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우시설 "오베베"의 에곤 슈트라이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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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독일에서 장애우시설 "오베베(OWB)"를 운영하고 있는 에곤 슈트라이허(Egon Streicher) 대표가 한국을 방문했다.
독일 라벤스부르크(Ravensburg)에 중앙센터를 두고 있는 오베베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정신지체인을 지원하고, 자잘하게 흩어져 있는 장애우 시설들을 관리,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道)의 절반쯤 되는 지역에서 6개의 장애우작업장과 슈퍼마켓, 여가 호텔, 규모가 약간 큰 주거시설 3곳, 개별주거 40여곳, 외부 그룹홈 4곳을 관리하면서, 정신지체인이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생애 전반을 염두에 두고 지원하고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정신지체인이 무려 1천명에 달한다니,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독일의 정신지체인들은 이 센터를 어떻게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함께걸음>이 방한 중인 에곤 슈트라이허 대표를 만나보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생애를 고려한 서비스 제공
함께 : 우선, 독일의 장애우 지원체계는 어떻게 돼나.
에곤 : 일단 장애아동은 주로 산부인과나 소아과 의사가 발견해 진단을 내리고 정부에 신고한다. 그러면 정부는 아동에게 필요한 것을 따져서 지원하기 시작한다. 이때 장애등록을 하면 관련 혜택을 받기 쉽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빠른 서비스를 원하면 등록을 하는 것이 편하지만 등록이 의무는 아니다. 장애등록을 하든 안하든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등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독일에서는 장애아동이 태어나면 우선 조기교육을 받고, 유치원에 들어가 개별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그러고 나면 통합학교나 장애유형별 특수학교에 들어가 18세까지 학교교육을 받고, 그 다음엔 작업장이나 일반 회사에 취업하거나, 중증장애우의 경우엔 주간보호를 받는다. 또, 30대가 되면 주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당사자는 순회주거, 위탁가정, 생활시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65세가 되면 대부분 퇴직을 하는데 이때부터는 노인그룹에 속해 간병 등의 서비스를 받는다. 주로 40세부터 장애가 심화되는데, 노인그룹에 속하면 일년에 1만440유로(약 1천 305만원)가 지원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중 케어를 받게 된다.
함께 : 대규모의 장애우 생활시설은 없나.
에곤 : 대규모 시설(독일은 대규모라고 해도 50~60인 시설이다)이 있긴 하지만 없애는 중이고, 98년부터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돈을 들여 큰 시설을 없애고 있다. 현재 생활시설의 경우 최대 24명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고 가능한 적은 수가 지역사회 중심으로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하고 있다. 장애우가 되도록 생활시설에서 살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원칙이지만 중증의 경우엔 시설로 가기도 한다. 독일에는 장애우 주거형태로 본래 가정과 생활시설만이 아니라 위탁가정, 순회지원 주거 등이 있어서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함께 : 순회지원 주거 위탁가정은 뭔가.
에곤 : 순회지원 주거란 장애우가 원하는 집을 얻는 것부터 스스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리, 청소, 행정적 문제 등의 서비스들을 담당 사회복지사가 지원하는 주거형태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혼자 아파트에 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살기도 하는데, 시에서 사회복지사 일인당 8.5명을 순회하며 지원토록 하고 있다. 순회지원 가정의 경우엔 사회복지사나 관련 전문위원이 평가한 간병 등급(전체 5등급 중 5급이 최중증)이 적어도 3급이 돼야 갈 수 있다.
위탁가정은 본래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장애우에게 방과 음식 등을 제공하는 주거형태다. 위탁가정 모집 공고를 내면 상당히 많은 가정이 신청하는데, 사회복지사가 각 가정에 직접 방문해 장애우가 통합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면밀히 조사한다. 그리고 함께 살 수 있는지 서로 탐색하는 기간을 거친 다음 한달에서 반년까지 시험적으로 살아보고 양자가 모두 좋다고 하면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장애우가 어떤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탁가정에 지원해줄 수 있는지 등을 결정하고 비용을 계산한다. 위탁가정은 정부로부터 한달에 대략 1천유로(약 120만원) 정도를 지원받는데 여기에는 장애우의 주거, 생계, 용돈, 의복, 간병비 등이 포함돼 있다.
함께 : 위탁가정의 경우 다른 가족과 생활하는 것이라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문제는 없나.
에곤 : 우선 사회복지사가 재활센터 등을 연결해 위탁가정이 장애우로 인해 특별한 부담을 받지 않도록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장애우가 가정 내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청과 연계하고 위기대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위탁가정은 특수한 교육을 받은 가정이 아니라 일반 가정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서비스는 가정의 외부에서 필수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위탁가정과 장애우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사회복지사가 상담은 물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지원한다. 그리고 애초에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탁가정들 간의 정기 모임을 꾸리고 분기별로 기관에 초대해서 혹시 문제는 없는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통 사회복지사는 일인당 10개의 위탁가정을 담당한다.
자동차 생산기업, 장애우에게 하청주지 않는 곳 없어
함께 : 최대한 지역사회로, 그리고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독일은 이뿐만 아니라 장애우 직업과 관련된 지원도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곤 : 지체장애우의 경우에는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가계 등의 판매직에 취업 연결을 한다. 그러나 정신지체인의 경우에는 바로 취업할 수 없어서 졸업 후 작업장에서 2년정도 직업훈련을 받는다. 직업훈련을 받고 나면 일반기업에 취직하거나 작업장에 남거나 취업이 어려운 중증의 경우엔 주간보호를 받는다.
독일의 직업재활사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전문기술자나 엔지니어 출신으로 700시간 정도의 직업재활 관련 특수교육을 받고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는 2천1백개의 장애우 작업장에서 25만명의 정신지체인이 근무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이 작업장들이 경쟁하지 않고 모두 모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장단점을 평가하면서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함께 : 한국은 현재 고용장려금이 축소되면서 장애우 작업장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은 어떤가.
에곤 : 작업장에서 하는 업무에는 서비스업, 공장 노동, 사무직 보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부품 하청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가장 많다. 독일의 자동차 생산기업 중에서 장애우에게 하청을 주지 않는 기업은 없다. 다만, 독일에서도 장애우가 만든 생산품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 광고를 할 때 장애우가 만들었다고 선전하지는 않는다. 그밖에 포장, 금속, 조립, 정원 일의 경우는 사실상 수입이 거의 나지 않지만 원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독일 기업도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임금이 적은 동유럽으로 나가고 있는데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있어서 장애우 작업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작업장 내 전문인력들이 기업에 홍보를 나가기도 하고 국제표준기구의 인증(ISO)을 받아 생산품의 질을 보장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점차 정부 지원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줄더라도 작업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다.
함께 : 오베베에서 운영하는 작업장 중에는 새로운 시도도 많은 것 같다.
에곤 : 오베베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슈퍼마켓이다. 슈퍼마켓은 장애우가 일하기 좋은 곳 중 하나다. 이전엔 장애우가 슈퍼마켓에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수입이 낮은 슈퍼마켓을 사서 정신지체인이 일하게 했을 때 사람들은 곧 망할 거라고 여겼다. 물론 슈퍼마켓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러나 전문 슈퍼마켓 운영자를 데리고 와서 운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수입이 점차 늘었고, 지금은 장애우들이 일하는 슈퍼마켓의 숫자도 33개로 늘어났다. 이제는 33개 슈퍼마켓이 한꺼번에 물건을 구입하기 때문에 매우 저렴하게 물품을 공급받게 돼 경쟁력도 증가했다. 운영 초기엔 4만유로(약 5천만원)를 손해 봤지만 3년이 지나면서 소득이 증가해서 지금은 인구 5천명의 소도시에서 1백만유로(약 12억5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요즘은 커피 판매점과 여관업을 새롭게 시작해 운영 중이다. 비장애우들이 하는 사업에 장애우가 참여하는 이런 형태의 시도들은 사업 성공여부를 떠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부터 개별예산제 의무적용
함께 : 이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1인당 들어가는 연간 비용이 얼마나 되나.
에곤 : 작업장에는 1인당 연간 1만7천유로(약 2천 125만원, 정부에서 80% 보조, 20%는 소득을 통해 조달함)가 들어가고 여기에 주거시설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더하면 장애우 1인당 대략 3만5천유로(4천375만원)정도가 들어간다.
그러나 이 비용은 결코 많은 게 아니다. 오히려 순회지원 주거의 경우는 전일을 상주하는 시설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예를 들어 2급 장애우가 시설에 있으면 연간 1만1천유로(약 1천375만원)가 들어가지만 순회주거로 나오면 7천8백유로(약 975만원)가 들어가기 때문에 연간 3천2백유로(약 4백만원)의 비용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성인 정신지체인의 경우에는 시설수용이 아니라 순회지원 주거 쪽으로 굳어가는 추세다.
그리고 이러한 주거와 장애우작업장에 들어가는 돈은 장애우 고용부담금을 통해 조달된다. 독일의 장애우 의무고용률은 6%다. 이는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데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부담금을 내야한다. 기업이 장애우 고용을 원하지 않는데다 독일엔 중공업이 많기 때문에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고 부담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 돈은 다른 곳에 사용되지 않고 100% 장애우작업장이나 주거시설 마련에 투여된다.
함께 : 장애연금처럼 장애우에게 따로 지급하는 지원금은 없나.
에곤 : 독일에는 연금제도가 하나다. 모든 사람이 이 연금제도를 통해 연금을 받고 장애연금은 따로 없다. 독일은 중증장애우의 경우 살아가는데 필요한 집, 용돈, 옷, 간병비, 치료비 등을 전부 대주기 때문에 특별히 장애연금이 필요치 않다. 주거시설의 경우 부모의 재산이 많으면 기여를 하기도 하지만, 작업장, 18세 미만의 훈련원, 단기보호, 휴가를 위한 숙박시설의 경우에는 부모가 돈이 많아도 무료다.
그런데 지난 2001년부터 "개별예산제"로 바뀌면서 이러한 정책에도 다소 변화가 일고 있다.
함께 : 개별예산제가 뭔가.
에곤 : 개별예산제란 개인을 보호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시설이 아닌 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형태를 말한다. 개인이 그 돈으로 시설에 가든, 집에 누워서 전문가를 고용하든 자기 맘이다. 2008년부터는 의무적으로 시행되며 정신지체인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원범위는 30~1만3천유로(약 3만7천원~1천625만원)까지 다양하다.
이 제도는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시행되고 있고 오히려 돈이 적게 든다고 해서 독일의 한 정치가가 도입했다. 그러나 시설 운영자들은 중증장애우의 경우에는 가사부터 치료서비스까지 지금과 같은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구매하면 비용이 훨씬 더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어차피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우라면 개인 활동보조인을 쓰나, 순회지원 주거를 이용하나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법안이 통과됐고 원칙상 2008년부터 의무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중증장애우의 경우도 개인이 원하면 개별예산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그만한 돈을 들여서 개인 활동보조인을 이용할 가치가 있는지는 조언을 하고 1년에 한번씩 이 돈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구청 같은 곳에서 감사를 하고 있다.
장애문제, 사람으로서의 가치 인정이 중요
함께 : 오베베는 주로 성인 정신지체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성(性)과 관련된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에곤 : 성관계를 갖고 싶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다만 제대로 건강하게 성 생활을 하게끔 전문 교육자에게 성교육을 받도록 한다. 이때 피임과 에이즈 등의 성병예방에 대해서도 교육한다.
또, 정신지체인의 경우 파트너를 자주 바꾸는 경향이 있어서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것이 어떤 점에서 안 좋은지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리고 동거를 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관계에 위기가 생길 때는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함께 : 동거 이야기를 했는데, 결혼이나 육아의 지원체계는 어떤가.
에곤 : 정신지체인의 경우에는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게 돼 있다. 둘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교회에서 목사가 축복을 해 주지만 시청에서 본인이 서명을 하고 법적으로 혼인할 수는 없다.
정신지체인의 경우 판단력이 약하기 때문에 가게에서 비싼 물건을 그냥 들고 와도 처벌받지 않고 불리한 계약을 맺더라도 무효화하고 보호받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법적인 결혼 서약을 해도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장애우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기 때문에 동거는 누구나 가능하고 성적으로도 자유롭다. 물론 아이도 낳을 수 있다. 단지 형식적으로 결혼이 되지 않는 것뿐이다.
현재 우리 시설에서도 5팀이 결혼을 했는데 이들도 같이 살고 결혼 형식도 갖추고 있지만 법적 혼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정부와 시설, 이웃에서 지원한다. 이 주제가 간단하지는 않지만, 이와 관련해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인식개선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함께 : 법적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인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법적으로 결혼은 가능하지만 실제 결혼, 동거, 성 향유의 통로가 완전히 차단돼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장애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에곤 : 개인마다 중요한 것은 다르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중심에 두고 한국의 장애우 정책을 바꿔갔으면 좋겠다.
인터뷰 이태곤 기자 / 정리 조은영 기자
통역 유병주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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