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투쟁은 나의 새로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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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이야기 |
광표씨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진행됐다. 스물 세 살 젊은이의 고통과 희망이 엉킨 소리 없는 고함으로.
〈장애를 가진 세 남자의 동거〉
김광표씨는 현재 동거중이다.
다른 두 총각들과. 그런데 이 세 남자가 모두 뇌성마비 장애우다. 그것도 1,2급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이다. 그 중 광표씨는 막내.
이 세 남자 어떻게 살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는 “어떻게 세 분이 같이 살게 됐어요?”부터 먼저 물었다.
이들의 맏형인 최영오(30. 뇌성마비 1급)씨와 광표씨는 충주 숭덕 특수학교 동창생 사이. 영오씨가 먼저 취업해 서울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동안 광표씨도 졸업해서 99년도에 서울로 왔다. 그리고 지하철 신문 가판대 일을 9개월 정도 했다고.
신문 가판대 사장 집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했다지만, 한 달 월급은 3만원이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신문을 팔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일했는데 그만둔 이유는 뭐예요?”라고 묻자 광표씨는 간단히 적는다.
-사장이 그만두라고 해서요.
광표씨는 9개월이나 열심히 일했지만, 하루동안 신문 판 돈을 잃어버린 그를 사장은 용서하지 않았다.
갑자기 오갈 데가 없어진 광표씨는 그때부터 영오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엄해열씨(28. 뇌성마비 2급)가 영오씨 소개로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세 남자는 이렇게 동거를 시작했다.
거동이 매우 어려울 정도의 장애를 가진 세 남자의 동거. 기자는 세 남자의 일상생활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잠시 광표씨와의 대화를 옮겨 적는다.
“밥은 누가 해요?”
-해열이 형이요.
“빨래는요?”
-내가 할 때도 있는데...
그 이는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해열이 형’이라고 적고 밑줄을 2번 긋는다.
“반찬은 어떻게 만들어 먹나요?”
-대부분 사먹죠.
“누가 사오는데요?”
광표씨는 가슴팍을 쿡쿡 가리킨다.
“아항, 그럼 광표씨가 먹고 싶은 걸로 사오겠구나. 그죠? ”
그 이는 고개를 뒤로 확 젖혀서 큭큭 웃었다.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은 강한 긍정이다.)
“아무래도 해열씨가 집안 일을 많이 하겠네요?”
광표씨는 미안한듯이 뒷머리를 긁적긁적.
“셋이 다투지는 않아요?”
-잘 다투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가끔 화를 낼 때도 있죠.
“어떨 때 화가 나는데요?”
-나한테 형들이 잔소리 할 때요.
“무슨 잔소리를 하는데요?”
- 청소하라고. 술 먹지 말라고
“그럼, 방 어지럽히고 술 제일 많이 먹는 사람은 누군데요?”
-(뜨끔한 표정으로) 저요.
“뭐예요. 형들한테 잔소리 들을만 하네요. 뭘”
“같이 사는 형들이랑 싸우면 어떻게 화해해요?”
- 제가 술 한 잔 쏘죠. 맛난 것 사들고 들어가고. 그러면 대충 풀어져요.
세 남자는 어디가 불편한지 서로 잘 아는 듯했다.
숟갈이 편한지 포크가 필요한지, 접시에 담아주는 것이 좋은지 오목한 그릇을 원하는 건지, 이쪽으로 돌아누울려면 어디를 받쳐줘야 하는지, 약은 언제 챙겨야 하는지, 왜 술을 마시는지까지도...그들은 등나무처럼 서로의 빈곳을 파고들어 메꿔주면서 굵어지고 있었다.
〈그 이의 옛이야기〉
광표씨 고향은 충북 단양.
부모님에게 들은 바로는 광표씨는 한 살때 잠자다가 갑자기 경기를 하더니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광표씨의 장애를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이는 열심히 얘기를 적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담배를 꺼내문다.
“부모님은 장애우인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형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대하셨거든요.”라고 적는다. 그리고 남동생 얘기를 한다.
-방학 때 집에 오면 동네 애들이 놀리고. 그러면 동생이 쫓아가서 패주고...동생은 골목대장이었으니까요.
-여름에 동생이 수영하러 가면 나는 혼자 집에서 놀고...
-누나는 집에 있지 왜 나가서 고생하느냐고...그렇지만 집에 있으면 밥만 먹고, 텔레비전만 쳐다보고...바보돼요. 그리고 부모님이 언제까지 절 돌봐주실 수는 없잖아요.
짧은 문장 속에서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아픈 기억들이 묻어난다.
“학교 생활은 어땠어요?”라고 묻자 ‘그럭저럭’이었다고 한다.
광표씨가 좋아했던 과목은 체육. 그 이의 활달한 성격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답이다.
그 중 제일 재미있던 것으로 ‘보치아(공을 경기장 안으로 굴리거나 발로 차서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던진 공에 대하여 점수를 줘는 경기)’를 꼽았다.
“학교 다닐 때 얘기 좀 더 해줄래요?”라고 묻자 그러자 담배 얘기가 나온다.
-중학교 1학년 때. 제가 맨날 도와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가 ‘담배 피워볼래?’그러대요. 그때부터 담배 피웠죠. 무사히(?) 잘 피우다가 고등학교 2학년때 학교 보육사한테 들켜서 낚시대로 엉덩이가 시뻘겋게 되도록 맞기도 했죠.
“몇 년동안 안들키고 학교에서 피우다니, 대단하네요”라고 기자가 대꾸하자 광표씨는 또고개를 뒤로 젖혀서 하하 웃었다.
-무단결근한 적도 있어요.
“뭣 때문에요?”
-초등학교 6학년때요. 그 때는 혼자서도 조금 걸을 수 있었죠.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학교에서 걸음연습을 시켰는데, 하기 싫어서 안했어요. 그랬더니 보육사가 운동 몇 번 안했다고 잠을 안재우더라구요.
그 이는 한 팔을 들어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의 새로운 목표는 ‘투쟁’〉
기자는 광표씨가 현재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곤란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른 얘깃거리를 꺼냈다.
“요즘 제일 즐거운 일은 뭐예요?”라고. 그랬더니 간섭받지 않고 사는 것이란다. 자기가 벌어서 쓰는 보람도 있다고. 이번 추석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부산에 다녀왔다고 한다. 명절에 모이는 친척들이 보내는 불쌍하다는 눈빛들을 받고 싶지 않았단다.
돈 모아서 뭐하고 싶냐는 물음에 광표씨는 글자가 노트에 박힐 정도로 꾹꾹 힘주어 적었다.
-구멍가게. 기자님 그 때 놀러오세요. 공짜로 드릴께.
잠시 후 기자는 다시 한번 넌지시 물었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그러자 광표씨는 애꿎은 뒷머리만 벅벅 긁었다. 손을 내리다가 탁자의 음료수를 왈칵 쏟았다. 시선을 돌려 혼자 웃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볼펜을 잡더니 적어내려간다.
-한마디로...앵벌이하고 있어요.
기자는“그게 어때서 이렇게 힘들게 얘기해요”라고 했지만, 금방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가 기자에게 되묻는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남의 등쳐먹는 일만 빼고요”라고 기자는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는 말을 꺼냈다.
-한 4년 됐어요. 정부에서 나오는 돈으로는 못살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아는 아저씨들이 그나마 이게 돈을 좀 벌 수 있다고 해서...
“그래도 시작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네. 처음에는 사람들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시작한 첫 날, 끝나고 나서 술 엄청 마셨죠. 부모님께 죄송하고, 고아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광표씨 술 많이 마신다고 하던데, 술이 광표씨에게 어떤 의미죠?”
-친구예요. 힘들고 외로울 때 만나는 친구. 그동안 방황도 많이 했죠.
기자는 “혹시 길 가다가 광표씨 만나면 아는 척해도 되죠?”라고 물었다. 뜻밖에 그 이는 “이젠 하는 수 없죠. 인사해야지. 하하.”라고 털털하게 웃는다.
여자친구 있냐는 집요한 질문에 하는 수 없이 사진을 꺼내던 광표씨. 그 이의 지갑에는 다른 사람의 지갑 내용물과는 좀 다른 것이 있었다. 환경단체 후원증과 망막과 장기기증 스티커. 이제까지 받기만 했던 도움을 누군가에게 갚고 싶었다고 쑥스럽게 말하는 광표씨.
그리고 요즘 광표씨에게 계획이 또하나 생겼단다. ‘투쟁’을 함께 하는 것이 새로 세운 목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진행했던 2박 3일간의 ‘인권학교’에 참가한 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단다.
지금까지는 ‘장애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며 체념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특히 장애우들이 목숨걸고 투쟁하는 모습들을 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 한 번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는 광표씨에게‘투쟁’은 낯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 이 삶은 이미 ‘투쟁’이었을테니까. 우리 사회는 장애우에게 투쟁하며 살아낼 수 밖에 없는 상황만을 제공하고 있으니까.
다음 달 버스타기 투쟁부터 참여할 것이라는 광표씨. 장애 극복을 강요받기보다는 장애를 인정받고 싶다는 광표씨.
그 이의 또 다른 투쟁은 이미 시작됐다.
글 최희정 기자/ 사진 윤정은 객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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