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는 복지국가의 시금석이다 > 함께 사는 세상


성년후견제는 복지국가의 시금석이다

[만난 사람]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정책위원장 이영규 교수

본문

방송 뉴스를 보다 보면 늘 똑같이 반복되는 내용이 절반 이상 차지한다. 국회의 파행, 정치인 비리, 공무원의 수뢰, 각종 사건 사고, 어느 나라의 내전 또는 분쟁, 질병 발생과 음식물 사고, 그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눈물을 안기는 파렴치한 범죄행위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럴 때마다 원치 않게 언급되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가. 답이라도 정해져 있다는 듯 장애인과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 각종 사유로 인해 판단능력이 약해진 우리의 이웃들이 그 주인공이자 대상이 된다.

이들이 그런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개인적 파산에 이를 만치의 갈취를 끊임없이 당하는데도 방지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번 신용카드 부정발급과 명의도용, 각종 문서 위조 등을 통한 재산과 노동력의 약취행위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답은 국가 차원의 무관심과 방관이다. 똑같은 사건이 터지면 관심을 갖는 건 뉴스 방송시간만큼의 짧은 순간이 전부일 뿐, 그 다음부터는 무관심과 방관이 또다시 지속되게 된다.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권익을 지킬 방법은 없다는 건가? 아니다, 분명히 있다. 있는데도 입법부와 행정부 차원에서 공론화 하지 않고, 해결안 자체를 계속 뒤로 미루며 무관심과 방관 하나로 일관한다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약자인 국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무시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표’가 안 되기 때문인가?

메아리 없는 이 외침을 바로잡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 작업을 거친 ‘성년후견제추진연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할 시점이 된 듯하다. <함께걸음>은 추진연대의 정책단 위원장인 이영규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만나, 이 땅의 성년후견제가 위치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듣기로 한다. 그리고 그 현실과 대안이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지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 위원장 활동으로도 바쁘실 텐데,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먼저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성년후견제가 무엇이고 기본적으로 어떤 개념의 제도인지를 설명해주시면 좋겠다.
원래 성년이 되면 법률행위를 스스로 해야 되는 게 맞다. 그런데 나이는 성년이 됐는데 판단능력이 떨어져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가 바로 성년후견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 지적장애와 같은 경우를 의미하는 건가.
지적장애도 될 수 있고 치매도 될 수가 있다. 그 밖의 정신적 모든 장애가 다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 성년후견인제도의 필요성을 오래 전부터 제기하신 걸로 알고 있다. 어떤 필요성에서 시작하신 건지, 또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현재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는데,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 대해서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라든지 ‘금치산자(禁治産者)’라는 제도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법이 있기는 있는데, 이 제도는 해당된 사람을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차원으로 머물러 있다. 무능력자라고 하면 어감 자체도 썩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특히 금치산자 같은 경우에는 본인 스스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살아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법률적인 현실을 아주 쉽게 표현한다면, 금치산자가 된 다음에는 집 앞에 있는 동네 슈퍼마켓 같은 데 가서 물건 하나를 하는 것조차도 법적으로는 완전히 유효하지 못하다.

▶ 그러한 단순구매마저도 권리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 과자 한 봉지 같은 물건을 단지 1천원만큼 구입한다 해도, 법정대리인이 그 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 취소해버리면 그 행위 자체가 무효가 되어버리는 거다. 물론 금치산자 입장에서는 판단능력이 떨어지니까, 값싼 물건을 비싼 돈 지불하며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이 가서 취소를 한 다음, 그 구입비를 다시 되받아올 수 있는 것이다.

▶ 그런 경우만 놓고 본다면 금치산자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기본권 제한이라는 의견도 분명히 존재할 것 같은데.
맞는 말이다. 금치산자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법이라는 건 분명히 맞다. 대신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될 때마다, 동네에서도 그 사람이 돈을 들고 물건을 사려 할 때 안 팔아버리는 반응을 일으킨다는 거다. 그렇게 본다면 그 사람을 법적으로는 보호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소외시키는 형태의 왜곡된 보호라고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과 노인들이 일상적인 생활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걸 집중적으로 강조하지 않는가.
얼마 전까지도 수용 대상으로 치부했던 그들을, 이제는 수용 대신 사회 안에 더불어 살자는 측면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정치산자와 금치산자제도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 그렇다면 성년후견제가 그 법 조항들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는 건가.
많이 강조되는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정상화 개념’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주자’ 같은 의견들이 그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금치산자라 하더라도 최소한도의 능력은 남아 있으니까, 그 남아 있는 능력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내용들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게 새로운 성년후견제를 마련하면서, 우리가 그 안에 담으려 노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성년후견제는 새로운 이념을 담은 제도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인간 존엄과 가치가 담겨져 있는 제도로 우리가 바꾸자는 것이다.

▶ 그렇다면 단적인 예로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한테 일대일 후견자가 붙게 된다는 건가.
그렇다. 대신 지적장애라든지 치매성 노인이라든지,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그 ‘떨어지는’ 정도는 개개인마다 다 다른 게 아닌가. 예를 들어 ‘100’이라는 기준이 정상이라 할 때, ‘30’만큼 떨어지는 사람과 ‘50’만큼 떨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다.
가장 이상적으로 얘기한다면, 성년후견제는 ‘30’만큼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70’만큼 채워주고, ‘50’만큼 떨어지는 이한테는 ‘50’만큼 채워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우리가 ‘30’만큼 떨어지는 사람의 ‘30’이라는 판단기준을 과연 어떻게 측정해서 정확하게 채워줄 수 있겠느냐 하는, 그런 문제점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그 성년후견인은 가족이 되는 건가, 아니면 제3자가 해당되는 건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가족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냉철하게 평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이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거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가족이 타인보다 좋은 게 당연한 사실이지만, 누군가에겐 가족이 남들보다 더 나쁜 입장일 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죽이듯이 갈등을 일으키는 예가 많다. 또한 부모가 자식들에게 아주 안 좋은 행위를 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비정상인 상태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오히려 가족이 아닌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가지신 분들이 돌봐주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거다.

▶ 그런데 피후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같이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당연하다. 아쉬운 대목이지만 거기까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성년후견인은 어떤 상황일 때 피후견인을 위한 도우미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 대목에 대해 예를 든다 해도, 각각의 피후견인들이 판단하는 중요도가 어느 분야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 예를 들어서 후견인을 필요로 하는 분이 단독주택에 사는데, 남의 집에 전세로 살았다고 치자. 그 전세계약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새로 다른 집에 옮길 것이냐 아니냐 하는 부분을 누구에게 조언 받을 것인가.
더불어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복지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지급하는 수당과 연금을 받게 되어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진행되는 게 당연하기에, 그럴 경우 국가에서 지급되는 수당과 연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건가, 그걸 아주 중요하게 염두에 둬야 한다.

▶ 매우 중요한 대목을 언급하시는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환점이 존재한다는 의미인가. 장애인이 어떤 시설 안에 생활하고 있을 때, 지금 현재까지는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오면 시설에 직접 전해지고 입금되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장기적으로 보면 장애인한테 직접 주는 걸로 바꿔 갈 것이다. 일본의 예가 그렇듯이, 장애인 당사자의 통장에 직접 입금이 돼야 한다. 그래서 시설과 일대일 계약을 맺는 관계로, 장애인의 위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 듣는 입장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라 판단이 되면서도, 그게 과연 실현가능한 일이냐 하는 양면적인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피후견인한테 B라는 후견인이 함께 하게 될 때, B는 A를 대신하며 그 시설과의 계약을 후견인 입장으로 맺어야 한다. 그런데 B가 조금이라도 성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아무데나 가서 계약을 맺지는 않을 게 아닌가. 몇 군데 시설을 최소한 서너 군데 정도 직접 돌아보면서 식사는 어떤 걸 주는지, 잠자리는 어떤지를 직접 보고 난 뒤 같은 값이면 조금 더 좋은 쪽으로 가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 당장의 현실만 떠올린다면 우문(愚問)이 확실하겠지만,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 하시는가.
물론이다. 왜냐하면 장애인 당사자와 후견인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어느 시설을 결정할 것인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건 무얼 의미하는가. 부수적으로 장애인 시설들끼리의 경쟁도 유발할 수가 있고, 결과적인 그 혜택에 따라 장애인 입장에서는 같은 값으로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게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반드시 꼭 시설을 기준으로 하며 판단할 건 아니지 않은가.
맞다. 그건 당연한 기본 전제가 아닌가? 후견인 입장에서 봤을 때, 피후견인이 어디에 살며 생활해야 하는지는 처음부터 판단자료로 남겨두어야 한다. 피후견인이 기존에 살던 동네에서 일정한 월세 전세 등의 비용을 치르며 살게 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시설로 가는 게 나은지 여부는 후견인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당연히 더 나은 쪽을 결론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 피후견인이 아플 때, 급히 병원에 가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를 하고 신상에 관한 부분, 그러니까 아플 때 병원에 가는 부분도 담당해야 한다. 당장 병원에 가면 진료에 따른 각종 서류계약을 해야 하지 않은가.

▶ 피후견인이 갑자기 아플 경우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겠지만, 후견인이 그런 돌발적인 상황까지 염두에 두며 일상 안에서 준비하기엔 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더 큰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부분에서는 후견인이 피후견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해줘야 하는가 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후견인의 역할은 피후견인이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능력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피후견인의 역할범위에 따라 후견인의 역할 또한 가중치를 둬야 하는 가변성이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후견인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확신할 기준점이 없는 게 아닌가. 후견인에게 특정한 자격증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전반적인 우려의 핵심이 바로 그 대목인 것 같다. 후견인이 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즉, 지금의 현행법에서는 가까운 친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몇 단계의 조건이 있다. 배우자가 있다면 배우자가 되고, 배우자가 없으면 직계혈족이 되는 거고, 그것도 없으면 3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되는 것처럼 단계별 체계가 명문화 되어 있다.

▶ 그렇다면 자원 활동 차원에서 친족과 관계없는 사람이 후견인을 지정받는 시스템은 없다는 건가.
현행법에서는 3촌 이내의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할 경우에 한해, 제3자인 타인이 될 수가 있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이 제도를 고치자는 입장에서는, 지금의 법이 너무나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법 차원으로 본다면, 배우자가 있으면 무조건 배우자가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배우자도 사이가 좋은 배우자가 있고, 이혼하기 일보 직전의 배우자도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 현행법상의 배우자는 무조건 혼인신고만 되어 있으면 영순위의 후견인 자격이 있다. 혼인신고가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까지 따지고 본다면, 이혼소송 중인 배우자가 최우선으로 후견인이 되는 게 현실 속에선 가능해진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 그건 심각한 오류와 왜곡을 낳게 되는 부작용을 내포하는 것 아닌가. 왜 그런 제도가 수정되고 바뀌지 않는 건지 의문마저 떠올리게 된다.
더 심한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없고 형제자매도 없는 경우를 상정해 보자. 그러면 3촌이 다음 당사자가 되는데, 3촌이라고 하면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외삼촌 이모가 전부 다 3촌의 관계이다.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고 할 경우에 누가 되느냐 하면,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결정이 된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나이순으로 딱 정해져 버리니까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자명한 일이다. 피후견인 당사자의 의견과 생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후견인 선정에 있어서 피후견인의 의견은 아예 제외된다는 의미인가.
생각해 보자. 피후견인 당사자의 마음속으로는 ‘우리 막내이모가 되어주면 좋겠는데….’ 또는 ‘둘째삼촌이 나를 제일 많이 예뻐해 주시는데….’ 같은 당사자의 속마음이 분명히 존재할 게 아닌가. 그런데 우리 법에서는 그게 안 된다는 거다.

▶ 그 심각성을 아주 쉽게 이해할 만한 예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이 기존의 법을 완전히 뒤집어 수정해야만 해결이 될 사안인가. 아니면 보다 나은 대책이 존재하고 있다는 건가.
그래서 그 법 제도를 개정하자는 우리의 입장에선 그렇게 획일적으로 정하지 말고, 친족 중에서 정말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분을 선별하자는 거다. 여러 친족 가운데서 어느 분으로 하는 게 당사자에게도 가장 좋은가를 법원에서 심리하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적합한 자, 그의 성격과 대외적 관계 등을 전부 고려해서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 상식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여러 가지 발생 가능성이 이미 예측되곤 한다. 가족 내부에서 후견인이 된다면, 그 다음의 진행은 벌써 눈에 보이지 않은가. 성년후견인제도의 안전판 같은, 대외적 설득작업이 가능할 장치 같은 게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가족끼리 다툼이 심할 경우에는 오히려 가족들이 역효과가 난다. 이럴 때는 가족이 아니라 변호사가 나은지, 법무사가 나은지 아니면 사회복지사가 나은지를 따져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물론 복지사가 후견인이 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또한 지금은 후견인이 1인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우리가 고치고 있는 법에서는 2명 내지 3명도 후견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산에 대해서는 법을 잘 아는 분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 신상에 관련된 부분은 사회복지사인 분이 맡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판단하는 것이다.

▶ 그럼 일종의 법적 대리인 형태로 가는 것인가? 요즘 그것이 주된 쟁점 중 하나인데.
물론 대리인도 될 수가 있다. 그런데 대리인의 형태라고 하면, 최근에 일부 단체에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는 걸 듣고 있다. 그런데 자기결정권이라는 게 뭔가. 그 개념 자체가 스스로 판단하며 뭔가를 결정해서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 대목에서 중요한 게 뭔가 하면,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했을 경우에는 그 결정이 혹시라도 잘못됐다 하더라도 거기에 따르는 잘못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정이 반드시 꼭 잘된 결론으로 내려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지적장애인 같이 사고력의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분들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결론으로 내려진 거냐 하는 대목에선 일정한 의문을 품는 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 자기결정권 침해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이 많다는 걸 교수님도 알고 계신다는 게, 취재하는 입장에선 고무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실을 새삼스레 언급하며 공감의 틀을 만드는 데 일정한 어려움과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관련 시민단체들의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교수님의 관점은 어떠하신지 듣고 싶다.
자기결정권에 대해 지적하는 분들이 꼭 주장하는 명제가 있다. ‘실수에서 배우는 게 아닌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집을 사고팔 때도 실수하는 게 배우는 과정인가? 1억 짜리 집을 헐값으로 팔아넘기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할 때, 그것마저도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인가? 그게 합리적인 일일까?
자기결정권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보완해 주는 형태이다.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면, 또한 법률행위를 해야 할 부분이 부동산 매매와 같은 중요한 사항이라면 오히려 후견인 쪽에서 그 사람을 위해 대리해 주는 게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까지 꼭 자기결정권의 침해라고 보진 않는다.
또한 사회복지를 하시는 분들이 얘기하는 자기결정권하고, 법학 차원에서 보는 법률적 자기결정권은 개념상의 견해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자기결정이 일정한 실수를 동반하며 배워간다는 형태로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얘기할 때의 ‘자기결정권이라 함은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니까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본인이 행위를 해야 하는데, 그 행위의 의미를 모르면서 하는 것은 법적으로 자기결정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법률행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 책임을 질 사람이 대신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 지금 법률을 말씀하셨는데, 지적장애인들의 경우 인권적인 문제가 더 많이 있다고 본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어느 특정인이 장애인을 데리고 있다 하면서 사실상 후견인 역할을 주장하곤 한다. 실제로는 인권에 역행하는 차별과 학대를 자행하면서도, 자신이 후견인이라 주장하며 판단력이 없는 이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주 심각한 문제이기도 한데, 이런 대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누가 누구를 데리고 있다고 해서 후견인은 절대 아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후견인은 법률에 따른 걸 의미한다. 즉, 법 차원에서 후견인으로 인정이 돼야 후견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C라는 사람이 20대 중반의 나이인데, 정신적인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입장이라고 가정하자. 그래서 이 사람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C를 데리고 법원에 가서 한정치산자 또는 금치산자 선고를 받고 법원에서 후견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진정한 후견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데리고 있는 건 후견인 자격을 논할 수 없다. 자칭 후견인이라는 사람이 법률상으로 장애인을 대신해서, 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 의문점이 하나 있다.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보면, 부동산 거래든지 보증이라든지 하는 예를 주로 들며 언급하셨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재산을 가지고 부동산을 거래하는 지적장애인들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을지는 몰라도 있을 수가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아버지가 재산이 많은데 아들이 지적장애인 하나뿐이다. 그럴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재산이 누구 것인가. 지적장애인 아들 것이 된다. 그런데 그가 그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가? 없는 게 현실 아닌가.

▶ 재산 차원의 큰 부분이 아니라면, 성년후견제가 일상생활 자체를 돌보는 건 아니라는 건가.
당연히 일상생활을 돌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년후견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하면, 현행법에서는 주로 재산관리에 초점을 둔다. 재산관리에 초점을 두다 보니까, 재산이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제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앞으로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재산이 없다 하더라도, 국가는 갈수록 복지지향으로 갈 게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국가가 시설에 일방적으로 지급했던 비용을 장애인 개인에게 지급하게 될 것이다. 그 비용으로 장애인은 자기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시설이든 개인 주택이든 계약이라는 과정이 뒤따르게 된다. 후견인은 바로 그럴 때 필요한 존재이고, 앞으로 복지국가가 될수록 성년후견인은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이 사회가 움직여 갈 것이다.

   
▶ 이 제도가 다른 나라에선 시행이 되고 있나.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다 도입했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전부 다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도입이 안 된 나라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 .
지난 번 국회에 3개 정도의 법안이 제출됐었는데, 국회 임기가 끝남으로써 자동 폐기가 됐다. 이번 18대 국회에서 다시 작업을 해야 한다.

▶ 민법 몇 조를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법률끼리 상충되는 게 많아서 문제가 된다고 들었다.
한두 개가 아니라 꽤 많은 법률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법률 몇 개를 개정하는 것보다는, 어떤 내용을 담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 성년후견제를 지지하는 쪽도 있고 반대하는 쪽도 있는데, 사회적으로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실제 내용은 무엇인가.
반대하는 쪽도 물론 있는데,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반대하는 쪽을 이해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국가가 다 시행하고 있는데 이걸 하지 말자는 주장은 글쎄,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든지,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든지, 남아있는 능력을 더 활용한다든지, 또한 일상적인 생활을 더불어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든지, 이러한 이념을 담을 수 있는 제도로 반드시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다만 그걸 담기 위해서 어떻게 고치는 게 가장 좋으냐 하는 걸 가지고 방법론상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거지, 거기에 담아야 할 기본정신을 훼손하거나 첨삭하려 하면 안 된다.

▶ 마지막으로 민감한 부분을 질문 드리겠다. 후견인의 활동이 자원봉사 차원의 무료 활동인지 여부를 알고 싶다.
무료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법을 만들 때 꼭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대가 없이 무료로 한다면, 그게 과연 양질의 서비스로 이뤄질 건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피후견인이든 국가 차원이든 간에, 소정의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며 부담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고 나는 판단한다. 보수 없이 자원해서 하는 분들이 많다면 좋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이 제도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비용이 전해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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