저 무시하는 ‘어느 곳’의 호출에 따라 지식경제부와 셋이 만나서 일괄적으로 모든 결론을 미리 내렸다고 한다. 직접 확인할 길이 없다 해도, 국회 내에서의 소문은 항상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다.
- 결식아동급식 문제는 시급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의무적인 사항이다. 그런데도 그 예산 확보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건가.
운영하는 과정에서 비어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절대예산이 부족하다. 그때도 복지부가 안 된다고 난리를 쳤는데, 그럼 애들을 굶어죽이라는 말이냐. 애들을 굶기는 건 나라도 아니다. 그게 어떻게 국가냐? 하며 호통을 쳐야 했다.
- 원래 얼마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었나.
그건 아예 하나도 없었다. 결식아동지원액이 원래부터 없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지방자치단체에 그 예산이 이미 넘어가 있으니까,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거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만을 호소하며 지원할 금액이 턱없이 모자란다고만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게 공을 떠넘기는 책임회피만 지루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 그 지원이라는 게 결손가정 같은 범위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건가.
아니다. 우선 당장 밥을 굶는 아이들, 특히 방학 동안에 학교 급식을 못하며 대안 없이 굶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예산 책정을 주장했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못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막혀 있던 중에, 예산안을 일단 올려보기는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차피 지경부에서 반대할 게 아닌가. 그런데 안건을 올리고 강력하게 밀었더니 그 예산은 통과가 됐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일이 뭔지 아는가.
보건복지가족부가 금년도 사업계획서를 보고하면서, ‘결식아동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따위의 타이틀을 내걸었다는 거다. 도대체 이런 사기꾼들이 어디 있는가. 자기들 스스로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말을 자기 홍보로 내걸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 야당이 그렇게 요구하며 싸울 때는 절대 못하겠다더니, 그러한 예산과 목록도 없다며 끝까지 강변하더니, 우리가 싸우며 관철시켜 낸 걸 자기네 홍보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게, 이게 정상적인 사고로 말이나 되는 일인가.
- 그럼 최소한도로 필요한 예산은 얼마이고, 지금 확보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지금 벌써 16만 명이 생겼다면 400억이 아니라 800억 이상 필요한 게 아닌가. 이번에는 ‘결식아동지원금’으로 421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 모자란다면 더 늘려야 할 게 아닌가.
당연히 더 늘려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진짜로 큰 문제는 이 정부가 이미 추경예산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다. 그것은 SOC, 그러니까 사회간접자본이라는 토목공사를 대규모로 확대하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이 정부는 SOC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SOC사업 예산만 늘이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다시 온 국민이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반대할 게 분명한 일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위장막을 앞에 내놓는 전술을 택하려 하는 거다.
이 불쌍한 서민 대중을 위해 해야 하는,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부문 위주로 추경예산안 목록의 맨 앞에 올리는 거다. 그래서 서민을 명분 삼아 앞에 내세우면서, 뒤로 감춘 자신들의 SOC 추진의 방패를 삼겠다는 속셈이 담긴 것이다.
- 도대체 그 예산이 얼마나 추경으로 포함되기에, 서민들을 방패로 쓰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건가.
일반 서민들의 눈에 띌 만한 몇몇 내용들, 예를 들어 홍보하기 쉽고 듣기 편한 내용으로 2천억 정도를 우선순위 맨 위쪽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놓은 뒤, 자신들의 SOC 사업 예산을 2조든 3조가 되든 간에 그림자처럼 아래쪽에 포함시키는 거다. 그런 방식이 될 거라고 이미 예측되고 있다. 올해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기도 전에 추경예산을 준비한다는 거, 그건 사실상 사기행위와 같다. 자신들만의 입지 마련을 위해 국민들의 멀쩡한 눈을 가리는 게 뭔가. 그런 게 바로 사기인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지금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자기 업적 중심의 4대강 사업이나 전국 자전거길 신설 등,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사업에 관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지 않은가. 50조원 내외의 녹색뉴딜이라는 걸 관철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복지예산을 구색 맞추기로 그 앞에 끼워 넣기 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를 앞에 내세우며 그걸 반드시 받아들이도록, 다시 말해 이번 추경예산을 안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그 전략에 국민 모두가 지금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주 간교한 눈가림이다.
- 그런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얼마 전에 내시지 않았나. 일본의 예를 들어 관급 토목공사의 국가적 문제점을 지적하셨던 걸 알고 있다.
(註 1 : 최영희 의원은 OECD 최대 규모의 일본 정부부채 원인과 현황을 조사한 ‘경제성 없는 SOC 지출의 후유증’이라는 보고서를 최근에 발표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토목지출을 통한 정부부채 증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발간한 이 자료집은, 경제대국 일본이 지금 왜 국가적으로 심각하게 휘청거리고 있는지의 근본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토목을 앞세우는 게 얼마나 허구인지, 진정한 투자는 복지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외국의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 어차피 복지라는 건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복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국가예산낭비라고 무조건 손사래를 치는 분들이 많은데, 복지예산증가의 진정한 의미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미래에 사용될 국가적 비용을 미리 절약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이건 선진복지국가들이 이미 다 실제적 증거로 국민들 앞에 증명해 낸 정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가까운 미래에 투입될 투자를 미리 하겠다는 것이고, 그 투자는 앞으로 들어갈 비용을 가시적으로 줄이는 것이기에, 복지에 투자한다는 건 사실상 나라 전체가 돈을 버는 일이다.
- 복지에 대한 선행투자가 그렇게 가시적인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건 일반상식 같은 해답이 이미 나와 있다. 학계든 사회시민단체든 간에, 복지 관련 투자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그런 투자를 ‘퍼붓기’라는 무조건적인 낭비로 폄하하는 보수세력의 발목잡기 또한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정답과 오답 사이에서 의견이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이 지금 왜 허우적대고 있는지를 관찰하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남의 나라 사례를 왜 연구하고 공부하는가. 학계든 시민단체든 간에, 외국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면밀히 관찰하는 이유가 뭔가.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 안에서 외국의 예를 검토하는 전문가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가. 그걸 연구하고 얻게 된 정답을 국가 운영에 반영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전부 다 거꾸로 번역하며 실행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 그렇게 하는 걸까? 국가 차원의 이익 이전에 자기들을 밀어줬던, 자기들의 중심이 됐던 특정세력과 소수의 기득권층, 또한 건설 중심의 입안자들을 위해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註 2 : 최영희 의원이 발간한 보고서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 1990년대 건설공사를 통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썼던 일본은, 1998년 이후 공채발행액이 세입의 65%를 넘어서는 상황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또한 2003년에는 세입액의 82%에 이르는 금액을 공채 발행액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까지 맞으면서, 일본의 적자재정은 결국 엄청난 재앙 수준의 후유증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 녹색뉴딜이라는 것도, 실제로 일반 서민들 반응을 직접 들어보면 냉소만 가득하다는 게 사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뉴딜인지, 그걸 실제로 체감하며 반응할 국민들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 점을 실감하는 이가 행정부 안에서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겠다. 자전거길이라는 걸 만들겠다고 했다. 그것도 전국을 일주할 수 있도록 국토 전체에다 만든다고 한다. 녹색뉴딜이라는 게 제대로 되려면, 일단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과 등하교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도시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는가? 지금 당장 전국의 아이들 중에서 자전거로 등하교 할 만한 여건이 갖춰졌다는 지역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도시 내부에서 자전거를 마음껏 타고 다닐 수 있는 게 진정한, 더 중요한 뉴딜이라는 거다.
그런데 지금 추진한다는 자전거길이라는 건 뭔가. 어느 충성스러운 전직 의원 하나를 위한 산책코스를 만들듯, 그에게 전국일주 하라고 국토를 잘라 길을 내고 생명의 길을 양분하는 게 전부 아닌가. 이건 절대로 말이 안 되는 거다.
- 군가산점에 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그건 굉장히 차별적인 요소가 강해서 이전 정부가 일부 계층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막았던 사항이었다. 그걸 이번에 다시 부활시키려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대안을 생각하고 계시는가.
군가산점제도라는 것은 아주 소수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다수가 혜택을 받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제도이다. 그래서 역시 위헌소지가 많기 때문에 통과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여당의 의원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까, 어떻게 추진될지 예측한다는 게 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이 제도가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왜곡된 제도라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으로 바꿔야 함은 당연한 일 아닌가.
- 요즘 현안 중 하나가 공동모금회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도 법안이 제출이 됐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은 아주 웃기지도 않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선 정부가 만들었던 법을 E의원이 냈다가, 그것을 다시 고쳐서 F의원이 냈다가, 그 다음에 또 바꿔서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로 냈더라. 열한 명의 서명을 받아서 급조한 형태로 발의를 한 것이다. 뭔가를 고칠 게 있어서 그렇게 연이어 번복했던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하도 욕을 먹다 보니까 그 열한 명 중에 두 명의 의원이 자기들은 빠지겠다며 나가버렸다.
열 명 이상이 발의를 해야 하는데, 두 명이 빠지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서둘러 두 명을 다시 확보한 다음, 재차 비슷비슷한 안건을 다시 발의했던 거다. 그건 뭔가.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쇼를 하고 있다는 한마디 이외에 언급할 거리도 없는 셈이다.
-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추진하려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게 아닌가.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된다. 겉으로는 경쟁을 통해서 모금과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거라 한다. 그런데 그걸 서민 어느 누가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는가. 실제로는 한나라당과 현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단체들의 재원 마련이 최우선적 급선무이다. 지난번에 참여연대가 모금운동을 한 차례 했다가 크게 힘들어졌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정반대로 보수단체들이 총연합해서 큰 행사를 했었다. 게다가 각 대기업에게 찬조금으로 돈을 보내라는 협조문까지 보냈다는 것도 다 밝혀진 바 있다.
- 맞다. 시민단체들의 후원행사를 맹비난했던 이들이, 반(半)강압적으로 자신들에게 후원하도록 협조공문을 보낸 게 맹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 후원금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바로 공동모금회를 장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공동모금회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법 자체가 독립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법을 뒤집어야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주무를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자금을 풍족하게 안겨주고 싶으니까 결국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지원 방향을 여러 개로 나눠서 특정단체만 지원할 수 있도록 틀을 바꿔 만들겠단다. 뻔하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진보적 시민단체를 지정하며 기부를 하겠는가. 아주 쉽게 기금을 가져가겠다는 건데, 생각해 보자. 정부가 국민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까지 주무르려 하는 게 정상적인 발상인가.
- 말씀을 듣다 보니까, 많은 일들이 의원님한테 몰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공동모금회의 이사였지 않은가. 나는 공동모금회가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모금회에 문제가 있다면, 또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단체들의 불만이 많다고 하면 제도를 보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서로 물고 뜯고 싸우게 만드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 데까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손을 대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물론 잘 알고 있다.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 문제는 합리적·상식적으로 뭔가 통해야 하는데, 그런 소통과 순리적 행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에, 밖에서도 고민들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의원님한테 더 많은 짐들이 건네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의외로 나한테 부탁하거나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나는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부분 내가 청소년 문제 중심으로 할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기에, 주로 아동 청소년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 또 여성 문제 분야에서도 많이 활동하지 않으신가.
복지위를 하면서도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성 문제도 많이 위축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진보적 단체들이 좌절이라고 해야 할까. 힘이 많이 빠지고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촛불이 저렇게 되고 난 다음에, 다들 여러 가지로 고민들을 깊게 하고 있는 중이다.
촛불을 저런 방식으로 장기전으로 끌고 갔던 것이 옳은가 아닌가 여부에서부터 ‘박수칠 때 떠나라’와 비슷한, 끝맺음의 시점을 잘 택했어야 하는데, 최고조로 올라갔을 때 그때 딱 매듭을 짓고 재충전으로 돌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항상 되풀이하게 된다. 물론 중요한 건 지금부터 앞으로가 아니겠는가.
-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이것만큼은 꼭 하고 싶다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
그거야 당연히 많다.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은데, 현실적이냐 여부가 우선 문제가 된다. 오히려 일을 하면서 ‘이게 꼭 필요한가?’ ‘이것이 미치는 영향이 어떨까?’를 항상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거,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건 개인적인 입장도 있지만, 당의 입장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출된다.
- 예전에 청소년위원회에도 계셨지만, 그동안 해놓은 게 많으신데 요즘은 역으로 그것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 같은 것도 많으실 것 같다.
아동 청소년 부분은 상대적으로 좀 적은데, 복지나 이런 것들은 일을 추진시킬 때마다 공격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교육 정책에 있어서는 너무 심하게 경쟁 중심으로 가고 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저들의 철학 같지 않은 철학을 계속 관철시키고 있는데, 그런 왜곡된 철학이 통과되고 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본질적인 체질개선보다는 보여주기식 구조조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 요즘 경제가 굉장히 힘들어서 아이들, 특히 학생들의 학자금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긴급지원법에 학자금이 빠져 있다는 게 맞는 건가.
긴급복지지원에 학자금이 없더라. 그래서 이번 예산에 그걸 넣으려고 한 거다. 고등학교 등록금 같은 건 지원해야 하지 않겠나. 애들이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둔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그래서 그 법안을 지금 내놓은 상태이다. 현행법에서는 생계지원·의료지원·주거지원·사회복지시설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정작 교육지원은 관련 근거가 없어 지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마치고, 등록금이 없다고 해서 고등학교 교육에서 열외가 된다는 피해야 할 게 아닌가.
- 사교육 열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교육마저 받지 못한다는 건 반드시 피해야 할 일 같다.
그렇다. 공교육이 제대로 서 있다면 그나마 문제가 없겠지만, 공교육이 무너지니까 전부 다 사교육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그런 사교육이 긴급복지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한테까지 혜택으로 가는 건 무리라는 게 정말 많이 안타깝다.
- 의원님의 고민도 상당한 것 같다. 해결방안은 구체적으로 제시되는데도, 가장 답답한 건 자체적으로 법안통과가 불가능한 현실적 의원 숫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명분 있는 내용들을 무조건 반대하고 그러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체제유지적인, 정권유지적인 것들은 한나라당이 절대 양보를 안 한다. 그런 것들이 큰 덩어리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정작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산과 정책이 뒤로 밀리기만 하는 거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이다.
- 국회 안에서 직접 대하시는 입장에서, 복지 분야에 대한 여당의 시각은 어떤가. 너무 많이 지출한다는 식으로만 판단하는 것인가.
퍼붓는 복지에 대해선 다들 아니라고 본다. 어떤 제도를 이런 걸로 하면 좋겠다고 제의하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선적으로 계속 언급한다. 이렇게 하면 누가 일을 하겠냐는 것이다. 대신에 그런 얘기는 대놓고 하지 못하며 조심스럽게 발언하는 편이다. 복지 분야에 대해서 무지막지하게 대놓고 반대하거나 폄하를 하진 못한다는 거다. 그 대신 경쟁을 유발하며 자신들이 우선순위라고 정한 원칙들이 있지 않은가.
4대강 사업이나 해외 병원 유치와 같이, 자신들이 꼭 하려고 하는 것들은 반드시 관철시키려고 끊임없이 제기를 한다. 기본 시각 자체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표결로 밀고가려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기권을 하고 퇴장한 상태로 여당 단독의 박수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표로 밀릴 때는 참 가슴이 아프다. 야당을 다 합쳐도 숫자가 적으니까.
- 마무리 차원에서 장애 문제를 질문 드리고 싶다. 이전 정부가 전동휠체어 무상공급 등으로 밖으로 나오라 해서, 지금 많은 이들이 밖으로 나온 상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온 다음에 실제적으로는 할 만한 게 없다는 거다. 이게 지금 시급한 현안이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이동권에 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게 아닌가. 그리고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역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현실적으로 중증장애인들이 가장 시급하게 원하고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가.
- 본론적으로 연금을 원한다. 사실상 현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없다 해도 인간적인 기본 문화권은 향유하고 싶다는 거다. 물론 기초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의 얘기이다. 궁극적으로는 전동휠체어 공급 다음의 단계가 실행되어야 한다는 거다.
중증장애인들에게 일을 하라는 것 자체가 잔인한 발상이라는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실질적인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심도 있게 검토해 보겠다. 복지위원회에 장애인 의원님들이 많이 계시기에, 함께 토론하고 생산적인 좋은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겠다.
- 장애인 의원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 분들이 항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바로 예산 문제이다. 예산 부족이라는 벽 앞에서는 어떤 좋은 제도나 법률이라도 사실상 무용지물로 빠져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일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연금 문제는 확실하게 해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 대신 경증인 분들한테는 그 수익이 적든 많든 간에 일을 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함이 마땅하다. 일을 함으로써, 노동으로써 자신의 삶의 가치와 존재이유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회적 틀을 만드는 거다.
- 장애인들끼리 모여 일을 할 수 있는 게 가능한 영역도 많이 있다. 그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아주 적절한 의견이다. 예를 들어서 몸은 불편하더라도 올바른 발음과 손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전화교환이나 콜센터 같은 곳은 장애인들을 위해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나 역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영역을 계속 찾고 특화시켜서, 맞춤형 업무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최대한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한다.
더불어 정부와 국회에게 조언을 전하고 싶다. 무조건적인 수혜를 바란다느니, 모럴 해저드가 우려된다는 식의 발언을 더 이상 장애인들에게 하지 말기를 권고한다. 장애인 스스로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 국가가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장애인의 ‘의지’를 만드는 일까지는 시스템을 갖춰놓은 다음, 그 다음에 국가가 해야 할 말을 정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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