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애우 인권운동가 마르카 브리스토 (Marca Bristo) > 함께 사는 세상


미국 장애우 인권운동가 마르카 브리스토 (Marca Bristo)

힘을 합쳐라! 포기하지 말고, 집요하게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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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새벽,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애우 인권운동가 한 명이 한국에 도착했다. 마르카 브리스토(52, 미국 시카고 엑세스리빙센터 대표).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미국의 장애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장애우 인권운동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3월 28일 29일 양일에 걸쳐 정립회관 강당에서 열린 「2005 한·미장애인자립생활 워크숍(정립회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공동주최)」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의 자립생활과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해 강연하고 여성장애우의 인권과 권익옹호 활동에 대한 간담회를 가졌다.
한국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브리스토씨를 만나 미국의 장애운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함께 : 현재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은 어떤 이슈를 가지고 운동을 펼치고 있는가?
브리스토 : 우리는 요즘 대략 다섯 가지 이슈를 가지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미국에는 이미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미국장애인법, 미국사회의 장애우에 대한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 등 장애우 인권과 관련된 몇 가지 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단지 이러한 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장애우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이 실제 장애우의 권리를 보장하는 실효성 있는 법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현재 미국의 장애우 실업률은 매우 안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장애우의 실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애우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 번째로는 탈시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탈시설화는 단순히 시설 밖으로 장애우를 끌어내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거, 교통, 활동보조서비스 등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기술혁명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기술혁명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 기술혁명에서 장애우가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술혁명이 장애우의 삶을 보다 좋게도 할 수 있지만 장애우가 배제된 채 진행된다면 장애우의 삶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장애우가 포함된 기술혁명이 진행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장애우의 정치적인 역량강화다. 이것의 중요성은 모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인 역량강화에서 우리가 특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리더를 키워내는 일이다.

함께 : 탈시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씀하신 바처럼 자립생활운동과 탈시설운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탈시설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시설수용 중심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어떤 상황인가?
브리스토 : 이러한 시설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각국의 상황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싸우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일단 지어진 시설을 절대 폐쇄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조건 시설을 지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막아야만 한다.
미국에는 시민권법 상에 시설수용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시설수용은 불법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러한 법적 제제를 피해가는 몇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시설수용을 막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장애우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주택 등의 여러 가지 서비스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장애우는 결국 지역사회에서 살지 못하고 시설로 갈 수 밖에 없다.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장애우들이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도 시설 상황은 주에 따라 다르다. 미네소타의 경우 일단 형식상으로는 시설이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 일리노이주의 경우에는 미국 내에서 4번째로 시설입소가 많은 주(state)로 시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일리노이에서 시설 입소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시설노조가 매우 강력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시설이 폐쇄되면 이들이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이들은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거나 로비를 펼치고 있고, 이 때문에 시설폐쇄가 어려운 상황이다.

함께 : 미국과 한국은 사회복지 노조의 상황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사회복지 노조에 대한 논란이 많다. 현재 한국의 사회복지 노조활동은 아직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제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로비까지 펼친다니 놀랍다. 미국의 장애관련 노조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는가?
브리스토 : 미국에서 장애우 활동보조와 관련된 노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케어워커(care worker : 시설 내에 거주하면서 장애우들을 돌보는 노동자)들의 노조이고, 다른 하나는 활동보조인들의 노조다. 문제는 케어워커 노조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시설이 문을 닫으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시설을 폐쇄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로비를 하고 있어 자립생활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대립 중이다. 활동보조인들이 결성한 노조의 경우에는 대부분 임금 문제를 제기한다. 임금의 문제는 다소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소득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활동보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이들과 갈등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고, 장기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등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함께 : 미국에는 시민권법 상에 시설수용을 막을 수 있는 법이 있다고 말했는데 어떤 법인가?
브리스토 : 미국에서는 옴스테드(Olmsted)라고 불리는 1999년 대법원 판례가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 사건의 소송 당사자는 각각 정신지체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진 두 명의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당시 시설에서 분리되어 수용된 채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들을 담당한 의사가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들은 이러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시설에서 나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주정부는 이들이 지역사회에 살아가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나 여건이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이들을 계속 시설에 수용했다. 이에 이 두 여성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ADA에 근거해 이 사건을 ‘불필요한 시설수용’으로 판단하고, 본인이 원하거나 의료적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장애우를 시설에 수용하는 것은 시민권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례는 대법원 판례이기 때문에 비슷한 사건에 모두 적용이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각 주정부들은 이 대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분명히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주정부가 장애우가 지역사회에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할 책임이 있지만, 판결문에 명기된 용어가 애매하다는 취약점을 이용해서 각 주정부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 판례에 따라 각 주정부의 법을 바꾸는 운동을 펼치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판례는 자립생활운동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자립생활센터가 단순히 서비스만 제공하고 장애우의 권익옹호 활동을 펼치지 않는다면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혀 대응할 수가 없다. 자립생활센터는 이러한 이유로 서비스만이 아니라 권익옹호 활동을 펼쳐야 한다. 현재 우리의 장애우 권익옹호 기술은 많이 발전된 상황이다. 예전에는 장애우의 권익옹호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거리로 나가 싸우는 방식의 권익옹호 활동을 펼쳤는데 요즘에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훈련을 하고, 무작정 로비를 하기 보다는 보다 영향력이 있는 위원회를 찾아서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머리에 있는 것을 행정 전반에서 문서화되어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함께 : 한국에서 장애운동은 소수자 운동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아직은 사회운동 속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장애운동은 사회운동 속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장애운동이 장애우만의 운동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브리스토 : 미국에서도 장애운동은 소수자의 운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애초에 장애운동은 미국의 사회운동 속에서 별다른 중요성을 가지지 못했고 다른 사회운동에 비해 덜 중요한 운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ADA가 통과된 이후에는 조금 달라져서 이전보다 영향력 있는 운동이 되었다.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등의 움직임은 아직 크지 않은 것 같다.

함께 : 자립생활과 관련하여 이틀간 강의를 하셨는데, 브리스토씨가 생각하는 자립생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에서 장애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브리스토 : 자립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장애우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립생활센터 등 장애와 관련된 모든 조직에서 장애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장애운동에서 비장애우를 차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우가 주도권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이다. 장애우의 목소리가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인도하는 지침이 되어야 하고, 공공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람을 조직해라. 힘을 합쳐라. 포기하지 말고 집요하게 해 나가라. 그리고 개인 이전에 원칙을 두고 원칙을 지켜나가라.

박스기사 : 마르카 브리스토는 누구?

장애우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마르카 브리스토씨는 ADA 입법 운동에 활발히 참여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The Distinguished Service Award’라는 상을 수여한 바 있으며, 벌써 20년이 넘게 시카고 엑세스리빙(Access Living)센터를 운영하면서 자립생활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과 의회에 대한 정책자문을 위해 설립된 독립연방기구인 전미장애인평의회(National Council on Disability, NCD)에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의장을 역임했고, 전미연방교육부 차관을 역임한 바 있으며, 장애우로는 최초로 유엔 미국대표단으로 활동한 그는 현재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시카고 엑세스리빙센터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최초의 센터 중 하나이다. 현재 연간 예산 300만 달러에 직원이 50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1980년 설립 이래 이 센터를 거친 장애우만 3만5천명을 넘는다. 이곳에서는 장애우를 위한 자립생활기술뿐만 아니라 공공교육, 장애우 권익옹호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공공서비스분야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 등 제도적인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사진 조은영 기자
통역 이은미 (서울대학교 사회복지 박사과정)

작성자조은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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