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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석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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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피와 땀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아요
누군가가 희생을 감내하는건 당장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신념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이를 인정하고 존중할때 ,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 「변호사법」을 찾아보니, 제1조에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맡은 바 책무로 하며, 그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사회질서의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개념에 대한 ‘정의’보다 변호사의‘사명’이 무엇인지가 맨 앞부분에 놓여져 있다. 그만큼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공공의 성격을 더 강조하고 있는 직업군이란 뜻인데….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변호사’의 이미지는 어떨까? 한 중견 변호사는 우스개 소리로 스스로를 ‘고급 사기꾼’이라 일컫는다. 우선 머리 좋고 공부 잘해, 학벌이 좋을 수밖에 없고, 합격 후 국가 장학생(?)으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며, 2년이란 기간동안 공짜로 공부를 하게 되니, 그 자존감(?)이 얼마나 높겠냐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대부분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 들어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돈 많은 의뢰인이 들어오길 바라고, 돈에 비례해 일하려고만 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끔은 사기도 치고 공갈도 치며 편법을 쓰는 경우도 있으니, 이거야말로 합법을 가장한 고단수의 사기꾼이 아니겠냐는 것인데. 그저 웃자고 하는 말로 알아듣긴 했지만 대체로 일면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러지 않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집단이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 만들어져, 중요한 순간마다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법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법률전문가조직이다. 각종 소송운동과 법 제·개정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법이 상식적 합의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변의 주장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굵직한 현안에서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도입에 이르는 소수자 인권문제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상식이 통하는 한국 사회를 꿈꾸는 민변 이석태 신임 회장을 새내기 회원 염형국 변호사(아름다운재단 공익소송팀 ‘공감’)가 만나보았다.

 

  염형국(아하 염) : 얼마 전 민변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요, 민변의 활동방향에 대해 짧게 언급해 주시죠.
이석태(이하 이) :늘 해오던 일이죠. 인권옹호 차원에서 필요한 법률 자문을 하거나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는 개혁입법 추진 같은 것들인데, 틀은 이렇지만, 늘 같은 것은 아니고 현실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해 대체입법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개혁과 관련한 입법문제도 늦출 수 없는 현안 중 하나입니다. 대체로 일반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정보를 구하고 사안을 판단하는데, 지금 언론은 극단적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보면 극명히 대비되죠.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언론의 성격이 나뉘어지는데, 시민들은 그것들을 통해 사안에 대해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게 되죠. 한겨레를 보다가 조선일보를 보면 걱정이 많이 돼요. 통합으로 가야 하는데 극복되지 못하고 더 갈라지고 있죠. 어떤 신문을 보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관점도 달라지거든요. 극단화되는 현상은 막아야 하는데, 언론이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고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언론의 최종 수요자이자 소비자인 국민이 사안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혁신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국론분열을 지양하고 국민통합의 길로 가기 위해 언론개혁은 주요한 현안이죠.
염 : 사법개혁도 중요한 현안이지 않습니까? 최근 로스쿨 제도 도입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이 : 과거에는 사법권 독립이 중심이었죠. 물론 여전히 그런 문제는 남아있지만 그나마 최근에는 인권옹호 측면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제도가 누적된 병폐현상을 낳는다는 문제제기에 따라 로스쿨 제도가 논의되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이상적이냐는 것은 더 논의해야 하는 사항이겠죠. 의사, 법률가 등이 굉장히 기득권화 된 층이라 덜 기득권화 되어야 하는데,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핵심 중의 하나가 ‘민주적’이냐는 관점 일겁니다. 한 집단과 기관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의 척도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적절한 ‘권력분산’과 다양한 ‘국민참여’를 보장하고 있는가 입니다. 그 집단이 보다 민주적인 지향을 갖고 활동하는가를 보려면, 앞으로 힘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겠죠.
염 : 그밖에 민변에서 관심을 갖는 영역이 있다면요? 법을 넘어서는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한미관계’입니다. 지금 미국은 우리 국민이 합의해 결정해야 하는 사안까지 넘어서는 월권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자주력(?)이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다시 말해 그것을 끊임없이 도전 받고 있는데, 미국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데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냉철한 지략과 현실인식을 더욱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민변 안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다 보면, 종국에 맥을 못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만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매향리 주민들과 미군사격훈련장 폭격기 소음 소송(2004년 대법원 승소판결)을 진행했었지만, 민변은 그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민변 초기 미군문제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지냈는데, 군사정권 때문에 자기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주민들이 87년 6월 항쟁 이후 달라진 사회분위기를 받아들여 처음으로 “폭격 훈련 때문에 못살겠다”라고 반발했고 당시 2명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변협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나가기도 했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라크전도 마찬가지의 관점인데, 김선일씨 사망사건도 진상조사단을 꾸려 활동하고 있습니다.
염 : 사법개혁, 언론개혁, 국가보안법 폐지 등도 한국사회의 중요한 현안이지만, 장애우 등 소수자 인권 문제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사안인데요.
이 : 여성, 장애우, 동성애자, 병역거부자 등 사회적 소수자 문제 역시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죠. 동성애자 문제의 경우에는 99년 교육부 등이 발행한 고등학교 교과서에 동성애가 불건전한 성문화, 에이즈의 원인 등으로 기술돼 있어 동성애자들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민변에는 사회복지위원회가 있었어요, 청와대에서 활동하던 박주현 변호사와 이찬진 변호사 등이 사회적 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법제개정 활동에 참여했었는데요, 그 후 참여연대 등 단체가 만들어지고 민변 회원들이 그 쪽 활동을 강화하면서 위축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죠. 개별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걸 넘어서려면 외부 역량을 내부로 흡수해야 하는데, 돌리기가 어렵죠. 물론 이주노동자문제는 노동위원회에서 다루고 있기는 한데, 장애우쪽은 그 운동 성격상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외부욕구가 너무 강하다고 해야 하나요? 새삼 추스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그래도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또 하나 인권위가 만들어진 것도 달라진 상황이겠네요. 소수자 인권에 대한 기초 조사와 정책이 검토되고 있고, 차별과 관련해 국가행동계획(NAP) 10년에 대한 논의도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변의 활동이 의미 있으려면 그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다 하면 좋지만, 우선은 교통정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염 :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 참여정부가 장애계에 약속한 공약인데요, 아직 뭐 하나 제시된 것이 없다는 실망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청와대 측에서도 빈곤과 차별시정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논의하고 있지 않나요?
이 :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이제 제가 청와대 있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는 곤란하구요, 제가 알기로는 인권위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 같은데요, 뭐가 다르죠?
염 : 장애계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독자적 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조직되어 전국을 다니며 최종안을 다듬고 있죠. 인권위는 각 영역을 아우르는 사회적 차별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 글쎄요, 민변 차원의 논의는 아니고 사견인데, 내용을 봐야겠지만, 얼핏 드는 생각으로는 성격상 개별적 법률보다 포괄적인 원칙을 담아내는 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같은 것은 곳곳에서 주장하고 또 필요한 사안인데, 개별법으로 이를 관철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를 겁니다. 법이 빈틈없이 되려면 각 영역의 활동가와 법률 전문가, 그리고 학문적 전문가 등의 공고한 연대가 필요해요. 저는 장애우 차별문제를 90년대 초 미국에 가서 인식했는데요, 미국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별 무리 없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도 찾아갔던 기억이 나는데요, 하하 그때 별 도움이 안되는지, 절 대면대면 했던 걸로 기억되는데요?
염 : 미국에서는 어떤 경험이 있으셨던 건가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죠.
이 : 아, 이것도 개인적인 이야기인데요, 나중에 임기 2년 후에 편한 자리에서 이야기하죠.
염 : 아까 변호사님도 언급하셨듯이 소수자 문제나 빈곤 문제는 항상 우리 사회에서 논외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어떤 사안에 밀려 뒷전으로 물러서 있죠. 빈곤이 사회 문제화되면서 서비스의 확충이라는 관점보다는 적극적인 사회권 확보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이 : 사회가 건강하고 편안한가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가 감옥입니다. 사회발달논리에 따라 변화되는 게 감옥인데요,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시스템인가 하는 점이죠. 또 하나가 사회적 약자들이 최소한의 두려움 없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능력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느냐 인데, 현재 우리 인간 사회는 가혹한 경쟁논리에 놓여져 있어 한쪽의 성장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게 사실이죠. 사회가 뚝 떨어진 섬이라면 이런저런 실험이 가능하겠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시스템과 합의과정이 필요한 듯 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 빈곤한 사람,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입니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부를 환원하라는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강제가 아니라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 이런 것이 중요한데요, 그런 의미에서 염 변호사가 소속되어 있는 아름다운 재단의 활동은 큰 의미를 지니지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문제를 보더라도, 학생과 부모들이 얼마나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까? 학력에 미친 듯이 몸부림치고 있는데,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할 수 있는 인프라도 없습니다. 예전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오면 신문에까지 났어요, 누구누구가 이렇게 공부 많이 하고 성공했다는 것이 사회 이슈가 됐고, 이후 성공을 보장하는 그 무엇으로 작용했죠. 지금도 그걸 해결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을 드러내는 거라고 봅니다.

그는 최초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인 오태양 씨와 함께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선언은 편견과 잘못된 상상, 익숙해져 있는 것들에 대한 배타적 옹호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남북관계, 한미관계를 보더라도 늘 평화를 위협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소송은 과정 자체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염 : 얼마 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징역형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요, 헌법재판소의 위헌소송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이 : 글쎄요, 두고봐야겠죠, 대법원 판결의 영향은 받겠지만 헌법재판소는 일반 법원과 다른 성격이니까요. 최선을 다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신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이나 신념은 편법을 쓸 수 없습니다. 사회가 성숙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결과를 두고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안은 민주선진국으로 가는 지렛대와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사람의 인권도 소중하고 지켜져야 한다, 평화를 위해 총 대신 다른 활동을 하겠다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떠나 존중해주는 것은 사회가 성숙됨을 요구하는 것이죠.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데, 지키지 않는다고 벌을 주는 게 타당한가 고민을 필요로 하죠. 기본권적 관점에서 질적으로 도약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2000년도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만에 가서 직접 현황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병역을 기피할 것이라는 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젊은이들이 노인과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기꺼이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에너지가 사회복지영역으로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아직 사회복지계에서는 상황을 주시하며 침묵하고 있다 봐야죠.

그는 ‘민주주의’란 피와 땀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수많은 희생 가운데 사회는 조금씩 변화 발전해 가는 겁니다. 누군가가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자신들이 직접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꼭 필요하고, 결국 어느 순간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죠. 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이의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민변이 침체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아직도 정체성 논란이 있다는 건 발전적 고민이 많다는 겁니다. 초기 시국사건 등을 맡은 선배들 때문에 도덕성을 인정받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건 사실인데, 우리는 무임승차 한 격이죠. 회원이 대통령이 되고, 정치에 참여하는 변호사가 많아지는 걸 두고 정체성을 운운하기는 뭐하죠. 법치주의로 갈수록 좋은 법률가가 정치에 많이 참여할 수밖에 없어요. 요구가 있는 만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왔다고 보는게 맞겠죠.” 민변의 정체성, 답보상태인 회원 수,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부재 등의 원인을 묻는 후배 염형국 변호사의 질문에 대한 그의 화답이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열정,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구해 편을 만들어 일을 나누려고 애쓰다 보면, 그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잊지 않는다. 비판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희망의 근거를 사람에게서 찾으라는 선배의 애정어린 충고였다. 그는 눈을 감고 긴호흡으로 명상을 하듯 나를 먼저 바라보고 다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법(法)이란, 과거 지배계층의 타협의 산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적 약속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선의의 약속으로 끌어오는 게 깨어있는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그걸 약속하게 되면 좋겠어요.”
이쯤 되면, 변호사가 아니라 법률활동가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 후기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공익소송을 제기해왔다. 그가 속한 법무법인 덕수 홈페이지를 찾아 가보니, 국정교과서제도 헌법소원 사건(1990),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1991), 두밀리분교 폐교처분취소 사건(1994), 동성동본불혼 헌법소원 사건(1997), 미결수 수의 착용 헌법소원 사건(1999), 동성애 교과서 수정 신청 사건(1999), 매향리 소음 피해 손해배상 소송(2001) 등 변화의 한 축이 될만한 굵직한 공익소송이 많다.
그래서 그이에게 물었다.
“많은 공익소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소송이 어떤 건가요?”
그러자, 그의 눈이 작아지면서 다문 입이 쓰~윽 올라간다. “음, 이것도 개인적인 질문” 질문을 하던 염형국 변호사, 그래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몇 가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는지,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질문을 던져보지만, 단호함(?)으로 일관하는 그이의 대답에 속수무책인양 어색한 웃음으로 넘어간다.
처음 인터뷰 섭외를 할 당시, 그는 흔쾌히 수락했었다. 섭외를 하다보면 “함께걸음이요?”라는 반문에 익숙해져 있어, 구구절절 설명할 준비를 하고 전화를 거는데, 이미 알고 있다니. 반가운 나머지 “어떻게 아세요?”라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물음을 던졌는데, “장애우 잡지죠? 알지요.”라며 기분 좋게 받아준다. 민변 신입 회원 염형국 변호사가 질문자라고 덧붙이자 “그래요? 좋네요. 유쾌한 만남이 되겠는데요?”라는 친절함까지 엿보인다.
하지만 당일 인터뷰 시작 전 함께걸음 6, 7월호의 만난 사람 꼭지를 보더니 책을 덮고 “아니 이렇게 분량도 많고 사진도 크게 들어가요? 우리, 내가 참 좋은 사람 소개 시켜줄 테니까 그냥 사는 얘기나 하죠?”라고 꽁무니를 빼는 게 아닌가. 결국 편집을 할 때 사진을 최소화하고 개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여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는 왜 개인적 사항에 대한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일까?
“보통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 사람의 면면을 알 수 있는데, 이석태 변호사님 기사는 좀 건조한 느낌이었어요. 그게 다 현안과 관련한 내용 뿐이라 그런 것 같던데….”
“아마 그럴 겁니다. 민변 회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데, 조직과 사회에 대한 공적 활동이 주제니까 수락했죠.” “왜 개인적인 인터뷰는 안하시는 거죠?” “제 성향 탓도 있겠는데, 워낙 쑥스러움을 잘 타요, 수줍어서….” 순간 그의 모습을 다시 쳐다보았는데, 날카로운 눈매 탓인지 수줍음 같은 것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상이다. 이를 알아차렸는지 “오히려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덕을 봤다는 생각이 많아요.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변론을 할 때 피해자들을 보면, 오히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죠. 저는 보잘 것 없어요. 괜히 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요. 가급적 저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지 않고…. 민변 회장으로 현안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는 것까지는 괜찮죠.”라고 재차 설명한다.
인터뷰 내내 얼핏얼핏 있었던 개인 경험에 대한 질문에 그는 “개인적인 질문”이라며 웃음으로 넘어갔다. 철저했다. 그래서 결국 공익소송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 근본 생태주의자로 불리는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인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란 책을 번역하면서 느낀 것, 그리고 그 후 변화된 그의 삶 등 개인 이석태를 알 수 있는 이야기는 전혀 나누지 못했다. 단지 “다음에 편안해지면요.”란 기약 없는 약속만 받아둔 채.
하지만 인터뷰어로 흔쾌히 승낙했던 염형국 변호사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공사(公私) 구분이 명확한 완고함, 적절한 절제는 후배 입장에서 깊게 새겨보아야 할 부분이란 것이다. 그는 “흔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기 쉽죠.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언론과 세상의 관심 어린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날리는 건 쉬운 문제인데, 용기있는 시민들이 스스로 그 뜻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석태 변호사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염형국 변호사는 새내기 변호사에게 필요한 일상의 깨우침을 주는 자리였다고 말한다. 염형국 변호사는 또 “민변 내 공익소송위원회 위원장이 이석태 변호사님보다 낮은 기수예요. 하지만 전혀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위원으로 참여해 활동하셨어요. 법조계라는 곳이 위계와 기수를 존중(?) 하는 것을 넘어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합리적 모습을 간혹 보이는데, 그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인 것 같아요.” 이석태 변호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전정보를 달라고 했을 때 답한 내용의 전부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몇 가지 질문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자칫 공적 인물을 탐구한다는 것은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치우칠 수 있다.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은 단지 실천으로 증명해 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텐데.
하지만 부드럽게 원칙을 지켜나가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정리·사진 홍여준민기자
인터뷰 염형국 변호사
(아름다운재단 공익소송팀 ‘공감’소속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비상근 파견 근무,
현재 성년후견인제도와 미신고시설 문제, 치료감호제도 검토 등을 맡고 있다)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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