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본문
‘가능할까?’
작은 체구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제 2대 여성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주력사업으로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꺼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반가웠지만 그것이 정말 성과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둘 다, 잘라버리기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 문화가 그 주위를 공고하게 둘러싸고 있었고, 뽑아버리기엔 워낙 그 뿌리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방지법은 이미 시행되어 안착단계에 접어들었고 법사위까지 통과하고 본회의만을 남겨놓은 호주제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어있다.
소곤소곤 상냥한 말씨와 항상 여유와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의 얼굴은 흔히 말하는 투사(鬪士)의 이미지는 아닌데…, 도대체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성운동계의 오랜 숙원사업들을 성사시키는 굵직한 업적을 남기고 다시 여성운동의 현장으로 돌아온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을 함께걸음이 만나보았다.
박숙경 (이하 박)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지은희 (이하 지) : 지난 1월 4일 퇴임을 했으니 한달반 정도 지났네요. 정무직이라는 것이 늘 긴장하고 바쁜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퇴임직후 며칠간은 잠시 멍한 듯했죠. 지금은 한마디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어요. (웃음)
박 : 참여정부 당시 여성장관은 세분이셨잖아요. 그중에서도 장관 재직 중에 여성적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으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님과 함께 거론된 적이 많았습니다. 두 분 모두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됐기 때문에 더 일하셨으면 했는데 퇴임을 하셔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강금실 전 장관님과 사이가 각별하시다고 들었는데 요즘도 자주 만나시나요?
지 : 얼마 전에도 연락을 했지요. 장관으로 지내는 동안 강금실 씨와는 많은 일들을 함께 했어요. 처음 시작부터 둘이 장관 임기 내에 호주제 폐지나 성매매 방지법은 꼭 해내자고 약속을 했거든요. 이 법들은 사실상 여성부와 법무부가 호흡을 잘 맞춰서 함께 나가지 않으면 개정이 어려운 법들이었어요. 호주제는 민법에 속한 문제로 법무부 소관이기 때문에 법무부에서 법안이 나와야 추진이 가능하거든요. 게다가 성매매방지법의 경우에는 사실상 하나의 법이 소관부처가 여성부인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과 소관부처가 법무부인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로 나뉘어 있는 거잖아요. 성매매방지법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둘 다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부 혼자서는 불가능했어요. 당시 법무부와 그렇게 호흡이 맞지 않았더라면 사실상 제정이 불가능했지요.
박 : 장관으로 취임하기 이전에도 두 분 모두 이 문제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지 : 그게 참 재미있어요. 둘 다 장관이 되기 전인 2000년에 한국인권제단에서 주최한 ‘제주학술회의2000’에 참여해서 이미 호주제 폐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호주제 폐지 소송을 이끌어온 이석태 변호사님도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죠. 당시 민변에서 활동하던 강금실, 이석태 변호사님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적 근거들을 발제하고 제가 현장과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왜 호주제가 폐지되어야 하는지를 발제했는데 이번에 호주제 폐지 과정에서 다시 세 사람이 다 모이게 됐잖아요. 장관이 되기 이전부터 같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다가 장관으로 만난 셈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사실 제가 누구를 칭찬하는 성격은 아닌데, 솔직히 이러한 성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권인식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단순히 머리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공감할 줄 안다고 해야 하나? 지방, 장애, 계층 등의 차별을 가슴으로 공감하고 철폐를 위해서 노력했지요. 결국 성매매방지법이나 호주제 폐지, 여성가족부로의 확대개편이 가능했던 건 그 덕분이었다고 봐요.
제대로 시행되려면
법제정 뿐 아니라 사후대책까지 세워야
박 : 장관 재임시절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성매매방지법 통과와 호주제 폐지였다고 평가되는데, 사실 호주제 폐지 이후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어떤 변화가 있는 건가요?
지 : 무엇보다 남계(男系)우선, 남아(男兒)우선 의식이 급격히 바뀔 거라고 봐요. 그리고 더 이상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결혼’만 남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가정에서의 남녀관계는 확연히 달라질 거예요.
박 : 성매매방지의 경우 업주 등 생업을 걸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지 : 호주제에 비하면 성매매방지법이 훨씬 복잡한 문제지요. 처음 이 법을 추진할 때도 성매매업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어요. 아직까지 성매매 피해를 신고한 여성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성매매가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봐요.
성매매 방지법의 가장 큰 무기는 업주처벌을 강화한 것과 성매매로 인한 수익을 전액 몰수·추징하도록 한 거였어요. 예전엔 성을 사거나 판사람 모두 처벌대상이었기 때문에 피해여성들이 신고를 할 수도 없었잖아요. 지금은 피해여성의 경우 처벌을 하지 않는데다가 성매매 알선 행위를 신고한 사람에게 보상금도 지급하니까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거죠.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개인적으로 포주에게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하더라도 포주 입장에선 그렇게 신고가 들어가서 전액 몰수 추징되는 것보다는 선불금 차용증서를 그냥 찢어버리는 편이 나은 거예요. 그러니까 신고를 하지 않고 그렇게 그냥 성매매 현장을 떠나게 된 여성들이 많았는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이 법의 성과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측면도 좀 있었어요.
박 : 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몰수 추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매매 피해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은 복지시설에서의 생활자들의 인권침해 문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 : 글쎄요, 성매매와 사회복지시설의 경우는 좀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성매매업소는 사회 일반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복지시설의 경우에는 달라요.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고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인식되고 있잖아요. 일부 문제시설에서의 인권침해만을 가지고 사회복지시설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장애우 등 사회적 약자를 시설에 가둬두는 방식의 수용정책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맞춤형 복지가 이루어져야 해요.
박 : 아직까지도 성매매방지법에 대해서는 경제침체나 피해여성들의 생계문제 등에 대한 우려와 사회적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요, 실제 이 정책을 추진하면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추진과정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죠.
지 : 성매매방지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법을 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행이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후대책이 같이 마련돼야 해요. 호주제도 그랬지만 성매매방지법도 국무총리실에 요구해서 대책반을 만들고 관련부처들과 민간이 함께 대안마련을 위해 노력했지요.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업주나 산업 등이 연관된 대단히 뿌리 깊은 문제라서 쉽게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종합대책이 필요했지요.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우리나라 관광산업에서 섹스관광이 차지하는 부분이 컸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문화관광부에서는 이렇게 빨리 통과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대안이 빨리 논의되지 않았어요. 이부분이 상당히 미흡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도 이러한 관광문화는 하루빨리 바꿔야 해요.
또 하나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사후대책도 중요했어요.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 혹은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들어갔지만 자발적으로 나올 수는 없게 된 여성들이 성매매업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해요. 현재 성매매 피해여성의 경우 일단 업소에서 나오면 변호사 선임료 등으로 한 사람에 최고 350만원까지 지원하도록 되어있어요. 의료비도 지원이 될 뿐만 아니라 직업훈련비도 월 50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하고 훈련을 마치고 나면 창업자금도 3천만원이나 지원이 되도록 했어요. 이러한 지원은 정부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거죠.
박 : 요즘 장애계에서는 장애우의 성문제에 관한 논의가 점차 늘어가고 있어요. 동등한 관계로 자연스럽게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장애우 중에는 분명히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존재하거든요. 장애우는 성에 대한 접근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자위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성을 향유할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유럽에서 시행되는 섹스서비스에 관한 이야기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섹스서비스에 대해 기술한 일본책이 ‘섹스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출간이 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 : 글쎄요. 그건 좀 아니라고 봐요.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인권유린 실태를 볼 때 공창제를 비롯해 돈을 주고 여성의 성을 사는 구조는 결국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형태로 가게 될 거에요. 우리나라와 유럽은 기반구조가 다릅니다. 성매매 피해여성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 찾아오는 남성들은 온갖 지저분한 짓들을 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해요. 그리고 섹스서비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여성장애우의 성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요? 장애계에서 섹스서비스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요?
박 : 장애계 내에서도 공창제를 주장하는 것에 한동안 논의가 좀 있다가 일정정도 정리가 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성에 접근하기 어렵거나 자위조차 할 수 없는 장애우들의 성문제를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의 문제에 이르면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지 : 성을 향유할 권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지만, 어떠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 그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은 정치적인 것과 상당히 연관이 되어있다고 보거든요. 지금 이런 논의들은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장애우에게서 나온다기보다는 평소에 노인, 장애우 등 소수자 문제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성매매방지법을 공격하기 위해서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냐?’는 식으로 끄집어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여성부의 축소로 보이더라도 전문성을 고려해 일부 권한은 인권위로 이관
박 : 작년 말에 여성부 등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차별시정기능을 통합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관장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는데요, 그 내용을 보면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소위원회 형태로 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남녀고용평등법의 고용평등위원회 관련업무와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 관련 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개정안은 장애차별금지위원회 조항이 포함된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할 예정이기 때문에 장애계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 유일하게 차별개선위원회를 가지고 있었던 여성계가 이 개정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 : 여성계는 이 문제에 대해 차별기획업무나 차별금지법에 대한 부분은 그대로 여성부가 가지고 있고 진정조사나 시정권고 등의 부분은 인권위로 넘기기로 합의가 된 상황이에요. 공무원들은 2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전문성을 요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혹은 차별시정위원회의 경우에는 조금 더 전문성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여성부의 축소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더 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 :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포화상태로 그렇게 많은 진정사건들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그동안 차별 진정 사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고, 권한의 측면에서도 시정권고만 가능한 형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차별업무를 인권위로 이관하는 데에는 우려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논의들이 공론화돼서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도 매우 미흡한 형편이에요.
지 : 일단 남녀차별개선위원회도 시정권고 정도의 권한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문제들 때문에 기구를 확대 개편할 예정이라니까 지켜봐야겠지요.
박 : 현장에서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하시다가 장관에 취임하셨습니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신 건 현장에서 활동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는데요, 현장에서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입장과 책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가야하는 입장에서 갈등을 겪지는 않으셨는지요.
지 : 개인적으로 저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호주제와 성매매방지법 등은 참여정부 초기에 공약사항이었고 장관으로서 이를 추진해가면 되는 입장이어서 갈등을 겪을 일은 없었습니다. 만약 노무현정부가 호주제의 전면폐지가 아닌 일부개정 등의 정책기조를 가졌다면 당연히 갈등을 겪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거든요. 여성계나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운동해왔던 내용을 책임 있게 추진만 하면 되는 거였거든요.(웃음)
NGO,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정부논의에 참여해서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해야
지: 장관 재직시설이 다른 건 잘 몰라도 정부와 NGO(비정부기구)가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지를 시험해보는 시기였다고 보고 있어요. 여성부가 신생부서라 비교적 덜 관료화되어있기도 했지만 사안에 대해 원탁회의를 수시로 열고 단체의 의견을 정책에 수렴해 가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처음 NGO와 함께 협력하는 관계를 맺어갈 땐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어색해 했었는데 재임하던 1년 10개월 동안 이 사람들이 정부와 NGO가 함께 해야만 쓸모 있는 정책이 나온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 같아요.
박 : 사실 장애계에서도 정부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부와 함께 일하는 게 왠지 꺼려질 때도 있습니다. 흔한 예로 정책대안을 내기 위한 정부위원회 등에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도 결국 제안내용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시민단체와 협의를 했다는 형식적 명분만 제공하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 : 그래요. 그런 경우들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엔 참여해서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결정이 위험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정부위원회 등의 구성이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할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지를 먼저 살펴야겠지요. 그리고 끊임없이 모니터링과 감시를 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주류이기에 가능한 발상의 전환 “장관 퇴임 기념 축하식”
박 : 마지막으로, 안하고 넘어갈 수 없는 말이 있네요. 지난 2월 17일이었나요? 여성계에서 ‘장관 퇴임 기념 축하식’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취임이 아니라 퇴임을 축하한다는 것이 무척 신선했는데요, 그것이 단체 상호간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합의를 잘 이뤄가는 여성계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 : 공식적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날 그 자리에서 제가 그랬어요. 오랫동안 몸담고 일했던 NGO에서 GO(정부)로 갔다가 다시 NGO로 무사귀환 했음을 신고한다고. (웃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아닌 물러나는 사람을 환영한다는 것은 작은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였기 때문에 이런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거죠. 이제는 GO와 NGO 양쪽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발상의 전환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항상 해오던 익숙한 방식들에 젖어있는 주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발상의 전환은 기존의 체제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것들을 낯설게 받아들이고 ‘왜 그렇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비주류의 것이다.
1년 10개월. 짧은 시간이라면 짧았을 그 시간동안 그는 취임 때의 약속처럼 여성운동을 하면서 관철하고자 하던 일을 앞뒤 안보고 옆도 안보고 속도를 내서 이루어 냈다. 그러니 지쳤을 법도 하건만, 인터뷰에 응하던 그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로 가슴 벅찬 사람들이 풍기는 설레임이 살포시 전해지는 건 그의 옆에 언제나 현장에서 함께 뛸 여러 여성 선후배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계는 유난히 서로 합의가 잘 이뤄진다. 선배가 올라가도록 밀어주고 선배가 올라가면 후배를 끌어주고, 선배가 다시 돌아오면 다시 감싸 안는 모습은 좀처럼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일선에서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퇴임을 하거나, 잠시 쉬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마음을 모아 응원해주는 그들의 따뜻하고 여유 있는 문화가 봄 햇살처럼 전해져서 또 다른 비주류인 장애계에서도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담 박숙경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국 팀장)
정리·사진 조은영 기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