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 “해파리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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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를 둘러싼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시각을 제한된 인원으로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 ‘영화 ‘포레스트검프’에 견줄만한 훌륭한 작품’. ‘눈물너머로 내내 기막힌 영상을 접했다. 보고 나서도 맘이 찡해 잠자리 들기가 편하지 못했다. 이 작품을 놓친 분들을 위해 재방송했으면 한다. 비디오로 나오면 소장하고 싶다.’ 처음엔 김규철 씨의 연기에 기가 질리고 그 다음엔 영상 장면 장면이 숨막히게 했다.’ 지난 10월 24일 저녁 KBS 제2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원작 이순원, 극본 박남준, 연출 김충길)에 대해 드라마홈페이지의 시청자 의견란에 올라온 1백여 개의 감상편 중 일부를 옮겨 본 것이다. ‘포레스트검프’라든지 청각장애우의 사랑을 그린 ‘그대가 나를 부를 때’ 등 장애우의 삶을 그린 작품은 그 동안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가 이처럼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에 나오는 지체장애우 세일이라는 인물이 실존인물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갔고, 세일 역을 맡은 연기자 김규철씨의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연기가 마치 죽은 ‘세일이 아저씨’가 ‘살아 돌아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것 같다.
누구는 ‘연기란 인간성의 승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인간성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연기자 김규철 씨를 만나 ‘그가...’의 제작과정과 ‘세일’ 이라는 연기를 하면서 느낀 것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저면 그렇게 죽은 해파리와 똑같냐?”
― 드라마가 방송 된 뒤, TV문학관 인터넷 홈페이지 시청자의견란에 들어가 보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대단하던데요. 특히 김규철 씨의 연기가 좋았다는 평이 많던데 소감이 어떠세요?
“세일이는 실존 인물이에요. 원작에 보면 97년에 돌아가셨다고 나왔는데 소설가 이순원 선생님도 그러시더라구요. 방송 끝나고 나서 동네 분들이 이순원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해파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걸었는지 네가 그 배우한테 다 얘기해줬느냐’며 어쩌면 그렇게 죽은 해파리 아저씨하고 똑같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좋아하시더라구요. 저는 느낀 대로 연기한 것뿐이에요. 제가 ‘해파리(극중 세일의 별명)’ 라는 인물을 좋아하니까 자연히 나온거죠. 일부러 뺨을 어떻게 움직여야겠다 눈빛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설정하고 거울 앞에서 연습한 적은 없어요. 그냥 한거예요. 해파리만 생각하면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소를 끌고 다니면서... 지금도 그때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좋은데, 그 사람 삶을 생각하면 슬퍼지고 마음이 아프고 그렇더라구요. 극중에서 우는 장면들은 특별한 노력이나 억지 없이 그냥 했어요. 오히려 눈물이 너무 나서 촬영에 방해가 될 정도였어요. 해파리라는 분의 삶이 제게 와 닿은 것 같아요.”
― 혹시 주변에 장애가 있는 분이 있나요?
“친척 중에는 없어요.”
― 이번에 연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 다 힘들었지만 소 끌고 성치 않게 걸으면서 대관령 산길 돌아가는 게 힘들었어요. 방송에는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촬영할 때는 1.5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소를 끌고 대여섯 번씩 왔다 갔다 했거든요. 끝나면 다리에서 쥐가 나서 주위 사람들이 주물러 주기도 하고 그랬죠.”
― 제작기간이 얼마나 됐죠?
“지난 여름 두 달 동안 촬영했어요. 바닷가 옆에서 촬영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수영복 입고 해수욕장에서 노는데 제가 얼굴을 꺼멓게 칠하고 해파리 옷 입고 소 두 마리 끌고 다니면 사람들이 뭘찍나, 진짜 장애운가 하고 쳐다보곤 했어요.”
― ‘세일’이라는 배역을 맡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는 따로 없구요. 김충길 감독님이 대본을 읽어보시고 ‘해파리’라는 인물이 저랑 맞겠구나 해서 캐스팅 하신거죠.”
― 대본을 처음 받아서 읽어보고 어땠어요?
“감독님께서 각색되기 전의 원작을 먼저 주시더라구요. 제가 이순원 씨 작품을 전부터 많이 읽었는데 ‘해파리에 관한 명상’은 영상을 그리며 읽으니까 재밌겠더라구요. 동시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감독님 스타일을 제가 알고 촬영장소도 대관령이니까요. 그렇지만 워낙 힘든 연기를 좋아하니까 하겠다고 했죠. 작품 읽어보고 마음에 들었어요.”
“해파리 아저씨 때문에 장애우 친구랑 잘 놀거예요”
― 장애우 연기는 이번이 처음인가요?
“세일이 처럼 눈에 드러나는 장애는 아니고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저는 역할을 3년 전 드라마게임에서 했어요. ‘우체국에 가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예쁜 작품인데 거기서 다리를 저는 우체부 역할을 했죠. 그 때는 연기하면서 장애를 표현하는데 큰 비중을 두지 않았어요.”
― 왼쪽팔과 두다리. 얼굴에까지 장애가 드러나는 연기를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감독님께서 처음에 저를 섭외하실 때는 얼굴이 안보이는 원거리 풀샷장면은 장애우들이 와서 연기할거라고 하시면서 ‘은평천사원’이라는 장애우 시설을 소개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믿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불편하신 분들을 모시고 한 달씩이나 그것도 지방에 다니면서 촬영할 수 없겠더라구요. 개인적으로도 연기욕심이 나고 해서 장애가 있는 분들을 관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세일이처럼 두 다리, 한 팔이 불편하신 분들이 길에는 많이 안다니시더라구요. 그렇다고 연기하는데 흉내 좀 내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해서 일부러 장애우복지관 몇 군데 앞에 차를 세워놓고 그런 장애우가 지나가면 보려고 했는데 대부분 휠체어를 타는 장애우 뿐이고 제가 표현하려는 장애를 가진 분은 못 보겠더라구요. 다행히 감독님께서 원작에 있는 그대로 장애를 다 표현할 필요는 없고 흉하니까 적당한 선에서 해보자고 하셔서 이런 모양이 제일 적당하겠다고 감독님하고 같이 만들어낸거예요.”
― 대역은 쓰지 않았나요?
“두 번 썼어요. 해파리가 처음 소몰이를 하고 와서 곯아 떨어져 있을 때 당숙이 와서 해파리의 상처 난 다리는 주무르는 장면이 있어요. 그 때하고 두 번째로 맞이한 부인이 해파리의 발을 씻겨줄 때 얼굴은 안 나오고 다리 부분만 나오는데 그때 대역을 썼어요. 해파리는 생후 1개월 만에 장애를 갖게 돼서 다리가 가는데 제 다리는 맞지 않으니까 감독님이 그 부분만 대역을 쓰신거죠.”
― 극중 당숙과 외사촌 형이 해파리를 대하는 태도는 비장애우들이 장애우를 대하는 태도를 대비해서 표현한 것 같더군요.
“방송이 나가고 나서 컴퓨터 통신에 당숙에 관한 얘기가 많이 올라와요. 당숙이 하신 게 바른 길이겠죠. 외사촌 형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실존인물이에요. 원작에는 사촌형 이름이 ‘도근’이라고 나오는데 그 쪽 집에서 항의가 들어와서 드라마에서는 ‘달수’로 바꿨죠.”
외사촌 달수와 당숙에 대한 절묘한 대비에 대해 한 시청자는 거의 평론가 수준의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주인공의 당숙아저씨는 가능하면 비장애우와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대부분의 장애우들이 가지게 되는 끝없는 열등감과 소외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할 수 있게 배려해 준다. 주인공의 외사촌이 내 뱉는 말. “그놈의 영감탱이, 병신조카를 좀 내버려두지 않고, 참 끝까지 부려먹네.” 이 말은 사실 장애우를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시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나보다 못한 사람은 그냥 끝없이 보호해야 하고, 그리고 가능하면, 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비록 그 외사촌이란 인물이 맡은 극중 악역의 비중이 너무 강조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겠지만.’
― 이번에 연기하면서 장애우에 대한 생각이 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그럼요. 드라마를 본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저는 한 달 반 이상을 해파리라는 인물하고 같이 했고 대역을 해주기 위해 오신 분들도 있고 해서 장애우에 대해 많이 알게 됐죠. 저야 심성이 착해서 예전부터 그런걸 나쁘게 보지 않았는데(웃음) 더 좋아졌어요. 여섯 살짜리 제 아들도 유치원에서 몇 달에 한번씩 장애아동하고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옛날엔 장애우 친구랑 같이 노는 게 싫었는데 해파리 아저씨 때문에 이젠 잘 놀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어떤가요?
“시청률이 잘 나왔어요. 더군다나 지방에 촬영가면 나이 드신 분들이 얘기 많이 하시죠. 젊은 사람들도 많이 봤던 것 같고요. 작품 좋고 연기 잘했다는 것도 있지만 농담식으로 장애우협회에서 상 안주냐 그런 얘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느꼈고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를 막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한 인간으로 봐야하지 않겠느냐’는 분들이 많아요.”
― 해파리 역을 실제 장애우 연기자가 맡았다면 어땠을까요?
“글쎄요. 그런 장애를 갖고 있는 분 중에 탤런트 하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안 찍어 봤으니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죠. 그런 아픔을 직접 갖고 있는 분이 하면 연기를 더 잘 했을 수도 있지만 카메라 메카니즘을 잘 모르면 정서만 가지고 다 표현 되는 게 아니니까 일장일단이 있겠죠.”
― 제가 인터뷰 한 분 중에 장애우 연기자가 있어요. 현재 극단에서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분은 장애우 역할은 장애우 연기자가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든요.
“‘제 8요일’처럼 실제로 그런 분이 연기하면 효과가 있죠.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든 배우라는 직업은 모든 역을 할 수 있고 그것이 가능한 직업이에요. 물론 그 분 말도 맞죠. 그 분이 자기 장애를 딛고 배우가 되면 가능하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소재를 외국처럼 잘 안다루니까 현실적으로 수입에 문제가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장애우의 날이라고 드라마를 일 년에 한 편 만든다고 하면 생활을 어떻게 할거냐구요. 그 분이 도전을 해서 연기력을 키워서 이번 역을 잘 해내고 갈채를 받으면 그 사람에게도 좋고 보는 사람도 완성된 작품을 보겠지만 우리나라는 시장이 작으니까 어려움이 있겠죠. 그렇지만 극단에서 일하신다고 그러니까 좋다고 봐요.”
서편제만큼이나 기억에 남을 작품
― 이번 연기에 만족하세요?
“배우자가 자기 연기에 만족한다고 하면 자만이죠. 아쉬운 점이 많아요. 사람들이 다 칭찬하지만 초반에 찍은 거랑 한 달쯤 지나서 익숙해져서 찍은 걸음걸이는 달라요. 저는 알잖아요. 저거는 첫 촬영 때고 저거는 무르익었을 때다 이게 딱 눈에 띄니까 지금 다시 찍으면 마지막 찍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사람들 반응이 좋으니까 실패했다고는 생각 안 할 뿐이지만.”
― 드라마를 방송하기 전에 시사회를 했다고 들었는데 기자들 반응은 어땠나요?
“좋았죠. 단막극 하니 치고 4대 일간지에 다 평이 나오고 저에 대해서도 좋게 써줬고, 젊은 트랜디 드라마가 판치는데 그래도 KBS니까 이런 걸 만드는 거라는 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으면 좋게 봤겠죠.”
― 원작의 제목은 ‘해파리에 관한 명상’이었는데 드라마는 ‘그가 발길을 멈추었을 때'로 바뀌었잖아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시사회 때 기자분들이 작가 이순원 씨에게 그 이유를 질문했었는데요. 감독님 의견이 다른 작가 작품 중에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라는 것도 있고 느낌이 딱딱해서 제목을 찾으려고 시집 2백 권을 뒤졌다고 하더라고요. ‘해파리에 관한 명상’은 책이 다시 나올 것 같은데 이 제목으로 나올 것 같아요. 오히려 이게 더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 어떤 분들은 드라마 끝 부분이 아쉬웠다고 하던데요.
“저도 아쉬운 부분이 있죠. 심리적인 묘사 없이 덜퍽덜퍽 넘어간 부분은 아쉬웠는데 감독님 영역이니까요. 끝 부분에서 너무 서둘러 막을 내린 것 같기도 한데 워낙 시간상으로 쫓겼기 때문이죠. 원래 90분 짜린데 찍은게 워낙 많기 때문에 1백분 몇 초가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방송사에서는 몇 초만 초과되도 큰 문젠데 10분이나 초과 될 수 있었던 것은 심야 시간되니까 가능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더 담고 싶어도 2분작이 아닌 다음에는 시간 때문에 찍어 놓은걸 더 붙이기 힘들죠.”
―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김규철 씨도 ‘해파리’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리셨더군요. ‘서편제 만큼이나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고 쓰셨던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서편제예요?
“연극만 10년 하다가 제가 영상매체로 온 첫 작품이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서편제니까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거죠. 이번 작품은 삶에 변화를 가져온 건 아닌데 일할 때 즐거움을 따지면 정말 좋았어요. 여름 내내 남들은 피서 갈 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땀흘리고 한 그런 기억들이 오래 남을 것 같아요.”
― 데뷔하신게 언제죠?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많이 봤어요. 제가 60년 생인데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다른 학교 갔다가 군대 갔다 오고 나서 서울예전에 다시 들어갔어요. 졸업을 86년도에 했고 그 다음부터는 쭉 연극을 한 거죠. 92년도에 서편제를 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죠.”
― 제가 기억하기에 드라마에서 그리 튀는 배역보다는 평범한 서민 역을 주로 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드라마라는 게 맨날 뻔한 얘기니까 맡는 역도 털털한 사위, 마마보이 이런 역이죠. 저도 그게 편하고요. 물론 최민수, 차인표 씨처럼 방송에서도 성격 강한 좋은 역할을 맡는 연기자도 있지만 너무 급하게 만들어지니까 그 인물에 대해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죠. 그렇지만 연극에서는 미친 사람에서부터 별거 별거 다 해봤어요. 그래서 일년에 한 번은 연극하면서 성취감을 느끼죠.”
―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드라마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각 방송사가 워낙 시청률만 따지니까 제가 KBS사장이 되면 모를까 그렇잖아요(웃음). 조금이라도 의식있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고 나서 다 제게 아닌데 하면서도 맨날 젊은이들 사랑놀음, 유치한 가정사 이런 얘기를 제목만 바꿨는데 다 본단 말이에요. 방송사도 어차피 경영 차원에서 보면 시청률이 잘 나와야 광고도 들어오는 거고 어쩔 수 없는 악순환 같아요. 그래도 가끔은 드라마도 하잖아요. ‘국희’나 ‘은실이’ 같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드라마도 일 년에 몇 편씩 나오니까.”
― 힘은 없다고 했지만 나름대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작가나 연출가가 되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역할에 열심히 하는 것. 그 생각 밖에 없어요. 옛날에 대학교에서 연극 공부할 때 어느 교수님이 그랬어요. 화가가 그림을 백장을 그리면 그 중에 좋은 게 하나가 나오는 거지. 좋은 거 그리겠다고 평생 한 작품 그렇다고 좋은 게 나오는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마찬가지로 드라마 몇 개 하다보면 정말 다섯 개중에 네 개는 저게 드라마냐, 우리 드라마 뻔하다는 소리 들을지라도 그 중에 하나, 이번 ‘그가...’처럼 ‘맞아, 저게 드라마야’ 이런 소리 들으면 더 기분 좋지 않아요? 그런 심정으로 하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앞으로도 연기 계속 하실거죠?
“이번 거 하면서 그런 걸 느꼈어요. 사람들이 하기 꺼려하는 걸 해도 작품이 좋으면 인정을 받는구나. 연기자들이 이미지 때문에 뭐는 안 한다. 이런 부분이 있는데 저는 다방면으로 하고 싶어요. 왕초 같은 데서 거기역도 맡고 싶고 사극에서 왕 역할도 해봤지만 어는 분야든 열심히 해야 두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열심히 하지 않으면 특히 이 분아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니까 연기를 하는 동안은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죠.”
시청자 이정준 씨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느꼈다고 한다. ‘병신 팔푼이고, 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스스로를 여기던 주인공에게, 어린 조카가 다가가 “난 아제가 좋아예. 난 이담에 꼭 아제 양자로 들어갈꺼라예”라고 말했을 때 세일이 아저씨는 불쌍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 왠지 모르지만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 그것만큼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가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 그 조카로 인해 주인공은 사지가 멀쩡하게 다니는 모습이 아닌, 반신불수인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이정준 씨와 같은 시청자들의 수가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질 거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드라마를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그가...’가 꼭 재방송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노윤미 사진/ 김학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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