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지원제도 폐지 않고선 다른 정책 마련할 수 없었다 > 함께 사는 세상


LPG지원제도 폐지 않고선 다른 정책 마련할 수 없었다

특집Ⅱ -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김강립 팀장 인터뷰

본문

- 엘피지 지원 폐지를 결정하면서 많은 고민들을 했을 텐데.
"많은 이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시점이다. 하지만 어떻게 평가해주는 것과 상관없이 담당자 입장에서 장애우들에게 이런 상처를 줘서 송구스럽다. 문제의 싹은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정부시책이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본다. 문제점에 대해 예측하고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나중에 바뀌게 돼 장애우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미안한 심정이다.

나 역시 현장에서 엘피지 지원제도의 폐지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이들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특히 사업이라도 해보려고 없는 돈을 모아 차를 구입하신 분들, 장애아동을 데리고 어떻게 해서든 공부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머니들에게는 특히나 죄송스럽다. 이렇듯 개별사안으로 보면 죽을죄를 졌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짜야 하는 위치에서 봤을 때 보다 중증의 장애가 있는 이들, 조금이라도 형편이 더 어려운 이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게 옳은 것이라 판단했다.
나 역시 엘피지 지원제도를 폐지하는 게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욕 먹을 각오하고 메스 들이댔다

- 어떤 이유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해 달라.
"장애우에게 '차'라는 의미가 비장애인들의 개념과 다른 의미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단순히 생계수단이라는 의미 외에도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이동의 수단, 즉 사회와 장애우를 연결하는 '파이프 라인'이라는 특수성은 인식한다. 하지만 현재의 엘피지 지원제도는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보니, 차가 없는 장애우는 (정부시책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형편상 차를 구입할 수 없거나, 장애 때문에 차를 운행할 수 없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차를 운행하는 장애우에게만 초점을 맞춰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뜩이나 적은 장애우 복지예산이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써야 하는데, 예산의 절반가량이 엘피지 지원제도에 쏠리고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장애우들에게 절반 정도의 복지효과를 거뒀다면 더욱 확대하거나 강화해서 보완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현재 장애우 4명중 1명꼴로 엘피지 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들보다 차를 살 수 없는 형편이거나, 장애 때문에 차를 운행할 수 없는 이들에게 정책의 초점은 우선적으로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욕먹을 각오하고 메스를 들이댔다. 제도 개선에 대해 고민하며 현재 엘피지 혜택을 받는 이들을 소득수준, 장애정도, 유형, 지역, 차종, 배기량 등으로 세밀하게 쪼개봤다. 눈에 띄는 그룹이 있다면 이들만이라도 지원해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현재의 엘피지 지원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수혜자에 대한 분류가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무작정 퍼주기만 하는 지원제도는 도저히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을 만든 것은 우리 책임이 크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도개선을 해야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장애우 복지예산 확보가 급선무

- 결국 엘피지 예산에서 줄인 돈을 항목만 바꿔 장애 수당 쪽으로 돌린 것이기에 혜택이 실질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장애우들의 목소리가 높다.
"엘피지 지원제도 폐지와 장애수당을 확대하는 정책을 수립하며 정한 가장 큰 원칙은 제도 폐지로 인해 장애인 복지액이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1천715억여 원이라는 엘피지 지원예산은 줄어들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대폭 증액됐다. 장애수당만 보더라도 1천6백억 원에서 4천6백억 원으로 대폭 상승한다. 물론 경증장애우와 장애우 가족들은 엘피지 혜택을 못 받게 됐지만 1급~3급의 중증장애우를 위해 3년간 1천5백억 원가량의 엘피지 지원액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액수로만 따져봐도 지금 제도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장애우 관련 복지예산을 증액했는데 그런 평가를 듣는 것은 다소 억울하다.

예산만을 놓고 봤을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장애우 관련 복지예산의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는 일이다. 예산이 1천억 원인 조직에서 10억 원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10억 원 있는 조직에서 1억 원 늘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전년대비 몇 % 증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부구조 상 전체 장애우 복지예산을 증액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어느 규모까지 장애우 예산을 키우게 되면 많은 고민 하지 않더라도 매년마다 신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될 수 있다. 이번 폐지결정 등을 통해 이런 파이를 키웠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 엘피지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시킬 방법은 전혀 없었나.
"주던 것을 뺏앗아 욕먹을 어리석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엘피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애우 복지 관련 대책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정부의 예산정책 구조상으로도 계속적인 실행 가능성이 희박하며, 다른 그룹들에게 지지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도덕성이 높아야 이들을 위한 지원책에 대해 다른 그룹의 반발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소수의 장애우를 위한 제도 때문에 장애계 전체가 불신 받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 일부에서는 엘피지 면세로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들다. 면세제도는 여러모로 봤을 때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사실 장애우들에게 지급하는 엘피지 제도만 면세로 하면 큰 재원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형평성 문제를 주장하며 다양한 계층에서 면세를 요구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될 경우 예측되는 세 손실이 최소 2조 원가량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재정경제부나 기획예산처 역시 면세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두 가지 가격정책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은 뻔하지 않나. 같은 물건을 사는데 누구는 100원을 줘야 하고, 누구는 50원만 줘도 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주유소 사장이라도 나쁜 마음이 들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통용되겠는가"

수요조차 파악 안된 현 시점서 '이동수당'은 힘들어

- 그렇다고 정부가 잘못한 시책을 장애우가 떠앉는 지금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현재의 상황대로라면 엘피지 지원제도를 믿고 힘들게 차량을 구입한 4분의 1에 해당하는 장애우 중 중 많은 수가 3년 후면 더 이상 차를 타고 다니기 힘든 상황에 처한다. 그나마 마련한 자립의 기반마저 잃을지도 모르는데 이들을 위한 대책은 강구됐나.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부지런히 추진해야 할 과제들이다. 이동과 관련된 사안은 건설교통부의 몫이기 때문에 복지부와 공조해 예산확보를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대안으로는 ▲저상버스 도입을 최대한 앞당기고 ▲지하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한국형 저상버스'가 개발되지 않아 사업에 큰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개발이 완료돼 한 대에 1억 5천이나 하는 차 값이 저렴해진다. 당초 2013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50%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기로 계획했으나 이보다 빠른 시일 내에 완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지하철 편의시설 구축인데, 생각 같아서는 양쪽 출입구 모두에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싶다. 건설중인 역사의 경우 문제될 게 없지만 이미 만들어진 건물은 문제다. 어찌됐건 도시철도 역사 안에는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복지부가 운영하는 '장애인사회참여평가단'을 벤치마킹 한 '장애인이동편의평가단'이 2007년도에 건교부 주도로 꾸려질 예정이어서 장애우이동권에 대한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가 잘 반영될 것이라 기대한다.

사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장애우들이 기대하는 수준만큼 이동권을 보장하는 데는 매우 짧다. 최소한 5년 정도 유예기간이 있었더라면 수혜 받지 못하는 장애우의 수를 최소화할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보건복지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저상버스나 지하철은 모두 수도권에 집중된 정책이다. 지방에 사는 장애인의 경우 더욱 이동권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들을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동수당 등에 대한 고려는 없는가.
"두 가지 모두 함께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진 예산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선택하는 것이다. 지적한 부분은 공감하지만 수요파악조차 제대로 안된 현 상황에서의 이동수당 지급은 언급하기 힘들다.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어떤 변수들이 생길지 모르지만, 엘피지 등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확보된다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 뭔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노력들이 있어야 돈을 더 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장애우 복지정책 전반적 패러다임 전환 준비 중

- 엘피지 지원제도 폐지를 통해 새로운 장애우 복지 정책을 구상 중이라고 했는데 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 건가.
"그 동안 잘못됐던 장애우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될지 모른다.
엘피지 지원제도 역시 지급의 편리성 등 때문에 원칙없이 현물로 지급된 게 아닌가. 사회 구성원으로 떳떳하게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각종 장애우 지원제도를 '현물중심'에서 '현금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많은 수의 장애우들이 가장 바라는 정책은 '수당확대'를 꼽는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소득보장'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가계수입을 조사해본 결과 장애우 가족이 도시근로자 평균수입의 절반밖에 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경우 16만원, 장애아동의 경우 31만 원 가량을 장애 때문에 추가 지출하고 있다. 이 추가비용까지 지원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보건복지부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획일적인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 같은 수급권자라 할지라도 그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현 체제는 문제가 있다.
장애등급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등급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료적인 측면만 볼 게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 장애 당사자가 원하는 복지수요 등 다양한 욕구들과 실태를 등록단계부터 파악해 본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2009년까지 연구 및 시범사업을 마칠 계획이다.
이와함께 서비스전달체계도 개편하려고 한다.

현재 지자체나 복지관 등에서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기대치에 미치느냐 생각해보면 거의 낙제점이다. 보건복지부내 장애우 부서만 봐도 그렇다.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기피하다 보니 보직순환속도가 가장 빠르다. 최소한 6개월~1년은 근무해야 업무파악이 될 텐데 자주 교체되다 보니 전문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한 서비스전달체계에 대한 연구도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범정부적인 '장애우종합대책'을 오는 9월 초에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기존예산에서 획기적으로 증액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예산이라는 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장애우에게만 편중되게 되면 다른 쪽 어딘가에는 적게 되는 게 아니겠나. 기존예산을 활용하면서 추가 투입하는 수준이 될 것이며 각 부처별로 협의가 마무리 중에 있다. 이 때문에 복지부 장애인정책팀이 다른 부처의 '공공의 적'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

- 앞으로의 보건복지부 계획은.
내부에서도 장애우 복지정책의 방향성을 놓고 치열한 고민과 토의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내린 결론이 ▲중증장애우 ▲저소득장애우 ▲장애아동 우선 정책이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들을 계속 생산해낼 것이다.

상반기에는 엘피지라는 밀린 숙제를 처리하면서 많은 욕을 먹었지만, 하반기에는 제대로 된 숙제를 하면서 칭찬받고 싶다.

현재 검토 중인 사안들로는 앞서 언급한 ▲장애우 등록체계의 개편 ▲서비스전달체계 정비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수발보험제도 ▲활동보조인 서비스 ▲성년후견제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 및 추진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계획을 추진하면서 문제점이 있는 장애우 복지법이나 법령도 함께 정비할 생각이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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