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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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였다. 한 친구와 싸움이 붙었다. 산에 소 먹이러 가, 소를 산에 풀어놓고는 또래들끼리 제기차기를 했는데 제기를 찬 숫자를 셈하다 서로 계산이 달랐던 것이다.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 한 용심이 발단이었다. 그 친구 코피가 터지고 싸움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구멍가게 아들이었던 그 친구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꺼내서는 나를 제외한 친구들하고만 나눴다. 나는 친구들이 그 달콤한 사탕을 오래 오래 녹여 먹는 걸 보며 침만 삼켜야 했다.
이런 일은 어른이 된 후에도 가끔씩 일어났다. 가령 군대 시절 집안이 괜찮았던 전우는 휴가 후 귀대 할 때면 양손이 묵직했다. 그 날 밤 분대 회식은 푸짐했고 그 전우는 고참들의 은총을 입었다. 보초 배치를 받아도 녀석은 아침, 저녁 점호 시간이나 첫 번 아니면 끝번 보초를 나가는 행운이 이어졌다.
남해 신문사 기자로 입사했던 나는 편집국장을 거쳐 3년째 남해신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600여명 주주들의 지지를 얻은 결과인데 기자에서 사장이 되고 나서 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려졌다. 기자별 전문 분야나 기사 쓰는 유형, 관심 분야는 당연히 다르다. 그런데 기자로서의 능력도 분명 다르다. 똑같은 조건에서 근무해도 현상을 통해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사로 가공해 내는 능력이 다르다. 기사 완성 시간이 빠르거나 늦고 기사 생산량도 통상적으로 적은 사람은 적고 많은 사람은 많다. 모두가 한 식구라고만 생각했던 기자 시절에서 사장이 되고 난 후 생긴 병이다. 사탕을 선별해서 나눈 건 차별이고 기자 개인별 능력이 다른 건 차이다.
세상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고 형제간에도 다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요리를 잘하거나 심부름을 잘하거나 하는 차이들.
어느 날 중 1인 아들 녀석이 마땅찮았던 나는 공부 잘하는 아들 친구 녀석을 끌어들여 은근히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대뜸 돌아온 아들의 반응은 “공부는 그 친구보다 못하지만 나도 잘하는 게 많다. 아빠는 아빠 친구하고 비교하면 기분 좋겠나. 나는 나다.” 아뿔싸, 싸움에 졌다고 나만 빼고 사탕을 돌리던 어릴적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날 생각이 짧아 저질렀던 내 어리석음은 아들에게 사과하면서 간신히 수습이 됐다. 나는 아들과 아들 친구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성적이란 단 한가지 잣대만으로 제 자식을 차별한 것이다.
어떤 명확한 기준 없이 차별을 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기준이나 원칙에 따라 차이를 인정하는 건 올바른 평등이다.
장애우와 비장애우 사이엔 여러 사회장벽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엄성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한다.
아니다. 육체적 차이로 인해 비장애우들 보다 떨어지는 사회성을 보완해주기 위해 사회는 장애우들에게 비장애우보다 이동권, 접근권, 교육권 등을 차별해서 보장해야한다. 그런 차별이 많은 사회가 평등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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