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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교감으로 충분해”

영화 ‘러브스토리’ 이옥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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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이모 집에 갔는데 누가 입던 수영복이 있더라고요. 문득 입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난생 처음
수영복을 입고 큰 거울에 제 몸을 비쳐보는데 ‘나도 이런 걸 입어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짧고 가는 다리가 각선미 좋은 예쁜 다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밉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 영화 ‘러브 스토리’ 중에서

지난 달 19일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한 극장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시사회가 열렸다.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눈물꽃’, 빈곤여성 가장의 이야기를 담은 ‘빈곤의 벽 앞에 서 있는 여성가장들에 대한 보고서’등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온 이옥선 감독의 신작 ‘러브스토리’의 시사회가 열린 것.

‘러브스토리’는 장애가 있는 여성들이 느끼는 사랑과 성, 그리고 몸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를 만나 행복한 연애는 남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너무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애인과의 성생활을 통해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얻은 이가 있었던 반면 성생활 자체가 고통이었다는 목소리도 담겨있다. 또 다른 사람이 나의 몸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생각들, 주변의 걱정을 뿌리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이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본다면 남성 판타지 속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외치는 일갈이 자칫 ‘주홍글씨’의 낙인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가정주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성’이야말로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간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외된 여성의 문제를 다루며 여성 장애인들은 더 큰 차별 속에서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 영화를 기획했죠.”

            장애인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눌려 있을 거란 편견, 영화 찍으며 깨져

하지만 다큐를 준비하는 3년 동안 이 감독이 깨닫게 된 건 자신역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그동안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게 있어서인지, 장애인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더 억눌려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건 장애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과 어떻게 교감을 하며 사랑하는가에 대한 문제라는 걸, 그 속에서는 어떤 편견이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이 감독이 생각하는 ‘러브 스토리’의 주제는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없다’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성관계도 맺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내고 싶었던 게 이 감독의 연출 의도였다고.
때문에 비장애인 여성들이 ‘저건 내 이야기인데’라고 느끼는 모습에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꼈단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성에 대해 무관심하고 억눌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장애 유무를 떠나서 성에 대해 전혀 관심 없이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영화 속에는 빠졌는데, 50대 중도장애를 입은 여성분을 인터뷰했거든요. 이분은 40대 이후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겼는데, 이 분 이야기가 비장애인였을때도 오르가즘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저 의무방어형태의 성관계였다는 거죠.”

장애 있는 여성의 성문제를 다루다 보니 사회 구조적으로 눌린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여성이 첫 생리를 시작하면 좋아해야 하는데, 극단적인 경우는 ‘자궁을 들어내자’라는 이야기도 한다고 해요. 우리 엄마도 부엌 아궁이 옆에서 울면서 ‘있을 것은 다 있어서 큰일 났다’며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친한 친구들끼리라면 모를까 불특정 다수 앞에서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털어놓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섭외를 하고, 촬영했는지 궁금했다.

“경남여성장애인연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촬영을 했는데, 처음 촬영할 때는 애를 많이 먹었죠. 처음부터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이를 드러내는데 어떤 게 어렵고, 머뭇거리게 되는지, 왜 싫은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눴어요. 만약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이었죠.”

어렵사리 촬영을 끝내고, 작품을 완성했지만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 조마조마 했다고.
“주인공 3분을 먼저 모시고 시사회를 한 후 이야기를 했어요. ‘부담스러우면 모자이크 처리를 하겠다’고. 그런데 의외로 담담히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오히려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리얼하게 못한 게 아쉽다며 ‘좀 예쁘게 찍어주지 그랬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장애인 내에서의 차별이 더 큰 상처 줘

예쁘게 안 찍은 것이야말로 이 감독이 다큐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닐까 싶긴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도 솔직하고 거침없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를 드러내놓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사실을 드러내고 깨뜨려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그 중 한 예가 프롤로그에 보면 ‘꼭 저 몸으로 뭘 해야 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같은 장애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촬영을 하면서 느낀 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도 문제지만, 경증장애인이 중증장애인을 무시하는 시각들로 인한 상처였어요.”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힘들었겠지만, 이를 묵묵히 지켜보며 찍어야 하는 감독의 고뇌도 상당했을 듯하다. 촬영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아쉬웠는지 궁금했다.

“부족한 거야 너무도 많죠. 그중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어요. 집밖으로 나오기 힘든 여성장애인들이 많은 상황에서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런데까지 어떻게 신경 쓰느냐’라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도 느꼈고요.”

당초 오는 5월 12일에 열리는 서울여성영화제에 ‘러브스토리’를 출품하려 했지만 잠시 늦췄다고.
“내년 여성영화제 주제가 ‘여성의 몸’으로 잡혔대요. 그래서 그 때 출품하기로 했어요. 부족하다 느꼈던 부분이 많아 보충촬영도 필요했고요. 대신 화두를 던진다는 의미에서 장애인인권영화제에 출품합니다.”

다큐라는 영화적 장르의 속성상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는가하면, 자칫 의도하지 않은 오해를 사기도 쉽다.
‘러브 스토리’ 역시 여성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싶은 의지가 담겨있지만, 대상화 했다고 오해할 소지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던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아무개 씨’로 표현하기보다 ‘장애인’으로 통칭하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면으로 반박한 도전정신은 박수를 보낸다.

인식의 벽을 깨뜨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아무쪼록 이옥선 감독의 ‘러브 스토리’가 왜곡된 인식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기수가 되길 바래본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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