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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을 바탕으로 지역복지 만들겠습니다”

인천광역시 연수구의회 서연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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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호 기자  
 
지난 4월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증장애인의 자기결정에 의한 자립생활을 위하여 활동보조인의 파견 등 활동보조서비스 또는 장애인보조기구의 제공, 그 밖의 각종 편의 및 정보제공 등 필요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미 장애계에서는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관련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여러 지자체에서도 조례 제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함께걸음>은 인천광역시 연수구의회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한나라당 비례대표인 서연희 의원(36, 뇌병변 1급)을 만나봤다.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조례, 자치구에서 만들어야죠”

“부모가 키우다 힘들면 시설로 보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게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에게 강요되는 삶입니다. 도대체 누가, 어떤 권리로 한 개인을 사회에서 격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장애인을 시설에만 수용하려는 현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서연희 의원의 첫 마디다. 시작부터 너무 심각한 것 아닌가 싶지만, 에두르지 않고 핵심으로 곧장 질러갔다.
서 의원은 현재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그이는 구의원들에게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의미와 필요성을 설명하고, 조례 제정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중이다. 10월 말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알리고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간담회도 진행했다.

“시에서 만든 조례는 주민들에게 서비스가 골고루 배분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구에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서 의원은 특히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은 당사자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욕구를 잘 파악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장애가 있는 주민들의 욕구를 직접 파악하고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펼 수 있는 구에서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이의 지론이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조례는 이미 전남 광주에서 주민발의로 제정한 바가 있고, 서울의 몇 몇 구와 제주도 등에서도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수구의 상황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쉽지가 않네요. 구의회 의원들이 이론적으로는 이해를 하는데, 당사자가 아니라서 아무래도 그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행정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구에서는 조례를 제정해 자립생활센터를 지원하면 다른 복지 관련 단체들도 예산을 더 달라고 할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요. 결국엔 예산 문제인 거죠.”

서 의원은 ‘힘든데 왜 굳이 나오냐, 그냥 집에 있지.’ 라든가, ‘하루 세끼 밥 주고 재워 주는데 시설에서 살면 더 편하겠지’라는 의원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힘들더라는 말도 전했다.
예산이야 늘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문제는 지자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다.

서 의원에 따르면 연수구 주민 27만 명 중에 1급 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주민은 약 1만 명이며, 현재 연수구 전체 예산 중에 장애인 복지에 쓰이는 예산은 약 10% 안팎이라고 한다.
과연 연수구가 장애가 있는 주민의 자립을 위해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배분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시설에서는 발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 ⓒ전진호 기자  
 
조례를 만드는 과정을 말하며 서 의원은 눈시울을 붉혔다. 서연희 의원이 이렇게 자립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이가 바로 당사자기 때문이다.
이제 그이가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자.

“외할머니에게 들은 건데, 제가 장애인이 된 것은 아마 연탄가스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저를 갓 낳은 밤에 연탄가스가 샜던 거예요. 할머니가 아침에 방문을 열어보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스가 꽉 찼더래요.”
서 의원은 이후로 외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는 유난히 저를 예뻐하셨죠. 따스한 아침 햇살 속에 저를 앉혀 놓고 머리를 곱게 따서 댕기로 묶어주셨던 기억이 가슴 속에 아련히 남아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찾아 왔단다.

“아홉 살 땐가, 저는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저를 데리고 가겠다고 찾아왔어요. 아빠 집에 갔더니 새엄마와 언니들이 있더라고요.”
가족 이야기라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형제들과 함께 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 의원은 당시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 ‘천덕꾸러기’였다고 기억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이는 “견디다가 덜컥 가출을 했지 뭐예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네 집에서 한 일 년 살았을 거예요. 그러다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막상 나오니까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길에서 헤매고 있으니까 어떤 아저씨가 ‘너 길 잃어 버렸니? 집이 어디니?’라고 묻는 거예요. 모른다고 딱 잡아뗐지요. 그랬더니 파출소에 데리고 갔어요. 경찰들도 똑같은 것을 되풀이해서 물었는데,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에 집도 모르고, 부모님도 모른다고, 엉엉 울기만 했지요.”

어린 서 의원은 1주일 정도 파출소에서 지내다가 보육원에 보내졌다. 두세 달 뒤 장애인 시설에 보내졌고 거기서 17년을 살았다고 한다.
시설 안에 있는 특수학교를 3년 만에 마친, 영민한 서 의원을 눈여겨 본 시설장은 중학교부터는 택시비를 줘가며 일반 학교에 보냈단다.

그런 시설장을 만난 것은 서 의원에게는 어쩌면 행운이었을 것이다. 그런 ‘운’조차 없는 시설 생활인이 훨씬 더 많다.
서 의원은 장애인만 모아 놓은 수용시설에 입소하는 순간,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하는지 아세요. 정에 굶주려 있죠. 제가 있던 시설에서는 방문객들이 오면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맘을 설레며 기다렸어요. 심지어는 방문객 한 명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기까지 했으니.”
시설에서 계속 살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스물아홉에 시설에서 나와 독립을 했다.

그이는 “저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도 꾸리고 일도 하고 싶었죠. 비장애인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시설에서 살면 이룰 수 없는 희망에 불과하죠.”라고 말했다.

“제가 있던 시설에서는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저녁 9시면 소등해야 했습니다. 규칙에 맞춘 단체 생활을 해야 하죠. 시설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제가 품은 그 어떤 꿈도 펼칠 수 없었어요. 가까운 동네 가게도 맘대로 갈 수 없을 정도로 개인 생활을 할 수 없어요. 통제 때문에 시설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꿈꿀 수도 없습니다.”

“중증장애인으로 살아온 경험, 정치에 녹여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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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호 기자  
 
서 의원은 서른 넷이 되던 해에 아는 후배의 소개로 자립생활센터 활동을 시작했다. 센터에서 그이의 활동을 눈여겨 본 활동가들이 그이를 비례대표로 추천을 했고, 덜컥 당선이 됐다고.

“얼떨떨했죠.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정치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이리저리 선거판에 다니면서, 정치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중증장애인으로써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보자고 결심을 했죠.”

서연희 의원에게는 구의원으로써의 시간이 아직 3년 정도가 남아있다. 서 의원은 그동안 장애가 있는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이 될 수 있는 조례를 더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은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에 온 힘을 다 할 겁니다. 그리고 나서는 장애인 편의시설 확보를 위한 조례를 만들고 싶어요.”

서 의원은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들이 많이 활동해야 지역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본인 의지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장애인 복지하면 ‘시설’만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바꿔야죠.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전격 확대하고, 시설에서 지역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체험홈 같은 곳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들에게 직업을 연계하고 임대아파트를 할당해 주는 것도 필요하죠.”

돌이켜보면, 서연희 의원의 삶은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서 의원은 지금, 시쳇말로 ‘들이대는’ 중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 속에서, 장애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입소해야 했던 시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도전했고, 지금은 장애가 있는 주민들을 위해 그이가 가진 정치적 힘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이렇게 그이가 꾹꾹 찍어놓을 발자국은 또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작성자최희정 기자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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