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메디 TV 이강국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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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생명 시리즈’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일명‘생명 PD’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강국 PD. 그런 그가 16년간의 MBC 생활을 접고 의료소비자의 알권리 확보라는 차원에서 의료와 건강, 생명의 문제에 더 매진하기 위해 의료전문채널인 메디 TV 사장으로 변신한 지 1년이 지났다.
내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 무심함을 넘어 차별로까지 이어지는 현대 사회는 연약한 사회이며, 결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폭넓은 생명론을 이야기하는 이강국 사장을 <함께걸음>이 만나보았다.
<메디 tv와 이강국>
함께: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고, 좋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 주는 PD로 오래 동안 활동해 오셨는데, 공중파 방송에서 활동하게 되면 그 파급력이 훨씬 대단하지 않나요? 의료전문채널을 운영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강국: MBC에서 주로 생명과 관련된 내용들의 다큐를 제작해 왔습니다. 97년부터 2001년까지 ‘생명 시리즈’라는 맥락에서 작업을 해왔는데, 의료와 관련된 문제들도 상당히 있었죠. 그런데 내가 전달하는 나조차도 이 내용이 적절한가, 맞는 말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환경과 스트레스 등 외적 요인에 의한 질병이 많아지면서 건강법과 치료법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증가하는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곳은 거의 없었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의료전문채널을 만들자며 의료진들 스스로가 모여 논의를 시작했고, 제가 방송국 운영을 맡게 된거죠. 의료, 건강, 생명의 문제를 보다 심도 깊게 다룰 수 있는 매체가 생긴 건데, 사람들이 모두 개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고민하는 때가 있쟎아요. 어떻게 살 것인가 뭐 그런...곰곰히 생각하다 역으로 작가주의 정신을 갖고 있는 PD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하다가 의료문제로 사회와의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과 제대로 된 정보전달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함께: 의료진이 만든 의료전문채널이라고 하면 의사와 병원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메디 TV 설립 목적과 내용,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이강국: 메디 TV는 전문의료진들이 검증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대학교수급 120명과 기타의료인 300여명이 결합하고 있죠. 메디 TV 개국은 의료진들의 자기 혁신을 의미합니다. 의료진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의사중심, 병원중심, 질병중심일 거라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편성은 철저히 환자, 의료소비자의 알권리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편성을 보면, 우리시대의 명의, 충전 건강발전소, 시청자 참여 아름다운 세상, 씨네클리닉, 희귀병과 싸우는 사람들, 해외 의료 다큐 등 정보와 교양을 주는 내용과 시사적인 의료문제를 살펴보는 의료파일, 공익성을 찾기 위한 생명사랑 캠페인-소아암 어린이 돕기 등 다양한 컨텐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환자 중심은 아니구요, 무엇보다 의사들의 질을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CT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의사가 30% 미만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의대를 졸업한 후 단 10%만이 연구직에 종사할 뿐 거의 대부분은 개업을 하기 때문에 자칫 진료에만 급급해 새로운 정보나 기술, 장비 등에 대해 소홀해 질 수 있습니다. 의사들을 자극시키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 또한 환자를 위한 것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방어진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죠.
메디 TV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의료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전문의학정보 제공 및 의학특강 등으로 의료의 질을 선진화하겠다는 의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여하튼 지금처럼 서울중심, 3차 의료기관 중심이 지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과 1차 의료기관의 중요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연계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함께: 메디 tv가 의료소비자, 시청자들에게 어떤 방송이길 원하십니까?
이강국: 설립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전국민 주치의>개념입니다. 2시간 대기 분 진료라는 말이 있듯, 간단한 질병에도 대부분 종합병원으로 몰리기 일수고, 환자가 밀려 있으니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때도 대충 설명을 듣고 처방을 내려주면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죠. 자기 몸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후 조치들에 대해 알 틈이 없습니다. 환자와 의사가 소통될 수 없는 구조였죠. 그래서 메디 tv에서는 의료정보센터를 통해 24시간 의료정보와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수간호사 출신의 상담원 5명이 담당하고 있어 내용도 무척 알찹니다. 앞으로는 지역의 병원을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도 진행시킬 겁니다. 메디 tv는 일종의 생명채널입니다. 환자들이 의료시스템에 불만이 많은데, 언제나 손 내밀 때 함께 하는 방송이고 싶습니다.
PD의 생각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98년 ‘생명 시리즈’다큐를 제작하면서 그는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주는 실험정신상을 수여했다. 당시 취재와 촬영을 하면 녹음, 작가, PD, 카메라맨, 조명 등 5-6명이 한 팀이 되어 우루루 쫒아 다니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의도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기계와 사람들 앞에서 힘들고 숨고만 싶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는 우리 사회 그늘진 곳에서 존재 자체의 의미가 가려진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만 취재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작가주의 PD를 실천해야 한다는 그의 PD론을 들어보자.
함께: ‘생명’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강국: 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구석진 영역을 찾아 우리가 으레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PD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MBC 재직 시절인 97년부터 2001년까지 ‘생명시리즈’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는데 다양한 관점에서 생명의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비전향 장기수, 사할린 동포, 장애우의 노동권과 이동권, 청각장애우 들의 언어인 수화, 미혼임산부, 미숙아 아이들을 주로 다루었는데, 이 모든 것, 즉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자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어두운 세상 밖에 놓여져 있다는 것 자체가 생명이 무엇인지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서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것인데, 인간은 유대관계를 갖고 그 힘으로 살아갑니다. 나와 다른 생김새, 몸, 역사, 모든 것이 차이가 있어도 다수의 입장에서 벗어나 소수의 입장을 가지면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걸 알아가면서 삶이 풍요로워지기보다는 실제 고민이 더 많아진다는 느낌인데요, 하하. 약간의 괴로움이 있지요?
지금도 옛날 취재원과 연락을 서로 주고받고 있는 이강국사장은 2001년 MBC 장애인의 날 특집 생방송 도시탐험에서 만난 김경아씨와 미숙아였던 도경이 이야기를 하며, ‘한번 맺은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고 ‘어떻게 맺은 인연인데’라고 말한다. 취재원으로 만나 인간적 관계맺음까지 지속하는 그를 보며 진정한 사람사랑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본다.
함께: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구석진 영역을 살펴보는 것이 PD의 소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미혼임산부나 미숙아를 출생하는 부모들, 소년원으로 간 아이들의 진심을 들춰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이강국: 당시 저의 취재원이 되었던 사람이나 집단, 사회는 대체로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 마음의 문을 열면 지속되지만 그 한번이 매우 어렵죠. 그래서 철저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전 그들의 입장이 되려고 애썼어요. 어떤 상황인지 아니까 조그마한 VX1000이란 캠코더를 갖고 6mm비디오를 들고 찍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의 처지를 우선 고려해 찍기 때문이죠, 그림이 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함께 한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감추어진 것들을 들춰내는 데 좋은 기법이었으며, 또 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사람들과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저를 이끈 사람들입니다.
함께: PD의 생각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기쁨도 만끽하신 경험이 있나요?
이강국: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기>를 다룰 때만 해도 미숙아는 제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발육이 안된다 혹은 장애를 갖게 될 것이다, 무지막지한 돈이 든다는 이유로 강제퇴원조치(혹은 권유)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기는 죽고 말지요. 보건복지부에서도 기계적으로 출생시 몇 g이하의 아이는 어떻게 조치하고 보험수가는 얼마다 하는 구분을 지어놓고 있었죠.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한다던지 어떻게든 그 생명을 살려보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작은 아기를 생명체로 인식하지 않았던 거죠. 예를 들어, 0병원만 하더라도 1년에 평균 강제퇴원조치나 권유가 100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가자 사람들은 그 작은 몸짓이 꿈틀거리며 살려고 하는 여러 애씀들을 보면서, 결코 몸무게의 차이로 생명을 살리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짓들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또 그동안 사회가 부모에게 윤리와 천륜을 저버리도록 강요해 왔는지를 여러 측면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 후 0병원에서 미숙아라는 이유로 강제퇴원조치(혹은 권유)는 단 1건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지부에서는 의료보험 수가에서 자기부담률을 낮추기도 했구요, 의사와 부모, 사회 모두가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갖고 있는지, 생명이 왜 소중한지, 어떻게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던 거죠.
함께: <아름다운 손짓-수화>를 제작할 때는 직접 수화를 배우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강국: 사람들은 수화가 보편적인 우리의 언어라기 보다는 특수한 사람들의 언어(청각장애우)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배우게 되었는데 직접 소통할 수 있어야 그들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들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지 누구 끼어 통역을 대신 해주면 그 느낌은 받기 어렵습니다. 가능하면 정확히 그들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 아프리카어, 에스키모어, 스페인어 등 8개 국어를 할 줄 압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이웃에 대한 관심 없이는 평화가 없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스페인에는 모든 호텔에 의무적으로 수화통역사 1인을 배치합니다. 아니 국왕까지 청각장애우도 스페인 국민이라는 인식 때문에 수화를 할 줄 안다고 합니다. 당시 수화보급을 위해 라디오 여성시대에 구화(입모양을 보고 대화하는 방식)를 할 줄 하는 두 사람을 출연시켰는데, 사람들이 많이 놀랬습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멀리하려고만 했던 사람들이 ‘저렇게도 대화가 가능하구나’를 많이 느꼈다고 하더군요.
방송은 그런 장애우의 출연을 많이 학대해서 거부감과 대상화하는 분위기를 없애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요즘 생명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듯 합니다. 생명사상, 생명운동 등 그것들이 갖고 있는 철학적, 실천적 함의들이 간과되는 것 같은데요.
이강국: 생명의 문제는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의 실천의 문제입니다. 제가 만일 MBC에 계속 있었더라면 이라크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사람들을 찾아갔을텐데...프랑스에서 영화공부를 할 때 장애우영화 페스티벌이 있어 찾아갔는데, 당시 나에겐 충격적인 영화였어요. 사지 모두가 절단된 여성과 비장애우 남성이 결혼하여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었죠. 손과 발이 없으니 일상에서 내내 남편이 품안에 안아 모든 걸 함께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섹스를 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는데, 기억나는 장면은 키스를 참 잘했다는 생각만 드네요. 하하.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졌어도 방식만 다를 뿐이지 평범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았죠. 그런 게 다 생명의 문제 아닐까요?
사람들은 소수자 문제에 대해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무관심하다가 막상 사회적 모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제서야 인식하고 또 좌절하게 된다면서 지금의 사회가 바로 그런 연약한 사회라고 꼬집는다. 심장세포가 3개월에 한번 바뀌듯, 이웃과 연대하는 법,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에 대해서도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대안적인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강국 사장. 의료문제에 천착해 생명에 대한 관심사를 확장해 보겠다는 그의 행보를 지켜보자.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이강국사장 누구?
불문학을 전공하고 영화연출 공부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갔으나 80년대 후반 당시 한국 영화계의 상황은 복잡하고 미묘했다. 그래서 영화계로 입문하는 것을 포기하고 방송을 선택했다. MBC의 PD로 입사해 우리나라 최초로 에이즈의 심각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3부작-AIDS를 막읍시다>를 시작으로 8년간 <손석희, 허수경의 아침만들기,><이숙영의 수요스페셜><10시 임성훈입니다> 등 생방송 프로그램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백남준의 8월>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후 97년부터 2001년까지 생명시리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97년 <신생아병동 25시> 이후 <위기의 선택-미혼임산부> <신생아병동-세상밖으로><돌산마을의 크리스마스><소년원으로 간 아이들><아름다운 손짓-수화>를 비롯해 98년에는 <이웅평의 사선에서>를 제작하기도 했다. 장기수선생님들의 인간적 고뇌와 삶을 다룬 <어떤 선택-57년만의 귀향>, 2000년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기> 2001년 장애인의 날 특별생방송<함께가는 세상>, 2001년 <테러 그후-뉴욕, 파키스탄 현장을 가다>등 을 제작하면서 생명이란 화두의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방송기획단 총연출」을 끝으로 16년간 재직했던 MBC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작가주의 정신에 입각해 의료라는 전문분야에서 생명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해 7월 의료전문채널 메디 TV 사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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