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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낳고 잘 살고 있어요"

마동훈 이순희 부부

본문

평생 시설에서 살다가 죽는가 싶었는데, 내 집을 마련했고,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결혼을 축하해 줬지만,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치 못했나보다. 사람들의 편견을 깨버리기라도 하듯 모든 걸 내놔도 아깝지 않은 분신까지 생겼다.
지금은 잠시 아들과 떨어져 있지만, 함께할 그날을 꿈꾸면서 행복한 미래를 가꿔가고 있는 마동훈(38, 뇌병변 1급), 이순희(35, 뇌병변 1급)씨 부부의 삶을 살짝 함께했다.


     ⓒ전진호       기회?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동훈 씨가 시설에 입소한 건 13살이 되던 해.
일 년이라도 더 그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한살 줄여서 시작한 시설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건, 33살이 되던 지난 2003년도였다.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 주숙자 소장님을 만난 건 18살 때였어요. 제가 생활하고 있던 시설에 봉사활동을 하러 오셨다가 우연찮게 인연을 맺게 됐고, 친해지게 됐죠. 그 뒤 소장님께 제 마음속에 담고 있던 생각을 털어놨어요.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장애 때문에 포기하고 살면서 쌓인 고민들 말이죠.”

구체적으로 시설에서 나올 준비를 시작한 건 1999년도였다.
주 소장이 사회복지사양성교육을 수료하기 위해 2주간 동훈 씨가 생활하는 시설에서 실습하는 동안 다른 시설과의 보치아 친선경기가 열렸다.
돌아오는 길, 선수인 동훈 씨와 자원봉사를 위해 따라나섰던 주 소장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동훈 씨는 주 소장에게 “누나, 나는 평생 이 시설에서 살아야 해? 이렇게 계속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면 빨리 죽고 싶어. 노총각으로 늙어가며 결혼도 못하고 이곳에 갇혀있다 죽느니, 젊었을 때 죽어버릴래”라고 고백했고, 이를 허투로 듣지 않은 주 소장은 이 일이 있은 지 1년 후, 동훈 씨에게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서 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2001년 7월 9일, 동훈 씨는 드디어 시설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주 소장님께 정말 죄송하죠. 처음 저를 데리고 나올 요량으로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 설립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를 약속했대요. 하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누구하나 도움 주는 이가 없었던 거죠. 덕택에 소장님 혼자 센터일 보랴, 가사 도우미하랴, 신변 처리해주랴 정신없었죠. 정말 북치고 장고치고, 꽹과리 치고 혼자 다하셨어요. 소장님에겐 정말 미안했지만, 저 역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여기서 포기한다면 다시갈 곳은 시설밖에 없기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밀어 붙였던 거죠. 그러던 중 한 자원봉사 단체와 연결되며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어요”

2001년 7월, 체험 홈에서 나온 동훈 씨는 먼저 자립생활을 시작한 동료 집에서 1년간 함께 생활하다 2004년 11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순희 씨는 동훈 씨보다 더 오랫동안 시설에서 생활했단다.
“원래 나이는 3살, 시설에서의 나이로는 5살 때니 28년을 시설에서 생활했어요. 그곳에서 나와 자립한 건 서른 살 때였는데, 처음엔 그룹 홈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했죠.”

요리부터 빨래까지 모든 것을 혼자 다 해야 하는 그룹 홈의 생활이 순희 씨에겐 악몽 같았다고. 자립생활이 아닌 ‘극기훈련’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독립하려면 돈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설에서 자신보다 중증인 장애우를 도와주거나, 아이를 돌보고 목욕시키는 일을 하며 한푼 두푼 모아가기 시작했고, 순희 씨 역시 아파트가 생기며 명실상부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전진호       105동 여자, 104동 남자의 사랑

맺어질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시설에서 나온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또 다시 재회했다. 순희 씨는 105동, 동훈 씨는 104동의 세대 주인으로.
“시설에서 알고 지냈던 건 20년 가까이 되죠. 하지만 집 사람(순희 씨)이 저한테 마음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목소리 큰 남자가 기실 자신의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함이듯, 순희 씨가 먼저 프러포즈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훈 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슬며시 놀리고 싶은 맘이 들었다.

“2005년 5월의 어느 날인가,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에서 간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는데, 집 사람이 점심때 쯤 놀러왔어요. 소장님과 이야기하던 중 ‘순희 씨 이제 시집가야하지 않아?’라고 물었더니 ‘저는 결혼할 준비가 다 되었는데, 누가 눈이 좀 높아서요’라며 흘깃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와이프가 저한테 마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절 건드려보고 싶었대요. (웃음)”

비장애우와 결혼하고 싶다고 일찌감치 선언한 동훈 씨였기에 선뜻 ‘찔러볼’ 엄두도 못 내고 있던 순희 씨였지만,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세라 미련 없이 ‘푹 찔렀다’.
하지만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고.

“제가 장애 때문에 허리가 휘어 있어요. 그런데 소장님이 보시기에 ‘너무 휘어지는 거 같으니 병원에 가보자’ 해서 갔죠. 병원에선 수술을 받으면 필 수 있는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더군요. 죽을 수도 있고, 자칫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하니 선뜻 수술을 받을 수 없더라고요. 이 때문에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집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어떻게 ‘너와 결혼하고 싶다’란 대답을 하겠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미래가 뻔한데, 저와 결혼하면 고생만 시킬 테니 거절하려고 했죠. 하지만 순희의 고백을 듣곤 ‘한 달만 고민해보자’고 미뤘고, 두 달을 고민한 끝에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죠.”

6년 동안 동훈 씨를 지근거리서 도와줬던 교회 집사님의 지원 덕에 결혼식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저는 150여명, 집 사람은 50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했어요. 둘 다 고아라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많이들 오셨다고 소장님이 고맙다고 우시는데, 어찌나 마음이 찡하던지...”

저 사람들 어떻게 임신했대요?

 
ⓒ전진호  
버스를 내려서도 한참을 가야 윤상이가 있는 광주 영아일시보호소에 도착한다. 도저히 전속력으로 달릴 전동 휠체어를 따라갈 자신이 없어 택시를 탔더니 우리가 먼저다. 5분가량 기다렸을까, 부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디찬 바람을 맞은 덕에 꽁꽁 얼어서인지, 윤상이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잔뜩 홍조를 띄고 있었다.
보호소에 도착하자마자 부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쓰고 온 모자를 벗고 단정하게 빗질하기, 다음은 동훈 씨의 만능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딸랑이부터 쿠션까지 없는 게 없다. 오늘은 특별히 씨디를 준비해왔다. 영유아기 때 동화책 등을 들으면 지능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다.

드디어 아들 등장!
입 꼬리가 올라간 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 예쁜 걸 일주일에 두어 번 밖에 못 보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아들 잘생겼죠? 저 안 닮아서 잘 생겼어요. 닮았다고요? 제가 이렇게 잘 생겼단 말이에요?”, “우리 윤상이는 모델기질이 있어요. 엎드려놔도 카메라를 인식한다니까요. 얼마나 포즈를 잘 잡는데요.”라며 한껏 팔불출을 늘어놓는 동훈 씨,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순희 씨의 모습에 뭉클해진다.
처음 아이를 낳겠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중증장애가 있는 부부가 아이를 낳고, 직접 키우겠단 마음먹기도 힘들고, 주변에서도 반대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갖고 있던 기자가 민망스러웠던 순간이었다.
“결혼초기, 소장님께서 ‘아이를 낳을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낳고는 싶지만 자신이 없어서 살짝 ‘네’ 그랬는데, 와이프는 큰소리로 ‘네’ 대답하더라고요. (웃음)”

사실 많은 이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관심 있기보다, 어떻게 아이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더 큰 호기심을 보였다고. 이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단다.
“소장님한테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대요. ‘저 사람들 어떻게 아이를 가졌대요?’라고. 그게 그렇게 신기한가 봐요. 심지어 저를 취재해 간 한 방송국의 작가분도 사석에서 그런 물음을 던졌으니 말이죠.”

임신은 순희 씨가 했지만, 그 사실을 먼저 눈치 챈 건 다름 아닌 동훈 씨였다. 어느 날인가 순희 씨가 오한이 들면서 몸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심결에 ‘약 먹어야지’라고 했는데, 아니란다.

“처음엔 그냥 아픈가보다 했었는데, 갑자기 ‘임신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 사람에게 임신한 것 아니냐는 말은 차마 못 꺼내고, ‘여보 혹시 그거 아닐까’물었더니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자 싶어, 바람 쐬러 나간다는 핑계를 대곤 임신 테스트기를 사다가 확인해봤더니 정말 임신했더라고요”
임신한 사실을 주 소장에게 가장 먼저 전했지만,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어떻게 그런 것(테스터 기) 가지고 확인할 수 있냐며 병원을 데려갔고, 새 생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임신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아기를 직접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인터넷도 뒤졌고, 소장님에게도 물어봤고, 예전에는 공공근로 어머니들도 많이 오셨는데 이분들께도 물어보고요. 아이 낳고서 당혹해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했죠”

몸속에 아이하나가 더 있는데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순희 씨는 단호하게 도리질 한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순희 씨의 표정을 보는데 문득 아이에 대한 사랑, 애정, 그리움 등이 한꺼번에 묻어나는 듯 했다.

“입덧도 안하고 그래서 와이프한테 참 고마워요. 한번은 몸에 좋으라고 장어를 사다줬더니만 먹어본 적도 없고, 비싸다고 안 먹겠다는 거예요. 억지로 먹기를 권했더니만 너무 잘 먹는 거 있죠? 전 몇 조각 먹지도 못했어요.(웃음)”

사랑의 결실, ‘마윤상’

 
ⓒ전진호  
이런 과정을 겪으며 작년 8월 19일 순희, 동훈 씨 부부는 그토록 기다리던 윤상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애당초는 아이를 낳자마자 직접 키울 생각이었단다. 이 문제를 놓고 주 소장과 싸우기도 했다고.
“처음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충분히 기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하지만 소장님께서는 “아이 키우는 건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영아를 돌보려면 세세한 게 얼마나 많은데... 아이가 걸을 수 있을 정도까지만 맡겼다가 그 때 데려다 키워라“고 만류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혹시나 우리가 실수해서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당분간만이라도 영아일시보호소에 맡기기로 결정했죠.”

사실 윤상이가 머무르고 있는 영아일시보호소에는 마 씨 부부처럼 아이를 맡길 수 없다. 하지만 마땅히 봐줄만한 혈육이 없는데다, 달리 맡길만한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특별 케이스로 한시적으로 머물 수 있게 됐다.

육아보조 등 약간의 지원만 있더라도 핏덩이를 두고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한을 품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답답한 현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윤상이의 백일되던 날, 처음으로 집에 데려와 하룻밤을 보냈어요. 아기가 들어오니 텔레비전도 덜 봐야 하고, 제 개인생활도 접어야 하니 피곤하고 힘들긴 했지만, ‘이게 정말 아기 사는 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오는 7월 25일에는 윤상이를 데려오려고요. 그때쯤이면 윤상이에게 조금이나마 방어능력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쁜 마음도 들겠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불안감도 느낄 것 같았다.
“윤상이에게 기대하는 건 없어요. ‘아이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연예인이 됐든 뭐가 되던 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밀어주고 싶어요. 어떤 희생을 치르던지 말이죠. 윤상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에 대고 “내 아들아, 엄마와 아빠는 장애가 심해서 다양한 걸 해주기 힘들고, 네가 넘어져도 뛰어가 널 잡아주지 못할 거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친구들에게 ‘너희 엄마 아빠는 장애우지?’라며 많은 놀림을 당할 거다. 하지만 윤상이, 나의 아들은 씩씩하고 용감하게, 힘들겠지만 열심히 살아 주리라 믿는다’고 말해줬어요. 전 윤상이가 우리 집에 가서도 계속 이 이야기를 해줄 거예요. 그래야 아이가 나중에 커서 충격도 덜 받을 테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틀을 잡을 거라 생각해요”

중증장애우도 아이 낳고 잘 살 수 있다는 본보기 될 터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윤상이를 잘 키울 꺼라 다짐했단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음을 먹을 수 있고, 결혼해 아이 낳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사소한 다짐이, 누구에게는 모든 걸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만 하는 건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로는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낳고나면 전혀 도움주지 않는 현실, 최소한의 지원체계조차 없는 사실을 접하고 나니 정부 정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와 같이 활동보조인서비스가 꼭 필요한 사람이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건 큰 문제죠. 현재 활동보조를 이용하고 있거나 활동보조가 없으면 삶을 영위하기 힘든 이들,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생활 중인 장애우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주고 차차 늘려갔으면 하는데,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시행하니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기준점 끊어 무조건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쓰라고 하는 건 문제라고 봐요. 꼭 정부가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간이 맞나 안 맞나 재보는 듯 한 느낌이 들어 화가 나요. 만약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 자립생활은 실패로 돌아갈지 몰라요”

책상 앞에서 소수의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눈 후 내린 정책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도 지적했다.
“현재 활동보조인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것도 모두 중계기관에 맡겼는데, 분명 문제가 생길 거라고 봐요. 실제로 활동보조인을 모집하기 위해 전단지를 나눠주면, 학생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시급은 센데, 시간이 짧아서 못하겠다는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2시간 일하는데 왔다갔다 한 시간이 소모되요. 나머지 시간에는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는데,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 몇 십만 원 벌자고 누가 그걸 하겠냐고 반문하는데 할 말이 없어서 ‘알겠습니다’고 물러선 적이 있어요”

요즘 이순희, 마동훈 부부는 윤상이를 보러가는 날을 제외하면 쇼핑도 하고, 장애 계 현안과 관련한 집회에도 참석하며 하루를 보낸단다. 특별히 최근에 관심 갖게 된 건 영화.

문화생활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단다. 못해도 한 달에 한번 씩은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고.

광주 극장가에서 꽃처럼 화사한 아가와 함께한 전동 휠체어 두 대를 보게 되면 아는 척이라도 해주시길.
머지않아 온 가족이 함께 영화도 보고, 쇼핑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마동훈, 이순희 씨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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