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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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객원기자 |
그렇다면 이렇게 달리고 난 후의 도착점은 어디이고 또한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달릴 때는 옆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목숨마저 걸듯이 달렸는데, 도착점에 대한 질문 앞에선 명확한 대답이 거의 없다.
자신이 왜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는지의 이유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달려왔던 이후의 결론이 무엇인지는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건 ‘지금 당장의 현실’ 하나만을 마주 대하며 살고 있다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마저 망각하며 지냈다는 우리 자신과 이 사회의 병리적 현상의 반증인 셈이다.
나는 달린다.
한 여인이 말을 타고 있다 했다. 그것도 남성 위주의 타성으로 집중된 승부의 세계 안에 살고 있다 했다. 더불어 그 여인의 언니한테 장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매의 삶을 기록해 보자는 결정이 편집부에서 내려졌다.
오케이, 좋다. 하라면 한다. 달리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달릴 준비는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취재하려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애매했다. 무엇을 타깃으로, 도대체 어떤 내용을 주된 테마로 적어야 한다는 말인가….
파란 하늘이 무척 맑았던 5월 중순 어느 날, 과천 경마공원의 주차장에 내려섰다. 편집부와 계속 나눴던 대화의 결과는 ‘있는 그대로’였다. 그래, 바로 그게 정답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중요한 거지, 무슨 포장지를 새로 꺼내며 덧칠한다는 말인가. ‘미녀 기수의 등장’이니 뭐니 하는 언론의 널뛰기에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오늘은 ‘유미라’라는 한 사람과 그의 언니를 만나, 그들의 인생과 삶의 발걸음을 뒤따라가면 되는 일이다.
미라 씨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의 차를 따라 경마공원 깊숙한 지점으로 함께 이동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공간이리라 여겨지는 길가에 차를 세우며, 오늘의 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앞 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솟아났던 건 ‘어?’ 하는 놀라움이었다. 작고 마른 몸의 여린 소녀 같은 인물이 내리는 게 아닌가. 경마 또는 경주라는 생각에 빠져 있어서, 무언가 거칠고 단단하며 매서운 이미지만을 연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자만의 선입관은 그렇게 일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어 반대쪽 문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언니가 내렸다. 첫 인사부터 편안한 미소로 맞이하는 언니와 함께, 우리는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의 목재로 된 야외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드넓은 공간과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 그 모든 건 아주 잘 준비된 봄나들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대화의 물꼬를 어떻게 틀까?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건 역시 ‘말을 타는 기수’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냐고 물으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선수였고 고등학교는 체고를 나왔다 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왜소한 몸이라서, 큰 체구의 수영선수들 사이에서 힘이 많이 들었단다. 그런 상황일 때 눈에 띄었던 건 근대5종이라는 종목이었고, 수영·육상·사격·펜싱·승마로 이뤄진 근대5종 선수로 탈바꿈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기수(騎手)가 되기 이전에, 이미 승마는 일정 수준 이상 연마를 한 상태라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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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대해 특별한 관심 같은 건 없었는데, 어느 날 아빠가 한번 해보라며 제의를 하셨어요. 당시까지는 경주라는 게 정확히 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아빠가 그게 뭔지 알려준다며 저를 경마장에 데리고 가셨죠. 그래서 처음으로 경주 뛰는 걸 보게 됐는데, 이게 정말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아빠한테 말씀드렸죠. 시험 보겠다고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이 있었다. 경주용 말을 타는 기수들한테는 신체적 조건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남녀 모두 체중 제한이 49kg이란다. 51kg이나 55kg도 아니고 왜 하필 49kg이냐 물으니까, 말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무게가 49kg라는 것이다. 그걸 ‘부담중량’이라고 하는데, 기수가 체중조절에 실패할 경우 경주에 참가할 수도 없게끔 경마법(法)에 명시되어 있단다. 체중제한에 따르다 보니, 기수들의 키 또한 대부분 160cm 이하라 한다.
경마에 대해 잘 몰라서 제대로 된 질문을 못할 것 같다 하니까, 미라 씨는 미소 띤 얼굴로 곧장 한마디를 이었다. “그럼 한번 직접 느껴보세요. 정말 재미있거든요.” 1년에 1기수씩 선발하는 시험을 통과한 뒤, 기수후보생들이 훈련하는 원당목장에서 2년 동안 기숙사 생활과 함께 고된 연마의 시간을 보냈단다. 모든 과정을 거쳐 졸업을 해야만 경주할 수 있는 자격증이 주어진단다.
골프로 얘기한다면 프로골퍼로 정식 데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얼마에 한 번씩 경주를 하느냐 물으니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엔 계속 경주를 한단다.
경주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 모든 걸 여기에 다 옮길 필요는 없기에 정보공유의 차원에서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말을 타는 건 기수, 훈련을 담당하는 건 조교사, 그리고 말의 실제 주인인 마주(馬主)가 각각 따로 있다고 한다. 기수가 특정 말을 전담으로 타는 게 아니라, 마주가 원하는 기수를 자기 말에 태우는 시스템이란다. 마주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얼마 이상의 재산이 있어야 하고 말에 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마주 자격증이란 것도 따로 있단다. 그런 건 정말 처음 듣는 얘기들이다.
조교사가 특정 말을 훈련시키라 하면, 기수는 새벽부터 그 말을 경주에 참가할 몸으로 만들어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몸 상태 점검이 끝나면 마주한테 ‘오늘 OOO기수가 이 말의 훈련을 마쳤는데, 경주 때 OOO기수를 태워보겠다.’고 문의를 한단다. 그런데 마주가 왜 여자기수를 태우느냐고, 자기가 지명하는 누구를 태우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마친 말의 고삐를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럴 때는 정말 기분이 나쁘단다. 마주의 선택에 따라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모양이다.
“달릴 때의 기분은 정말 최고예요. 스릴이 있고 미리 경주 전개를 예상하며 달리는데, 한 마리 한 마리 제칠 때마다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제가 데뷔한 이후로 작년 12월에 처음 3착(3등)을 했는데, 사실 그때 탔던 말은 별로 인기가 없었던 말이었거든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3등으로 들어와서 너무 좋았어요.”
미리 둘러봤던 인터넷 기사에선 낙마(落馬) 얘기가 많이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작년 여름의 일인데, 달리던 도중 말의 배에 땀이 젖었는지 코너를 도는 동안 안장이 왼쪽으로 밀리며 내려갔다고 한다. 경주 도중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서, 팔꿈치가 빠지는 탈골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달 정도 깁스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때까지 가만히 동생의 말을 듣기만 하던 언니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병원에 입원했어요.”
언니가 된 동생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한 이후로, 언니는 동생 얼굴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 편안한 눈길로 동생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뭐랄까, 사랑과 믿음 같은 게 충만한 눈빛이었다고 할까? 동생이 웃으면 함께 웃고, 동생이 무거운 얘기를 하면 덩달아 어두운 얼굴로 똑같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첫 말을 꺼낸 것이었다. ‘병원에 입원했어요.’
언니의 이름을 물으니까 유효선이라고 했다. 동생이 다쳤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으니까 많이 속상했단다. “동생이 말 타는 거 좋으세요?” “네.” “동생이 말 타는 거 자주 보셨어요?” 언니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미라 씨가 질문을 이었다. “언니는 내가 말 타는 건 별로 본 적 없잖아.” 언니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말 타는 모습을 사진 같은 걸로 보면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이 좋아요.” “동생 멋있어요?” “네.” “같이 말을 타본 적은 없으세요?” “없어요. 무서워서….”
미라 씨가 부연설명을 이어주었다. 언니가 어렸을 때 심장수술을 해서, 심하게 움직이는 말 타기 같은 걸 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언니의 장애가 무엇인지 물으니까 정신지체 3급이고 초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7살과 8살 수준이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건지를 물으니까, 다섯 살 때 했던 그 심장수술 이후로 수술의 여파가 머리까지 올라왔는지 장애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장애로 있다가 심장수술 이후로 정신지체를 갖게 됐다는 거…, 혹시 의료사고는 아닌지 물으니까 어릴 때 겪었던 일이라서 거기까지는 잘 모르고 있다고 한다.
“병이라기보다는 심장이 약해서 다른 애들처럼 뛰어놀지도 못하고 해서,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심장수술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렸대요.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수술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어요. 가슴 한가운데 아래위로 꿰맨 흉터가 크게 남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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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는 기수 얘기로 시작했던 대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언니와 동생인 자매의 삶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지난 5월호에서는 장애아를 둔 엄마의 마음을 들은 바 있기에, 이번에는 장애를 가진 자매의 마음을 듣고자 한 게 원래의 취지였다. ‘편하게 질문하겠다’는 전제를 밝히며 본론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언니가 그런 상황이 됐을 때, 동생의 마음은 어떠했는지가 가장 먼저 궁금했다.
“어렸을 때… 솔직히 세 살 차이라면, 제가 아홉 살이면 언니가 열두 살인 거잖아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별다른 걸 느끼지 못하며 지냈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틀리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그래서 그때부터 ‘이젠 내가 언니 역할을 대신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셨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제가 언니이고 언니가 동생이라는 입장에서, 제가 도시락도 직접 싸가지고 언니한테 갖다 주곤 했어요.”
초등학교 때 미라 씨를 수영부에 ‘집어넣은’ 건 엄마였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의 이혼 이후 아빠한테 ‘엄마가 시킨 수영을 내가 왜 계속해야 하느냐.’며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단다. 그런데 아빠는 엄마도 없는 네가 지금 운동을 그만두면 나쁜 길로 갈지 모르니까 그냥 계속하라고 말리셨단다. 그러다가 대회를 한두 번 나가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정식으로 수영선수가 되어버린 셈이라 한다.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집에 있은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언니랑 같이 있을 때 평소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같이 외출해서 먹고 싶다는 거 같이 먹고, 영화 한 편을 보거나 옷 같은 걸 보러 다니곤 한단다. 음식 중에서 언니는 주로 뭘 좋아하느냐고 물으니까, 미라 씨가 ‘고기!’라고 대답했고 둘은 마주보며 잠시 웃었다. 둘만이 통하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옷 같은 걸 언니가 직접 표현하느냐 물으니까 그런 건 못한단다.
짧은 양말을 신을 때도 반스타킹이라도 되는 양 길게 잡아당기기 일쑤란다. 그게 아니라고 알려 주면 제대로 신는데, 그 다음에 신는 걸 보면 또 힘껏 잡아당기고 있단다.
“평소엔 굉장히 조용하고 가만히 있는데, 가끔씩 답답한가 봐요. 집을 나가서 못 찾은 적이 있었거든요. 한 보름 정도를 못 찾다가 경찰서에 가서 데리고 왔죠. 제가 중학교 때 그런 일이 한 번 있었고, 최근에는 작년에 또 한 번 있었어요. 돈이 있으면 버스를 아무거나 타요. 그러니까 가족 입장에서는 어느 노선의 어느 정류장에 내렸는지도 모르게 되고….”
언니 효선 씨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OOO 장애인복지관에 있으면서 2주에 한 번씩 집으로 온단다. 미라 씨는 후보생 시절 월요일 오전까지 교육을 받고 나와서 화요일에 들어갔는데, 언니 효선 씨는 토요일에 나와서 일요일에 들어갔기 때문에 못 만난 기간도 제법 길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의 시간을 조절해서, 월요일에 데리고 나왔다가 화요일에 복귀할 때 데려다 주는 생활도 한동안 이어갔단다.
▲ ⓒ채지민 객원기자 |
나름의 손재주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어도, 기숙사 개념이 아닌 출퇴근제이기 때문에 난감한 상태라고 한숨짓는다. 출근은 어떻게든 누가 시켜준다 하더라도, 퇴근에 맞춰 데리고 올 사람이 없다 보니까, 그 문제도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대목에선 두 사람 모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복지관에선 주로 어떤 생활을 하느냐고 물었다. 미라 씨가 질문을 되받았다. “언니, 뭘 조립한다고 그랬지? 뭘 한다고 했어?” 언니 효선 씨가 천천히 하나씩을 나열했다. “조립하는 거 배우고… 색종이 접는 법 같은 거… 색칠 공부하고… 한글 배우고….” 한글은 다 읽지 못하지만, 읽을 수 있는 글자 위주로 읽어간단다.
“받침이 어려운 건 못 읽더라고요. 그리고 시계도 못 봐요. 시계는 아무리 알려줘도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한 게 음악 같은 거 있잖아요. 돈이 있으면 어디 가서 최신가요 테이프를 알아서 사가지고 와요.
그래서 집에 가 보면 노래를 들으면서 혼자 막 따라하고 노래 가사를 외우는데, 그런 데는 감각이 남다르더라고요. 방송의 드라마 채널이 몇 번인지, 그런 건 또 정확히 기억을 해요. 시계는 볼 줄 모르는데, 방송 시간이 되면 딱 맞게 텔레비전을 켜서 보고… 그런 건 나름 뛰어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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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며
동생 입장에서 언니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면 좋겠냐고 물었다. 미라 씨는 언니 얼굴을 마주보면서 대답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뭔가를 만드는 데를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단다.
또 그런 곳에서는 봉급 개념으로 소액이라도 임금을 주니까,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기를 기대한단다. 그 대목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는 질문을 던졌다. 언니에게도 언니만의 인생이라는 게 있는 건데, 보통 말하는 ‘결혼하고 가정을 갖고 2세를 갖는’ 그런 걸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가 궁금했다.
“언니는 남자친구가 있대요. 결혼하고 싶다고도 말을 해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언니랑 같은 장애는 아니기를 바라고 있어요. 몸 어디가 불편한 장애가 있는 분이라면 상관이 없는데, 같은 장애는 좀…. 비장애와 결혼을 해도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아 걱정이 돼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 대목에서 언니 효선 씨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대화를 나눴던 내용 그대로를 아래에 옮겨 본다.
함께 : 남자친구 있으세요?
언니 : 네.
함께 : 동생한테 소개 안 했어요?
언니 : 안 했어요. 아빠한테도 소개 안 했어요.
함께 : 왜 안 하셨어요? 소개하시면 다들 반가워할 텐데.
동생 : 그러고 보니까 언니는 왜 소개를 안 해주는 거야?
언니 : 남자친구가 집이 멀어서요.
동생 : 집이 멀어서?
함께 : 얼마나 먼데요?
언니 : 집이 대구예요.
동생 : 대구?
함께 : 그럼 처음에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언니 : OOO(복지관)에서 처음 만났어요.
미라 씨에게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라 씨가 결혼을 하고 살아간다 해도, 거리상으로는 언니와 가까운 장소에서 살며 서로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미라 씨는 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단다. 가까운 곳에서 언니를 챙겨주던지, 아니면 만약에 결혼을 못하게 된다면 언니와 함께 둘이 산다든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곤 한단다.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냐고 다시 물으니까, 어릴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몇 해 전부터 현실적인 문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한다. 덧붙여서 아빠가 재혼을 하셨는데, 미라 씨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언니를 데리고 중국으로 들어가 사실 거라는 의견을 말씀하시는 모양이다. 언니를 데리고 갈 테니까, 미라 씨는 혼자서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하시는데, 그게 못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듯 보였다.
“제가 모 방송의 인간다큐 같은 프로그램을 찍어서 나온 적이 있었어요. 30분씩 두 번 나가는 방송이었는데, 거기서 지금 사는 생활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집에 가서 언니와 함께 지내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방송에 다 나왔죠. 그걸로 인해서 뭐라고 할까….
마주(馬主)들 중에서 그걸 보신 분들이 몇몇 계셨나 봐요. 저의 가정환경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격려를 하시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미라를 말에 태워라.” 이런 주문이 많아졌대요. 그래서 기승(말을 타는 것)이 많이 늘어났어요. 토요일과 일요일 합쳐서 다섯 마리를 채우지 못하고 두세 마리만 탔었는데, 방송이 나간 다음부터는 거의 꽉 채우며 타게 됐거든요. 그게 일정한 영향이 있더라고요.”
정말 조심스럽게 질문한다는 양해를 구하며 새롭게 물었다. 솔직하게 묻는 건데, 언니의 존재가 대외적인 사회활동에서 혹시라도 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듣고 싶었다. 미라 씨는 똑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이 나온 김에 민감하다 싶은 질문 하나를 더 이었다. 실제로 관련 단체에 종종 문의가 들어오는 사항인데, 형제자매 중 어느 한 명이 장애를 가졌을 경우에 대한 내용이다. 장애를 가진 이한테 부모의 관심이 더 모아지게 되고, 장애가 없는 이가 그걸 견디지 못해 혼자 스트레스를 받다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라면 그 증세가 심하다는 건데, 미라 씨는 그런 문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 싶었다. 의외로 미라 씨의 대답은 차분하고 간단명료했다.
“글쎄요. 그냥 저는 제가 언니라고 생각하고, 언니가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똑같잖아요.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으면 둘째한테 관심이 쏠리듯이,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더 편하고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또 그런 걸 계기로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집안이 저 하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제가 성공해서 아빠를 도와드리고 언니도 같이 끌어안고 가자, 이런 식이거든요. 그런 건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은데… 그렇죠? 저는 그런 ‘우울한’ 생각은 별로 안 해봤어요.”
사실 이렇게 대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대목을 간단하게 결론 내린다는 건, 그만큼의 깊은 골짜기를 미리 걸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깊이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오늘 대화의 마무리를 지을 겸, 언니한테 꼭 해주고 싶은 개인적인 마음을 이 지면에 언급하며 고백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미라 씨는 언니 효선 씨의 손을 꼭 잡으며, 마치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 곧장 입을 열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말하겠다는 의미 같았다.
“언니, 지금 다니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하고 잘 놀고, 공부 많이 해서 잘 배우며 지내. 언니가 빵 만드는 거 좋아하고 잘 하잖아. 내가 다음에 그런 데 알아봐서 언니를 들여보내줄 테니까, 거기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맛있는 빵도 많이 만들어. 그렇게 빵을 만들면서 조금씩 돈 벌면서 잘 쓰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알겠지?”
동생을 마주보는 효선 씨는 계속 미소 띤 얼굴로, 동생의 한 마디마다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동생한테 해주고 싶은 마음을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효선 씨는 두 볼이 붉어지며 웃음 같은 미소만 이어갔다. 굳이 언어로 표현할 필요 없는, 눈빛으로 전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이 이미 다 동생 가슴에 전해진 모습이었다.
모든 대화를 마친 뒤, 표지 촬영을 위해 경마공원의 더 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올 방법도 없을 듯한 길목마다, 아주 먼 곳의 대자연으로 찾아든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했다.
언니와 동생은 좁고 긴 길을 따라 걸으며, 수많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이어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언니, 그리고 단 하나뿐인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여운만이 긴 그림자처럼 흘러나왔다.
2년차 기수가 된 미라 씨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했다. 결혼을 늦게 하더라도 기수 생활을 더 오래하고 싶고, 어서 빨리 1착(1등)의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에는 항상 언니의 자리가 함께 한다고, 더불어 언니는 동생의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눈빛으로 사랑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결례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두 자매의 멀지 않은 미래상을 한 번 그려보는 건 어떨까. 내리치는 채찍질로 바람을 가르며 1착의 환호성을 내지르는 유미라 기수, 그리고 관중석에서 동생의 1착을 환호로 축하하는 언니 유효선 씨, 그런 효선 씨 옆에 아주 작은 꼬마가 엄마랑 함께 만세를 부르는 날이 온다면, 그렇게 조카의 응원 속에 1착의 기쁨을 두 배로 느끼는 유미라 기수의 환호성이 사진으로 촬영되는 날이 곧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이 길면 빛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는 법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몇 해 전 우리 국민 모두가 붉은 셔츠를 입고 체험으로 경험했던 그 한 마디가 두 자매에게도 곧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바로 앞에 적었던 상상의 미래상도 현실로 등장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기쁘고 좋은 일만 생각해도 모자란 인생 아니었던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상상은 꼭 현실로 나타나는 삶을 다시 한 번 그려보고자 한다.
기수(騎手) : 말을 타는 사람, 특히 경마(競馬)에서 말을 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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