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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시인 최영미

단일민족 강조는 다양성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죠.

본문

6월은 2002 월드컵대회 1주년을 맞는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TV와 신문에서는 연일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느라 분주하다. 누군가는 월드컵 현상을 "집단광기"로 까지 표현했지만 뭐 하나 속시원히 해결되는 것 없이 ‘제자리 맴맴’같은 따분한 일상에서, 지난 해 월드컵은 대규모 이벤트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했었다.
90년대 초‘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한 권의 시집으로 매도와 찬사 극단의 평가를 받았던 시인 최영미(여, 43세). 그녀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최근에도 외국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시계를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는 축구광이기도 하다.
독신여성으로 살고 있어 자유로울 것 같지...만, 나이 마흔이 넘어 혼자 살고 있는 것을 ‘자유’로 봐줄 한국 사회이던가.
최영미 시인을 만나 우리 사회의 편견과 그녀가 열광해 마지않던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정열: 최영미씨는 만남 자체를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특별해 보입니다. 실은 만나고 싶지 않은 자리에도 나를 꾸며서 포장해야 하는 경우 가끔 자괴감이 들기도 하거든요. 최영미씨의 경우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최영미: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터뷰입니다. 내가 한 말, 혹은 하지 않은 말로 인해 언론과 불편한 관계에 처한 적도 많죠. 주간조선과는 재판까지 했으며 한겨레신문과도 껄끄러운 사이입니다. 내가 한 말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더 심하게 왜곡되는 건, 어떻게 보면 내가 그만큼 남과 다르며 개성이 강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내 말을, 내가 사용한 비유나 표현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나에 관한 ‘편견’에 사로잡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정열: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최영미씨에게 어떤 ‘편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영미: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통해 사람들은 나를 지나치게 솔직하고 도발적이다. 혹은 80년대를 청산? 니가 80년대에 대해 뭘 알아? 건방지게...뭐 그렇게 생각들 하죠. 그러니까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로 단편적인 이해를 하면서 ‘아니 젊은 여자가 섹스를 언급하다니!’(예를 들어, 시(詩) 「Pensonal Computer」중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등등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집을 보면 알 수 있다) 뭐 그런 거였죠.
시나 말, 내 글들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류며 편견이었어요. 몇 해 전 한 기자는 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떠도니까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도대체 최영미에 대해 왜들 그래? 뭐가 문제야? 싶어서 제 글을 다 읽었답니다. 읽고 나니, 저에 대한 이야기들이 터무니없이 잘못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처음 「함께걸음」에서 인터뷰 신청 왔을 때도 기자에게 제가 쓴 것 중 읽은 거 있어요? 말해봐요. 어떤 느낌이었어요? 라고 꼬치꼬치 물었죠. 내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가 인터뷰를 할 때는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김정열: 그렇다면, 혹시 본인이 갖고 있는 편견은 없나요? 예를 들자면?
최영미:
왜 없겠어요, 많지요. 순진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월드컵 전에는 남을 질시하고 일부러 해코지하는 사람들은 실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이탈리아의 토티를 보면서 실력 있는 사람들도 반칙과 속임수에 능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렇다고 해도 지단이나 호나우도를 보면, 역시 최고의 선수는 다르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들은 상대를 해치지 않고 옐로우 카드나 레드카드를 받지도 않아요. 제 분석결과 일부러 상대를 다치게 하는 행동도 없었고요. 실력 없는 모자란 인간들만 남 해코지한다는 흑백논리를 갖고 있었는데...여하튼 가능하면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발문>
편견’과‘다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세가 달라진다. 그리고 인터뷰라서 길게 이야기 못하지만 할 말이 많단다. 그로 인한 상처가 많은 것일까? 섣부른 오해와 판단이 당사자에게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치유하기 힘든 그 무엇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김정열:‘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말한 뒤 벌써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최영미씨 나이가 43세, 그리고 독신여성으로 살고 있으니, 주변에서 갖고 있는 사회적 편견 또한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어떠한 편견을 갖고 있고, 왜 그런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어떻게 대처하죠? 이 밖에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최영미: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갖고있는 편견을 일일이 교정할 정도로 내 힘이 남아돌지 않는군요.(웃음) 불유쾌한 일이 발생할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저는 가급적 타인과의 접촉을 피합니다. 저에 대한 편견이 생긴 이유요? 그건 한국사회가 매우 동질적인 사회기 때문이죠. 남과 다르게 생기거나,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느 교포 변호사가 한국이 단일민족인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동질적이라는 것은 타민족이나 소수민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배타성을 내포한 표현이고, 서로간의 차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거죠. 그게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얼마나 답답한 관점을 갖게 하는지 몰라요.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꽉 막힌 답답한 사회입니다.
그리고 누구든 신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약자라면, 먼저 힘을 키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눈물과 한숨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김정열: 실은 저랑 같은 연배이신 것 같은데, 저는 삼십대의 제 모습을 기억하기가 영 쉽지 않군요. 서른과 마흔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근래 마흔의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사회적으로 거론되고 있죠. 저는 위, 아래 양쪽으로 짜부러져서(?) 지내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인 것 같은데...최영미씨에게 ‘나이 마흔’은 어떤 의미인가요?
최영미: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포기하게 되었구요. 집착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거요? 그건 아까 이야기했듯이 약간의 결벽증 때문에 청소를 해야 하는데, 몸이 불편하니까 못하죠. 예전 같으면 전전긍긍하면서 나를 질책했을 텐데, 이제는 금방 포기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거죠.(웃음)

<발문>
독립적인 여성이라 자부했지만 왼손의‘장애’로 인해 인간은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나눔의 미덕’. 그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을 터득했다는 최영미씨.

김정열: "장애"에 대해 고민해 보신 적은 있습니까?
최영미: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왼손 인대가 파열됐죠. 그 덕에 속초에 가서 글쓰겠다고 집도 마련했는데, 의식주 자체를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워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올라왔습니다. 남들 도움이 필요했던 거죠. 처음 의사에게 왼손의 인대가 손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손으로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니까요. 다른 수입이 전혀 없거든요. 게다가 왼손을 못쓰니까 오른손을 자주 쓰게 되는데, 너무 한 쪽만 혹사해서 그런지, 이제는 오른손도 덩달아 아프고 무릎도 안좋아졌어요.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까 참 애매하죠. 사람들이 몰라요. 아주 작은 ‘장애’라 할지라도 일상에서의 불편함은 겪어보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몸이 불편해 깨닫게 된 인생의 지혜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불편해도 내 상태에 커다란 불만은 없습니다. 단,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가구배치를 다시 할 때나 청소할 때처럼, 내가 남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구차스럽고 번거롭고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하하

김정열: 도움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도움줄 줄도 모르지 않나요?
최영미: 아니오, 전 성격상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힘들긴 해도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지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요. 내 ‘장애’를 인정했다고 해야 하나? 쉽지 않지만 당당히 말해요. 그리고 이제는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알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보이면, 더 먼저 다가갈 수 있죠. 실은 저 자신을 독립적이라 생각해 왔는데, 인간은 정말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정열: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매 순간을 가족 등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부당하죠.
최영미: 맞습니다.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려도 안되겠지요.

<발문>
축구이야기만 나오면 그녀는 벌써 목소리 톤이 다르다.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때의 영상이 휘리릭~스치는 모양이다. 시에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아이 같고 명랑하다.

김정열: 지난 해 월드컵 때는 축구 경기를 보느라고 밤잠을 설쳤다고 들었습니다. 축구에 대한 글도 많이 쓰셨더군요. 도대체 최영미씨에게 축구는 무엇입니까? 또 저는 최진철선수를 좋아합니다만, 좋아하는 선수는 누군가요?
최영미: 전 정말 열광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이 스포츠신문에서 관련 기사 읽는 거고, 관련 글도 쓰고, 월드컵 이후에도 재방송과 주요경기를 담은 비디오를 세트로 구입했을 정도니까요. 제가 축구에 열광했던 건 그네들의 순수한 표정이었습니다. 그처럼 욕심 없고 깨끗한 얼굴과 살아 움직이는 몸짓에 전 굶주려 있었던 것 같아요. 이영표와 유상철, 김남일이 이 땅 뭇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건 그 동안 조선의 남자들이 조선의 여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죠. 돈과 권력, 그리고 남보다 월등한 지식을 탐하는 치들의 얼굴이 지겨웠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통해 어떤 고매한 사상가의 책에서도 얻지 못한 인생의 교훈을 몇 가지 얻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참, 선수는 모험을 할 줄 알고 투지에 넘치며 투명한 김남일과 유상철, 그리고 박지성을 좋아합니다.

김정열: 월드컵이 한국 사회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영미:
현재 월드컵의 영향이 과대포장 되어있어요. 한국사회는 월드컵을 전후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김정열: 월드컵 이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만들어 가는 문화를 즐기고 옹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촛불시위 등이 그렇지 않을까요? 최영미씨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80-90-2000년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최영미: 아...너무 엄청난 질문이라 답변이 곤란하네요. 책 몇 권은 써야지만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정열: 시도 쓰고, 미술평론도 하고, 최근에는 소설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은 저에게 글쓰기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인데 최영미씨에게 글쓰기 작업은 어떤 의미입니까?
최영미: 그냥...살기 위한, 생존을 위한 방편이죠. 전 미치지 않기 위해 씁니다. 글쓰기는 운명, 팔자인 것 같아요. 부담스러우면 애쓰지 마세요. 그거 잘 안돼요. 하하. 지금 준비중인 소설은 원래 작년에 끝냈어야 하는데, 월드컵 때문에 아무 것도 못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축구는 내 삶의 이유이자 덫인걸요. 이 인터뷰 끝으로 전화도 모두 끊을 겁니다.

함께걸음 인터뷰 때문에 코드를 꼽아놓고 있다가 월드컵 1주년이라 여기저기서 인터뷰와 글을 청탁하는데 월드컵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절도 못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며 울상 아닌 울상을 짓는 그녀.
지금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글은 일종의 성장소설이 될 것이라고 한다. 1/2이상이 가족사라고 하지만 아직 소설의 주제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이 될 지는 끝내봐야 안단다. 이제 마무리될 때까지는 모든 관계를 끊고 마지막 정리작업에만 몰두하겠다는데... 서양미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감수성이 더 예민해져 세상에 대해 전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 속에 대작이 잉태되고 있을지 기대해 본다.


대담: 김정열소장 /정리: 여준민기자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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