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윤윤수 사장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 함께 사는 세상


[만난사람] 윤윤수 사장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나눔의 경제학을 실천합니다."

본문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 돈을 버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다. 돈을 버는 것이 모든 가치의 정점을 차지한 이 시대에, 돈을 버는 일만큼이나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 똑바로 벌어야만 제대로 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만났다. 휠라코리아의 사장으로 받는 한국 최고의 연봉을 스쿠터 제조업체인 케어라인의 기술개발과 투자에 쏟는 윤윤수 사장. 그의 사업 행로와 나눔의 철학을 들어보았다.

 

 

몇 차례 사업 실패 후, 스쿠터 제조 시작

 

▲윤윤수사장

- 전동휠체어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데 비해, 스쿠터는 장애를 가진 분뿐만 아니라 노인들께서도 관심을 많이 보이시더군요. 연로하신 부모님께 사 드리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자주 만나고요. 시장을 보러 가거나 은행업무를 보는 등 일상생활에서 스쿠터가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겠지요?

러나 스쿠터의 보급이 일반화되어 있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스쿠터를 이용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요. 어떤 계기로 스쿠터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생활을 하다가,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1984년 3월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수출업무를 담당했던 터라,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자산이었지요. 돈 한 푼 없이 회사를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외국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라인실업 이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처음에는 전선, 장난감 등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는 품목은 다 팔았어요.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 만드는 물건 중 팔아서 이익이 남는 것은 모두 취급한 셈이지요. 조그마한 종합상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역을 하다 보니, 제조업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하나 둘 문제가 생기더군요. 어느 한 제조업자의 물건을 지속적으로 팔면, 제조하는 사람이나 무역하는 우리 둘 다에게 이익이잖아요? 그런데 해외에 나가서 바이어를 만나 거래를 성사시키고 돌아오면, 제조업자가 우리에게는 팔 수 없다고 안면을 바꾸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거에요. 자신들이 제조한 물건을 직접 팔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겠지요. 이런 일을 자주 겪게 되니 ‘힘들어도 직접 제조를 해야지, 무역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시도한 것은 도트프린터 리본이었습니다.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프린터 리본 수요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지요. 그래서 제작을 시도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무역 파트너인 미국인에게 돈을 떼이기도 했고요.

그 다음에 생각한 것이 순간온수기였어요. 그 때가 두 번째 오일파동 무렵이라 사람들이 기름값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난방을 하지 않고 온수만 쓰더라도, 물을 데우려면 보일러를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열손실이 발생하잖아요? 그래서 ‘열손실을 없애려면 즉각 데워서 써야 한다’는 개념을 이용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물탱크가 없는 순간온수기를 제조하려고 했어요. 수중의 돈이 적으니까 공장을 가진 친구와 계약해서 투자하는 방식으로요. 미국에 가스 기기를 수출하는데 필요한 AGA (American Gas Association 미국가스기구협회)의 승인까지 받았지만, 이후 제조과정에서 계속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것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휠라코리아의 성공으로 스쿠터 사업의 기반 다져

“그 무렵 다른 미국인 사업 파트너가 ‘스쿠터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추천했습니다. 생각해보니 21세기에는 실버산업이 각광받을 것이고, 노인 뿐 아니라 장애우들도 스쿠터를 이용할 수 있어 수요도 많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1989년도에 스쿠터 샘플을 국내로 들여와 분해와 재조립을 반복하며 스쿠터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섰지 제품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기술도 부족하고 안전도 측정에 필요한 도구나 절차도 잘 몰랐던 탓에 처음에는 힘들었지요. 수출한 제품의 50% 이상이 반품된 적도 있었으니까요. 라인실업은 스쿠터 생산이 본 궤도에 오른 1994년까지 5, 6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다행히 이 시기에 휠라코리아의 사업 성공으로 라인실업의 적자를 보충하고 제품 개발에 재투자할 수 있었지요. 휠라코리아는 라인실업의 스포츠제품 부문이 1991년 독립해 생긴 회사입니다. 케어라인이 휠라코리아의 모기업인 셈이지요. 지금도 케어라인이 휠라코리아의 주식을 2.6%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스쿠터가 회사 제품의 주종을 이루게 되자, 라인실업도 2년 전 케어라인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스쿠터가 사람들을 케어(care)하는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보장구로 지정되지 않아 국내 판매에 어려움 겪어

- 케어라인이 정상궤도에 진입한 것은 1994년 이후라고 볼 수 있겠군요. 케어라인 제품이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알고 있는데 국내 판매 실적은 어떻습니까?

"2001년도에는 국내시장에서 800여대 정도 판매했습니다. 올해는 1,000여대 정도 판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해외수출실적이 약 30,000대, 3천만불 어치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대수는 아닙니다. 내수로는 기업을 유지하기도 어렵지요. 올해 수출은 약 40,000여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단일 품목으로 상당한 수출액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판매 실적이 미흡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애우들이 스쿠터를 이용하기에는 건물 내 구조나 도로 사정이 부적절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 고가인 장비를 구매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장애우나 노약자가 많지 않은 것도 판매가 부진한 이유이고요. 스쿠터나 전동휠체어가 고가여서, 적지 않은 장애우의 재정능력으로 구매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선진국에서는 스쿠터나 전동휠체어를 보장구로 지정되어 있어서 장애우들이 구입할 때 국가에서 일정한 금액을 지원합니다. 지원을 위해서는 국가 재정이 그만큼 튼튼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제조하는 입장에서야 면세대상이 확대되면 좋지만 하루아침에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장애우정책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입안되고 집행되는지 여부가 한 나라의 선진화를 잴 수 있는 하나의 잣대라고 볼 때, 이런 점에서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어렵지요. 물론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이고, 장애우정책을 포함한 사회복지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장애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체제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는 국가라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 체계와는 별개로 정치, 경제 부분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책임감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정승같이 벌어야 정승같이 쓴다

질문 : 그런 점에서 윤 사장님께서 작년에 모 광고출연료로 스쿠터를 기증하신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스쿠터를 제조하는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가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광고출연료까지 챙기는 것은 너무하다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물론 제가 예수나 석가처럼 좋은 생각만 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저도 돈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이에요.

얼마 전 신문에 전체 재산 300억원을 기증한 분이 소개되기도 했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기증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사례지요. 대학교에 가면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이 많잖아요? 이들이야말로 돈을 어떻게 쓰는 지 아는 사람들이지요. 돈은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탈무드에도 나왔듯이 자식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지요.

최근 재계 인사들이 자기 가정의 가르침을 소개하는 어느 신문 란에‘똑바로 벌어라’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요. 우리 집안은 아버님께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돈이 있던 집안도 아니었거든요. 더구나 아버님께서 한학을 하셨기 때문에 저에게 경제에 대해서 전혀 가르쳐주신 것이 없었어요. 한학을 하셨던 다른 분들처럼 타협도 모르고 대쪽 같으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늘 똑바로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 중요하니, 다소 고통스럽더라도 바른 수입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 아버님의 가르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르게 부자가 되라는 말씀이셨지요. 그래서 저도 자식들에게 고기를 주기 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눔의 경제학을 위하여



 

장애우고용 방안 강구하겠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사진 · 정리 이수지 기자(soo3881@naver.com)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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