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아나키스트 김원식 할아버지 > 함께 사는 세상


[만난사람]아나키스트 김원식 할아버지

비전(非戰)이 비전(vision)입니다

본문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가는" 순수의 세상을 꿈꾸며, 아나키(anarchy)한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김원식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젊은 아나키스들과 함께 "상계동모임"이라는 아나키즘 까페를 이끌고 있으며 일본의 환경서와 아나키즘 책자들을 번역하고 일본, 한국을 오가며 "비전(非戰)-환경과 反차별"의 깃발을 들고 동지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끼고 15년 전부터 왼쪽 눈이 안보이지만 그 어느 젊은이들 보다 "잘" 듣고 "잘" 본다.
늘 마음을 열고 토론하고 상상하기를 좋아한다는 김원식 할아버지. 무지와 관념과 오랜 관습의 이불 속에 잠들어 있는 아테네 시민을 흔들어 깨우던 소크라테스의 외침처럼, 김원식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팔십일년이라는, 근 한 세기의 삶이 실린 목소리라 더욱 그러했다.

아나키즘은 그리스말에서 반대를 뜻하는 안(an)과 권력집단 혹은 정부를 뜻하는 아르코스(archos)를 합친 용어다. 모든 형태의 권력을 반대하는 자유를 지향하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유독 이 땅에서 곡해된 측면이 없지 않다. 권력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지향하는 본래의 성격과는 달리 일제시대 과격 테러리스트의 이미지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이미 60∼70년대부터, 한국에선 90년대 들면서 탈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아나키즘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컴퓨터 이용체계의 혁신을 낳은 리눅스 운동이나 시애틀 반세계화 투쟁에서의 아나키스트들의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자치, 환경운동 등에서 새 방향을 모색하는 21세기 아나키즘의 비폭력노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의 정치 경제적 불평등, 환경 파괴, 여성, 인종문제 등 여러 사회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 틀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바로 아나키즘이라는 것이 사회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견해다. 특히 환경파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아나키즘의 환경친화적 속성은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아나키즘은 과연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인가. 이런 궁금증을 안고 한국에서 드물게 "행동하는 아나키즘"을 몸소 실현하고 있는 김원식 할아버지를 만났다.


흔히들 아나키즘 하면 무정부주의쯤으로 생각하는 데요, 아나키즘이란 무엇입니까?
"무정부"라는 말은 일본에서 번역되어진 말입니다. 일본의 위정자들이 일본의 무서운 세력으로 등장한 아나키스트들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그들 편의대로 번역한 말이 바로 무정부주의라는 겁니다. 정부가 없다 함은 보호자가 없다는 뜻이고 이는 곧 폭력이나 혼란을 야기 시키는 말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아나키즘이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안-아키(an-archy)란 노-아키(No-archy). 즉 우두머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명령도 없고 구속도 없습니다. 우두머리도 없고, 다수결도 없습니다. 아나키즘은 인간을 구속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체의 권력에 반대한다는 "실천적 이론"입니다.

할아버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다 실패한 체제이고 그 대안이 아나키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정부의 또 다른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는 건가요? 아나키즘적인 사회란 무엇인가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다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체제입니다. 한쪽은 자본으로, 한쪽은 당 지도자가 말입니다. 아나키즘은요, 국가의 개념이 아닙니다. 체제도, 군대도 필요 없습니다. 사회에 지배체제가 있어야한다는 말은 위정자들의 거짓말입니다. 아나키즘의 사회란 자유로운 공동체사회에서 함께 생활하고 협동하는 사람들의 완벽한 "자율상태"를 의미합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그런 공산사회(맑스)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분배받는 "자유사회"가 바로 아나키즘입니다.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으신 지요? 할아버지와 아나키즘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요?
나는 원래 공산주의자입니다. 남로당 당원이었고 인민군이었습니다 덕분에 한 십년 징역살이도 했고요. 처음부터 아나키스트였던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지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처음부터 필요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안 된다는 전제가 공산주의이니까요. 78년에 출옥하고 나서 줄 곧 소련의 책을 구해서 스스로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공산주의도 기울고 있구나. 이러던 중 아나키즘에 대해 새롭게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아나키즘운동은 19세기 초엽부터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엽에 등장한 사회주의보다 빠른 사상이다. 할아버지는 레닌이 혁명을 아나키스트들의 힘을 빌려 성공 시켰고 자본주의가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처음 결론을 낸 것도 아나키즘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의해 곡해되었고 그들의 이익에 따라 멋대로 이용당했다. 할아바지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긴자의 역사는 진자의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합니다."

할아버지는 간혹 친일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본말도 잘하시고 일본도 자주 왕래하시는 데요, 특히 일본의 반핵운동에 적극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네들의 시민운동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요?

일본의 반핵운동, 시민운동은 지극히 아나키즘적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다릅니다. 즉 권위주의적이지 않단 말입니다. 많은 반핵단체들이 있지만 모두가 다 평등하고 수평적입니다. 요즘 인터넷 같은 통신이 아주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곳에 누군가 "우리 한번 모이자, 우리의 힘을 한데 모아보자"하고 제안을 하면 여기저기에서 "그 의견 참 좋소", "나도 참여하겠소"라는 답변이 나오겠죠. 서로가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에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고 의제가 정해집니다. 누가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결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긍정하는, 가장 타당한 것 하나가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오모리현에서 모이자하면 사람들이 천오백킬로미터를 날아서 옵니다. 더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속속 모여듭니다. 저는 이를 "품앗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전국적인 힘이 한 곳에 모여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주 대단합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에서 북쪽으로 700㎞, 혼슈(本州)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靑森)현의 로카쇼무라는 인구 1만2천여명의 작은 도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소도시였던 이곳은 지난 92년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오면서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이 로카쇼무라에 수용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민들과 반핵단체들의 저항운동으로 일본정부는 원전시설 건설 계획이 발표된 4년이 지난 88년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본정부와 회사는 주민과 언론의 신뢰를 얻기 위해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하고 홍보에 주력했으며 각종 경제 혜택 등으로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시켰다. 로카쇼무라는 핵폐기장 건립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핵시설에 대해 전 주민이 찬성하거나 모든 생활여건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로카쇼무라의 반핵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 거점을 만들고 얼마씩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매년 이 집에 반핵의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투쟁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김원식 할아버지는 로카쇼무라를 두고 "엄청난 투쟁의 실적이 축적된 곳"이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매년 행사 때 사람들은 이 "집"에 모입니다. 낮에는 아오모리시에 나가서 시설 견학도 하고 운동의 역사도 되짚어 봅니다. 밤에는 이 "집"에 모여서 즐겁게 놀고요. 이곳에는 전기가 안 들어오거든요. 전기회사가 전기를 안줍니다. 그래서 "드르륵" 발전기 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이 부족하다 싶으면 촛불을 켜고 그간의 상황보고도 하고 사람들 소개도 하고 그럽니다. 바로 나가면 바닷가거든요. 여기서 생선이랑 조개랑 가져다가 석쇠에 구워서 먹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놉니다. 이것이 바로 아나키한 시민운동 아니겠어요?

반전평화운동에서 할아버지는 비전(非戰)이라는 푯말을 내결고 1인 시위를 하셨습니다. 왜 비전인가요? 반전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Anti-War가 아니라 No-War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반전평화운동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전은 전쟁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비전은 아닙니다. 전쟁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사실이라고 해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철학이 지배하는 세상에 전쟁은 인류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인양 찬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란 무엇입니까? 힘있는 놈이 약한 놈을 때려잡는 것이 전쟁입니다. 힘이 곧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 전쟁이란 말입니다.  
오늘날 이 힘을 미국이 다 갖고 있습니다.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가 80여개, 소파협정을 맺은 나라가 90여개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살해한 민간인 수가 천오백만 입니다. 이것이 인류공영에 이바지했습니까? 뭘 해결했습니까? 미국은 종족전쟁, 종교전쟁을 빌미로 80여개의 나라와 상하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민족해방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까? 베트남-미국 전쟁 때 베트남이 승리했지만 이는 전쟁비호세력에 빌미를 제공해주고 돈벌이를 제공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이후 남북대화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민족해방이라는 염원아래. 그러나 김일성은 소위 공산주의에 취해 있었고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국군통수권 마저 줘버립니다. 30년 전에 이미,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갖고 시작한 것이 바로 아나키스트 운동입니다. 전쟁이 인류역사에 발전을 가져왔습니까? 전쟁이 해결한 문제가 있습니까? 그래서 비전인 것입니다.

한번도 생계 유지를 위한 직업전선에 활동하신 적이 없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나키한 삶의 한 양식인가요? 저희 같은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는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요.
한달 생활비 20만원이면 넉넉합니다. 주로 먹는데 쓰죠. 옷도 직접 만들어서 입으니까요. 이 옷도 마누라가 바느질해서 만든 겁니다. 옷감은 동네 시장 한복집에서 남는 걸 구하고요. 나이 먹어서 소일거리도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매일 두루마기 걸치고 다니니깐 사람들이 돈 좀 있는 하루방인가 보다해요. 제가 여름옷이 한 일곱 여덟 벌되거든요. 이만하면 부자죠.
일본에 가난을 선택해서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슬로우 푸드(Slow Food)"운동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중에 일본서 중학교 교사하던 사람이 있어요. 70만엔 월급 받고 살았던 사람이 지금은 10만엔으로 삽니다. 시골에 집을 짓고 거기서 시 쓰고, 소설 쓰고 하면서요. 그런데 참 재밌어합니다. 빈곤이 인간해방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아나키즘의 생활 속 실천의 하나가 바로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있어야 나눠먹는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있는 걸 나눠야지요.


사회적 아나키즘의 발현이 아나키스트 운동이라고 볼 때 간혹 아나키즘은 극단의 파괴, 부정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물론 할아버지께서 언급하셨듯이 이는 왜곡되고 날조된 역사가 만든 편견의 굴레이기도 합니다. 본래의 건강한 아나키스트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아나키스트들은 WTO에 반대하며 반세계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맥도날드에 오물을 집어 던지고 스타벅스를 깨 부셨습니다. 조직이 있고 누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같은 행동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나키즘은 브루조아적인 생각, 맑스주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나키즘 아닙니다. 가짜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체제"라는 결론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아나키스트 운동이니까요.
우리 앞에 제기 된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투쟁을 할 뿐입니다. 누가 명령하거나 이념에 사로잡힌 투쟁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아진 힘을 바탕으로 하는 투쟁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비폭력"입니다. "비폭력직접행동" 이것이 우리의 무기이고 건강한 아나키스트 운동의 모체일 것입니다.

아나키스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입니까?
세계 곳곳에 아나키즘을 몸소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 아나키스트요?"하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나키즘적인 생각을 갖고 아나키즘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다 아나키스트들입니다. 아나키즘은 언제나 창조적 파괴로써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규정된 것은 아나키즘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 열사람이 있으면 열 개의 아나키즘이 나옵니다.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 다름이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사는 세상, 이것이 아나키즘이며 아나키스트들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대담 :김정열 소장
                                                                              정리 :함은혜기자
                                                                              사진 :윤정은 사진기자
 

작성자함은혜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