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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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를 군사주의와 여성주의로 분석해온 여성학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가 그동안의 연구를 정리한 책 <대한민국은 군대다>(부제: 여성학적 시각에서 본 평화·군사주의·남성성/ 청년사)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80년대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권인숙 교수는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우리사회 일반의 ‘군사주의 문화‘와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폭력투쟁이 주류화된 80년대 상황에서 운동을 했던 여성들이 얼마나 소외를 경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에는 신체적 한계를 경험하면서 발언의 힘을 잃은 채 성별분업을 받아들였던 이야기, 폭력적 투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동지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가부장이더라‘로 대표되는 운동권내에서의 가부장주의 등등 장애계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에 함께걸음이 권인숙 교수를 만나보았다.
▲명지대 권은숙 교수 |
80년대의 암울한 시기를 거치면서 상처를 받았을 법도 한데 권인숙 교수는 어디 한군데 거칠어진 면이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함이 묻어나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박영희 대표 역시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을 겪으며 살아왔지만 그런 상처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감싸 안을 것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어색함이 없었다.
장애로 인해 12살에 생을 마감한 조카와의 관계 때문에 장애에 대해 낯설지 않았던 권인숙 교수가 먼저 ‘거북이 시스터즈‘를 본 이야기, 딸과 함께 장애여성공감의 연극을 보러갔던 이야기 등을 꺼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고 이야기는 곧바로 여성으로서 남성화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남성화된 공간, 불안정한 여성의 정체성
권인숙(이하 권): 80년대 운동을 하던 여성들은 인정받기 위해서 굉장히 남성적으로 팍팍해지거나 모성성을 통해서 인정받는 두 가지 방식으로 운동권에서 살아남았죠. 아주 나약한 모습으로는 운동권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어요.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수동적이면 그런 역할을 하기 힘드니까. 그러니 운동을 하면서 여성성을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가는 외줄타기처럼 상당히 위태로운 면이 있었죠.
박영희(이하 박):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남성적인 모습을 드러내든 여성적인 모습을 드러내든 조금만 선을 넘으면 쉽게 비판 받죠.
권: 남성화된 공간에서 여성들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애매한 상태를 요구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 정체성이 불안정하죠. 군에서도 여성이 완전히 남성화 되는 것은 원치 않아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할 것을 요구하죠. 그러면서도 체력적으로 떨어지거나 여자라고 봐주는 것은 여자자신도 원하지 않고 남성들도 굉장히 귀찮아해요.
운동권 역시 중심모델이 남성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 여자가 들어가서 운동하는 꼴이었죠. 그래서 군대에서처럼 여성의 정체성이 안정적이지 못했던 거예요.
“휠체어 앞으로!!”
박: 처음 집회에 나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선발대가 마스크를 쓰고 앞으로 나가고, 맨 뒤에 장애여성이 있었어요.
집회가 시작됐는데 그 때 갑자기 제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이 “장애우는 안 때린다”면서 앞으로 나가더라고요. 당시엔 수동휠체어를 타고 있었거든요.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앞으로 나가는데 거기서 “나 빠질래, 나 못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수동휠체어라서 밀어주는 사람이 가는 대로 가다보니 결국 맨 앞으로 나가게 됐어요. 경찰들이 곤봉으로 때리지는 않았지만 방패로 계속 미는데, 그렇게 몸으로 밀어대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까 휠체어에서 계속 찌그럭대는 소리가 나면서 넘어갈 것 같았어요. 그러니 한 번도 휠체어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그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거기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공포가 대단했죠.
권: 굉장히 위험했네요.
박: 그러다 오이도에서 수직형리프트가 추락해서 70대 노부부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 일로 지하철공사 앞에 가서 시위를 하기 시작했죠. 근데 글쎄 우리가 시위를 하건 말건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거예요. 그냥 장애우 몇 명 와 있나보네, 하는 정도로 완전히 무시하니까 정말 무력감이 느껴지더군요. 정말 아무 힘도 없구나 싶고….
그렇게 며칠 동안 시위를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야! 우리 차도로 나가자!”고 외쳤고 시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차도로 싹 나갔어요. 그러니까 경찰이 들이닥치더라고요.
거기서 경찰은 우리 휠체어를 들어서 차도 밖으로 빼려고 하고, 우리는 차도에서 안 나가려고 승강이를 하는 과정에 사람들이 제 휠체어에 매달리는 상황이 된 거예요. 경찰이 사람들을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제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 버렸죠. 그렇게 넘어진 저를 경찰 네 명이 들고 옮겼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이게 도대체 뭐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하는 실망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박 대표가 집회현장에서 돌아오니까 사람들이 ‘왜 집회에 나갔냐‘, ‘그러다 경찰 군화에 밟히면 어쩔 거냐‘, ‘다치면 누가 책임질 거냐‘면서 난리더란다. 나가고 싶어서 나간 건데, ‘설령 그렇게 나가서 다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집회에 갈 수 없는 사람인가‘, ‘내 주장을 하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는데 그럼 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박 대표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걱정해서 한 말이긴 하지만 결국 그 사람들 눈에도 박 대표의 ‘결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장애‘만 보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회에 나가는 것도 안 나가는 것도 불편해졌다고.
그때부터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집회 밖에 없는 건가에 대한 박 대표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한동안 공감에서는 철로를 점거하고 도로를 점거하는 집회에 안 나가고 버스타기 같은 캠페인을 나가는 방향으로 운동을 진행했다고 한다.
박: 이후 이동권연대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이런 고민들이 더 깊어졌죠.
이동권연대가 너무 투쟁적이고 거칠다고 평화적으로 하라고 말은 하지만, 노동자처럼 파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게 몸밖에 없는 장애우가 몸을 도구화하지 않으면 도대체 뭘 가지고 투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분명히 우리 운동은 힘의 운동이고, 몸으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거기서 장애여성의 위치가 애매하다는 문제가 있어요. 게다가 이렇게 투쟁을 하면 장애우 중에 여기에 참여할 수 없는 또다른 소수자가 생기는 거니까요. 그래서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데 대안을 내놓는 게 쉽지 않아요. 그나마도 소수에서만 고민하고 있고….
권: 운동방식이라는 게 항상 옳거나 항상 그른 방식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상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이 필요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운동을 하는 내부에서는 이러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방법 속에 갈등도 많이 담겨져 있고, 구성원의 문제도 담겨있는 거니까요.
80년대 운동의 문제는 폭력투쟁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그러한 방식이 의문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 그리고 다른 투쟁의 방식에 대한 고민들은 소부르주아적인 혹은 굉장히 순진한 생각으로 치부됐다는 데 있죠. 그 때문에 바탕에서 해야 될 고민들이 운동방법과 함께 발전되지 못했고, 상황이 바뀔 때 다른 운동 방법을 고민해보는 식으로 진전되지도 못했던 거죠.
그리고 여성들은 그 속에서 투쟁의 상징물이 되던지, 아니면 내부에서 헌신을 못하는 부차적인 존재가 됐던 거예요.
결국, 운동방식에 대한 고민은 절박함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극단적인 방법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러한 방법들이 버릇처럼 굳어진 데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요주의 인물??
권: 그렇다고 운동문화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이게 중요한 문제인가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다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들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들고요.
박: 문제를 제기하려면 요주의 인물이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하죠. (모두 웃음).
권: 집단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결국 일상에서 겪는 나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건데, 이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쉽죠. 그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좋아하는 모습은 감싸주고 감내하는 모습이잖아요. 특히 여성에게 그런 면을 많이 요구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뭔가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는 거죠.
‘착한여자콤플랙스‘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여성들은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교육받았는데 집단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인정받고 칭찬받는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요. 그리고 강퍅하고 매사에 날카롭고 까다롭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버리죠.
나의 문제의식이 나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식의 평가로 돌아올 때 갈등이 클 수밖에 없죠. 인간적으로 팍팍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내가 뭔가 나의 주변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박: 운동하면서도 회의하다가 뭔가 아니다, 싶어서 이의를 제기하면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불편함이 온몸으로 전해져 와요. 사회자가 제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그걸 물고 끝까지 진행하고 나면 진이 쫙~ 빠지죠.
그러고 나서 다음에 다시 뭔가를 얘기하려고 하면 “또 시작 하는구나”하는 분위기가 조성 되니까 나 스스로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온몸이 긴장이 되면서 누가 한마디만 반론을 던져도 날카롭게 나가게 돼요.
권: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우리가 이 정도의 피해의식을 갖기까지는 삶 전체가 필요했는데, 다수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한두 번만 겪어보면 “알 거 다 안다. 겪어본 거 굉장히 많다.”는 식으로 반응해요. 이미 피해의식이 완벽하게 형성된 거죠. 그 때문에 우리도 다시 피해의식이 생기고.
그러니까 남성들이 많은 집단에서 여성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상당히 강퍅해지는 거죠.
바로 이런 게 주류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에서 비주류가 겪는 괴로움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장애우는 여성과 동일하게 비주류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비장애우 중심의 사회에서 똑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장애가 성의 문제로 바뀌었을 뿐인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말 많은 피곤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이유가 뭘까?
권: 운동에는 대의가 있는데, 그 대의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을 집단의 결속을 해치는 사람들로 보는 거죠.
장애운동에서도 장애우와 비장애우간의 대립각이 가장 큰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애차별의 문제를 제도적, 사회적인 문제로서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거기에 ‘성‘ 이라는 또 다른 각을 세우는 게 불편한 거예요.
그리고 여성이 가부장제의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남성들은 자신들이 그 가부장제의 산물이 아니라 가부장제는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나는 그런 가부장제와 맞서 싸울 동지들인데 왜 나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냐‘는 식의 불만을 갖죠.
또 이제까지 피해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내부에 또 다른 각을 세우면서 가해자가 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다고 생각해요. 소수자였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다수자로, 힘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불편한 거죠.
▲장애여성공감 대표 박영희 씨 여성도 권력화 되어야 한다
박: 의사결정과정에서도 비슷한 불편함이 있죠. 장애여성은 한번도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장애여성이 빠르게 뭔가를 결정하는 것을 보면서 믿음직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말은 인정하는 듯하지만 뒤돌아서서는 께름칙하게 생각해요. 본인조차도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뭐가 권력에서 나오고 뭐가 성격에서 나오는 것인지 구분이 어려워서 실수를 자주해요.
권: 굉장히 쉽게 관성화되고 익숙해지죠. 나중엔 생각 없이 그냥 목표에 순응한 채 일하게 되는데, 그건 운동을 하면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문제인 거 같아요.
하지만 거기서도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있어요.
남성은 권력 하나 갖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기에 몰입하는데, 여성은 권력을 가지려는 욕구에 대한 검열이 너무 심해요. 여성은 권력을 가질까봐 굉장히 걱정하고 서로 경계해주기까지 하죠. 근데 사실 뭐든지 해보면 의사결정 구조 안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여성들이 권력 갖는데서 느끼는 도덕적 관념은 어떻게 보면 경계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여성이 권력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엔 권력을 갖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게 권 교수의 생각이다. 결국 제도적인 문제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그런 결정을 하거나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데,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얻어지는 지위나 몇가지 군더더기를 민감하게 경계한다고. 그때 중요한 것은 여성을 그런 자리로 보내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여성과 소통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말이다.
권: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시스템의 문제예요. 여성의 권력화는 도덕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해결 과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정치화에서 오는 부작용을 해결해야 하는 거죠. 거기에 도덕을 들이대는 것은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박: 그런 경우 우리는 권력을 가진 긍정적 모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잖아요. 그게 어찌 보면 그 자리의 속성이라서 가는 순간부터 조금씩 변하기도 하니까.
권: 권력의 상층부로 가면 상층부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들의 판단과 역학관계에 민감해지니까 그 기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되죠. 그러다보면 정말 전략가가 되는데,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선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중심을 잃지 않게 명확히 세우고 요구해야 하는 거죠.
맨날, 운동단체가 썩지 않으려면 풀뿌리운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뻔한 얘기긴 하지만 결국 그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통제와 조절을 위해 힘이 이쪽에도 있어야 하고. 잘 안 만들어지는 게 문제죠.
박: 그래요. 남들이 앞만 보고 뛰어갈 때 뒤를 돌아보면 늦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은 일단 누군가의 뒤에 줄을 서면 앞사람 뒤통수만 쳐다보고 뛰어가는데, 그 상황에서 여자들은 잘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여성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본다는 게 쉽지 않은 거죠.
권: 어차피 다른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이니 늦더라도 주위를 돌아보고 가야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죠. 여성운동도 그렇고 장애운동도 그렇고 굉장히 쉽게 관료화되고 쉽게 썩어요. 그리고 한번 썩으면 자원을 아무리 많이 끌어와도 극복이 되지 않죠.
결국 뒤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뒤에서 막아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다른 나라 운동도 마찬가지였고,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어차피 그 부분인 거 같아요.
소수 중의 소수, 장애여성의 정체성
권: 근데 일단 장애여성 운동은 한번 확 펼쳐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키우는 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야 뭔가 균형이 잡힐 것 같은데요.
박: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게 옳은지 걱정이 되요. 우린 주변운동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중심으로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고민을 하게 되고.
권: 맞아요. 기금마련이나 펀드를 크게 받아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사람들 모아 기금을 마련하면서 운동의 생명력을 얻는 건데 돈을 받아서 하다보면 기존의 그저 그런 단체들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거죠. 운동에서 물을 맑게 하고 대중적 바탕을 넓혀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운동이 제대로 가기 어려워요.
박: 또다른 어려움은 장애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거예요. 그냥 장애우로 살다보니 차별을 당했을 때조차도 여성이라 당하는 차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장애 때문에 당하는 차별이라고 생각하죠.
학교를 못가더라도 장애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녔다고 생각했지 여성이라서 학교를 못 다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통계를 통해서 장애남성에 비해서도 장애여성의 학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게 단순히 장애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닌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장애여성과 장애남성의 차이는 커져요. 이건 장애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당한 차별이었던 거죠.
하지만 아직도 자기 성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자기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장애여성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안타까움이 크죠. 그러다보니, 장애여성이 장애여성 고유의 문화를 만들고 운동에서 자기목소리를 갖는다는 건 굉장히 먼 이야기처럼 생각이 돼요.
권: 그렇게 되려면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교육을 많이 받아야 해요. 그래서 혼자 자립을 하려고 하다가 벽에 부딪혀서 운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장애여성은 아예 집에서 기회조차 차단된 상태로 남아있으니까.
장애여성이 겪는 또 다른 문제는 고유의 몫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박 대표가 말을 받았다.
박: 장애여성 노동을 예로 들면, 여성할당제와 장애인할당제가 각각 있잖아요. 그래서 장애여성은 마치 여성할당제의 혜택도 받고 장애인할당제의 혜택도 받아서 가장 유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여성을 뽑는 곳에서는 장애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장애우를 뽑은 곳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거든요. 결국은 이중으로 배제를 받게 되는데, 그래서 장애여성 고유의 몫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면 이미 존재하는 제도 양쪽에 속하는데 왜 또 그러냐는 소리를 듣게 되죠.
운동 초기에 사업계획서를 낼 때도 그랬어요. 보건복지부에 가면 여성관련 문제니까 여성부로 가라고 하고, 여성부에 내면 장애관련 문제니까 복지부로 가라고 하고.
권: 소수자에 또 소수자라서 정체성 확립이 어려운 거죠.
여성적인 운동문화의 힘
박: 기존의 운동문화가 이렇게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 대안이 될 여성적인 운동문화란 무엇일까요?
권: 우리가 계속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아요.
제도개선이나 개혁의 측면에서 보면 전체 장애여성 중에서 한명이라도 더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가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게 되죠. 그러다보면 효율성이라든가 로비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지고, 운동이 관료적인 기성단체처럼 되기 쉽죠.
여성운동문화라는 것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뒤를 돌아보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부 소수자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효율성과는 다른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그게 여성운동문화의 힘이 아닐까요?
아직 충분히 고민해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무슨 운동이든 방법론에 대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남 보기에는 자족적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이 변해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80년대 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변하지 못했다는 데 있죠. 우리는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다면적인 능력을 키우거나 자기에 대한 앎의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그 시대를 지나왔어요. ‘뭉치면 산다‘는 구호로 대변되는 굉장히 획일적인 사회 속에서 개인의 욕구가 철저히 묻혔던 거죠. 그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개인의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게 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초반부터 들렸더라면 다른 측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권인숙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운동을 하고 있을 때는 당면한 문제가 가장 중요해보이고 절박해보이겠지만, 과정 하나하나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논의하면서 사람들이 변하고, 내가 배우고, 그로부터 얻어진 것들을 나누는 것이 느린 듯하지만 더 값진 결과를 가져오고 끝까지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당장 절박하다는 것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사람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더라면서 말이다.
인권은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권인숙씨가 여성운동 문화로 말한 ‘내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효율성과는 다른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또다른 소수자 운동인 장애운동에서도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도 높은 집단적 주장보다는 소리 없는 개인적 실천 속에 인권의 희망이 있다.
대담 박영희(장애여성공감 대표)
사진·인터뷰 정리 조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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