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성질환, 기본적인 지원이 시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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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대병원 소아과. 3분도 채 안되는 짧은 진료 시간 안에 아이의 아픈 곳은 물론 원인과 치료시기까지 답을 구하고픈 박수진 씨의 다급함과 절실함이 묻어난다. ⓒ 전진호 기자 | ||
국내에선 인터넷 검색도 불가능했던 ‘소토스’
“지난 일요일에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왜 그런 거예요? 지금도 미열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예방주사 접종도 해야 하는데, 언제가 좋을까요? 다른 병원에서는 예방주사를 안 놔줘요.”
3분도 채 안되는 짧은 진료 시간. 그 시간 안에 아이의 아픈 곳은 물론 원인과 치료시기까지 답을 구하고픈 박수진 씨의 다급함과 절실함이 묻어났다.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미들의 한결같은 소망.
그러나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서, 어미들은 새끼의 미열에도 놀라고 고열에도 놀란다. 더욱이 희귀난치성질환이 있는 아이라면 기함할 일이 어디 이뿐일까.
‘소토스 증후군(SotosSyndrome)’이 있는 영남이를 다섯 해 동안 키워온 박수진 씨 경우가 그렇다.
소토스 증후군은 일명 ‘대뇌성거인증’으로도 불리는데, 생후 1~2년 동안 신체가 과다 발육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특히 머리에 물이 차서 두상이 커지고, 키와 손발도 크기 때문에 외관상 또래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인다고.
정신지체나 발달장애 등을 동반하고 근력이나 언어능력, 사회적응력 등도 저하된단다. 현재 영남이는 뇌병변장애 (2급)등록을 했고, 정신지체 등의 증세가 있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아팠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죠. 천식부터 시작하더라고요. 머리에 물이 차고, 눈과 귀에 이상이 생기고, 경기를 했어요. 상호작용도 안되고. 유명하다는 대학병원 다 찾아다녔지만, 병명을 모른대요. 별별 안 좋은 말은 그 때 다 들었어요. 돌도 못 넘길 거니 준비를 하라는 말부터 평생 누워만 살 거라는 말까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왔던 아주대 소아과에서 병명을 찾았죠. 그 때가 2005년도였으니까, 한 2년 헤맨 거죠. 그 사이 영남이는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고.”
소토스 증후군은 정부의 의료비 지원 대상 질환도 아니고, 희귀난치성질환센터의 질환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증세가 있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한마디로 발병해도 관련 정보를 구할 길이 막막하다는 얘기다.
“확진 받은 직후에 이 병이 도대체 뭔가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죠. 그랬더니 검색 결과가 없다고 뜨더군요. 당시에는 국내 인터넷에도 없는 단어였던 거죠. 하지만 미국 싸이트에서는 검색이 되더군요. 이 증후군에 대해 안내 받아본 적은 없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보제공을 해 줄 의사가 없었어요. 국내에서 이 증후군에 임상경험 있는 의사는 없다고 해도 맞을 거예요. 아주대병원도 영남이 진료하면서 임상경험 쌓고 있는 셈이니까요.”
영남이는 다섯 해를 사는 동안 열 몇 번이 넘는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단다.
박 씨는 “머리 수술 3~4번, 척추 수술 2~3번, 구순열 수술, 눈이랑 귀는 자질구레하게 여러 번, 편도선, 요도하열,...”하고 헤아려보다가, 기억도 다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영남이는 신생아 때 머리에 자꾸 물이 차서 머리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소토스 증후군 환자들은 머리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희귀난치성질환이라서 그 수술이 어떤 후유증을 불러올지 예측할 수 없고, 전례도 없어서 머리 수술을 한 사례가 없다는 거예요.
영남이는 아기 때 이미 수술 받았는데, 억장이 무너졌죠. 선생님, 우리 영남이 이제 어떻게 하냐고 울고 매달리고... 의사들은 자기도 모른다고, 일단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대답만 하고. 아이고, 그 때 제 심정이란...
천만 다행으로 영남이는 아직까지 후유증이 나타나진 않았어요. 이젠 안심해도 될 것 같아요. 교수는 영남이 사례를 학회에 보고했대요. 소토스 증후군 아이에게 머리 수술을 했더니, 두상이 커지는 것도 방지되고 경과가 좋다는 그런 내용으로 말이죠.”
ⓒ 전진호 기자 |
박수진 씨는 요즘 영남이를 어떻게 얼마나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많단다.
영유아 특수교육 공적 기반이 워낙 없으니, 들여야 할 사교육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술치료, 음악치료까지 욕심나지만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최소한 언어치료, 놀이치료, 재활치료는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놀이치료는 1시간에 10만원, 언어치료는 1회당 3만원인데, 일주일에 3번 하면 그게 벌써 얼마예요. 거기에 교통비, 간식비 등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하면 못 당해요.”
박 씨의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희귀난치성질환과 장애가 있는 영남이는 병원치료와 특수교육을 같이 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언제 입원할지 몰라서 특수교육체계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사회적 이해 부족과 정책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복지관 프로그램이 저렴하니까, 대기자들이 많아요. 경쟁도 심하고. 간신히 순번이 와서 프로그램을 이용하다가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한 번 입원하면 보름은 훌쩍 지나가니까, 그 자리 달라는 대기자 부모들이 있거든요.
지금은 병원치료와 특수교육 체계가 서로 손발이 안 맞아요. 두 가지가 다 필요한 사람들은 골탕을 먹는 거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건지, 아님 둘 다 하지 말라는 건지 원. 치료와 교육을 병행할 수 있게 효율적 연계해 놨으면 좋겠어요.”
▲ 영남이는 세 살 넘어서야 웃기 시작했단다. 평소에도 잘 웃지 않던 영남이가 병원 밖 화창한 햇살앞에서 예쁜 함박웃음을 보여줬다.ⓒ 전진호 기자 |
카페에는 관련 정보가 없어 애를 태웠던 박 씨가 미국의 소토스 증후군 협회에 편지를 보내서 받은 자료들도 올라와 있다. 그 중에는 이 증후군이 있는 신생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이는 증세, 질환, 대처방법, 필요한 교육과 그 시기들을 성장시기별로 상세하게 안내한 지침서도 있단다.
뿐만 아니라 박 씨는 영남이의 성장 과정, 질환과 치료 과정까지도 공개해 놓았다.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병을 앓는 것 못지 않은 고통이었어요. 그래서 모은 정보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 카페에 들어와서 영남이와 자기 아이의 모습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증세를 문의하기도 해요.
하나 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다섯이 모여서 내는 목소리가 더 크잖아요. 그래야 유병인구가 적어서 정책에서도 배제당하는 서러움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가파르게 굽이치는 삶의 능선을 박수진 씨와 영남이는 목숨 걸고 오르고 넘어서 여기까지 왔다. 수진 씨는 아픈 새끼 놓치지 않겠다는 본능으로, 영남이는 어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피운 생명의 불씨를 안고서 말이다. 여기까지 온 것처럼, 그들은 앞으로도 헤쳐갈 것이다.
박수진 씨는 거창한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이 되게끔 잘 키울 테니, 희귀난치성질환과 장애특성을 고려한 기본적인 지원을 시급히 해달라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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